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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새벽 사이
출처 : 왙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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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하기 싫다.
억지로 강요하는 공부는 더욱. 성적도 오르지 않는 과외를 해서 뭐해?
아니 물론 뭐, 내가 공부를 굉장히 안한 탓 도 있긴한데, 그래도 어쨌든 과외는 나랑 안맞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TV를 켜고 시시콜콜 따분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 뭐야? 장보고 온다며!"
"기집애야, 공부한다더니 허구한 날 TV나 보고 앉아있냐! 이 망할것아!"
씩씩거리다 문득 옆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누구냐고 고개짓을 했는데, 글쎄 맙소사.
과외선생님이란다. 그것도 맛보기 과외란다.
1. 지창욱
"아,안녕 밤새야..!"
"아.. 네에.."
한눈에 봐도 찌질해 보인다. 단정한 옷차림에 어눌한 말투.
손을 살짝 들어보이더니 안절부절 못한 얼굴로 주변을 살핀다.
저래뵈도 명문대 다니는 선생님이라는데, 글쎄. 난 못믿겠다.
"이, 이걸 진짜 고등학생이 푸,풀어..?"
내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명문대 나온게 심히 의심스럽다. 한참 책장을 넘겨보다가 날 애잔한 눈으로 쳐다본다.
"밤새는 힘들겠다.. 이런 것 도 풀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왜 저러나 싶어 멋쩍게 웃어 보였더니 그게 또 쓴 웃음으로 보였나보다.
갑자기 눈이 그렁그렁 하더니 자신이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거라며, 그동안 부모님께 상처를 준 것 같다며 울려고 한다.
이 선생 혹시 사회부적응자인가...?
*
과외선생님과 다시는 안 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둥순둥하니 나름 잘 맞는 것 도 같았다.
여태 수업하면서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고, 툭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잘 지냈다.
뭐 솔직히, 명문대 타이틀이니만큼 잘 가르친 것 도 있다.
"쌤, 내가 대박인거 알려줄까요?"
"뭐,뭔데..?"
"저 등수 올랐어요!
세상에, 이건 진짜 말도 안돼는 일이야. 내가 우리반에서 첫자리 수가 1인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진짜.
내가 선생님 처음 봤을땐 못미더워서 확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안 끊길 잘했다!
무려 12등이다. 30등 대에서 놀던 나를, 이 어리버리한 선생이 12등 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기적이지. 암,
"저, 저기, 밤새, 밤새야아.. 그.."
"뭐야, 쌤은 안 기뻐요? 내가 12등을 했다니까? 34등이었던 내가! 12등!"
"기뻐, 기쁜데, 근데 이거 좀-...'
뭔 소린가 싶어서 얼굴을 떼고 선생님을 봤는데, 얼굴이 시뻘게져서 눈을 가만히 못 두고 있었다.
왜요? 하니까 슬며시 팔을 떼어다 놓고선 멀찌감치 떨어졌다. 뭐야, 학생과 제자간에 가벼운 포옹도 못하나.
얼굴을 매만지더니 애꿎은 책장만 이리저리 넘기기만 바쁘다. 이 선생님, 좀 이상하다.
2. 이종석
"김밤새! 인사해, 과외선생님이셔."
"아- 엄마 진짜!"
"허허, 아이가 조금 까칠하네! 그죠?
반갑다! 밤새야!"
복학생맞네. 멘트들이 어째 다 능글맞다. 불쌍한 신입생언니들. 분명히 학교에서 이 선생님이
이여자 저여자 추근덕거리며 되도 않는 멘트 날릴거다. 이건 여자의 촉이다. 100% 분명하다.
"인사 안받아 줄거야?"
"아.네?"
"내가 여기 처음왔을 때부터 계속 인사했는데, 넌 어째 말을 안한다?"
선생님 첫 인상은 솔직히 좀, 능글맞았다.
과외선생님 같지도 않을 뿐더러, 가끔 연애에 서툰 복학생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계속 질척이며 인사를 안 받아준다고 수업 중간중간마다 찡찡 거리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너무.
하지만 수업은 뭐, 그럭저럭 할만 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잘 알려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엄마가 너무 좋아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랑 똑 닮았대나, 뭐라나.
"이게 x지. 그럼 이걸 아까 풀어놨던 항에 대입해.
그거 식 나열해서 정리하면 끝이야."
"..... ... ....."
새삼스레 잘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반반하고, 여자는 잘 꼬실 것 같고.
술도 잘한다고 했고. 돈이 없나? 아니다, 아마 아닐거다. 엄마가 그러는데, 이 선생님 부모님이 좀 잘 산다고 들었단다.
내가 저 나이에 저 얼굴이였으면 맨날 클럽가서 여자 꼬시고 다닐텐데.
수학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대체 왜 여기서 애들 과외나 해주고 있는거지?
"김밤새. 너 집중안하지?"
"쌤은 대체 왜 과외하는거에요?"
"그게 무슨 x가 y로 변하는 소리래. 딴소리 하지말고 쫌!"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우리 엄마 말로는 쌤네 집 잘산다던데,
뭐, 쌤 얼굴도 나쁘진 않고. 근데 왜 해요?"
"왜 하냐고?"
"그야 우리 밤새보려고!"
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물어봤을까.
3.임시완
"인사해라, 과외선생님이야."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니가 밤새구나,"
스펙도 좋고, 얼굴도 반반하니 잘 생겼고, 성격도 좋고, 술도 안한다. 이 시대의 바른 청년이다.
여태 만난 과외 선생님 중에 가장 바른 선생님같다. 선생님 타이틀을 걸어도 손색이 없다.
조곤조곤 다 알려주고,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알려준다. 재미있지는 않아도 다정다감하다.
다 좋다. 다 좋아, 그런데,
"밤새야."
'네?"
"송해 선생님이 샤워하고 난 뒤에 하시는 말씀이 뭔줄알아?"
"아니요, 뭔데요?"
"뽀송뽀송해"
개그. 다 좋은데 이 시덥잖은 드립 때문에 짜증이난다.
평소에 개그를 책으로 배우나보다. 자꾸 어디서 이상한 개그를 들고와서 아무때나 드립을 시전하시는데,
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왜 하는지도 의문이다.
드립 칠때마다 내가 반응을 안하는데, 오뚜기에 빙의해서 내가 웃을 때 까지 드립을 날린다.
"이번에도 나만 웃긴가보다.. 헤헤"
"...... ... ....."
"미안, 문제 보자."
늘 이런식이다. 대체 지치질 않는다. 도데체 이딴 개그는 어디가서 배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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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미는 과외선생님!
너 밤새는 과연 누굴 고를까?
1.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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