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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로 짓는 되새의 둥지
이 홍사
집이 아니라 둥지를 짓고 있기에 노인들은 되새가 되었다.
철사로 짓는 되새의 둥지,
아침마다 현장에 나가면서 되뇐 말이다. 나의 비유로 인해, 두 노인은 되새가 되었다. 최소한 내 눈에는 되새로 보였다. 나는 지금 되새의 둥지를 만들고 있다. 지금 하는 공사는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분명, 둥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아침마다 그렇게 나를 달랬다. 나도 늙었다. 늙어서 무거워지는 몸은 그렇게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이면 간단하게 완성할 집이 보름이 넘었건만, 언제 끝을 볼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일주일? 어림도 없지.
보세요! 사장님 어림없잖아요?
살린 녀석의 되바라진 소리가 귀에 풀어지는 듯했다.
사장님, 이렇게 하면 법에 위반된대요.
우리 미얀마 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대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또 고발한대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얼굴이 벌겋게 단 살린이라는 녀석의 말이었다. 평소에는 한국말을 좀 하다가 제가 성질이 급해서 감당이 안 되면 말이 형편없이 어눌해지는 녀석.
녀석을 보니 눈시울이 글썽한 게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하면 울어버릴 기세였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어떤 새끼가 내 땅에, 내 돈 들여 집을 짓는데, 어떤 새끼가 고발을 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고발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또 공무원에게 시달려야 하나? 지금까지 시달린 것만 해도 끔찍한데. 이 자식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무원을 들먹였다. 집을 지으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말도 통하지 않고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매니저, 살린이라는 녀석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난투극을 벌리던 특공 작전도 이제 끝이 보이는 모양이다.
집이란 구체적으로 뭔가?
얼른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집을 지어서 살기에 편하고, 거기다가 집안이나 밖에서 봐서 예쁘게 나오면 좋고, 튼튼하면 더 좋고, 이 세 가지 목적에 충실하며 집을 짓는데 싸게 먹히면 더 좋고. 그게 금상첨화가 아닌가?
집을 짓기로 했다.
했다가 아니고,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나로서는 인생에서 세 번째로 짓는 집이었다. 아포에서 지은 단독주택. 봉곡동에 지은 상가주택은 몸을 누일 곳이지만, 이번에 짓는 집은 마음을 누일 집이었다.
그래 마음을 누이는 집.
형편없이 주저앉은 집을 다시 짓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먹는 일이 내 생에서 가장 빛나는 결단인지도 모른다. 집을 지어주는데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은 없다. 무슨 대가를 바래서 이런 일은 한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 아무 조건이 없다. 그냥 지어서 노인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게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인가?
여기에서 조금의 욕심이나 사소한 덕을 본다고 생각하면 이 공사는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안 한다고 누가 조르거나, 목에 칼이 들어오는 일은 없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시작한 일. 여기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면 곤란해지는 일이다.
그냥 지어보자고 마음을 먹은 집은 미얀마에서 구한 현지 매니저 살린이라는 녀석이 사는 집이다.
녀석의 고향은 양곤에서 에야와디 강, 하구를 건너서 딸린이라는 전형적인 미얀마의 농촌 마을인데, 이 자식이 장가를 잘 가서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비싼 양곤에 작지만, 제 이름으로 등기된 땅을 가진 녀석으로 둔갑했다. 양곤으로 나오고 이 녀석의 삶의 질은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보였다. 아직 장인과 장모가 살아서 무남독녀의 데릴사위로 처가에 들어앉은 셈인데 장인어른의 연세가 아흔둘이라고 했다.
처음 이 녀석의 집에 갔을 적에 도저히 이런 공간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고, 그런 공간에서 노인들이 몸을 누인다는 게 불쑥 찾아간 내가 왜 그렇게 미안했던지.
