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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전도학교
누가복음 10:1~9
서론(序論)
이 귀한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OOO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이렇게 다들 환하고 밝은 표정으로 저를 맞아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만 6년 전에 하늘사랑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당시 저희 가족과 79세가 되신 할머니 권사님 한 분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그 때에 비해 교회가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그래도 대전OO교회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에 비하면, 저희교회는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요즘 저는 성도 한 명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여러분과 같은 든든한 일꾼으로 세워나가기까지, 목사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기도로 성도들을 기다려주어야 하는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처럼, 교회의 일꾼들이 든든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부럽기도 하고,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이 이 교회 위에 머물고 있는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성도들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는 담임목사님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헌신이 너무나 귀한 것을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은 정말로 특별한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OOO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은 저희 지방회 내에서도 저와 같은 후배 목사들에게 존경을 받으시는 훌륭하신 목사님이십니다. 항상 인자하시고 겸손하실 뿐만 아니라, 권위를 내세우시기 보다는 남들을 먼저 배려해 주시는, 정말 예수님의 인격을 닮으신 목사님이십니다. 이렇게 은혜가 충만한 교회에서, 이런 좋은 목사님과 함께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전도에 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전도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가장 준엄한 명령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저는 성도들 중에서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막상 누구에게 전해야 하고,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전도에 힘쓰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거나, 전도는 열심을 가진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전도를 부담으로만 느끼지 않고 보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이 일이 가능할까요?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이 질문에 해답을 얻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작년 4월에 저희교회에서 실시되었던 성결교단 교회진흥원의 전도훈련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4주간 실시되었던 교회진흥원 전도훈련을 통해서 예수님의 전도훈련 원리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 훈련을 통해 제가 누구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와 선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 13:13).”
우리의 주와 선생이 되신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우리는 전도를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요? 우리의 주와 선생이 되신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에게 전도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너희는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론(本論)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훈련을 시키신 장면이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은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께서 칠십 명의 제자들에게 직접 전도훈련을 시키신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1절을 읽겠습니다.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전도현장으로 내보내실 때, 둘씩 짝지어서 내보내셨다는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혼자 보내지 않으시고 둘씩 짝지어서 보내셨을까요? 거기에는 주님의 분명한 의도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전도의 첫 번째 원리는 ‘함께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합시다. “함께 나가라”
교회를 개척한 후 2년 동안, 저는 매주 혼자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그 때는 함께 전도하러 나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전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전도하다보니 외롭고, 때로는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위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분이 제가 목사인 것을 알고 “목사님께서 이렇게 직접 전도하러 다니시니 너무 도전이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약간 비난하는 말투로 “왜 목사님 혼자만 전도하러 다니세요? 다른 성도들은 없으세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큰 교회의 부목사일 때에는 그래도 반듯한 예배당도 세워져 있고, 함께 전도할 성도들도 있어서 전도할 때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막상 교회를 개척하고 보니, 저에게 개척교회 목사라고 하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작으면 저렇게 목사 혼자 매일 전도하러 다니나?” 하는 생각이 저에게 들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전도의 열정이 식어졌고, 전도하러 나가는 날보다 교회 안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더 늘어갔습니다.
