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싫어.... 하지마.
안돼....싫다고 얘기했잖아.
싫어........................
제발........하지마.....싫어
싫어..................
싫어..........
거의 매일 밤 고등학교 2학년생 이수인은 똑같은 꿈을 꿨다. 수인이 그 꿈을 꿀때면 언제나 아무것도 보
이지 않고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그 느낌만은 생생했다. 항상 꿈속에서 수인은 두려움과 고통에 비명
지르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공격해 오는 그 어떤 것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쳤다.
꿈의 모든 것은 늘 똑같았다. 그 두려운 심장이 뛰는 느낌, 누르고 속박하는 느낌. 손도, 발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마치 가위에 눌린듯한 괴로움. 그리고 밀려오는 고통과... 더러움. 구토할 것 같은 역겨
움. 모든 것이 순서대로 일어났다. 하지만 매번 꿈을 꿀때마다 수인의 의식은 마치 처음인것처럼 그 지
옥의 체험을 받아들였고, 수인은 이 모든 것이 단지 꿈이란 걸 이해하지 못한 채 수천번씩이나 그 꿈을 꿔야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꿈은 끝났고 눈 뜨고 보면 항상 아침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 쉬는 가쁜 숨, 손과 이마와 등을 축축하게 적신 땀의 찝찝한 느낌도 항상 똑같았다.
오늘도 그랬다.
어느 아침이나 그렇듯이 그날 아침도 수인은 그다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왠일
인지 시끄러운 자명종을 몇 번씩이나 힘껏 누르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던 다른 아침들과는 달리
창 밖으로 쏟아지는 햇살들이 그녀를 깨웠다. 시계를 보니 그녀가 어젯밤에 맞춰 놓은 시간보다 한참 일
렀다. 오늘은...3월 며칠이었나...개학한지 얼마 안 됐는데. 날짜 개념이 없는 수인이었지만, 어느새 봄이
었다는 걸 수인은 느낄 수 있었다. 창문 밖의 나무에 새파란 잎이 가득 돋아난 것이 보였다. 창문 바로 옆
의 침대 덕분에 온몸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귓가에는 새소리까지 들려왔다.
아직 학교에 갈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수인은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방을 나가 욕실로 갔다. 그녀
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을 열었다. 욕실 안은 깜깜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불을 키지 않았다. 수
인은 옷을 하나하나 벗어 거울 옆에 있는 고리에 걸었다. 고리의 위치도, 거울의 위치도, 변기의 위치도,
싱크대의 위치도, 샤워기의 위치도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미끄러질까봐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 샤워기
밑으로 가 물을 틀었다. 어느 쪽으로 돌려야 찬물이 나오고 어느 쪽으로 돌려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지
도 알고 있었다. 샤워기 옆의 작은 찬장에 샴푸가 어디 놓여 있는지, 린스가 어디 놓여 있는지, 비누는 어
디 놓여 있는지, 샤워타월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깜깜한 욕실에서 수인은 그렇게 오랫
동안 샤워를 했다.
어둠 속에서 몸에 부딪혀 오는 따뜻한 물줄기의 느낌도, 샴푸가 눈에 들어갔을때의 따끔한 아픔도 익숙
했다. 수인은 샤워타월에 비누를 묻혀 몸을 닦았다. 깨끗해진다는 느낌으로 계속 닦았다. 아무리 닦아
도, 너무 거칠게 닦아 그녀의 창백한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도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는 또 항상 그러는것처럼 결국 포기하고 물을 끄고 거울 옆의 찬장에 놓여 있는 수건 중
두 개를 집어들었다. 큰 수건들은 오른쪽, 작은 수건들은 왼쪽. 수인이 오른쪽에서 하나, 왼쪽에서 하나,
수건을 집어들었다. 큰 수건은 그녀의 몸에 두르고 작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머리에 둘렀다.
욕실에서 나온 수인은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불을 끄고 샤워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 이후부터였다.
'그 날' 이후부터.
수인은 그 날이 몇월 며칠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애써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결국 날짜개념도 없어져 갔다.
수인은 자신이 매일 밤 꾸는 악몽이 그 날의 잔여물이란걸 알고 있었다. 수인은 자신이 불을 끄고 샤워
를 하는 이유가 자신의 몸을 보기 싫어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거울 보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의 그 날 이후로 그런 이상한 공포증이 생겼다
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그토록 증오스러울 만큼 보기 싫어하는 이유도 수인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강간...
그거였다.
적어도 세상은 그날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그렇게 불렀다.
