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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달이 밝고 하늘에 한 점의 그름도 없이 맑게 개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숙향이 사창에 의지하여 탄식하는 심정을 글로 지어서
책상 위에 놓고 졸다가 깨어 보니,
글도 없고 개도 없어져 버렸으며,
숙향이 낙망하고 울면서 한탄하기를,
"가련하다 내 팔자여,
할머니도 가고 할머니가 남겨 준 의지할 개마저 잃었으니
밤이 적적하여 잠도 오지 않는구나."
이때 서울에서는,
선이 태학에 가서 공부한 뒤로는 숙향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서 주야로 눈물을 짓고 있었더니,
하루는 문득 바라보니 청 삽살개 한 마리가 자기를 향하여 왔으므로 살펴본즉,
그 앞에 와서 앉은 개가 입에 물고 온 것을 토해 놓으므로,
선이 기이하게 여기고 보니 동촌리 이화정에 있던 숙향의 필적이라 급히 그 글을 떼어보니,
<슬프다. 숙향의 팔자여.
무슨 죄로 五세에 부모를 잃고 동서로 표박하다가,
천우신조하사 이랑을 맞았으나
다시 이별하고 외롭게 의지할 곳도 없는 나의 신세,
다행히 할머니를 의지하였더니,
여액(餘厄)이 미진하여 일조(一朝)에 승천(昇天)하니,
혈혈단신 어디 가서 탄식하리요.
내 생전에 이랑을 보지 못하면 부모를 어이 찾으리요.
슬프다, 나의 신세여 죽고자 하나 죽을 땅이 없고나!>
선이 이 글을 읽고 슬픔을 금하지 못하고,
노파가 죽은 줄 알고 더욱 낙망하더라.
음식을 내다가 개에게 주고
편지를 써서 개 목에 걸어 매고서 당부하기를,
"할머니까지 죽으매 낭자는 너만 의지하고 지낼 테니
빨리 돌아가서 이 편지를 전하고 낭자를 잘 보호하여 다오."
그러자 개가 잘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고 날 듯이 돌아가니라.
이때 숙향은 개를 잃고 종일 흐느껴 울며 기다렸는데,
해가 저물어서 인적이 끊어지고 짐승 소리조차 나지 않는지라 고적하여 견딜 수 없더라.
오직 먼 밤하늘만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을 때,
홀연히 청 삽살개가 나는 듯이 와서 숙향이 앞에 엎드렸으매,
어디로 가서 죽지나 않았을까 하던 숙향이가
반색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하소연하기를,
"네가 아무리 짐승이기로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었느냐?
배를 오죽인 주렸으라!"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매,
개가 반겨하고 앞발을 쳐들며 목을 숙여 보이므로,
숙향이 비로소 그 개 목에 편지가 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끌러서 펴보니
다음 같은 선의 사연이더라.
<숙향낭자에게 부치나니,
낭자의 옥안(玉顔)이 그리워서 밤낮없이 생가하고 있던 중,
천만 뜻밖에 청 삽살개가 그대의 글을 전하거늘,
못내 감동하여 우리 두 사람의 안부를 전하게 되었도다.
그대의 심한 고생은 모두 이 선(仙)이 죄라.
한번 이별하여 약수가 가리었고 청조 끊겼으니
서산에 지는 해와 동령에 듣는 달을 대하여 속절없이 가장만 태우다가
삽살개가 소식을 전하니 반가운 마음을 금치 못하오.
그러나 할머니가 죽었다 하니 낭자는 누구를 의지하며,
그 고적한 신세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어떠하리요.
지필을 대하매 마음은 진정치 못하고 눈물이 앞을 기라도다.
쌓인 회포를 다 기록하지 못하나니,
옛 사람이 이르되,
'흥진비래(興盡悲來)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니,
설마 언제나 그러리요.
지금 과거 소식이 들리니 이에 응하여 혹 뜻을 이루면,
나의 평생의 원을 풀고, 낭자의 은혜를 갚으리니
옥보망신을 완보하여 내가 돌아갈 날을 기다려서 생사를 같이함을 원하노라.>
☆☆☆
숙향이 편지를 다 보고 흐느껴 울면서 탄식하기를,
"황성 서울이 여기서 五천여 리나 길이 요원하고 산이 망망하니,
약한 여자의 발로 찾아가기 극난하고
또한 도중의 강포지욕(强暴之辱)이 두려워서 좌사우량(左思右量)하나 백계무책이라."