전도를 쉬게 되면서 저의 영성이 점차 침체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전도하러 다닐 때에는 “혹시 이번 주일에 전도지를 받은 사람 가운데 우리교회를 방문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주일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쉬면서부터는 주일이 기다려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한 번 전도를 쉬고 나니 다시 전도하러 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가을에, 우리 지방회 개척교회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품앗이전도대가 결성되었습니다. 품앗이전도대는 말 그대로 전도를 품앗이해 주는 모임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할 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서로 농사일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개척교회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서로 한 주씩 교회를 돌아가면서 전도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이 모임이 진행되어 이제는 그 모임이 200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님들과 함께 전도하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만 전도하던 것이, 일주일에 두 번으로,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으로 전도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개척교회 목사님, 사모님들과 함께 전도하고, 토요일에는 제 아내와 저희교회 전도사님과 함께 전도하고 있는데, 이 모임도 벌써 92회가 되었습니다. 또 주일에는 점심식사 후에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이 교육관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전도용 강냉이 포장하는 일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교회가 주중과 주말에 규칙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힘쓰다 보니 식었던 저의 목회열정도 회복이 되었고, 성도들도 교회 부흥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조금만 참으세요. 우리교회는 잘 됩니다. 반드시 잘 됩니다.” 이렇게 웃으며 저를 격려해 주시는 권사님들, 집사님들 덕분에 저는 행복한 목회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과 함께 전도하게 되면서 저에게 일어난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전도하는 일이 예전처럼 힘들거나 부담스럽게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매번 전도할 때마다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가 다른 분들과 함께 전도하게 되면서 점점 제 자신이 전도자의 영성으로 무장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 ‘전도자의 영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가 전도자의 영성이라고 말하니까 어떤 분들은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뚝 떨어지는 영성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전도자의 영성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의 영성은 ‘순종의 영성’입니다.
솔직히 저도 인간인지라, 어떤 때에는 몸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은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 혼자면 쉬겠는데, 함께 전도할 다른 동역 자들이 있으니까 그 분들 때문에라도 전도현장에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도하러 나갈 때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가지만, 정작 전도 현장에 서게 되면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저에게 전도할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힘이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전도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닙니다.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힘들더라도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전도의 가장 확실한 전략은 “무조건 전도현장에 나가는 것”입니다. 한 번 저를 따라 해보시겠습니다.
“무조건 나가야 한다. 나가는 것이 전략이고, 순종하는 것이 전략이다. 내가 순종하면, 주님이 역사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를 잘하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저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전도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 때 전도의 길이 열리고, 전도의 방법이 생깁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현장에 내보내실 때, 혼자 보내지 아니하시고 둘씩 짝을 지어 내보내신 것도 제자들로 하여금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감히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매주 정해진 전도현장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는 함께 전도할 수 있는 소중한 동역 자들이 있나요? 전도는 혼자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배우는 두 번째 전도원리는 “준비된 사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자, 저를 따라 해봅시다. “준비된 사람을 찾으라.”
우리 5절과 6절을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예수님께서는 전도자가 어느 집에 들어갈 때 먼저 무엇을 말하라고 하셨습니까? 5절에 보면,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우리가 빌어준 평안이 그 사람에게 머물 것이고, 그 집에 평안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빌어준 평안은 도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평안을 받을 사람입니까? 교회진흥원에서는 평안을 받을 사람을 다른 표현으로 ‘준비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준비된 사람’은 우리의 말에 호의적으로 반응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은 우리를 집으로 초청하거나 자신이 추수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준비된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준비된 사람을 찾는 방법이 왜 중요하냐면, 이 방법은 여러분이 상대방에게 거절당했을 때 여러분이 낙심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전도현장에서 거절당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거절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전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준비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준비된 사람을 찾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러분이 먼저 인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준비된 사람은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자들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항상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인사법인데,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이 말을 우리로 바꾸자면, “안녕하세요?” 이런 말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는 인사를 잘 해야 합니다. 전도자가 먼저 밝고 단정한 표정으로 전도대상자를 향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사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 부분을 어려워합니다. 전통적인 유교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합니다. 저희 집은 아파트 14층에 있는데, 저는 가끔 낯선 분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어색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만큼 제 자신이 다른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데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잠도 깰 겸, 좌우에 앉아계신 분들에게 인사하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윗니를 8개 정도 드러낼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으로 하지 마시고 진심을 담아서 옆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셔야 합니다. 자! 저를 따라서 인사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잘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반대편 사람과도 똑같이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여러분이 진심을 다해 인사를 나누니까 여러분 마음이 어떻습니까? 기분이 좋으시지요? 제가 보기에 여기 계신 분들이 대부분 인사를 아주 잘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아직 인사하는 것이 서툰 분들도 계십니다. 평상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자꾸 여러분이 연습을 하셔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활짝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여러분의 인사를 받아 주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준비된 사람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인사를 나누었는데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거나 오히려 여러분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저 속으로, “아! 이 사람은 아직 복음을 받아들일 영적인 준비가 안 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시고, 좋은 이미지만 남기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준비된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준비된 사람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결국 ‘전도는 준비된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머지 원리들은 제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먼저 복습부터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전도훈련 첫 번째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함께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전도훈련 두 번째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준비된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세 번째 원리는 무엇일까요? 세 번째 원리는 ‘준비된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자가 준비된 사람을 찾았으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그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고, 머물면서 더 깊은 영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 네 번째 원리는 ‘병자들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에는 자연스럽게 강력한 치유의 역사도 동반됩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전도의 마지막 원리는 예수님께 보고하고 평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이러한 원리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제한된 시간 때문에, 여러분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원리만 소개해 드렸습니다.