그 집에서 내온 커피를 마시는데 내가 건축업자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단지 돈을 위해서 집을 짓고 벽돌을 싸며 그 공간에 들어앉아 살 사람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지금 쌓고 있는, 이 벽돌 한 장이 남겨줄 이윤에 눈이 멀었던 나를 발견했으니 커피가 쓸 수밖에 없는 형평이었다.
좁은 터,
오물이 고인 진흙 위에 말뚝을 박고 낮은 원두막처럼 지은 현지 주택, 주택이라고는 도저히 이름할 수 없는 나무로 지은 집. 넓게 뒤틀리며 벌어진 마룻바닥 사이로 바닥에 고인 오물에서 풍기는 냄새가 올라오고 그나마 집을 지탱하던 지주가 섞어 집이 삐딱하게 기울어 바로 앉을 수가 없었으며 양철 조각으로 덧댄 지붕에서 떨어지는 부식된 양철 조각이 떨어지는 형편이니 건축업자로서 미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듬성듬성한 나무로 만든 바닥 아래 오물을 건너뛰며 요란스레 설치는 큼직한 쥐의 무리, 커피가 도무지 목구멍을 찾아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정서였다.
헐어보니, 집을 완전히 다 헐어서 나무를 처분하는 데까지 두 명의 인부로 두어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허술한 집이었는지 이해가 가능할 터. 하여간 집을 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 기술과 약간의 돈이 필요한 공사였다.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만족도를 충족시키는 집, 나는 그 집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집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다른 곳에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환갑이 지나자, 내 인생에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이 바탕에 깔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그게 부질없는 욕심일 수도 있지만, 무슨 증표라도 남겨 내가 이 세상에 살았음을 남기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뭔가를 기념비적으로 세워야지. 그런 마음은 약간 충동적이지만, 항상 마음의 바탕에 깔려 있었다. 나도 그 뭔가를 남긴다는 행위가 어디에서 발산되고 어떤 방법으로 표출될지 두려운 생각도 살짝 들었고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집을 짓기 시작할 적에는 몰랐다. 그게 어느 정도 집으로 완성되어갈 무렵, 이렇게 집을 짓는 일도 그런 마음을 약간 충족시킨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적은 돈으로 내 가슴에 뭔가를 세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크게 마음의 비빌 언덕이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예전 몽골에서 작은 사찰의 화장실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당시는 몽골에서 중장비 임대업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 미얀마로 오기 전, 역마살을 채우고, 객기를 부리느라 몽골에서 칠 년간 중기 임대업을 했다. 몽골을 마치고 이 미얀마로 건너왔다. 아무튼, 그곳에서 찾아간 어느 작은 사찰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절 담장 안으로 흐르는 개울을 가리켰다. 그런 우물은? 우물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화장실을 가리킨 개울인데 약간 위쪽이었다. 그 절에 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간이 넓은 스님은 화장실이 없음을 나에게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화장실을 만드는 일이로구나.
그다음에 한국으로 들어가서 조립식 패널을 사다가 마당에 펼쳐놓고, 조립식 주택을 짓는 기술을 가진 친구를 불러다 자르고 죄어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국의 우리 집 마당에 완벽한 조립식 화장실이 완성되었을 적에 그걸 사진으로 찍고 다시 해체해서 가지런하게 포장을 했다. 물론, 수세식 화장실은 아니다. 옥외에 물을 끌어다가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면 일 년에 반은 쓰지 못한다. 지독히 추운 나라에 물이 얼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해한 화장실을 포장해서 중장비를 몽골로 보낼 적에 거기에 얹어서 몽골로 탁송하고 몽골로 날아가 그 사찰에 있는 중장비로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무를 걸쳐 해체된 화장실을 설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 화장실이 아주 크게, 내 사업에 깊숙이 작용을 했다.
그 스님이 그런 화장실이 뚝딱 생길 거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우리 절의 화장실을 만들어 준 사람이라고 자랑을 했고, 내가 당시에 중장비를 임대하고 있던 금을 채취하는 회사, 사장을 불러다 뭐라고 했는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의 자리에 슬며시 끼어 앉을 수가 있었다.
