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면서 점점 더 필수의료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 정부의 거듭된 악수를 보면서, 아마 그것은 필수의료를 하겠다고 남아 있는 소수의 의사들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이상한 대안만 내놓고 있다.
의료윤리는 의료 제도와 환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에 탄생했다.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서 다른 가치와 관점을 내세울 때 타당함, 정당함, 합당함을 논의하는 분야다. 쉽게 말해, 병원에서 환자들이 겪는 불편이나, 사회가 의료에 대해 느끼는 불안, 개인이나 집단이 의료적 문제로 겪는 차별 경험과 같은 것을 연구하고 드러내어 제언하는 분야다.
지금 한국 사회가 의료를 놓고 겪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이런 분야가 필요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일단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리가 없다. 자리가 있어도 이런 연구 대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과대학 교수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8시에 퇴근할 때까지 진료와 강의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건 기본 일정이고, 당연히 초과로 일할 때가 있다. 하지만 초과 근무 수당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의 사명감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필수의학을 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도로 보장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필수의료는 생명과 관련된 분야라 소송에 걸릴 가능성이 많고, 보상비용이 과다해 대부분의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다, 의사 증원으로 필수의료를 늘리려면 만 명이 아니라 한 5만 명쯤 늘려야 한다. 과연 감당은 할 수 있을까?
최근에 정부는 몇 가지 개선책을 발표했다. 8월13일에 내놓은 1000여개 중증수술 치료비 인상안이나, 8월22일에 발표한 응급실 경증환자 외래진료 부담금 인상안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책인가? 중증수술을 일 년에 몇 번이나 할까. 중수술 치료비를 올린다고 갑자기 필수의료 분야가 다른 분야만큼이라도 수익을 낼까? 그럴 리가 없다. 말 그대로 생색내기이지, 현장에선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질병과 의료에 대한 고민은 전문가에게 맡겨 놓으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환자들과 가족들은 아직 질병 구분할 능력이 없다. 아프면 일단 병원부터 뛰어 가는 사회로 국가가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치료비를 이제 응급실에서 더 올려 받으라고? 환자와 병원 사이 갈등만 조장한다.
정부의 개선안은 개악이다, 불에 섶을 지고 뛰어드는 일일 뿐이다. 애초에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었으면 필수의료 하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가치도, 보장도 두지 않아서 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병원에서 한직으로 밀려날 만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다음, 그 다음에 이상한 대안을 내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김준혁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