하루는 그런 걱정과 수심에 잠겨 있을 때,
흉흉한 소문이 들렸다.
때마침 도적이 성행하던 중,
불량배들이 이화정에 노파조차 없음을 알고 재물을 약탈하고 숙향을 겁탈한다는 소문에
숙향은 눈앞이 캄캄하여 곧 동촌리의 아는 아이를 불러다가 자세히 물어보니,
"내가 길가에서 들으니, 이화정 집에 보화가 많으니
오늘밤에 겁탈하여 보화를 나누어 갖고,
낭자를 잡아다가 저희들이 데리고 산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낭자가 그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고 마음이 다급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으며,
해가 저물어 황혼이 되자 더욱 초조해서,
궁리 끝에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하매, 삽살개를 불러서 타일러 말하되,
"아까 지나가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오늘밤에 도적이 들어와서 재물을 수탈하고 나를 기어코 겁탈한다 하매
만일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죽어서 절개를 온전히 지킬 결심이다.
지금 할머니 묘소에 가서 목숨을 끊고 할머니의 해골과 함께 묻히고자 한다.
그러니 너는 할머니 묘소에 가서 영혼에게 묘방을 물어서 나의 욕을 면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눈물을 흘리자
청방이
다만 고개를 들어서 멍청하니 듣기만 하고 응하는 기색이 없더라.
숙향은 하는 수 없이 의복 두어 가지를 보에 싸고 개가 할머니 묘소에 인도라기를 바랐으나,
청방은 누운 채 일어나지 않으매 숙향이 더욱 황망하여 개에게 호소하기를,
"네 비록 짐승이지만, 지금 사세가 급한 줄을 알거든 생각해 봐라.
이렇게 하다가 때가 늦으면 도적의 욕을 보고 말 것이 아니냐?"
청방이 그제야 일어나서 보에 싼 것을 입으로 물어당기매,
옷보를 주자 청방이 그것을 제 등에 물어서 얹고 밖으로 나가므로
숙향이 그 뒤를 따라간즉,
얼마쯤 가던 개가 어떤 무덤에 앉고 더 가지 않더라.
숙향이 자세히 살펴보고 그것이 할머니 무덤임을 믿고,
봉분(封墳)에 엎드려 어루만지며 통곡하니라.
이때 선의 모친 상서부인이 완월루에 올라서 달구경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여자의 곡성이 은은히 들려오므로 비복들에게 분부하기를,
"야심한 이때에 어떤 여자가 저리 슬피 우느냐?
누가 가서 알아보아라."
마침 거기 시위하고 있던,
선이 어릴 때에 섬기던 유부(乳父)가 명을 받고 울음소리 나는 고을 찾아가 본즉
소녀 혼자 무덤 앞에서 울고 있으므로 물어 가로되,
"낭자는 누구이신데 심야에 홀로 여기서 울고 계십니까?"
유부가 공손히 절하고 묻기에 숙향이 눈을 들어서 보니
늙은이였으므로 울음을 그치고 대답하기를,
"나는 동촌에 사는 이공자(李公子)의 낭자인데,
도적의 욕이 급하므로 피해 와서, 전에 은혜지 할머니께 죽어 함께 묻히려고 합니다."
이 말에 깜작 놀란 늙은이가 땅에 엎드리며,
"저는 이공자의 유부입니다.
이공자 모친 마님께서 소저(小姐)이 곡성을 들으시고 사정을 알아 보라 하시기로 왔는데,
소저께서 이곳에서 이러실 줄은 천만 뜻밖이옵니다.
우선 소복(小僕)의 집으로 가시면 앞으로 자연 평안하게 될까 하옵니다."
"할아범이 이랑(李郞)의 유부라 하니 참으로 반갑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되었소.
승상댁 대감께서 나를 죽이라 하셨거늘
이리 하시라는 명도 없이 그댁으로 갔다가 나중에 아시게 되면 반드시 죽을지나,
나 죽기를 섧지 않으나, 할아범에게 누가 미칠 것이니 그냥 돌아 가오.
다만 이랑이 서우에서 돌아오시거든,
내가 이곳에서 죽었다고 알려 올리면 은혜가 태산 같겠소."
