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달임 대신으로
장마가 지속되는 속에 초복이다. 하지 이후 흐리고 비가 온 날이 잦아 대지가 아직 달구어지지 않아 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올해는 어쩐 일인지 더위가 위도를 역전시켜 남녘보다 수도권이 기온이 더 높은 날이 많다. 우리 지역은 지금까지는 선선해 30도를 넘긴 날이 드물었다. 장마가 물러가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지 싶다. 더우면 더운 대로 여름을 넘겨야 한다.
장마 틈새 맑은 햇살이 드러난 칠월 셋째 목요일 일과를 마치고 교정을 나섰다. 연사마을에 두 개 밖에 없는 식당 가운데 한 곳으로 향했다. 모처럼 같은 부서 동료들과 식사를 들기로 했다. 부장은 저녁에 2학년 학부모 대상 진학설명회로 시간외 근무를 해야 했다. 방문하는 학부모들이 현관으로 들어설 때 코로나 열화상 카메라를 살피는 역을 맡아 저녁식사를 해결해야 할 처지였다.
시간외 근무자는 학교 급식소에서 저녁이 제공 되는데 부장은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역시 점심은 어쩔 수 없이 교내 급식소에서 동료들과 같이 들어도 저녁은 먹지 않는다. 혼자 지내기에 급식소에서 대충 때워도 되겠으나 성장기 학생들 위주 식단이라 지방이나 단백질이 많은 찬이 나왔다. 생선이나 나물이 나오면 좋으련만 우리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듯했다.
점심때 교내 급식소에선 날이 날인지라 장각 삼계탕이 나왔더랬다. 난 처음엔 차림표 가끔 오르는 ‘장각’이 뭔지 궁금했다. 삼계탕용 약병아리가 아니고 육계 가운데 다리 부분만 삼계탕으로 삶아 낸 것이었다. 동료들과 학생들은 살점이 좋은 굵은 닭다리를 잘 먹었으나 난 아예 집어가질 않았다. 푹 삶은 닭다리를 집지 않아도 오이양파무침과 떡갈비버섯볶음으로 보리밥을 잘 먹었다.
동료들과 학교 밖에서는 지난번 정기고사 기간 점심자리 이후 드물게 함께했다. 내야 식도락가가 아니고 보양식에도 관심이 없다만 부장은 아침부터 복날이라고 삼계탕 얘기를 꺼냈다. 나는 연사마을에 살아도 동네 식당을 한 번도 들린 적 없다. 주로 원룸 독신자들이 찾는 듯했다. 부장과 기획은 코로나로 개학이 지연되어 교내 급식소가 운영되지 않아 몇 차례 들린 적 있었단다.
점심은 급식소에서 삼계탕이 나왔는지라 저녁은 다른 차림을 골랐다. 사실 나는 닭고기는 삼계탕은 물론 백숙으로도 잘 들지 않는 편이다. 치킨도 피자만큼이나 거리를 두는 토종 촌뜨기다. 그래도 돼지족발은 기회 오면 먹는 편이다. 그럴 땐 으레 지기들과 마주앉아 맑은 술잔을 비우는 안줏감으로 젓가락에 집었다. 주중 머무는 연사에서는 그런 자리를 가질 지기가 없어 아쉽다.
중년 여교사와 새내기 처녀교사에 정년이 가까운 내가 끼었으니 화제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부장은 교직 경력이 제법 되나 처녀 둘은 이제 교직에 갓 입문했다. 선택에 의해 묶어진 결합이 아니고 신학기 학교 업무를 배정받다 보니 서로는 올봄 초면으로 만난 사이다. 나만 작년에 왔고 셋은 모두 올해 왔다. 나이 든 내가 대우 받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먼저 몸을 움직인다.
복날 별식 삼계탕을 빼면 여름 별미로 콩국수와 열무국수가 차림표에 걸려 있었다. 교내에서 코로나 방역으로 고생하는 보건교사에게 위임하니 콩국수를 들겠노라고 했다. 나머지 셋은 열무국수에 방점을 찍었다. 복날 복달임 대신으로 고작 면을 먹는 셈이었다. 주인 아낙이 차려 나온 콩국수와 열무국수는 맛깔스러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반주를 곁들일 차림은 아니었다.
이른 저녁을 든 후 동료들은 학교로 되돌아가고 나는 산책을 위해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들녘은 칠월 중순 복날임에도 장맛비 사이 하늘이 파랬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일모작 지대 논에는 달포 전 모내기를 마친 벼들이 잎줄기를 불려가며 세력을 한창 떨쳐 자랐다. 물꼬를 돌보는 농부는 보일 리 없고 논바닥에 우렁이를 겨냥하는 백로들이 긴 목을 빼고 두리번거렸다. 20.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