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노장 인문 단상
“삶의 질곡에서 참 자기를 만난,
글을 붙잡은 삶, 삶을 붙잡은 글”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50세는 생애의 반절인 셈이다. 그 언저리에서 “인생이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만족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체의 노화는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생애 대부분을 사방에 도사린 고난과 갈등에 치여 왔고, 앞으로도 빈곤과 고독 가운데 살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인생 후반전, 이모작 등 희망 담은 말들이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은 2016년 세종도서문학나눔 선정작『내 안에 개있다』와『사임당의 비밀편지』,『강치의 바다』등을 쓴 신아연 작가가 2018년부터 3년에 걸쳐 자생한방병원 사이트에 연재한 300여 편의 글 가운데 100편을 추려 묶은 인문단상집이다.
저자는 매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글쓰기를 수행하듯, 아니 수행으로 실천했다. 글 쓰는 일이 생업이었고 소설과 에세이를 책으로 내기도 했지만, 새벽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야 삶이 보다 분명해지고 곤고한 가운데서도 사는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노자와 장자에게서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는 성찰을 얻은 저자는, 그러나 옛 성인의 가르침을 들어 오늘의 독자들을 다그치고 깨우쳐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그는 그저 노자와 장자, 옛 선비들, 우리 시대의 시인들과 이웃들의 글을 읽고 사유한 것을 자신의 글로 표현한다.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 글을 읽은 독자들과 편지로 대화하면서 또 새로운 글을 써나갈 뿐이다. 저자는 그렇게, 사람과 글을 동무 삼아 삶의 파고를 넘고 있다. 굳센 의지와 결기로 풍랑을 헤쳐 나가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품는 것이다. 삶의 질곡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진 생, 그 길에서 참 자기를 만난, ‘삶을 붙잡은 글, 글을 붙잡은 삶’이 책 한 권으로 오롯이 놓였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 언저리에서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싶다.
물론 구체적인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생의 어느 순간에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의지가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 p. 6, 「책 머리에」 중에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월등히 높은 수준임에도
나를 배려하여
내 눈높이에 맞추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상대적으로 나도 같은 경험을 한다.
상대가 내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미 그는 높은 수준의 사람이다.
나는 그걸 잘 모르겠다.
내가 상대에게 맞춰주고 있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내게 맞추고 있는지가
잘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여북하면 노자도
남을 아는 것은 지(智)이며,
자기를 아는 것은
명(明)이라고 나눠서 말할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타인을 아는 것과는
접근부터가 달라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 p. 17, 「나는 나를 아는가」 중에서
“오는 길에
누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기에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붕어가 숨을 헐떡이고 있습디다.
그러면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로
나를 좀 살려주시오.’
이렇게 애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좋다,
내가 이제 남쪽으로 가서
오나라와 월나라 왕을 설득하여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맞이하러 가마.’
그러자 붕어가 화를 벌컥 내며
‘나는 늘 함께 있던 물을 잃어서
이렇게 숨이 가쁜 것이요.
물 한 바가지만 있으면
수레바퀴에 패인 땅을 메워 바로 살 수 있는데
지금 당신은 국경에서 물을 끌어오네 마네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머잖아 차라리
건어물전에서 나를 찾는 것이 나을 것이오.’
이러더란 말입니다.”
배고픔을 덜어주는 한 줌의 온정과
자신의 처지에 공감을 받을 때 사람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내 곁에는 그런 지인들이 여럿 있다.
지금까지 내가 ‘건어물전 물고기’ 신세가
되지 않은 것도 모두 그들 덕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곁의 누군가를
건어물전에 내다걸진 않았는지…
--- p. 27, 「건어물전 물고기」 중에서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약점과
실패와 좌절과
붙잡힌 발목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깨진 항아리 같은 내 모습이,
실은 나를 성장시켜
시나브로 나 바깥의 것에까지
아름다운 향기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결핍을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아 버리면
그 부족함과 모자람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 p. 61,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중에서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꾸며,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 p. 87, 「슬픔의 마력」 중에서
남에게 이해받기 위해 내 사정을 구구절절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나 또한 남의 일에 간섭할 여지가 없다.
그에게는 그의 인생이,
내게는 나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만의 감각에 의지해서 그대로 믿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 p. 155, 「감각」 중에서
“새벽 5시, 고즈넉이 비가 내린다.
겨울은 이미 당도해 놓고도
왠지 머뭇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2013년, 50살이 되던 해에
나는 25년간 해왔던
매 맞는 아내 노릇을 그만두고
옷 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무작정 시드니집을 나왔다.
신림동 고시촌에 보증금 100만 원,
월세 36만 원에 방을 얻고
신문 기고로 생존하며 주야장천 글을 썼다.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둑시근한 방에서
어떤 날은 라면 하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며
이런 처지에 처하기까지의 나의 이야기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쓰고
그렇게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말이 이상하지만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겠다.
그것은 오직 그렇게 산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기에.
--- p.187, 「고독은 나의 힘」 중에서
“I walked a cold and lonely path.”
아이는 막막히 내게 말했다.
춥고 외로운 길을 혼자 걸어야 했던 아이,
뒤늦게 나는 아이와 영혼의 손을 잡고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뜻밖의 선물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시간이.
“진원,
the past cannot be changed,
but we can reinterpret it,
be able to attach meaning to it.”
--- p.213, 「큰아이」 중에서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