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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속에서 찾아보는 21세기 고뇌와 사유 -2
황외순(시조시인)
한 라디오 DJ가 “오늘도 추억이 됩니다.”라는 말로 프로그램 마무리 인사를 했다. ‘추억’이란 말에 선뜻 마음이 가닿는다. 후진이 없는 삶, 내처 달려가다가 문득 돌아보면 그곳에 형형색색의 추억이 있다. 분명 등 뒤에 있지만 선명하게 보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점점이 이어져 따로인 듯 함께 나아가는 우리의 자취다. 여전히 세상은 소란스럽다. 육아, 출산, 취업, 노후 등 여러 문제 앞에서 발 둘 곳을 몰라 허둥대는 사람들 틈으로 가짜 뉴스가 파고든다. 그 위로 미세먼지까지 덮친다. 속수무책이다. 이럴 땐 추억 한편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채찍이 되어 삶의 한고비를 넘어가기도 한다. 흔들릴 땐 지지대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많으면 부자다, 라는 말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듯이 추억은 우리에게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추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과 향수가 담겨 있다. 그래서 따뜻하다. 여기 우리들의 추억이 있다. 힘을 빼고 이 시편들에 걸터앉아 잠시 곁불을 쬐어 보자.
o 갈치 삽서 갈치 삽서 싱싱한 갈치 삽서 ···
어머니, 보리쌀과 바꿔 끓여먹던 갈치국
그 갈치 30여 년 지나
변해버린 금갈치
oo 제주 앞바다는 밤새 불야성이더니
아침엔 만선 깃발 서부두에 출렁인다
호박과 풋고추 썰어놓은
갈치국이 익고 있다
알싸한 국물 맛에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
당신은 차마 못 드시고 얹어주시던 갈치 한 토막
가시를 발라 먹다가
목이 울컥 뜨겁다
-오영호「갈치국」전문,《시조시학》 2018. 겨울호
“갈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생선이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하지만 고등어, 꽁치, 명태 등 다른 생선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어서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특히 더했다. 간신히 손님상에나 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요리하는 방법도 구이나 조림, 찜 등을 선호하는 요즘과는 달라서 찌개나 국이 대부분이었다. 적은 양의 갈치로 많은 가족이 나눠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가난한 양반집 며느리는 갈치 살 돈이 없어서 갈치를 한참 만지작거린 후 그 손을 씻은 물로 갈치 맛이 나는 국을 끓여 앓아누우신 시아버지의 입맛을 되돌렸다고 한다. 여담이겠지만 그만큼 갈치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여기 혹은 우리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 “갈치 한 토막”조차도 “당신은 차마 못 드시고” 일일이 “가시를 발라” 내 숟가락에 “얹어주시던” 어머니가 계신다. 그래서 오영호 시인의「갈치국」은 우리를 잠시 멎게 하는 시다.
물마루 물마루 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역사도 함께 울던 아련한 오포 소리 한 발을 올리다 말고 가만히 바라본다
유달산 상공으로 휴지가 흩어진다 포탄 없이도 들려와 시장기를 알려주던 다도해 바라보면서 귀를 세운 오포대
밀어보고 당겨본다, 희미한 그 울림을 녹슬어 윤기 없어도 역력한 옛 모습 만지고 덧칠해보면 다시 또 들려올까
원조는 어디 가고 파노라마 스쳐간다 갯바람에 들려오는 세 마리 학의 노래 팔월의 선창가에서 그렁그렁 들려온다
-이보영「오포대」전문,《정형시학》 2018. 겨울호
시계가 없어 그림자로 대략의 시간을 추측하던 때였다. 매일 낮 열두 시에 울리는 “오포” 소리는 해를 중천에서 잠시 멈추게 하는 소리였다. 그것은 오전과 오후의 접점을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했다. 화답하듯 꼬르륵 소리. 일손을 멈추고 잠시 허리를 펴라는 신호이며 또한 “시장기를 알려주던” 신호였다. 이어지는 식사 시간은 더없이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밭에서, 논둑에서 혹은 마당이나 부엌에서 여러 이웃과 함께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던 모습은 그 시절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오포”는 경술국치에 따른 국권 상실로 일본군사령부가 보신각의 종소리를 밀어내고 일본의 표준 시각에 맞춰 직접 대포를 쏘고 정오를 알려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꽁보리밥 한 그릇에도 힘이 솟던 한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역사도 함께 울던 / 아련한 오포 소리”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시간은 일본 중심의 표준시에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다도해 바라보면서 / 귀를 세운 오포대”는 우리의 추억인 동시에 아픔인 셈이다. 화자가 “녹슬어 윤기 없”는 “오포대”의 “옛 모습”에서 “그렁그렁”한 “오포” 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꼬리치며 달아나도 잡지 못할 뒷덜미 은신하기 두려운 광장을 비껴 지나 변두리 수구레국밥 만판 핥는 오일장
