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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ism’s Sacred Fihi ma Fihi: Discourses of Rumi,
수피교 경전 [피히 마 피히;그것이 그것이다] : 루미의 대화
discourse 10
The Amir said to Rumi: “Before you arrived just now, your eldest son, Baha al-Din, excused him-self to me, saying, ‘My father said that he doesn’t want to put you to any trouble when you come to visit him.
“당신이 방금 도착하기 전에 당신의 장남 바하 알 딘이 변명하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당신이 그를 찾아올 때 당신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 했습니다.
He says, “I am subject to various states of consciousness.
In one state I speak, and in another I do not. In one state I attend to the affairs of others, and in another state I withdraw and go into retreat, while in yet another state I am utterly absorbed and beyond this world.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나는 다양한 의식상태에 속한다고 했지요.
어떤 상태에서는 말을 하고, 다른 상태에는 하지 않고
어떤 상태에서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갖고,
어떤 상태에서는 물러나 안거하며
또 다른 상태에서는 세상을 초월하여 완전히 몰입한다 하셨지요.
I do not wish the Amir to come when I’m in a state of being that is disagreeable, when I am unable to counsel and converse with him.
Therefore, it is better that when I am free and able to attend to my friends and do them some good, that I should go out and visit them.”’”
내가 부적절한 상황이라 조언하고 대화할 수 없을 때
아미르가 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유롭고 벗을 만나 좋은 일을 할 때,
직접 나가서 벗들을 방문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The Amir went on: “I answered Baha al-Din, saying, ‘I do not come here so that our Master should attend to me and converse with me. My purpose in coming is to have the honor of being amongst the company of his servants.’ For example, just now you were preoccupied and did not show yourself until you had kept me waiting for a long time.
아미르가 계속 말했다. “저는 바하 알 딘에게 대답하길
‘스승께서는 나를 돌보고 대화하기를 원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는 목적은 그의 시종 중 하나라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컨대 당신은 조금 전에 다른 일에 몰두해 제가 오랜 시간 기다린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This was so I would realize how difficult and disagreeable it is if I keep others waiting when they come to my door and I do not readily admit them. You have made me taste the bitterness of that and have given me a lesson so that I will not act like that with others.”
이로써 저는 다른 이가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선뜻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곤란하고 불쾌한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게 쓴 맛을 보여주시어 제가 다른 이들처럼 행하지 않도록 가르치신 것이지요.”
Rumi answered: That’s not true.
On the contrary, my keeping you waiting is an expression of utmost loving-kindness.
Just as God declares, “O my child, I would answer your smallest petition and slightest complaint without delay, if it weren’t that the voice of your complaint is so sweet to my ears.
My answer lingers unspoken in hopes that you might complain again and again, for the sound of your voice is so sweet to me.”
루미가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내가 당신을 기다리게 함은
최고의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께서 언명하신 것처럼,
“나의 아이야, 너의 불평하는 소리가 내 귀에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면 네가 가장 작은 탄원과 조금의 불만에 즉시 답했을 것이다.
네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여 네가 불평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For example, two beggars come to the door of a certain person. One is highly loved and sought after, while the other is disliked. The owner of the house says to a slave, “Give that hated one a piece of bread quickly and without delay, so he will leave right away.”
가령 어떤 이의 집에 두 명의 걸인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한 걸인은 많은 이가 찾고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이는 미움을 받지요. 집 주인은 시종에게 “미운 이에게 빨리 빵 한 조각을 주어 내 집을 서둘러 떠나게 하라.” 라고 이릅니다.
To the other beloved beggar the owner makes promises, saying, “The bread is not yet baked. Wait patiently until the bread is properly cooked and baked.”
사랑 받는 걸인에게는 약속합니다. “빵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니,
빵을 제대로 구울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시오”
My greater desire is to see my friends, to gaze my fill upon them and they on me.
For when friends see deeply into one another here, below, and they are raised into the other world after become very familiar here, they quickly recognize one another there.
Knowing how closely they were together in the world of mortality, their reuniting brings great joy.
나의 더 큰 소망은 벗들을 만나 충만함으로 서로 응시하는 것입니다.
