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어버이주일) 오후예배
말씀 : 에베소서 5:21~33
제목 : 남편과 아내에게 주시는 주의 교훈
도입 :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전에 이어 오후예배 시간에도 가정에 대한 말씀을 좀 전하기를 원합니다. 오후에는 남편과 아내가 주 안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낙원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 낙원에 살게 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가정의 부부를 허락하셨습니다. 어떤 국가와 사회단체보다 가정을 먼저 세우셨는데 자녀들이 있기 전에 먼저 부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정이 소중하며 또 부부가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부부의 신앙과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섬길 것인가? 가정의 부부는 소중한 남편과 아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동역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함께 일할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먼저는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5: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예수님이시며 우리가 한 분 주를 섬기며 주를 경외합니다. 그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서로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기서 복종하다는 말은 군대가 진열해 있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군사령관의 지휘에 군대가 진열하여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령관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을 높이고 주님 안에서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첫째, 아내는 남편들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라!
에베소서 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주께 하듯이 하라고 했습니다.
고대사회도 아니고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이 말씀을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고 해서 아내가 낮은 계급이거나 남편이 아내보다 높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한 가정에서 남편이 가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셔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으므로 남자를 이쉬라고 하면 여자를 이샤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고백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남편의 갈빗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23절에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했을 때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그 몸은 우리의 성도입니다. 각 지체가 성도입니다. 그와 같이 머리 되시는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부부에 있어서는 남편이 머리가 되고 여자가 몸이 된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 복종해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비록 아내가 어떤 경우 더 똑똑하고 또 현명할지라도 남편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가정에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아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남편과 상의하여 해야 합니다. 물론 시장 보는 오늘 뭘 볼 것인가 이런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에게 일임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집을 산다든지 가게를 낸다든지 가정의 자녀들의 진로 문제 등 중요한 문제를 남편과 상의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자녀들을 품에 안고 키운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24절에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는 머리 되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낮은 계급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는 주 안에서 평등합니다. 주 안에서 피차 복종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라서 살아갈 때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교회도 하나님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이 예비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표현하고 성도를 아내로 표현합니다. 이사야 54:5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아멘 이스라엘의 남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따라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 되는 하나님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내가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경우 남편이 되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신을 섬길 때 하나님은 남편을 버린 아내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을 두고 범죄하는 아내를 표현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들의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거쳐서 연단을 받고 그들의 고토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됩니다.
신약성경에는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고 성도는 신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주가 되시며 신랑이 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고 복종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릅니다. 아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주를 섬기듯이 남편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둘째,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것은 사랑으로 책임을 지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될 책무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마치 주님이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피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27절에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우리는 흠이 많고 죄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 우리가 주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아멘 이것은 오직 주님의 헌신과 희생이었습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헌신한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나의 뼈와 살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아내를 괴롭히고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지체를 괴롭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아내를 귀하여 여기고 사랑하고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7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래서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유의 깊게 하여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괴롭혀서 아내가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다면 기도 막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기쁨과 평안으로 믿음 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9절에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자신을 희생하여 몸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 사랑하기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남편의 책무입니다. 적어도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후회없이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아내와 남편의 비유가 교회의 비유와 같습니다. 30절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이 되십니다. 주님이 자신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십니다. 그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고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31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독립을 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난다고 해서 무조건 멀리 떠나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어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부부가 더 중요합니다. 물론 부모도 중요하지만 부부가 더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1촌간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0촌이며 하나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우선입니다. 장성해서 결혼을 했는데도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독립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6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모세도 이혼증서를 주어서 보내라고 한 것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뜻은 이혼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완악하기 때문에 이혼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으로 주의 말씀대로 신의를 지키고 믿음을 지킬 때 가정은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든든할 때 모든 행복의 근원이 시작됩니다. 아멘
결론) 주 안에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라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되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뭉쳐있으면 승리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어지면 0촌이 무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할 때 결국 선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