"낭자의 말씀을 듣자오니 그것도 마땅한 듯하나,
제가 마님께 알려 드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천금 귀체를 가볍게 하지 마십시오."하고 나는 듯이 되돌아가니,
청 삽살개가 등에 얹었던 옷보를 내려놓고
숙향에게 그 옷을 입으라고 권하는 시늉을 하더라.
"네가 나로 하여금 죽으라는 뜻이라면 당을 파거라.
그러면 내가 거기 누워 죽을 테니 나를 덮어 두었가,
낭군이 오시거든 가르쳐 드려라."하고 숙향이가 옷을 입으니,
개는 땅을 파지 않고 이상서 댁 방향을 앉아 보였으매,
숙향은 속으로 생각해 보기를,
<상서가 오시면 반드시 나를 죽이실 것이니,
그러면 나중에 상서의 신상에도 시비가 될 테니,
내가 스스로 죽어서 그런 시비를 낭군의 부친께 끼치지 않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고 수건으로 목을 매려고 하자,
삽살개가 수건을 물어 빼앗아 죽지 못하게 하므로 숙향이 울면서,
"너는 왜 나를 죽지 못하게 하느냐?
구차하게 살았다가 낭군을 만나 볼 수 있거든 할머니 산소를 향해서 절해라.
그러면 네 뜻을 따라서 죽지 않겠다."하고,
영물로 믿는 개의 뜻을 점쳐 보려고 하였고,
그러자 개가 할머니 산소를 향하여 절하고 안심하듯이 앉았으니
숙향이 감사한 마음으로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직 불안한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한탄하더라.
"네가 나를 죽지 못하게 하니, 살았다가 만일 내가 욕을 볼까 두려워한다."
이대 유부가 빨리 돌아가서 아내에게 자기 집에 숙향을 데려다 두도록 이르고,
그 동안에라도 자결할지 모르니 급히 가서 구하도록 이르고
상서 댁으로 가서 부인에게 보고 온 사실을 보고하자,
부인이 그 참혹함을 동정하여 상서에 고하여,
"그 정상이 가련하오니 데려다가 근본이나 보고,
하는 양을 보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하고, 청하자
그처럼 노하던 상서도 인명을 가긍히 여기고 부인의 뜻을 허하더라.
☆☆☆
부인은 곧 하인들에게 교자를 보내고 유모(乳母)에게 데려오도록 분부하니,
유모가 이보다 미리 혼자 숙향의 앞에 이르러서,
"저는 이공자의 유모이온데 요전에 듣자온즉
공자께서 소저와 성혼하셨다 하오나 고모부인께서 조용히 구혼하셨기로 알지 못하였더니,
그후 옥중의 곤경을 당하셔서 슬퍼하던 중,
아까 왔던 바깥사람의 말을 듣자오니 공자를 뵈온듯하와 달려 왔습니다."
"이랑의 유모라니 나의 정의를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소." 하고,
전후 경과와 사정을 다 말하고자 하였으나,
얘기가 끝나기 전에 유부가 시비들을 거느리고 와서
교자에 오르라 하면서 상서부인의 뜻을 전달하니라.
"부르시는 명이 계시니 어찌 거역하리요마는,
천한 몸으로 교자를 타기가 외람되니 걸어서 가겠소."하고,
사양하자 유모가 또한 전하기를,
"마님의 명이시니 교자를 사양치 마십시오."
숙향이 마지못하여 올라서 승상부인 앞에 이르매,
시비들이 부인의 명으로 몰려 나와서 완월루로 모시더라.
숙향이 교자에서 내리니 향속 든 시비가 좌우에 나열하여 밝기가 낮과 같았으며,
한 시비의 인도로 따라가서 상서부인에게 멀리서 사배(四拜)하니,
상서부인이 옆으로 와서 앉으라 하여 자리를 같이 한즉,
숙향의 탁월한 색태(色態)에 놀라지 않는 눈이 없더라.
며느리를 처음 보는 시어머니인 상서부인도 진심으로 탄식하여,
"이만 인물이니 집 아인들 어찌 무심하였으라.
홍안박명(紅顔薄命)이라 하니 만첩수운(萬疊受運)이나 기질이 이와 같으니,
장강의 색태도 미치지 못할거다."
하고 다시 숙향에게 묻기를,
"네 고향이 어디이고 성명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냐?"