그 화장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빛바랜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 예쁜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이 이번 집을 짓는 일에 관여한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이건 분명히 나를 짓는 일이고 내 마음을 다시 짓는 일이 분명했다.
당시에 집을 짓고자 했던 내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났든, 그런 것을 뒤져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미 집이 반 정도 완성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완성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예전에 본 텔레비전 무슨 프로에서 사랑의 집짓기라는 이름으로 딱한 사람들에게 최소의 경비를 들여 집을 지어주는 프로를 보았다. 사랑의 집짓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그런 이름으로 내 마음을 대변하기에는 이름이 너무 진부했다. 작은 집을 지어주며 온통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생색을 내고 그걸 방송에 보도하고,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딱한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방송용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함인가?
지금 생각하니 그런 일에 우리는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아무 반성이나 의심 없이 프로를 시청하고 약간의 성금을 내며 응원했었다.
내가 짓기로 한 집은 그런 성격과 조금 다르다.
몽골의 화장실에서 출발한 생각으로 삐딱한 나무집을 허물었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병을 만났다.
애초에 닷새를 예상하고 시작한 일인데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었으면 분명히 닷새에 끝을 냈을 일이다. 그 연세 높은 노인에게 분명히 닷새만 있으면 새집에 이사를 들어오도록 만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시간이 그렇게 걸린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나라 공무원 때문이었다.
공무원들 때문에 도통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사백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짓는 집에 공무원이 뜯어간 돈이 백만 원이 넘는다면, 이걸 누구에게 설명하고 듣는 누가 이해할 것인가?
동사무소에서 나오고, 그다음에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구청 정도 되는 상급 기관에서 나오고, 그다음은 소방서였다. 벌써 왔다가 갔고 얘기가 다 되었다고 하니 서로 다른 분야의 허가라고 하며 수시로 공사를 중단 시켰다.
그런 건 시작하기 전에 내가 뽑은 견적이나 시방서에는 수록되지 않은 사항이었다.
한국 기준으로 아홉 평 남짓한 길쭉한 땅에 쇠 파이프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고 부엌과 방을 나누어 겨우 둥지를 만드는 일에, 공무원이 들고 오는 제약이 왜 그렇게 많은지.
찾아가서 도와주려고, 형편이 이래서 도와주고 싶어 짓는 집이니 좀 봐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니, 그래? 몰랐던 사실이네! 외국인이면 더 내야지. 그런 표정이었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 일하는 나라,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이런 복병을 만나서 헤쳐 나가면 완공된 후에 더 큰 보람이 있겠지, 나를 달래보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도장값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공무원이 받는 월급 수준을 아는데 집에 가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고급스러운 승용차가 있다. 과연 이 공무원의 월급으로 이 차를 굴리는데 기름값이나 될까 싶어, 다른 수입원이 있나, 찾아보면 아내는 집에서 주방일이나 하는 가정주부고, 어디에 세를 받는 임대 소득이 있나 살펴보지만 전무한 실정, 오로지 수입이라곤 받은 공무원 월급뿐인데 그 차를 용하게 굴리는 것이다. 한국이면 남의 눈총이 무서워 그런 차를 굴릴 수가 없지만, 눈치? 그런 건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야. 대인은 달라! 뭐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보인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공무원의 삼무. 책에서 읽은 건데, 이 나라 공무원에겐 입버릇처럼 따라다니는 무가 있다. 처음으로 미얀마에 오기 전에 가이드북에서 본 잠시 눈을 잡은 얘기인데, 그런 사실이 가이드북에 실으면 이 나라의 국제적인 체면이 얼마나 구겨지겠는가. 가이드북의 저자가 그런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걸 생각하면서 실을 정도라면 사실이 얼마나 팽배했으면 글로 만들겠는가?