벗들이 이곳과 아래에서 서로 깊이 바라보고 여기서 친숙해진 후에 다른 세계로 올라가게 되면 그들은 서로를 아주 빠르게 알아봅니다.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가까이 지냈는지 알면 그들의 재회는 큰 기쁨을 주게 됩니다.
For all too quickly we lose our friends. Do you not see how in this mortal world you become the friend and darling of some person, and they become the very Joseph of beauty (a beloved one) in your eyes.
Then, on account of a single shameful act they vanish from your sight, and you lose them completely?
우리는 벗들을 너무 빠르게 잃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누군가의 벗과 연인이 되며 어떻게 그들이 당신의 눈에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한 번의 부끄러운 짓으로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완전히 잃게 됩니다.
That Joseph-like form is changed into a wolf. This very same one you once saw as Joseph you now see as a wolf. Yet, their actual form has not changed, but is still the same as it always was.
미인의 모습은 늑대로 변합니다.
한 때 당신이 미인으로 보았던 이가 이제는 늑대로 보이는 것과 같지요. 허나 그들의 실제모습은 바뀌지 않았으며 언제나 같았습니다.
By that one accidental act you lost them.
Tomorrow, when this present essence is changed into another essence, since you never really knew that person deeply, and never penetrated thoroughly into their essence, how are you going to recognize them?
당신은 한 번의 실수로 그들을 잃어버립니다.
내일, 이 현재의 본질이 다른 것으로 바뀔 때,
그 사람을 진정으로 깊이 알지 못하며,
그들의 본질을 깊이 꿰뚫은 적이 없는데,
달라진 그들을 어떻게 알아볼까요?
The lesson to be learned from this is that we must see one another very well indeed.
We must pass beyond the good and bad qualities that are present temporarily in everyone, and must enter into the other’s very essence.
We must see with exceptional clarity that these qualities people observe in one another are not their original qualities.
이것에서 배울 교훈은 서로를 아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잠시 가진 좋고 나쁜 품성을 반드시 넘어서서 다른 사람의 본질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남에게서 관찰하는 이런 품성들이 그들의 본래 품성이 아님을 아주 명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The story is told of a man, who said, “I know that fellow very well.
I will give his distinguishing mark.” His friends said, “Please do.” The man answered, “He was a muleteer of mine. He had two black cows.”
People talk in this same way. “I consider So-and-so my friend. I know them.”
Yet every distinguishing mark they give is just like the two black cows.
Those are not distinguishing marks. Those marks are of no use whatever.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저 친구를 매우 잘 안다. 그의 특징을 알려주겠다.”
친구들은 “말해 달라”고 했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는 나의 노새 몰이꾼이었다. 그는 두 검정 소가 있다.”
사람들은 이처럼 말합니다.
“나는 아무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그들을 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특징은 그저 두 마리 검정 소 같은 것입니다.
이것들은 특징이 아닙니다. 이러한 특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So, we must pass beyond the good and evil in others and enter into their essence to see what they really are. That is truly seeing and knowing.
그래서 우리는 남들의 선악을 넘어서 진정 누구인지 알기 위해 본질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astonishes me how some people say, “How do saints and lovers of God find love in the eternal world beyond form, space and time? How can they gain strength and help? How are they affected by things without body or shape?”
나는 사람들의 이런 말에 놀랍니다.
“성인과 신의 숭배자가 어떻게 형체, 공간, 시간을 넘어 영원한 세상에서 사랑을 찾을까?”
“그들은 어떻게 힘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몸도, 형태도 없는 사물의 영향을 받는가? “
Is not all life, night and day, engaged with these very things?
One person loves another person and derives help through that love.
They find care and grace, kindness and knowledge, happiness and sorrow.
All these belong to that formless world.
Moment by moment they receive benefits from these abstractions and are affected by them.
However, this doesn’t surprise the doubters.
Yet they are amazed that saints can find love in the invisible worlds, and derive help without form.
모든 생명은 밤낮으로 이런 것들에 바쁘지 않은가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 도움을 얻습니다.
그들은 보살핌과 은혜, 친절과 지식, 행복과 슬픔을 찾습니다.
이것은 모두 무형의 세계에 속합니다.
매 순간 이런 관념에서 이로움을 얻고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의심하는 자를 놀라게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그들은 성인들이 무형의 세상에서 사랑을 찾고 형태 없이 도움을 받는 것에 놀랍니다.
