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원주민들의 특별한 동정은 결코 우연일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연관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 통찰해 보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특별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중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그와 같은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에 특별하게 포함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인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특별한 힘과 권능으로 인해 서로 간에 생생히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특별한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러한 원주민들의 특별한 동정뿐만이 아니라 확률적, 통계적으로 보면 바다 한가운데에서의 광풍과 난파와 표류로 인해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이 다 죽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다 살게 된 것, 특히 멜리데섬이 예비된 것 또한 특별한 은혜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이며..
더 나아가 바울이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게 된 것일 뿐 아니라 아주 멀쩡하게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로 인해 그 섬의 추장이라 할 수 있는 보블리오의 집에서 유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아니라 그 아버지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하고 안수하면서 고치게 된 일도, 그와 함께 다른 병자들도 고칠 수 있게 된 일도, 그를 통해 후한 예로 대접 받고 로마까지의 남은 여정을 위해 쓸 것을 공급받게 된 것도, 중간 중간에 동역자들을 만나게 된 것도, 특히 로마에서 대략 2년간 전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하나 모두 다 특별한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모두 다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입니다..
실상 다른 그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약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이 그렇게나 엄청난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말씀으로 뒤바뀌게 된 것도..
게다가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누리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진정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을 누릴 수 있음도, 심지어는 세상 끝 날에 정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어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됨도 하나하나 모두 특별한 역사들인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아무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중요하고 실질적이며 절대적이고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 통로와 방법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인데..
아래 본문의 사도 바울만 하더라도 그때 당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말씀의 신앙이었던 것이고, 심지어는 아무 죄 없이 고초를 당했고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으며 온갖 모양의 공격과 위협과 시련들이 넘쳤고 죽음의 위기들까지 한 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말씀대로의 하나님을 더욱 더 붙잡았고 말씀 그대로 의지하면서 끝까지 치열하게 복음을 전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말씀의 열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느냐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에 있어서의 전적인 전제이자 기준인 것이고, 모든 최우선과 주제, 목적, 갈망, 소원, 기도 제목, 생명 등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부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사도행전28: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8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