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20대 명산 영월 발산(鉢山, 667m) 산행 #3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27 >
09:47 두목재 능선 안부
두목재 삼거리
두목재는 금몽암에서 두목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두목은 시루산 밑에 있는 마을로 목마른 소가 물을 먹는 형국의 명당터가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 명당 마을이다.
두목의 이름은 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막을 두자와 칠목자를 써서 두목이라고 하였으며
소나기재로 국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고개를 이용하여 삼거리와 문곡을 질러갔다고 한다.
두목고개의 좌측은 웰빙 등산로, 우측은 시루산으로 가는 등로이다.
두목재의 산스장
두목재에서 바라본 시루산
12:50 두목재에서 약 3분 휴식후 금몽암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13:10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과 초록 잎이 특징인 나무로 북반구의 추운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자작나무의 껍질은 얇고 종이처럼 벗겨지며 이는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빠르게 자라는 특성이 있어 숲을 조성하는 데 유리하며, 그늘을 제공하고 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자작나무는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고, 피톤치드를 방출하여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13:13 물이 말라 있는 약수터
목교
13:15 목교
13:18 철문
13:19 금몽암(임도) 갈림길
← 웰빙등산로, 금몽암까지의 거리는 100m
강원 20대 명산 발산(667m) 등산 안내도
금몽암 일주문격인 전탑과 돌탑
약수를 담는 석조에 용머리와 발을 조각해 놓은 약수터
재관당 대종사 지탑 부도
보호수 느티나무(2003.11.15. 지정) 수령 380년, 높이 31m, 둘레 38m
금몽교
금몽암 비석
13:25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금몽암( 禁夢庵)
영월읍 영홍12리 영월읍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鉢山(발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영월 보덕사에 속해 있는 암자로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ㄱ자형 사찰로 총 16칸인 금몽암은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여 旨德庵(지덕암)이라 하였다.
그 후 한때는 魯陵庵(노능암)으로 불리운 때도 있었으나 1770년(영조 46)에 금몽암으로 개칭되었다.
사찰명을 금몽암으로 개칭하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단종이 관풍헌에 계실 때 근교를 소요하다가 이 암자에 들렀더니
옛날 궁중에 있을 때 꿈속에서 보았던 암자와 흡사하다고 하여 후에 절 이름을 금몽암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금몽암은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궁궐에 있을 때 이곳에 관한 꿈을 꾼 인연으로 터를 잡고 절을 지어 이름을 금몽암이라 하였으며
단종의 원당(죽은 이의 명복을 빌던 법당)이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것을 광해군 2년(1610) 당시 영월 부사 김택룡이 건물을 보수하고 노릉암으로 고쳐 불러오다가
현종 2년(1662)에 이르러 영월 부사 윤순거가 다시 수리하고 지덕암이라 하였다.
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고 보덕사(報德寺)가 원당이 되자 폐사(廢寺)되었다가
그 후 영조 21년(1745) 단종의 무덤인 장릉(莊陵)의 참봉 나삼(羅蔘)이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우고 금몽암이라 하였으며,
1792년 수리된 기록이 남아 있다.
1978년 안치한 석조여래입상
영월 금몽암 안내도
금몽암 포대화상
대웅전격인 금몽암 현판
목조 와가 T자집으로 크기는 16간이다.
해강 김규진이 쓴 <금몽암 >과 <우화루 > 현판이 걸려 있고, 부도와 부도탑 각 1기가 있다.
전면에 목판에 새긴 禁夢庵重修記(금몽암중수기)가걸려 있어 이 암자의 내력을 알려주고 있다.
금몽암과 우화루 편액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우화루는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13:33 약 7분간 금몽암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보덕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시루산 등산안내도
13:40 불이교
능동천은 이곳 보덕사 골짜기인 절골에서 발원해 영흥리, 군청사거리를 거쳐 하송리를 관통하여 평창강으로 흘러간다.
금몽암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이 도로를 따라 400m 내려가면 보덕사에 이르고, 200m 더 가면 장릉입구가 나타난다.
능동천 쉼터 표시석
능동천 쉼터 건립비에는 "2010년 소방방재청에서 주최한 전국 아름다운 소하천에 선정된 능동천은
단종의 자취와 애환이 깃든 물길로써 우리들의 자연사랑 실천으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되길 바라며
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로 주민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조성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의 명문장이 적혀 있다.
능말의 북쪽 골짜기인 이곳을 보덕사와 금몽암이 있어서 절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3:46 보덕사 입구인 극락2교
보덕사는 신라 문무왕 8년 (668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여 지덕사(旨德寺)라 하였다.
세조 3년 (1457년)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자
사찰 이름을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하였다가 이 절이 단종 장릉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보덕사라 불리게 되었다.
보덕사는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의 수호사찰로 매월 4월 말 단종 제향때 단종추모 영산대재를 치르고 있다.
보덕사 극락보전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고려 의종 때 운허와 원경국사가 극락보전, 사성전, 염불당, 고법당, 침운루 등을 증축하였다고 전한다.
현존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 양식으로 추정되며
이 절은 6·25 전까지 사전(寺田)이 1,000석에 이르고 승려가 100명 이상 있었으며, 월정사의 말사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절 옆에는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된 영월 장릉(단종의 능)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 조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국보 청동비로자나불입상을 보유한 보덕사는 발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
극락1교 옆의 거대한 자연석에는 太白山報德寺'(태백산보덕사) 大韓佛敎曹溪宗(대한불교조계종)이라 새겨져 있다.
극락1교와 태백산 보덕사(太白山 報德寺) 일주문
영월 땅은 백두산에서 시원하여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서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지맥의 산간지역이다.
일부 지역은 백두대간과 직접 접하기도(영월군 김삿갓면, 상동읍) 하지만
백두대간으로 태백시 소재의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국립공원권의 태백산(太白山, 1567m)을 저멀리 원용한 것으로 보여졌다.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은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덕사 세심다원 옆의 오층석탑
영월 보덕사 앞 세심다원에는 수령이 45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보호수 7그루가 서있고 맑은 물의 연못이 있다.
세심다원은 보덕사 일주문 안쪽에 자리한 작은 전통 카페로
태백산 자락의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를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쉼터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