Once there was a philosopher who denied this reality.
One day he became so sick he could not leave his bed,
and his illness dragged on a long time.
A certain theologian went to visit him.
한번은 이 현실은 부정하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너무 아파서 침대를 떠날 수 없었고,
병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그를 방문했습니다.
“What are you seeking?” the theologian asked.
“Health,” said the philosopher.
신학자는 그에게 무엇을 찾는지 물었고
신학자는 ‘건강’이라고 답했습니다.
“Tell me how this health is shaped, so that I may find it for you.”
“It has no shape,” said the philosopher.
“내가 당신을 위해 찾도록 건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세요”
“그것은 모양이 없습니다.” 라고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It is indescribable.”
“그것은 형언할 수 없어요.”
“If it is indescribable, then how can you look for it?” the theologian demanded.
“만약 형언할 수 없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신학자가 물었습니다.
“All I know,” answered the philosopher, “is that when health arrives I grow in strength.
I become plump, fresh and alive.”
철학자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건강하면 힘이 솟는다는 것뿐입니다.
포동포동하게 되고, 상쾌하고 생기가 넘칩니다.”
“From illness we learn of health,” said the theologian.
“From what is describable we learn of what is indescribable.
Now abandon your doubting ways and I will return you to your vital self.”
“우리는 병을 통해 건강을 배웁니다”라고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형언할 수 있는 것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배웁니다.
이제 당신이 의심의 길을 버리면 내가 당신의 활력소를 돌려드리겠습니다.”
Though spiritual truth is inscrutable, still we all benefit from it through the embodiment of form. Just as you see the changes brought by the stars, moon and sun turning in the sky, the rain from clouds in due season, summer and winter, and all the transformations of time.
You see all these things happen, and know that it is right and in accordance with wisdom.
영적 진리는 불가사의해도 형상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이로움을 얻습니다. 마치 당신이 하늘에서 공전하는 별과 달과 태양에 의한 변화와 적기에 구름에서 내리는 비를 보고 여름과 겨울 그리고 시간의 모든 변화를 보듯이.
당신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옳고 지혜에 부합함을 압니다.
But how does that distant cloud know it is necessary to rain at its appointed time? Or how does this earth, when it receives a seed, know to return it tenfold? Well, Someone does this. Behold that Someone through the embodiment of this world, and find nourishment. Just as you use the body of another person to contact their essence, use the embodiment of this world to touch That reality.
하지만 저 멀리 있는 구름이 정해진 시간에 비를 내릴 필요성을 어떻게 알까요?
또 이 땅은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열 배로 돌려주는 걸 알까요?
글쎄요, 누군가 이것을 합니다.
이 세상의 체현[化現]을 통해 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자양분을 찾으세요.
당신이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그들의 본질에 닿듯이 이 세상의 형상을 통해 그 실상에 닿아 보세요.
When the Prophet was transported out of himself and spoke, he used to say, “God says.” Now, from the standpoint of embodiment, it was his tongue that spoke; but he wasn’t there at all. That speaker was greater than he was. Mohammed, knowing himself to be ignorant and without knowledge of such words, when he heard the wisdom coming through his own lips, he realized that he was no longer what he had been. Something greater moved him.
선지자가 무아지경에서 전할 때 “신께서 말씀하시길”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형상의 견지에서 보면 그의 혀가 말하지만 그는 결코 그곳에 없었습니다.
말하는 자가 그보다 더 위대했습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무지하고 그런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음을 알기에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큰 것이 그를 움직였죠.
He reported stories about past people and prophets who lived thousands of years before, and he told what would come to pass even to the end of the world. His being was but a thing of years. A mortal being surely can’t describe such things. How can a creature born in time give information about the eternal? And so it became known that it was not he who was speaking. God was speaking.
그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과 선지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심지여 세상의 종말 후에 무엇이 올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신은 수십 년만 삽니다.
인간은 그런 것을 결코 묘사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시간 속에 태어난 피조물이 영원에 대한 지식을 전할까요?
그래서 그가 말하는 것이 아닌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말했던 것입니다.
God is wholly free of form and words.
Its speech is beyond letters and voice.
Yet, It delivers Its message by any letters and voice and tongue It desires.
