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후렴)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혔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잘 살고 못 되고 찰나의 것이니
흉흉한 암초는 가까워 오도다
이래도 일생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내 님도 다 싫다
살수록 괴롭고 갈수록 험하니
한갓 바람은 평화의 죽음
내가 세상에 이 몸을 감출 때
괴로움도 쓰림도 사라져 버린다
1926년 8월 5일,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는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德壽丸)에 탔던 남녀 한 쌍이 대마도 앞 바다에 돌연하게 몸을
던져 정사한 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장식하여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하였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현해탄에서 발생한 정사
사건만으로도 충격적인 뉴스가 되었겠지만, 그보다도 정사의 주인공
이 윤심덕(尹心悳)이었기 때문이다. 윤심덕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뭇 남성들의 가슴을 애태우게 한 짝사랑의 대상 중 한 여성이
아니었던가.
"사의찬미"노랫말은 윤심덕의 자작시라는 말도 있고 김우진이
지은 시라는 말도 있으나, 어찌되었건 20년대 페미시즘의 극치를
표현한 것이며, 이들은 이 노래대로 생을 정리했다고 느껴진다.
윤심덕은 레코드 취입을 마치고 귀국에 앞서 동경에 머물러 있는
김우진에게 전보를 쳤다. 당장 자기가 묵고 있는 강춘여관으로
달려오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는 충격적인 전보 사연에 김우진은
만사를 뒤로하고 윤심덕한테 달려왔다.
김우진은 윤심덕과 함께 강춘여관에서 짧기만 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밤중에 부산으로 떠나는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 몸을 실었다.
그때가 1926년 8월 3일, 음력으로는 그믐밤이었다. 해풍이 불어올
때마다 비릿한 갯내음과 찐득찐득한 기름냄새가 범벅되어
코 속을 역겹게 자극하였다.
이윽고 뱃고동과 함께 뱃머리는 바다를 향했다. 윤심덕은 김우진의
팔짱을 꼭 끼고 갑판으로 나갔다. 동경 유학이 시작되면서부터
이 뱃길은 수없이 오고갔지만 이날밤 만큼은 처음 가보는 뱃길처럼
느껴졌다.
밤이 깊어지면서 배는 점점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듯했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하여 솔직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숨어서 사랑을 나누는 세상,
참으로 불공평해요. 이해가 안돼요!"
윤심덕의 울부짖음과 같은 하소연에 김우진은 담배 연기만
한참 동안 뿜어대다가 "그래, 맞아요. 참으로 무의미한 생명
연습이죠."하며 윤심덕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얼마나흘렀을까.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을 벗어 나란히 놓았다.
두 사람은 눈을 지긋이 감고 가슴을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몸을 바다로 날렸다. 때마침 갑판에 나와 바람을 쏘이던
승객이 이 모습을 발견하고 선원에게 급히 알렸다.
두 사람의 시체를 건져 보려는 선원들의 노력은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오로지 흑조를 타고
그녀의 마지막 곡「사의 찬미」만이 애절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님들!.. 슬픔이 있는 곡입니다... ..훌쩍훌쩍..감초유(샘물지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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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