TV를 볼 때도, 신문을 읽을 때도 그 두 글자가 보이면 얼른 눈을 피해 버리는 그녀였다. 그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그녀 말고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평생 동안 비밀로 간직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은 평생 그 기억을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머리끝부
터 발끝까지 몸 구석구석에서 남김없이 지워낼 수 없을 거란 사실이었다.
첨엔 괴로웠다. 많이. 아니 지금도 괴로웠다. 그 날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두렵고 몸서
리칠정도로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하루도 그 날을 잊은 적 없었다. 수인이 살아가고 숨쉬는 매 순간
마다 그 기억은 그녀 몸 안으로 들어와 수천개의 바늘로 찔러댔고 그녀를 매일 죽이고 다시 살려냈다.
하지만 아물지 못한 상처도 이젠 익숙했기에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수인은 방에 돌아와 시계를 봤다. 아직도 넉넉했다. 수인은 옷장을 열어 깨끗한 속옷 한 벌과 교복을 꺼
냈다. 옷장 옆에도 거울이 있었다. 수인은 거울을 피해 옷장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수건을 벗었다.
옷을 입고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었다. 아직 채 마르지 못한 검은 긴 머리카락에서 물이 몇방울 떨어
져 하얀색 교복 블라우스에 묻었다. 수인은 거울 옆에 꽃혀있는 헤어 드라이기를 들어 거울에서 등을 돌
리고는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다 마른 뒤에야 그녀는 거울을 봤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일
이었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수인은 재빠르게 로션을 바르고 대충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한 다음에 가방에 책을 쑤셔넣고는 스타킹을
신었다. 햇빛은 비쳤지만 그래도 아직은 추울 것 같았다. 손목시계를 차고는 시간을 봤다. 아직 시간은
많았지만, 뭐 일찍 가는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그녀는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다녀오겠습니다아-"
수인은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 집엔 자기 혼자 산다는 걸 알면서. 아빠는 수인이
태어날 즈음 돌아가셔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수인이 지금 사는 집은 엄마와 둘이 살던 집으로 수인 혼
자서 사는 데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좁은 마루와 더 좁은 방 두개. 그것보다 더 좁은 화장실 하나. 베란
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좁은 집을 사 억척스럽게 수인을 키우셨고 얼마 전에 재혼하셨다.
그 재혼한 남자..이름은 윤재환. 엄마보다 두 살이 어렸고, 치과의사였으니 돈도 아주 많았다. 지금은 한
달에 걸친 유럽 신혼여행 중이었다.
엄마는 수인에게 재환과 자신과 함께 큰 집으로 이사올 것을 권유했지만 수인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
다. 어차피 엄마가 있을 땐 엄마가 불 끄고 샤워하는 걸 이상하게 봐서 늘 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없는 낮
에만 샤워를 해야 했고, 무엇이든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엄마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엄마도 내심 신혼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지 수인의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허락해 주
며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큰 아파트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인은 집을 나왔다. 복도형 아파트.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맞았다. 이상한 날씨였다. 아침 햇빛은 따스
했지만, 바람은 찼다. 수인은 이런 날씨가 좋았다. 땀나지도, 벌벌 떨지도 않는 적당한 날씨였다. 그녀는
무엇이든 보통이 좋았다. 자신도 평범했다. 중상위권의 성적에 평범한 외모와 성격...그녀는 평범했고
평생 평범한 삶을 살다 가고 싶었다. 꿈? 글쎄...
수인은 잠시 머뭇거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 하늘은 파랗고 아름다웠다. 잠시동안 그녀는 그 아
름다움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
안녕하세요~다프네에요
제가 무려 1년 넘게 구상해오던 스토리;;;드디어 써봤습니다.
첫편은 좀 지루하죠? 죄송합니다(__)
주인공 수인이의 아픈 과거...
제 스토리의 모토는 수인이를 비롯한 몇명의 등장인물 (모두 수인이처럼 나름대로의 상처가 있는)들이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 '치유'의 이야기입니다
허접하지만 재미있게 봐주셨음 좋겠어요~^^
아, 혹시 msn이나 싸이있으신 분은 저랑 친구해요 ㅋ 일촌신청 환영~
msn:dancing_daphne@hotmail.com
싸이:cyworld.com/free_n_alive에요 (일케 광고해도되냐;;;)
최근에 업뎃했거든요T_T
그럼 안녕히계세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의 끈기에 감사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치유 1
다프네♪
추천 0
조회 36
05.09.11 12: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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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런 분위기 좋네요 T-T MSN있는데 추가해도 될까요 ~? ㅋㅋㅋ 앗 궁금한게 1편보다 2편이 더 앞에 있던데......................OTL 하여튼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