"저는 다섯 살 때에 부모를 잃고 정처없이 구걸해 다니다가,
흰 사슴[白鹿]이 업어다가 장승상 댁 동산에 버린 것을,
그 댁에 자녀가 없어서 저를 一○년 동안 딸처럼 귀엽게 길러 주셨는데,
마침내 사고가 있어서 그 댁을 떠났으며 본향과 부모의 성명을 모르나이다."
이 말을 들은 이상서가 거듭 묻기를,
"장승상 댁에서 무슨 일로 나와서 이화정 할미에게 와 있었느냐?"
"장승상 댁의 시비 사향이 승상의 장도와 부인의 금봉채를 훔쳐다가
제 상자 속에 두고, 제가 훔쳤다고 부인께 참소했으므로,
저는 변명이 무익하여 누명을 죽음으로 씻으려고 표진강에 몸을 던졌삽더니,
마침 채련(採蓮)하는 선녀들이 구해 주며 동리로 가라기에,
아녀자의 행색이라 거짓 병신인 체하고 가다가
기운이 파하여 갈대밭 속에서 자다가 화재를 만나서 죽게 되었더니
다행히 화덕진군이 구해 주셨으나 의복이 없어서 진퇴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의외의 이화정의 할미를 만나서 그 집에 의탁하여 있었더니,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은 공자의 구혼을 받고 성혼하였사옵더니,
낙양 옥중에서 사액(死厄)을 지내옵고,
다시 하령하여 멀리 추방을 받고 북촌에 가서 사옵더니,
오늘밤에 도적에 쫓겨서 할미 무덤에서 죽으려 하였을 때,
뜻밖의 부르심을 입사와 이리 대령하였습니다."
"남군에서 몇 달 만에 낙양까지 왔었느냐?"
승상이 또 묻더라.
"갈대밭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할미를 만났습니다."
"남군이 여기서 三천 五○○리라.
한 달에도 오지 못할 텐데 이틀 만에 왔다니 매우 이상하다." 라고,
상서가 깜짝 놀라서 말하고,
부인이 또 이름과 나이를 묻더라.
"이름은 숙향이요, 나이는 一六세올시다."
"생일은 언제냐?"
"四월 초파일입니다."
☆☆☆
부인이 오래 생각한 끝에,
"네 모습이 과연 의젓하다.
선이를 낳을 때에 선녀들이 하던 말을 기록해 두었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하고,
시녀에게 그 기록한 것을 가져오라 하여 보니
아들 선의 배필은 <김 전의 딸이요, 이름은 숙향>으로 분명히 적혀 있었다.
"부모의 성명을 모르면서 생년월일의 사주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부인이 또 묻자, 숙향이 말없이 엎드렸다.
부인이 바라본즉 숙향의 이마에 금자(金字)로
<이름 숙향·자월궁선·기축 四월 초파일 해시생>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부인이 그것을 본 뒤에 더욱 기특히 여기고 놀라며,
"네 생년월일의 사주가 우리 선이와 같은데 네가 성를 모른다니 답답하구나."
"그 전에 꾼 꿈에는 신인(神人)의 말씀이
낙양의 김 전이 제 부친이라 하였읍니다마는 어찌 알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애 얼마나 다행하랴."하고,
상서가 그렇기를 바란다는 듯이 말하니라.
부인이 상서에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운수선생(雲水先生)의 아들이니 문벌은 더 물을 것이 없소."
부인이 기뻐하고, 기어코 숙향의 근본을 알아서 아들의 정실(正室)로 삼으려고 하였으며,
그 후로부터는 숙향의 부인의 좌우에 가깝게 두고 그 행동을 주야로 보니,
모든 일이 진선진미(眞善眞美)하여 하나도 그름이 없으므로 부인의 사랑은 갈수록 더하더라.
하루는 숙향이 전에 있던 집의 가장집물을 옮겨오기를 청하니,
부인이 반신반의로 묻기를,
"도적이 무엇을 남겨 두엇겠느냐?"
"중요한 것은 땅을 파고 묻었으니까 도적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 네가 가지 않으면 찾아오기 어렵겠구나."
"제가 아니더라도 저 청 삽살개를 데리고 가면 알려 줄 것이옵니다."
☆☆☆
부인은 곧 유부를 불러서,
"저 개를 데리고 소저가 있던 집에 가서 기명과 수품을 가져오게."하고 시키면서도,
저런 짐승이 어찌 그런 것을 알 수 있으랴고 심중으로 의아스러워하니라.
