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편. 모락모락 집밥 기행
아무리 나이가 들고 기억이 흐릿해져도 평생 잊히지 않을 그 맛, 집밥
집과 가족을 떠나 타향에 자리 잡은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집밥은 그리움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일 것이다. 같은 이름의 음식, 반찬도 집마다 고유의 맛을 가진다는 차이가 그 의미를 더욱 크게 한다. 저마다의 맛과 향을 풍기는 밥상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집밥을 만드는 사람들의 추억 어린 마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1부. 산사의 삼시 세끼 3월 6일 (월) 밤 9시 30분
공양주 보살들의 사찰 삼시
경북 의성의 등운산 자락에 위치한 고운사의 하루는 아직 밝은 달이 휘영청 한 이른 새벽, 시작된다.
그에 맞춰 환한 불이 켜지는 이곳 공양간에는 12명의 스님과 사찰을 찾아오는 객들의 공양을 담당하는 구법성, 금자심 두 명의 공양주 보살이 있다.
공양간의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까지 스님들 앞에 놓이는 음식은 육식을 금하는 사찰에서 영양 균형과 맛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두 보살의 결과라는데.
모든 삶이 수행의 연속이라 식사 또한 그것의 일부인 스님들에게 보살들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돼 준다.
정성 다한 마음이 담긴 음식에서 차오른 따뜻한 김과 스님들의 “잘 먹었습니다”라는 소리와 보살들의 “감사합니다”가 훈훈히 퍼지는 고운사 공양간.
“모든 사람을 품어 안아야 하거든요. 오시는 분들 모두 내 식구처럼 생각해야 하니까요”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내 식구‘를 먹이는 음식이라 생각하며 사찰 대중을 위한 공양을 준비하고 있을 공양주 보살들을 만나본다.
2부. 강원도 밥심 맛보드래요 3월 7일 (화) 밤 9시 30분
강릉 토박이의 감자 이야기
눈이 펑펑 내리는 초봄의 강릉.
이곳 중심부의 명주동에 살고 있는 동네 토박이, 문춘희 씨는 오늘 시장에 들러 감자 한 박스를 구입했다.
하늘에서 뭔가가 내린다 싶으면 부침개 아니던가. 마침 딱 맞춰 방문한 친한 동네 아우와 함께 직접 간 감자로 만든 감자부침개는 이웃들과 나눠 먹어 더 맛있다.
감자 요리에 이것이 빠지면 섭하다! 이번에는 다 함께 모여앉아 손이 많이 가는 감자새알심까지 뚝딱 만들어 먹는다.
이렇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감자는 춘희 씨에게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라는데.
“감자는 친정 맛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힘들 때 친정엄마를 생각하잖아요”
또 그런 춘희 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단순한 이웃 그 이상, 마치 ’감자‘ 같은 존재다.
“나는 친정엄마 같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이 동네 친정엄마다‘ 이런 마음이 들어요”
언제나 주변에서 감자 향기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강릉 토박이의 뜨거운 감자 이야기를 들어본다.
3부. 피아골 부부의 따듯한 집밥 3월 8일 (수) 밤 9시 30분
산골짜기 부부의 정겨운 하루
아늑하고 작은 골짜기, 경북 예천의 피아골에는 언제나 티격태격 정겨운 심성임, 정승호 부부가 살고 있다.
아침부터 옥신각신한 부부지만 어쩐지 호흡은 척척 맞아 금방 된장 담그기가 마무리된 후, 또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는 성임 씨다.
언제봐도 반가운 아들 부부와의 오손도손한 저녁 식사는 직접 만든 도토리묵과 갱죽에 대한 추억 이야기로 가득하다.
“식구들이 다 맛있게 먹어 주고 또 ‘잘 왔다, 맛있다’ 그 소리 들으면 힘이 나죠”
항상 바쁜 게 농촌이라지만, 손이 커서 뭐든 나누고 싶어하는 부부의 하루는 더 그렇다. 어김없이 오늘도 동네 이웃들을 초대했다는데.
손님들을 위한 따끈한 두부와 함께 남편은 윷, 아내는 칼칼한 장칼국수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신나게 윷놀이를 하고 다 함께 두부와 칼국수를 나눠 먹는 그들, 베풀며 사는 즐거움을 아는 부부의 일상으로 들어가 본다.
4부. 그리운 섬 밥상 3월 9일 (목) 밤 9시 30분
섬 고향에서의 추억으로
“바다는 그리움이죠”
전라남도 순천의 작은 어촌마을에는 늘 섬 고향을 그리며 사는 박경희 씨가 있다.
오늘도 경희 씨는 어시장에서 돌아와 능숙한 솜씨로 손질한 해산물에 직접 만든 어간장과 액젓을 넣어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올린다.
“항상 거문도라는 고향에 음식이 있고 거기에 가족이 있고 그 공간을 같이 공유하며 살았고...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해요”
엉겅퀴 갈칫국, 미역귀탕, 낙지 팥죽과 같은 음식은 누군가에겐 생소하지만 경희 씨에겐 익숙하리만치 많이 먹었고 많이 해 온 것들이다.
섬에서의 추억이 없는 남편과 고향의 추억을 공유하는 큰오빠에게 해산물 밥상을 차려주며 그 시절 기억을 되새기는데.
경희 씨의 ‘바다의 밥상’에 올려진 음식들은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 지역에서 있었던 혹은 없던 추억도 떠올리게 하는 선명하고도 그리운 바다 냄새를 풍긴다.
5부. 모정 가득, 엄마의 손두부 3월 10일 (금) 밤 9시 30분
두부를 만드는 엄마의 마음
콩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곳은 돌탑으로 가득한 마이산의 탑사가 있는 전북 진안의 배민경 씨 집이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이 오는 날. 바로 민경 씨의 두 딸이 본가에 방문하여 함께 식사하기로 한 날이다.
식사 메뉴는 당연히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두부 요리!
직접 농사지은 콩을 사용해 친한 동료 농부들과 함께 갈아서 익히고 짜내며 두부 제조 실력을 발휘해본다.
사실 콩 농사와 두부 제조는 둘째 딸의 아토피 치유를 위해 진안으로 귀농하여 시작하게 된 일이다.
지금은 딸의 건강도 많이 호전되었고 이제는 함께 살지도 않지만 두부는 아직까지 가족의 식탁에 오르는 단골 손님이다.
두 딸의 기호에 맞춘 두부 요리는 언제나 반가운 환호성을 자아낸다.
“부모가 자식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못하잖아요. 집밥을 만들어 줬을 때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좋습니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 대신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긴 두부 요리를 먹으며 오늘도 딸들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단다.
오랜만에 다 함께 살았을 적을 회상하며 익숙한 마이산 길을 산책하고 가장 높은 탑에 두 손 모아 소원도 빌어보는데...
언제나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두부를 만드는 엄마 배민경 씨를 만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