결론(結論)
저는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전도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하다가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전도의 첫 번째 원리부터 여섯 번째 원리까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얼핏 보면 순간적인 사건인 것 같아도,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들의 수고와 기도가 쌓여졌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전 3:7).”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기 위해서 누군가는 심고, 또 누군가는 물을 주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그의 영혼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쉽사리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불평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만 감당하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끝으로, 여러분은 전도자의 큰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연 전도자의 가장 큰 상급이 무엇일까요? 귀신이 여러분에게 항복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받는 것인가요? 물론 이러한 것들도 예수님께서 전도자에게 주신 소중한 상급들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가장 큰 상급은 무엇일까요?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전도자의 가장 큰 상급은 귀신이 여러분에게 항복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능력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자의 가장 큰 상급은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최근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40일 금식기도를 마쳤습니다. 이것은 제 노력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저의 경건으로 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저에게 40일 금식기도를 강력하게 권유해 주셔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목사님들 여섯 분과 함께 40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40일을 연이어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삼일씩 총 아홉 끼를 연속으로 금식하고, 나머지 사일은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연속 14주를 진행하여 40일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첫 주, 삼일 금식을 시작하면서 저에게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삼일 금식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가 과연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40일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실제로 4주차와 10주차 때에는 금식을 포기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금식을 진행하였고,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40일 금식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기도제목을 정했습니다. 첫 번째 기도제목은, 금식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더 친밀한 동행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기도제목은 금식기도 중에 저희교회에 새가족 세 가정을 보내달라는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금식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저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식 마지막 주에 새 가족은 그만두고서라도, 당장 추석연휴가 시작되어 평상시보다 예배 인원이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득 없이 금식이 마무리되나 싶어서 제가 얼마나 속상하고 낙심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금식 마지막 날 새벽에, 저는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저에게 금식기도를 도전하신 목사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몇 몇 목사님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기도원 같은 곳으로 저를 인도하셨는데, 저를 보고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하나님께서 저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날 새벽, 저는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말씀이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 목사님을 저의 꿈에 보내주셔서 저를 위로해 주시는 것 만 같았습니다. 그 날 아침은 저의 금식 40일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딸들 중에 한 명이 무심코 저에게 “아빠, 금식하느라고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마 평상시 같았으면 “아빠가 조금 힘들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저는 자녀들을 향해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 금식의 축복이 얼마나 큰 줄 아니? 하나님께서 아빠를 기쁘게 받아 주셨단다.”
그리고 저는 어젯밤 꿈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전해 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40일 금식기도를 통해 저에게 능력이 나타나거나, 우리교회에 새로운 신자들 몇 가정이 등록했다고 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를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기쁘게 받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저를 위로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가 그 무엇보다 가장 귀하게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의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열매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자녀들이 잘 되고,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귀신들도 항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의 가장 큰 축복은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하는 여러분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과 상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십시오(딤후 4:2).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전도자의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