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삼무란, 세 가지의 무를 말하는데, 미얀마에서 무란 우리나라의 없을 무 無, 이 글자를 생각하면 상당히 수월할 터이다. 미얀마 언어에서 부정을 뜻하는 말이 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발음이 무자와 머자의 중간 발음인데 잘못 들으면 머로 들릴 수도 있다. 부정의; 끝은 부로 끝이 나니, 우리나라의 부정은 뜻하는 부와 ㅅ강당히 닮아있다. 무시부 (없어) 무야부 (안돼) 무띠부 (몰라). 없어, 안돼, 몰라. 이 세 가지가 공무원 입에 달린 삼무인데 나는 이 나라에 오기 전에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왔지만, 가끔은 잊고 있다가 갑자기 이런 경우를 만나면 당황하게 되고 잊었던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상기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집을 여기까지 짓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내가 직접 나서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외국인이라 같은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비싸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인들에게 얼마간의 현금을 쥐어 관공서로 보내는 마음은 편치 않았고, 그런 일은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인데 복병을 만난 것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그걸 염두에 두고 시작했으나, 정작 일을 시켜보니 그 실망은 내 예상을 상당히 웃돌았다.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모래에 시멘트를 배합하는 일에, 시멘트를 너무 많이 넣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벽돌 대략 삼사백 장 쌓는 일에 한국이면 시멘트가 겨우 두 포대나, 많으면 두 포대 반 정도 들 터인데, 시멘트가 열한 포대가 들어갔다면 누가 믿겠는가? 시멘트나 건축 재료가 엄청나게 비싼 나라인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자재비가 더 들어간다는 것, 더 들어가서 집이 더 튼튼하거나 예뻐지면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그걸 누차 매니저에게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사항이 가슴을 두드리게 했다.
일을 시켜보니 이곳 사람들은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말이 좀 심했나?
다시 돌아보지만, 적절한 표현이다.
인간의 지능으로 어쩌면 저렇게도 엇길로 갈까? 금세 시켜놓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엉뚱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걸 고치려면 시간이 소요되고 들어간 자재는 다시 쓸 수가 없게 된다. 계속 지키고 서서 확인해야만 하는 나라. 같은 분야에서 잔소리를 몇 번 해야 알아듣는지 가슴을 두드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 일을 하고 다음 날은 오전 내 어제 잘못된 일을 고쳐야 하는, 희한한 공사.
이렇게 단단히 시켜놓았으니 딴짓을 할 게 없겠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세상에 그 틈새에 엇길이 있었구나, 어떻게 찾아내는지 엇길을 찾아내 정확히 엇길로 가는 희한한 족속, 데리고 있는 가정부만 해도 그렇다. 청소하다가 하필이면 물걸레를 노트북 자판 위에 얹어놓고 잠시 내려갔을까? 그 넓은 방에 하필이면 물걸레가 노트북 자판 위에 얹어두고 자리를 비우다니, 그걸 예상해서 미리 물걸레는 노트북 자판 위에 얹어두지 마라, 사전에 주의를 미리 주어야 마땅한가? 미리 주의를 주지 않은 내 불찰인가?
말이 나왔으니 이 나라 국민의 약속에 대해서도 잠시 거론하자.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기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다.
항상 약속하면 두어 시간 여유를 두고 기다려야 한다. 만약 아홉 시라고 못을 박고 약속했으면 열한 시쯤에 일이 성사된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아홉 시라고 못 박았지만, 아홉 시를 예상하고 기다리면 성이 말라 죽는다. 아홉 시라고 약속했지만 열한 시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생각해야 한다. 다음 날로 약속을 다시 잡는 수도 생길 수가 있고, 다음 날 열 시에 약속해도 그 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수가 있다. 그걸 감안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꾸짖지만. 쉬 단련이 되지 않고 기다리는 순간마다 못 박았던 시간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쉬어 터진 소리 하지 마, 사람이 그딴 시간에 얽매여 어떻게 사나?
이렇게 되받을지 모르지만, 시간 개념이 없다.
단 하나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경우가 있다.