People have carved the figures of men, women and birds of stone along the banks of pools on the highways and in the caravansaries, and through the mouths of those statues water pours into the pool. Anyone with any sense knows that this water does not begin in the mouth of a stone bird, it comes from some other source.
신은 형상과 말에서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의 말씀은 문자와 소리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그의 말씀은 문자와 목소리 그리고 원하는 언어로 전달됩니다.
사람들은 도로에 있는 연못 둑을 따라서 그리고 대상의 여관에,
돌로 남자와 여자 돌 새를 조각해 놓고 입을 통해서 물이 연못으로 쏟아집니다.
분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새 조각상의 입에서 이 물이 시작되지 않고 다른 출처에서 시작된 것임을 압니다.
If you want to get to know people, engage them in speech.
By their words you will know them.
If they are imposters, even if someone told them that people can be recognized by their words and they watch their words carefully to avoid being caught, still, in the end you will come to understand who they are.
사람이 알고 싶다면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 보세요.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사기꾼이고, 심지어 누군가 그들에게 사람은 말을 듣고
판단한다고 말해줘서 자신을 들키지 않도록 말을 조심한다 해도,
결국 당신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This is illustrated by the story of the child and her mother.
A child in the desert said to her mother, “On dark nights a horrible demon appears to me, and I am terribly afraid.”
“Don’t be afraid,” said her mother. “The next time you see that form, attack it bravely. Then you see clearly that it is nothing but a fantasy.”
“But mother,” said the child, “what if the horrible demon’s mother has given him similar advice? What shall I do if she has taught him, saying, ‘Don’t give in, so she will think you are real and powerful. And don’t say a word, so that you won’t be exposed?’ How shall I recognize him then?”
이것은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사막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깜깜한 밤바다 끔찍한 악마가 나타나서 정말 무서워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아라. 다음 번에 그것을 보면 용감하게 공격하거라.
그러면 그것이 환상임을 확실히 알게 될 거야.”
아들은 “하지만 엄마 끔찍한 악마의 엄마가 그에게 비슷한 충고를 하면 어쩌죠? 만일 그에게 가르치길 ‘굴복하지 말거라 그러면 그녀는 네가 진짜이며 강하다고 생각할 거야. 말을 안 하면 드러나지 않을 거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죠? 그러면 내가 그를 어떻게 알아보나요?”
“Keep silent, yield to his form as it is, and wait with patience,” her mother answered. “Sooner or later some word will leap from his mouth. Or if it does not, from your own heart some words will spring forth unconsciously, or into your mind some thoughts or ideas will spring up, so that out of those thoughts you will know him for what he is.
For this is how he has affected you. This is a reflection of his true self and his real feelings that have sprung up inside of you.”
“조용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끈기를 갖고 기다려라.”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곧 어떤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올 거야.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너의 마음에서 어떤 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거나,
너의 머리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싹틀 것이고,
그 생각에서 너는 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이것이 그가 네게 영향을 주는 방법이야.
이것은 네 안에서 튀어 나왔던 그의 진면목과 실제 감정들의 반영이야.”
..
A worthy man once shut himself in a cave for forty days discipline, seeking spiritual enlightenment. A voice came to him, saying, “Such a lofty goal will never be attained by forty days discipline. Abandon your cave so the love of a great saint may reach you and your goal can be realized.”
예전에 영적 깨달음을 구하던 훌륭한 남자가 40일간 동굴에 들어가 수련을 하였습니다.
한 목소리가 그에게 말하길,
“그렇게 높은 목표는 40일의 수련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너의 동굴을 떠나면 위대한 성인의 사랑이 너에게 닿아서
너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Where shall I find that great one?” the man asked.
“In the congregational mosque,” came the answer.
“어디서 그 위대한 사람을 찾나요? 남자가 묻자
“집회가 열리는 모스크”라는 답이 왔습니다.
“In such a throng of people, how shall I recognize which one he is?” he inquired.
“Go,” said the voice, “he will recognize you and will gaze upon you.
The sign that his love has fallen upon you will be when the pitcher drops from your hand and you become unconscious. Then you will know that his gaze has reached you.”
“그렇게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내가 그를 알아보죠?” 그가 물었지요.
목소리가 말하길 “가라, 그가 너를 알아보고 너를 바라볼 것이다.