허구한 날 드나들던 뒤꿈치도 닳았는지 한숨 곤히 자는 사이 좌판에 남은 흥정 떨이는 농간을 부린 바람잡이 몫이다
십이리 할매 이방 아지매 불그레한 웃음 저물녘 노을처럼 물드는 백 년 장터 동여맨 전대를 풀며 허리춤을 추킨다
-이숙경「백년도깨비시장」전문,《시조시학》 2018. 겨울호
사는 게 몹시 지치고 힘들 땐 흔히 시장으로 가 보라고 한다. 시장은 고요와 적막, 좌절과 체념 같은 것들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채소를 다듬거나 생선의 비늘을 치며, 혹은 “수구레국밥”을 끓이는 등의 세찬 날갯짓으로 늘 퍼덕퍼덕 비상을 시도한다. 특히 새벽시장, 번개시장, 도깨비시장 등으로 불리는 첫새벽의 시장과 주기적으로 열리는 “오일장”은 더하다. 이숙경 시인의「백년도깨비시장」도 마찬가지다. 어기적대는 법이 없다. 걸음이 들썽들썽 탄력이 있다. 이는 “꼬리치며 달아나도 / 잡지 못할 뒷덜미”에 잘 나타나 있다. 마수걸이 또는 “떨이”로 바람을 잡고 “흥정”을 시작한다. 거래의 완성은 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십이리 할매”와 이방 아지매”도 수구레국밥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거나하게 걸쳤나 보다. “저물녘 노을처럼 물든” “불그레한 웃음”과 다저녁 “동여맨 전대를 풀며 / 허리춤을 추키”는 “백 년 장터”가 본 듯이 눈에 선하다.
눈이 침침해졌나, 생각이 요상해졌나 모델을 모텔로 멘티를 팬티로 불운을 불륜으로 읽고 불안을 불알로 읽어
멀쩡한 문장을 오독으로 모독하니 오독이나 모독이나 독은 독인지라 이 둘은 경외가 아닌 경계해야 하는 것
-서숙희「불온한 오독, 혹은 모독」전문,《가람시학》 2018. 제9호
사람들은 간혹 어떤 사물이나 사람, 현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자신의 편협한 생각이나 잣대를 앞세워 성급하게 읽거나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모델을 모텔로 / 멘티를 팬티로 // 불운을 불륜으로 읽고 / 불안을 불알로 읽”은 화자처럼 대부분 “오독”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결국 사실에 대해 “모독”을 가하는 행위이며 결국 그다음에 올 생각과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독”이 된다. 필자는 종종 한 편의 시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시를 세상으로 내보낸 이상 더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고는 하나 행여 “멀쩡한 문장을 / 오독으로 모독”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이다. 그럴 땐 화자처럼 “눈이 침침해”진 탓이라고 어설픈 변명이라도 하고 싶다. 러시아 작가 타마라 체렘노바에 관한 기사는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뇌성마비였던 그녀는 6살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의료진의 오류인 ‘지적장애’ 진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50년 가까이 동화를 썼고 마침내 작가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음을 글로써 증명해 보인 셈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의 힘이다. 하물며 작가로서의 글쓰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 아닐까 싶다. 무릇 예술작품은 독창성이 생명이라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신출귀몰한 개성을 지녀야 한다고는 하지만 소통에 기반을 두는 게 단연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위 시편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시는 삶의 어느 한 부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태어난다. 제각각 슬픔과 아픔으로 또는 기쁨으로 제 목소리를 낸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다른 듯 서로 닮은 내 목소리가 거기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생의 힘든 여정에 우리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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