돈을 주는 경우다. 그 시간에 돈을 주겠다. 이렇게 약속하면 어기는 법이 없다. 아홉 시에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대략 이십 분쯤 먼저 와서 기다린다. 그건 정확하다 단, 일 분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좀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도 예외는 아니다.
아서라,
이런 식으로 들추면 밤새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험담이 나온다.
총체적으로 짚기보다는 일을 진행하면서 매니저라는 녀석이 못 알아듣는 부분에 대해 분개했다. 실망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알아들었느냐고 다시 묻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다짐을 주고,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결과를 보고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웃고 못 쓰게 된 자재를 버려야 하는 과정은 지루하게 재연되었다. 경량 철골을 자재로 짓는 집은 자를 잘못 대서 버려지는 자재는 다시 쓸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위로하며 추스렸다.
매니저 녀석의 능력과 인지도를 실험하는데 소요되는 경비와 시간이라고, 이 일을 해보니 녀석에게 맡길 일과 맡기지 않아야 할 일이 어렴풋이 구별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거다. 매니저라는 녀석이 지닌 인식의 깊이, 한국어 해독이나 응용 능력, 녀석의 한계와 깊이를 다시 측정하는 데 쓰이는 비용과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약이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이 잘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굳었다.
철사로 짓는 되새의 둥지. 이건 돈 버는 일이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짜증 내면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어.
집을 지으며 그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의미를 지닌 말은 아니고 까칠한 일에 약간의 서정과 낭만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일까.
처음 철골을 설치하며 철골 기둥 꼭대기에 올라간 용접사를 보니, 괜히 저지른 일인 아닌가, 이 땅의 사람들은 안전화를 모른다. 그런 게 존재하고 건설 현장에서 이용된다는 걸 전혀 모른다. 철골 기둥 끝에 올라가면 까마득하게 높다. 집이 차지하고 앉은 터가 워낙 작아 구석에 쪽방 하나는 이 층으로 올리기로 마음먹었기에 그 부분에 올라서면 까마득했다.
그런 곳에서 작업하는 용접사의 신발은 슬리퍼였다.
이 나라에는 정장에도 슬리퍼를 신는 나라다. 파낫이라는 이름의 신발은 발가락 슬리퍼다. 그게 결혼식장의 신랑도 파낫이고, 신부도 파낫이다. 물론 국회의원도 정기 회의를 하며 파낫을 신는다.
까마득한 철골 기둥 위에 용접사가 오르내렸다. 아열대 더운 나라이니 발에 땀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철골 위에 올라앉아 용접하다가 땀이 나서 파낫이 벗겨져 떨어지기를 몇 번, 그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더웠다.
마음이 더웠다?
이 나라에서 배운 말이다. 쌕, 쌕은 마음이라는 이 나라 말이다. 뿌레! 뿌레가 덥다는 말인데, 쌕뿌레라고 하면 마음이 덥다는 말이 된다. 이 나라에는 쌕뿌레라는 말이 있다. 바로 걱정이 된다는 말이다. 마음이 덥다? 그게 바로 걱정, 제대로 된 표현이다.
철골 기둥 위에서 파낫을 신고 용접하는 인부를 보고 있으니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더웠다. 이 일을 왜 시작했나?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다. 저 위에서 하나가 떨어지면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용접사가 발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파낫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까지는 아는데 둘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런 말까지 하려니 또 짜증이 인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기초공사를 하고 서둘러 화장실부터 완성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괴상한 공정이었다. 집을 짓고 있는 바로 옆집에는 살림이라는 녀석의 이모가 살고 있다. 그 집에 사는 살린의 이모는, 둘 다 쉰이 넘은 나이인데 모태 처녀다. 늙은 처녀 둘이 사는 집이다. 결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늙은 처녀다. 집을 짓기 전부터 그 집을 들락거렸다. 오라고 해서 가서 커피도 대접받고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며 그녀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했다.