네게 그의 사랑이 정해진 표식으로 네 손에서 주전자가 떨어지고 너는 무의식 상태가 될 것이다. 그때 그의 시선이 네게 닿았음을 알 것이다.”
The man acted accordingly. He filled a pitcher with water and went around the congregation in the mosque like a water-carrier. He was wandering between the ranks of the worshippers when suddenly he was seized with ecstasy. He uttered a loud cry, and the pitcher fell from his hand. He remained in a corner of the mosque unconscious.
그는 그 말대로 했습니다. 그는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모스크의 집회에 물 운반자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가 참배자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황홀경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는 대성통곡을 했고 주전자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무의식 상태로 사원 구석에 있었습니다.
All the people left.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w that he was alone.
He could not see the spiritual king who had gazed upon him, but he had gained his goal.
There are certain lovers of God, who, because of their great majesty and jealousy for God, do not show themselves openly, but they cause disciples to attain important goals and bestow gifts upon them. Such mighty spiritual saints are rare and precious.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혼자 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영적인 왕이 그를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없었지만,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신을 사랑하는 어떤 자들은 신을 향한 그들의 지대한 위엄과 질투 때문에 자신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제자들이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이끌고 그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런 힘있는 영적 성인은 드물며 소중합니다.
Someone said: “Do the great ones come before you?”
Rumi answered: There is no “before” left to me.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I have had any “before.”
If they come, they come before an image they believe to be me.
Some people said to Jesus, “We will come to your house.”
Jesus replied, “Where is my house in this world, and how could I have a house?”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위대한 이가 당신 앞에 옵니까?”
루미가 답하길: 내게 남겨진 “앞”은 없다.
어떤 “앞”이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이 온다면, 그들은 형상 앞에 오고 그게 나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길 “당신 집에 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답하시길
“이 세상에 내 집이 어디 있으며 어떻게 내가 집을 가지겠느냐?”
It is related that Jesus was wandering in the desert when a great rainstorm broke.
He went to take shelter in the den of a jackal, in the corner of its cave, until the rain ceased. A revelation came to him, saying, “Get out of the jackal’s den, for the jackal’s little ones cannot rest on account of you.” He cried aloud, “Lord, the jackal’s pups
have a shelter, but the son of Mary has no place to call home.”
이것은 예수께서 사막에서 큰 비를 만나 방랑하던 일과 관련됩니다.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자칼의 굴로 갔고, 비가 그칠 때까지 동굴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계시가 내려와 말하길, “자칼의 굴에서 나가거라,
너 때문에 자칼의 새끼들이 쉴 수가 없구나.”
그가 큰 소리로 “주여, 자칼의 새끼들은 집이 있지만
마리아의 아들은 집이라 부를 곳이 없습니다.”
Although the jackal’s whelp has a cave to live in, still it has no Beloved to drive it out of its home. But you do have such a One driving you out. If you have no home, what does that matter?
The loving-kindness of such a Driver, and the grace from such a robe of honor that singles you out to be driven forth, is worth far more, exceeding a hundred thousand heavens and worlds here and beyond.
자칼의 새끼들은 살 동굴이 있다 해도, 집에서 내쫓는 연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쫓는 그런 분이 있습니다.
집이 없는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내쫓는 사람의 그런 애틋함과 당신이 밖으로 나가도록 쫓는 순결한 옷에서 나오는 은총이 십 만개의 천국과 이 세상과 저 세상보다 훨씬 더 가치 있습니다.
After the Amir left, Rumi said: The fact that the Amir came and I didn’t show my face at once should not worry him. His purpose in coming was either to pay honor to me or to himself. If it was to pay honor to me, then the longer he sat and waited, the greater the honor he gained. If, on the other hand, his object was to honor himself and to seek a reward, then since he waited and endured the pain of waiting his reward will be all the greater. In either case his object in coming was realized many times over, so he should feel thankful and fortunate.
아미르가 떠난 후, 루미가 말하길:
아미르가 왔는데 바로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
그가 온 목적은 나에게나 그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내게 경의를 표하러 왔다면,
그가 앉아서 더 오래 기다릴수록 더 큰 경의를 얻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의 목적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보상받는 것이면,
기다리면서 기다림의 고통을 감내했기에 그의 보상은 한층 더 클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그 가온 목적을 몇 배로 이루었기에,
그는 감사하며 행운이라고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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