유부가 바로 하인들을 거느리고 북촌에 있는 숙향이 살던 집으로 가자,
데리고 간 개가 울 밑의 한 곳을 발로 후벼서 가리킨 곳을 깊이 파고 본즉
과연 귀중한 기명이 많이 나왔으므로 그것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와서 부인에게 고하더라.
"개조차 그렇게 영감한 것을 보매,
우리 신부는 범인이 아닌 게 분명하구나."하고, 더욱 사랑함이 비할 데 없더라.
그리고 어느 날 숙향에게 묻기를,
"너는 침선방적(針繕紡績)을 잘 살 줄 아느냐?"
"어려서 부모를 잃고 파산하여 길에서 방황하였기 때문에 배운 바는 없사오나,
본이 있으면 무엇이든 그대로 시늉을 낼 수 있습니다."
부인은 숙향의 재주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비단 한 필을 주면서,
"상서께서 머지 않아 상경하실 때 입으실 관복이 무색하니 네 이 관복을 보고 지어내라."
숙향이 명을 받고 자기 침소로 돌아와서 그 비단을 보니
천이 곱지 못하므로 자기가 작고 있던 좋은 비단과 바꾸어서
불과 반 나절 만에 관복 일습을 완성하였으니,
시녀가 부인에게 고하였으나 믿지 않고,
"관복은 예사옥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연소할 때 침재(針才) 남에 못지않았으나
닷새에 지었던 것을 소저 아무리 재주가 능하더라도,
어찌 그렇게 빠를 수가 있겠느냐?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고 숙향을 불러서 물은즉,
"관복은 이미 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하올지 몰라서 즉시 아뢰지 못하였사옵니다."하고 관복을 갖다 부인에게 올리니,
부인이 받아서 본즉 수품제도가 그 전 관복보다 나을 뿐 아니라,
비단이 자기가 준 것이 아니므로 더욱 이상히 여기고 묻자,
"비단이 이것이 나을 듯하옵고
할미집에서 짠 것인데 마침 빛깔이 같기에 바꾸어 지었사옵니다."
부인이 크게 놀라고 이런 재주가 천하에 어디 있으랴 대찬하고,
즉시 관복을 갖다가 상서에게 보이고 신부의 재주를 알리더라.
"관복을 새로 지었으니 입어 보시오."
"허어, 근래는 당신이 늙어서 몸에 맞는 옷을 입기 어렵더니,
이 관복은 몸에도 맞고 솜씨도 좋으니 늙어서 굉장한 호사르 하겠구료."
☆☆☆
상서가 옷을 입고 매우 기뻐하므로 부인이 웃으면서,
"나는 소시에도 수품제도가 이렇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이 늙은 솜씨로 어찌 이렇게 짓겠습니까?
이것은 새로 온 자부(子婦)가 제 손으로 짠 비단을 가지고 제 손으로 지은 관복이옵니다."
"허어! 만일 그렇다면 자부는 실로 무쌍한 재주로군."하고,
칭찬을 하고 흉배를 보니,
관대의 흉배가 무색해서
다른 흉배를 사 오라고까지 하니라.
그러자 부인이 상서의 작품에 맞는 흉배를 이곳에서는 창졸히 사기 어려워서
그것을 구색하려면 출발이 늦을까 염려된다고 말하니,
이 말을 들은 숙향이 상서 적품은 어떤 흉배를 다느냐고 공손히 묻더라.
"상서는 일품(一品)이며 쌍학(雙鶴)을 붙이신다."고 부인이 알리더라.
"제가 약간 수를 놓을 줄 아오니 해볼까 하옵니다."
"흉배는 다른 수와 달라서 사람마다 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내일 상경하실 테니,
네 재주가 비록 능하더라도 어찌 하룻밤 사이에 될 수 있겠느냐?"하고,
아예 그런 생각도 말라고 말하니라.
그러나 숙향은 침소로 물러나와서 밤을 새워서 쌍학의 수를 놓아서 이튿날 아침에 갖다 바치자,
상서 부부가 자부는 진실로 신통한 재주를 가졌다고 애중(愛重)하여 마지 않더라.
이상서가 상경하니,
황제가 인견(引見)하시고 정사를 의논하시다가
상서의 관복과 흉배가 매우 훌륭한 것을 보시고 하문하기를,
"경의 관복과 흉배는 어디서 구하였소?"
"신(臣)의 며느리가 지은 수품(手品)이옵니다."