집을 지으려고 다 뜯었으니 화장실이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일하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당연하다는 듯 그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집 화장실은 거실을 통과해야 갈 수 있는 구조를 지녔다. 어제 아침에는 화장실을 들어가는데 급해서 미처 거실에서 재봉틀을 돌리는 녀석의 이모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화장실로 갔다. 대장의 소요를 말끔히 비우고 나오는데 거실에 있던 빡빡머리를 한 사내가 나를 불러세웠다. 들어갈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사내였다.
무슨 일인가?
나오다가 멈추고 들어보니 여자들만 사는 집이니 그렇게 화장실을 마구 이용하는 것은 결례가 되어 상당히 불쾌하다는 말을 서툰 한국어로 구사하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여자들만 사는 집에 누구니?
이모의 조카가 된다고 했다.
남자가 있었네. 왜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고 해?
그렇게 일축하고 나왔는데 몹시 불쾌했다. 바로 옆 현장으로 와서 살린이라는 녀석에게 그 사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된다고 했고, 왜 그러느냐고 묻는 녀석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당장 쫓아가서 흠씬 두들겨 팬 눈치였다. 중요한 건, 이모들이 그런 눈치를 보낸 까닭이라 생각했다.
두들겨 패거나 말거나, 그건 저희 일이고, 현장으로 와서 기초공사를 잠시 중단시키고 화장실부터 먼저 완성했다. 두어 시간 만에 완공된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까고 다음 공정을 생각했다.
이 나라가 그런 나라다. 남보다 약간 유리한 입장에서 큰소리칠 권리가 있으면 인정사정이 없다. 뒷생각은 하지 않고 큰소리부터 치고 본다. 그런 위치에 놓이면 참지 않는다. 일단 먼저 내지르고 본다. 살린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다니며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그 부분이다. 이 녀석은 공무원이나 경찰, 저보다 약간 우위에 선 사람들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쩔쩔맨다. 그러나 식당이나 커피집에 가서 조무래기 종업원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큰소리를 친다.
인마! 잘못한 게 없잖아? 왜 고함을 질러서 아이들 기를 죽여?
눈에 거슬릴 적마다 녀석에게 그 점을 고치라고 누누이 강조했고 끝에는 윽박지르며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은 몸에 배었는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실제로 일을 시켜보니 정말 사람의 머리가 아니었다. 언어를 아는 짐승에 불과했다. 저 두뇌로 어떻게 암수를 구별하고 종족 번식이라는 이름으로 새끼를 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금방 시킨 걸 잊어버린다. 인부들의 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어쩌면 저렇게 할까?
일하면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이 일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일까? 이건 생각에서 하얗게 지운다. 그러니 다음 공정을 짐작할 수가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이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시키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 말은 자주 들었지만, 정도가 이 정도로 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은 한꺼번에 시키면 하나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인가? 껌을 씹으면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는 족속, 한국인들은 만나면 이 끔찍한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이곳에 사는 한인들을 만나면 그런 소리를 대놓고 버젓이 한다.
일을 시켜보니 그랬다.
초등학생에게 시키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못을 박아라. 나머지 못은 저기에 두어라. 저 나무를 이리 가져와라. 저 벽돌은 저쪽에 두어라. 모래를 이만큼 넣고 시멘트를 넣어라. 여기에 물을 부어라. 여기를 잡고 여기를 잘라라.
애초에 상상하지 못한 정도로 잘게 부수어서 일을 시켜야 했다. 입이 아픈 지경이지만, 그렇게 시키지 않으면 알아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걸 저렇게 알아서 해라, 그렇게 시켜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정말 이것도 못 해? 시키다가 너무 잘다는 생각에 화를 내지만 그건 화를 더 재촉하는 일이다. 오죽하고 이 녀석이 어떻게 암수를 구별해서 종족을 번식했을까? 새끼를 쳤을까? 아이가 둘이라는 게 정말인가? 이런 의심이 들어 물어보면, 저의도 모르고 아이가 둘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지경이다.
