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오로지 니치렌(日蓮)이 존귀(尊貴)함이 아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힘이 수승(殊勝)함에 의(依)하느니라.
몸을 높이면
만(慢)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낮추면
경(經)을 멸시(蔑視)함이라,
소나무가 높으면
등(藤)넝쿨이 길고,
수원(水源)이 깊으면
흐름이 멀도다.
행복(幸福)하도다,
즐겁도다.
예토(穢土)에서
희락(喜樂)을 받음은
오직 니치렌(日蓮)
일인(一人)뿐이로다
성인지삼세사(聖人知三世事)
어서 975쪽
젊은날의 일기
1955년 11월 11일 (금) 쾌청 –27세-
오늘 아침은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쓸쓸했다.
격동을 원하고 격동에 살며 그리고 스스로 격류로 향하여 격랑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내 인생.
신심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국토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경제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평소에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색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미완성의 나를 나답게, 진지하게 반성하고 맹렬히 반성하며 일생을 살아가고 싶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진가, 그 사람의 복운, 그 사람의 본질을 판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 사람이 강하고 늠름하게, 조금이라도 대선(大善)의 방향으로 향할 구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금요 강의. 선생님의 대확신, 교학의 힘에 황송할 따름. ··· 이대로 언제 언제까지나.
「니치렌(日蓮)을 믿는듯하던 자(者)들이 니치렌(日蓮)이 이렇게 되자 의심(疑心)을 일으켜 법화경(法華經)을 버릴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니치렌(日蓮)을 교훈(敎訓)하고 자신(自身)이 현명(賢明)하다고 생각(生覺)하는 벽인(僻人)들이」(어서 960쪽) 운운.
마키구찌 선생님께서 항상 배독하신 어서라고 들었다. 학회의, 대신념의 근거가 되는 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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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1월 11일 (월) 비 –29세-
아침에 미열이 났다. 아내, 매우 걱정하는 눈치.
앞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난이 많다.
1시 ― 본부 앞에서 이토의 이지로로 출발했다. 추계 직원 여행. 모두 즐거운 듯.
나는 고통스럽다. 선생님께서는 총본산에서 아미타로 가셔서 정양. 그래서 버스로 함께 오시지 못하셨다.
이즈 해안의 경관. 귤 밭, 아름다운 광경이다. 대자연의 선명함. 꾸며 놓은 것도 아니고 인공적인 것도 아니다. 무작(無作), 본유(本有).
5시 조금 넘어 ··· 도착. 7시부터 회식. 퀴즈도 풀며 모두 즐거운 듯.
오랜만에 온천에. 숙소 아래로는 노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 다음날.
도쿄에 도착하니 밤 8시가 되었다. 도중에 귤을 따기도 하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잘 나오면 모두에게 나누어 주자.
어젯밤 연회 때 선생님이 춤추시던 모습 ― 오늘 아침 선생님의 모습을 기차 속에서 떠올렸다 ― 기운이 전혀 없으시다.
내년 이맘때는 ···, 걱정스럽고 걱정스럽다.
‘갱사수명(更賜壽命)’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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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1월 11일 (화) 맑음 –30세-
청명한 가을 날씨.
선생님이 감옥에 계실 때를 기록. 장래를 위해서.
선생님의 지도를 기록. 후배를 위해서.
법난으로 감옥에 가셨을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권력이라는 천마(天魔). 암굴왕과 같은 선생님을 ···.
밤늦게까지 본부에.
홀로 선생님의 지도를 정리. 순간, 가슴이 뜨거워진다.
희유의 대지도자 ··· 그 언제인가. 스승을 세계에 선양할 그날은.
제천이여, 불 · 보살이여. 나에게 장수를 달라고 기원했다.
은사가 남긴 광포의 기록을 정확히 써서 영원토록 남길 때 까지 ···.
그러기 위해 건강에 유의하자.
그러기 위해 갱사수명(更賜壽命)하자.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고요한 방에 풍요로움의 향기가 그윽하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