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청산일월산우회에 참여한다는 말도 않고 바보의 차를 끌고
점암 당재로 간다.
시동을 끄지 않고 한참을 기다려도 하얀 솔라티가 오지 않는다.
바보에게 차를 두고 혼자 산을 오르려 흔적을 찾는다.
그 때 저 아래 구비를 돌아 하얀 차가 올라온다.
지난번에 못 본 한남자 더 늘었다.
서로 입구를 헤매다가 옹벽을 어렵게 올라 가시밭 덤불을 헤친다.
나무를 베어냈으나 가시와 풀이 우거진 조림지 옆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숲으로 접어드니 차라리 길이 낫다.
15분쯤 발은 푹푹 빠지고 가지 끝이 얼굴을 할키는 길없는 산을 오르니 작은 봉우리의 능선이다.
팔영산도 보이고 점암 면소재 뒤로 북쪽의 고흥반도와 여자만도 보인다.
하늘이 파랗고 시야가 멀다.
앞쪽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우리가 걸을 길이 아니다.
나의 시각은 앞산의 산줄기만 볼 줄 알아 산 뒤로 이어지는 많은 능선과 봉우리는 보지 못한다.
건너 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레미콘 공장으로 완전히 끊기는 것 같다.
왼쪽으로 채석장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야 할 듯한데 길이 안 보인다.
채석장 끝을 가다가 포기하고 돌무더기 경사로 내려간다.
난 끝에서 보니 중장비가 올라오며 길을 닦아 놓은 흔적이 보여 그리로 가면서
가까이 있는 이를 부른다.
이미 몇은 경사의 돌무더기를 내려가고 있다.
지그재그 거친 돌밭길을 내려오니 일행은 아직도 건너 산무더기 이에서 미끌리며 내려오고 있다.
산양은 아닌데 거친 돌무더기 속의 그들이 작은 짐승들 같다.
한참을 기다리며 다시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지만 쉽지 않다.
다시 돌무더기를 올라 그나마 형펀이 나은 조림지의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채석장을 벗어나도 산길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벌써 40년 전 쯤이다. 점암에서 1년 남짓 살면서 아침에 저수지 뒤로 올랐던 뾰족한 봉우리들이 앞으로 보인다.
바위 위 조망이 열려 팔영산과 점암면소재지를 내려다보곤 한다.
점암초는 내가 배반한 곳이기에 더 자주 본다.
일행은 어느 덧 소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뒷쪽에 처음 본 남자가 허리를 세우고 오다가
멈추고 쉬곤 하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끼어 걷지 않고 뒤따르기만 하려는 것도 쉽지 않다.
뒤따르는 것도 어느 순간은 힘을 내어 앞 사람만큼 힘을 내어야 산행은 예정시간에 맞출 수 있다.
함부로 후미 책임지는 부대장이라 내세울 일 아니다.
부대장도 아니면서????
옆으로 눈 편마암 능선을 오르자 배낭을 벗고 막걸리를 꺼낸다.
마복산과 해창만 조망이 열리고 동으로 팔영산도 부드럽다.
사진을 찍어 주다가 사이에 끼어라 해 서기도 한다.
바보 운암산이 나타날 것도 같은데 멀다.
반바지의 안내판이 걸려있는 봉남재를 건너는 걸 보니 서쪽으로 돌다가 운암산으로 오른가 보다.
다시 거친 흐릿한 산길을 올라 봉우리에 닿으니 산우님들 힘내라는 '준.희'의 표지가 보인다.
없는 힘을 낸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뒤에 오는 한남자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앞서가는 이들이 보이지 않으니 멈출 수도 없다.
혼자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일행이 양지바른 작은 바위위에 점심을 펴고 있다.
바보가 정성을 들여 싸준 나의 점심은 반찬이 동치미 무 뿐이다.
자하 신선생을 닮은 분이 따끈한 정종을 주신다.
터벅이 대장님은 빨간 마가목주를 주신다.
캔맥주를 꺼내려다가 참는다.
다시 챙기고 일어나 봉우리를 올라간다. 사람 다닌 흔적은 여전히 많지 않다.
고흥반도의 중앙부에 있는 운암산은 옆에서 보면 세 봉우리의 능선이 이어진다.
보기는 부드럽고 포근한데 걷는 길은 힘들다.
봉우리 하나하나가 힘들다.
2시가 다 되어 운암산 정상 능선에 닿는다.
분청박물관 뒤로 남쪽으로 풍경이 열린다. 우리가 가야할 산길이 서쪽으로 이어지며 첩첩이다.
뒤에 오는 남자를 기다리며 푹 쉰다. 그들을 사진 찍어주고 내려가는 길은
계단도 만들어진 내가 더러 다녔던 길이다.
중섯재 고개 쉼터는 비닐을 두르고 있다.
능선을 두고 등산로를 따라 동촌산림욕장으로 들어서 다시 봉우리로 오른다.
의자에 쉬면서 배낭에서 캔맥주를 꺼내니 모두 맛있다고 한다.
음식은 제맛도 중요하지만 먹는 이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아이들을 인솔해 걸었던 벚나무 정자를 두고 바위 전망대에서 흐릿한 흔적을 따라 들어간다.
가끔 노랑 리본이 보인다. 작은 봉우리 두어개를 지나 내리니 운대저수지로 내려가는 운곡재다.
벌써 3시 50분이 다 되어간다.
30여분 다시 봉우리를 올라 거친 가시덤불을 헤치고 아스팔트로 내리니 송곡재 옛길 육교다.
민주인사추모비 앞을 지나 바로 주월산 비계철판으로 만든 계단을 오른다.
주월산을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등산로가 보이는 듯 하더니 희미하다.
오르막도 힘들다. 능선 한쪽으 주월산 정상으로 간다.
초록 육모의 산불감시초소는 비어 있다.
조망을 얻으려 남쪽으로 더 가보니 가파른 등산로가 보인다.
돌아와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수덕 마을로 향한다.
행정리 군부대 뒷산 능선을 걷는데 전선도 보이고 훈련 구조물도 보인다.
'적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시멘트 구조물을 본다.
적 대신에 무슨 말을 넣어볼까?
신은 아니고, 양심도 거북하다? 너와 나 차라리 그게 좋겠다.
서쪽으로 향하는 능선이 해를 보여주지 않지만 햇볕이 붉은 기운을 많이 머금었다.
다행이 산봉우리가 높지 않다.
마지막 힘을 내어 고흥읍 수덕마을에서 두원으로 넘어가는 수덕재에 닿는다.
5시 40분이 되어간다. 9시쯤 시작했으니, 9시간 가까이 걸었다.
대간을 걷고 말지 지맥길은 힘들다.
고흥읍은 내가 살기도 했지만 아무 말 않고 그들을 따라 목욕탕과 식당에도 간다.
그들이 내는 비용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8명 목욕비 56,000원을 내가 결재한다.
백림탕은 곧 끝난다고 하고, 생선구이 백반을 먹는 흥진식당은 나도 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내일이 회갑이라는 오늘 님을 위해 케잌도 사 온 잔치에 나도 박수를 치고 잔 가득 소맥을 따라 줘 몇 잔 했다.
부산까지 가는 그들에게 동강로터리에서 인사하고 바보가 불을 훤히 켜고 기다리는 차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