그리고 자재나 공사 도구가 모자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킬 적에는 두 가지를 물건을 시키면 한 가지도 제대로 사 오는 게 없다. 메모해라, 시켜 적어도 마찬가지. 페인트와 붓을 한꺼번에 사 오지 못하는 족속들이다. 이런 말을 하면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일을 시켜보니 그렇다. 알아서 하겠지! 이건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말이 나왔으니 흠잡을 부분이 또 있다.
이 나라에선 물건을 사면 바꾸어 주거나 반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건축자재나 소모품을 살 적에 턱도 없이 모자라도록 사고, 그걸 다 쓰고 얼마나 모자라나 가늠해서 또 모자라도록 사고 그걸 쓰고 또 얼마나 모자라는지 가늠하는 방식으로, 한 가지 물건을 사며 대여섯 번은 자재상에 간다. 일하는 시간보다 물건을 사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물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좀 넉넉히 사는 편이다. 사각 파이프를 대충 맞게 샀는데 막바지 공정이 끝나니 네 개가 남았다.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사만 원 남짓 나는 건축자재를 사면 한 가게에서 산다. 그래야 남든 모자라든 편리하다.
하여간 사각 파이프를 네 개를 싣고 시멘트를 구하러 갔다. 파이프 사만 원어치를 반납하고 시멘트를 삼십만 원어치 사겠다고 했다. 주인은 박절하게 파이프 반납을 받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걸로 한참을 실랑이했다. 이 가게에서 산 거잖아? 깨끗하잖아? 이걸 돈으로 내 달라는 게 아니라 시멘트 값에서 공제하라는 얘기야! 내가 너희 가게에서 자재를 오백만 원어치 넘게 샀잖아?
현지어에 서툰 게 아니고 말이 먹히지 않았다.
도저히 반납을 못 받겠나?
그렇다고 했다.
알았어. 그런 부수어서 고물상에 팔지.
운전석으로 올라가 시동을 거는데 주인이라는 녀석이 조수석 문을 탕탕 두드렸다.
뭐야? 왜 그래? 파이프 반납받으려고?
넘겨짚어도 옹골차게 넘겨짚었다.
파이프를 반납받는 게 아니라 왜 시멘트를 사지 않고 그냥 가려는 거냐고 묻고 있었다. 순식간에 웃음이 쿡 터졌다.
야! 이 새끼야. 시멘트는 다른 가게에 가서 살란다.
그건 한국말로 뱉고 다른 가게에 가서 그 파이프를 헐값에 팔고 시멘트를 실었다.
어쨌거나, 애초에 닷새나 일주일을 예정한 특수공작 작전이었지만, 공사 기간이 길어졌다.
어제는 현장에 구경나온 이웃 할머니가 집을 다 지으면 걸쭉하게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정이다.
그 할머니 말이 내심 반가웠다.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집들이를 운운하는 걸 보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집짓기가 어지간히 끝나가는 모양이다. 그 말이 그렇게 반가웠다. 어제저녁에는 피곤해서 그냥 자고 아침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짚어 본다.
집들이?
그래! 이왕 하는 거, 집들이까지 책임을 지자.
이럴 때 두 노인이 동네잔치를 하지 않으면 언제 잔치를 하겠어?
시장에 가서 닭 스무 마리 정도 사다가 마늘을 듬뿍 넣고 마을 잔치를 한 번 하는 거지 뭐. 쌀국수야, 두 노인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닭, 스무 마리에 음료수 서너 박스면 골목 안의 잔치가 되는 거지. 내친김에 오는 사람들에게 교통비 조로 현금을 삼천 원 정도 담아서 돌려버려? 한국에서 가져온 봉투는 넉넉한데. 이 땅에서 현금 삼천 원이면 큰돈일 터인데. 서른 명이 모인다, 치고 삼천 원이면 구만 원?
그래 그게 좋겠어.
집들이까지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걸 보면 특수공작 작전이 어지간히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이토록 어렵게 짓는 집은 처음이다.
몸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마음을 누일 집이라 이렇게 고생스러운 모양이었다.
평생 잊지 않을 터이다.
철사로 만드는 되새들의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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