☆☆☆
황제가 의외의 말로 묻되,
"경의 아들이 죽었소."
"살아 있사옵니다."
"허어? 그런데 경의 관복을 보니 하늘의 은하수 문채요,
흉배는 바다 가운데서 짝을 잃은 학의 외로운 형상이니,
아들이 살아 있으면 어찌 이러하오?"
상서가 황제 앞에 엎드려서 아들 선이가 며느리 숙향을 만나던 일을 아뢰니,
"허허 그 자부의 경력과 재주가 희한하오.
경의 충성이 지극하매 하늘이 현부(賢婦)를 주사 복을 도우심이 분명하오."하시고,
비단 一○○필을 하상(下償)하시매,
상서가 사은(謝恩)하고, 부중(府中)으로 돌아와서 황제의 하교(下敎)를 전하고,
환제의 상사품(償賜品)은 전부 자부 숙향에게 주더라.
숙향은 부중으로 온 뒤에 일신이 안한(安閑)하게 되어서
용모가 더욱 고와져 갔으므로 상서 부부의 애중이 날로 더하더라.
그러나 선(仙)은 서울 태학에서 공부하면서
숙향의 소식을 듣지 못하여 심신이 울울하여 회포를 안정치 못하였으나,
마음대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매, 주야를 탄식으로 보내더니,
그러던 차에 하루는 태학의 관원들이 상소하여,
"근간에 길조(吉兆)의 태을성이 장안에 비치었으니,
과거를 보여서 인재를 잃지 마옵소서."하고,
황제께 권하므로 황제가 옳다고 윤허하고 곧 택일하여 과거를 시행하였는데,
이때 선이 과장(科場)에 나가서 평생의 재주를 다하여 글을 지어 장원급제로 뽑혔으며,
이 순간에 선의 명성은 천하에 떨쳤으니,
풍채가 당당하고 기질이 현양하여 만인 중에서 뛰어나더라.
황제가 인견하시고 대경기애(大驚奇愛)하사 즉시 한림학사를 제수하니,
학사가 된 선은 사은하고 고향으로 사당에 분향 보고하러 돌아가는 도중에 낙양 이화정에 이르러
곧 숙향의 거처를 찾았으나 사람은 고사하고 꼬리치고 반겨하던 삽살개도 없는 적막한 빈집이었으며,
집안에는 일용의 기물이 하나도 없으므로,
분명히 도적이 들어서 숙향을 죽이고 간 줄 알고 심회가 통절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숙향낭자여,
나로 하여금 천만고초를 겪고 몸이 사망지경에 이르러
유명(幽明)간에 어찌 원혼(怨魂)이 되지 않았으리요.
내 지금 과거에 장원하여 몸이 현달(顯達)하였으나,
그대 없는 이 세상에 무엇이 귀하리요.
내 또한 그대의 뒤를 따라 죽어서 그대를 따르리라.
내 명이 또한 오래지 않으리라."하고 슬퍼하다가 날이 서산에 떨어지매,
다시 정신을 진정하고 냉정히 생각하고 다짐하기를,
<이제 여기서 울어도 부질없으니 부모께 보인 후,
숙향의 분묘를 찾아서 그 죽음을 본 받아서나의 의절을 표하리라.>하고
눈물을 거두고 고향의 본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양친이 한림학사가 되어서 온 아들을 보고 기뻐하고,
그 영화를 축하하는 상하의 화성이 낭자하니라.
양친은 귀하게 된 아들의 손을 잡고 애중함을 이기지 못하되,
학사는 숙향의 불행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수색이 만면할 뿐이더라.
☆☆☆
부친 상서가 이상히 여기고 묻기를,
"네가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부모에게 영효(榮孝)와 일신의 영광이 극하고
가문의 경사 극하거늘 무슨 일로 수색을 만면에 띠고 있느냐?"
"저인들 영친지도(榮親之道)에 어찌 기쁘지 않으리이가?
먼 행로에 일신이 피로하와 자연 그러하옵니다."
하고,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은 듯이 대답하니,
상서부부는
아들이 자부 숙향이가 죽은 줄 알고 그런다고 짐작하고 모친이 안심시키려고,
"네가 취한 숙향은 우리 집의 현부다.
네 뜻을 알고 데려다가 지금 부중에 두고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하고, 알렸으나
학사는 의혹하고 손을 모아 송구스럽게 말하기를,
"장부가 어찌 천부(賤婦) 때문에 미우(眉宇)를 찌푸리겠습니까?
