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 이곳에도 단구(丹丘)가 있는 것을(人間亦自有丹丘)
同題仙游觀(동제선유관)〈선유관에 함께 제(題)하다〉
··································································· 韓翃(한굉)
선대(仙臺)에서 오성십이루(五城十二樓)를 내려다보니
경물(景物)이 청초한 것은 간밤의 비가 그쳐서인가.
산 빛은 멀리 저물녘 진(秦) 땅 나무에 이어져 있고
다듬이질 소리 가까이서 한궁(漢宮)의 가을을 알려주누나.
성긴 소나무 그림자 드리운 곳에 텅 빈 제단 고요하고
가는 풀 향기 그윽한 곳에 작은 골짝이 깊숙하다.
어찌 따로 방외(方外)를 찾아 떠나리오
인간 세상 이곳에도 단구(丹丘)가 있는 것을.
仙臺下見五城樓(선대하견오성루),風物淒淒宿雨收(풍물처처숙우수)。
山色遙連秦樹晚(산색요련진수만),砧聲近報漢宮秋(침성근보한궁추)。
疎松影落空壇靜(소송영락공단정),細草香閑小洞幽(세초향한소동유)。
何用別尋方外去(하용별심방외거),人間亦自有丹丘(인간역자유단구)。
출처: 당시삼백수 권4 칠언율시, 同題仙游觀, 作者-韓翃, 全唐詩·卷245
[通釋] 선대(仙臺)에서 오성십이루(五城十二樓)를 내려다보니, 어젯밤에 내리던 비가 그친 후 경물(景物)이 청초한 모습을 드러냈다. 저녁 무렵 푸른 산 빛과 진(秦) 땅 나무가 서로 이어져 있는데, 다듬이질 소리 들려오니 한궁(漢宮)에 가을이 저물고 있음을 또한 알려주는 것이다. 도관(道觀)의 제단(祭壇)은 참으로 고요한데 다만 드문드문 소나무의 그림자만이 있고, 작은 골짜기에는 가느다란 풀이 그윽한 향기를 내어 한적한 느낌을 준다. 어찌 꼭 다시 세외(世外)의 정토(淨土)를 찾아 떠나리오. 인간 세상에도 단구(丹丘) 선경(仙境)이 있는 것을.
[解題] 이 작품은 사관(寺觀)에 제(題)한 시이다. 선유관(仙游觀)은 일설에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북쪽 숭산(嵩山) 기슭에 있었다고 한다. 초당(初唐) 때 도사(道士) 반사정(潘師正)이 소요곡(逍遙谷)에 살았는데 당(唐) 고종(高宗)이 그를 매우 존경하여 반사정이 살던 곳에 숭당관(崇唐觀)을 짓도록 명하였고, 또 소요곡(逍遙谷)에다 문을 세워 ‘仙游(선유)’라고 이름하였으며, 훗날 ‘숭당관’의 이름을 고쳐 ‘선유관’이라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에는 섬서성(陝西省) 인유현(麟游縣) 성 북쪽 교외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후자를 따랐다.
시인은 도관(道觀) 주변의 풍경이 지니고 있는 맑음과 그윽함, 고요함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였는데, 이는 ‘인간 세상에도 선경(仙境)이 있는데 어찌 꼭 이것을 버려두고 세상 밖의 허무(虛無)한 지경을 찾으려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독자에게 주기 위해서이다. 전체 시는 ‘宿雨(숙우)’로부터 ‘秦樹(진수)’의 저녁까지, 하루 동안의 경물의 변화를 그린다. 5·6구에서는 법단(法壇)과 동실(洞室)의 풍경을 묘사하였고, 7·8구에서는 선유관의 한정(閑靜)함을 극단적으로 묘사하여 그것이 인간세계의 정토(淨土)임을 보여준다. 시 자체에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대구(對句)가 정교하고 음운(音韻)이 조화로우며 언어가 매우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다.
○ 同題仙游觀(동제선유관) : “同(동)”字가 없는 본도 있다。
○ 仙游觀(선유관) : 당(唐) 고종(高宗) 때 건립한 도관(道觀)으로 섬서성(陝西省) 인유현(麟游縣) 성(城) 북쪽 교외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적각선(赤脚仙)이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명명하였다고 한다.
○ 仙臺下見(선대하견) : ‘仙臺(선대)’는 도관(道觀) 앞의 고루(高臺)이다. ‘下見(하견)’이 ‘初見(초견)’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五城樓(오성루) : ‘五城十二樓(오성십이루)’라고도 하는데, 전설상의 신선(神仙)이 사는 곳이다. 천상(天上)의 백옥경에 있다는 다섯 성과 열두 누각.
○ 宿雨(숙우) :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 지난밤부터 오는 비
○ 砧聲(침성) : 다듬이하는 소리
○ 風物(풍물) : 풍경(風景)이다.
○ 秦樹(진수) : 진(秦) 땅의 나무이다. 진(秦)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관중(關中) 일대이다.
○ 漢宮(한궁) : 낙양(洛陽)의 당(唐)나라 궁궐을 가리킨다.
○ 香閑(향한) : 그윽한 향기이다. ‘春香(춘향)’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閑(한)’이 ‘生(생)’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方外(방외) : 세외(世外)의 뜻으로,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유가(儒家)에서 '도가(道家)'나 '불가(佛家)'를 일컫는 말이다.
○ 丹丘(단구) : 신선(神仙)이 살고 있는 곳이다. ≪楚辭(초사)≫ 〈遠遊(원유)〉에 “단구(丹丘)로 선인(仙人)에게 나아가 죽지 않는 옛 고향에 머무르리.[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선유관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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