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도 기행 최 건 차
전남 신안군에 속한 임자도를 다시 찾았다. 2009년 처음 갔을 때는 지도읍 점안에서 승객과 차량을 함께 실어나르는 철부선를 타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2021년 2월 14일 개통됐다는 다리가 웅장하게 놔 있어 승용차를 탄 채로 들어갔다. 근래 우리나라는 토목기술 발달로 육지와 가까운 섬을 연결하는 붐이 일고 있다. 이에 다도해 천사의 섬들에 연륙교가 생기고 가까운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생기고 있어 다목적 나들이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관광명소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백령도보다 조금 더 크고 여의도 5배 정도 큰 임자도에는 전국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 철이 끝났지만 폭 300m에 길이가 12km에 이른다는 대광해수욕장은 규모와 시설이 대단해 보였다. 마침 썰물 때라 넓고 길게 펼쳐진 모래밭은 고운가루처럼 부드러워 맨발로 걷기에도 좋고 중간중간에는 찰지고 미끄러운 머드(mud) 지대가 매력을 더 했다. 9월 중순이지만 물속이 차갑지 않아 어떤 이들은 전신에 머드를 하면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수영준비를 해 가지 않아 아쉬움을 달래려고 신발을 벗고 물속을 걸으며 물장구도 치고 해수욕 기분을 내봤다.
이번 임자도 기행은 하우리교회 목사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목회 40년 지기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신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하는 듯 싶은 감정에 빠져들었다. 하우리교회에서 31년째 목회 중인 서기열 목사는 저녁 식사를 임자도 특산물이라며 하우리 앞바다에서 갓 잡은 민어로 회를 뜨고 나머지로 탕을 끓여 주었다. 내가 지금껏 먹어본 생선회 중에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될 수 없는 최상급 프리미엄이었고, 탕 역시 최고였다. 후식으로는 단맛이 짙게 든 토종 무화과가 별미였다.
1968년 사태 때 나는 전방부대 작전장교였기에 임자도 간첩단 사건을 알고 있다. 이제는 천지가 개벽한 듯 시대가 바뀌어 그때 그런 사건들은 잊혀진 듯하고 오늘날의 임자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해지고 있다. 레저붐을 타고 머드가 물속에 무진장으로 묻혀있는 전국 최장의 대광해수욕장엔 바닷가를 시원하게 달리는 승마장이 있다. 1711년 조선조 정조 때 임자진이 설치되어 175마리의 군마가 있었다는 곳이다. 근래에는 매년 천 톤 이상의 새우젓이 전국최대로 생산되고, 최고급 생선인 민어가 많이 잡혀 한때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들어 민어 파시가 열렸었다고 한다.
임자도(荏子島)는 들깨와 참깨 산지여서 임자도라 불리고 있지만 대파 주산지로 바뀐 지가 오래다. 전국 대파 소비량의 1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들판에 벼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대파밭이고 그 모서리나 앞부분에는 고구마를 조금씩 심어 놓고 있다. 멧돼지가 대파는 먹지 않고 고구마를 먹어치우기 때문에 밭마다 진돗개가 주야로 경계를 서고 있다. 섬에 웬 멧돼지냐고 하겠지만 육지에서 헤엄쳐 온다는 것이다. 대파를 수확할 때면 고용 외국인들과 전국에서 7, 8백에서 1천 명에 가량의 일꾼들이 몰려와 대파를 뽑는 장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나는 유명산을 찾아 오르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산행 마니아다. 한라산 백록담과 울릉도 성인봉을 등반했고, 모슬포 송악산과 서귀포 산방산을 올라봤다. 임자도에는 오를만한 산이 있겠나 싶었는데, 이참에 보니 320m 높이의 대둔산을 비롯하여 224m의 불갑산과 165m의 삼각산 등이 있어 산악인들이 찾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늘 푸른 해송과 관목으로 숲이 짙어 멧돼지가 서식할 만해 보이고, 부엉이가 산다는 벙산에 오르고 싶다고 했더니 서기열 목사가 언제든지 같이 오르자고 했다.
임자도는 천혜의 보물섬이다. 해산물이 풍부한 바다, 전국 최장의 해수욕장과 대파밭은 기본이고, 산에서는 고사리가 덤으로 많이 나고 있다. 특히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천사의 섬의 일원이다. 3천7백여 명의 섬 주민 80%가 대파와 양파를 경작하고 24개 마을 중 3개 마을만 어업에 종사하면서 천일염과 새우젓, 고급 어종인 민어와 병어를 잡고 있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살펴보게 되는데, 별로 크지 않은 섬에 무려 14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고. 전국 대학생선교회(CCC)를 이끌었던 고 김준곤 목사. 서울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로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장을 역임한 고 이만신 목사를 비롯하여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어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음을 자랑스럽게 알고 있지만, 이곳 임자도에 와서는 시각적 느낌이 더 절실했다. 전국 농어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데 이곳 드넓은 대파밭 곳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1박 후 하우리교회에서 차린 조반은 어제 저녁의 민어 만찬에 버금가는 고급뷔페식이었다. 차려진 음식을 흡족하게 먹고 해안을 한 번 더 살피며 물속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걸었다. 규모가 상당한 튤립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날렵하게 달리는 말의 형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긴 바닷가를 기세 차게 달릴 수 있는 해안 경마장을 알리는 청동조형물이었다. 2003년 9월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