도중의 풍한촉상으로 몸이 불편할 따름이옵니다." 하고,
겉으로 의젓한 대답을 하는고로
속으로는 숙향이 집에 와 있도록 부모가 허락하였다는 말에 마음이 든드나였으며,
상서 부인이 시녀에게 숙향을 데려오도록 이르니,
이윽고 숙향이 안에서 나와서 서로 상면하게 되자,
반신반의하던 학사가 눈으로 분명히 숙향을 보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손발 둘 곳을 모르고 미칠 듯이 기뻐하더라.
숙향이 먼저 낮은 음성으로,
"일찍 청운의 뜻을 품으시고, 이제 영광이 비할 데 없으니 치하하옵니다."
"요행히 득의(得意)하니 가문의 경사요,
그대를 위하여 조운모월(朝雲暮月)에 간장을 태우다가 이번에 오는 길에 이화정에 들러 보았는데,
인적은 물론 그 귀엽던 개조차 없어서 비창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더니,
이제 집에서 서로 만나니 무슨 한이 있겠소?"
"먼 길에 피로하셨으며, 양친께서 편히 쉬라 하시온즉 잠시 침소로 가시면 하옵니다."
선이 기쁘게 숙향의 옥 같은 손을 잡고 봉루당으로 가서 피차 사모하던 정을 달게 탐하더라.
그리고 마고할미의 문상을 하고 숙향을 위로하자,
"할머니 생각을 비롯하여 지낸 일을 생각하며 슬픈 회포가 첩첩하나,
오늘은 낭군을 모시고 즐기는 날이니 뒤에 두루 말씀드리오리다."
이윽고 학사가 옷을 고쳐 입고 산부와 함게 정당(正堂)으로 나오자,
상서 부부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칭찬하고 상하가 모두 치하하여 마지않더라.
이튿날 친척과 근처의 사람을 초청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으며
다음날에는 여복야부중(呂僕射府中)에서 또 잔치를 하였다.
부인이 기뻐서 여러 문중의 부인들을 청하여 즐기면서
숙향낭자의 모든 기이한 비밀을 좌중에 설파하여 기특히 여기고 또 가엾게 여겼으나,
그것이 모두 축복하는 칭찬의 말이더라.
☆☆☆
하루는 학사가 부친 상서에게 문안하자,
아들에게 은근히 중대한 문제를 꺼내기를,
"자부를 슬하에 두고 보니 백사가 영리하여 자못 사랑스러우나,
그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 탓으로 남들이 미천한 여자를 취하였다고 시비하는 듯하고,
전자에 양왕이 너에게 구혼하기에 내가 허하였으나,
네가 현부를 택했으므로 중지하였었기로,
너는 이제 입신하였으므로 이실(二室)을 거느려도 좋게 되었으매,
양왕의 구혼을 다시 성취시켜 볼까 하는데 네 생각이 어떠냐?"
"이 문제는 제가 알아서 좋도록 하겠으니 염려 마십시오."하고,
이내 행장을 차려서 서울로 향하게 되자,
부모게 하직하여, 나라에 받친 몸이매,
슬하를 떠나지 않을 수 없음을 아뢰고 침소로 가서
이내 숙향에게 이별하여 말하기를,
"그대를 위하여 여러 해 마음을 상하고,
이제 서로 만나서 자리가 덥지도 못해서 또 떠나게 되니
심정이 울울하나 사세가 마지못하여 상경하니,
그대는 부모봉양을 극진히 하여 내가 바라는 바를 저버리지 말아 주오."
"남아가 입신하면 사군(仕君)의 일은 크고,
사친(仕親)의 일은 작다 하오니,
양친 봉양은 제가 스스로 할 것이매,
학사는 갈충보국(竭忠報國)하여 유방백세(流芳百世)
선사(仙師)께옵서 저에게 이르시되,
'네 공부는 이미 이루었으나
장래 태을(전생의 이 선)의 힘을 얻어야 전도가 막히지 않으리라.
이제 태을이 옥황상제께 득죄하고 인간으로 귀양가 있다가,
황명(皇命)을 받고 봉래산으로 선약을 구하러 가다가 필경 이수부(水府)를 지날 테니
편히 봉래산까지 모셔 드리면 후일에 반드시 은혜를 갚음이 있으리라' 하시기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