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1951.3.19. 서울.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1950년 12월 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주민 가족을 미군 헌병이 검문하고 있다.
1951년 1월 31일 미 보병 25사단 소속의 한 장교가 이동수라는 이름의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국군 신병들이 열차편으로 전선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비장하면서도 애띤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50. 12.18. 대구역앞.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다. 1951.2.23. 경북 왜관.
1951년 1월 14일. 늙은 아버지를 엎고 서울 한강을 건너 피난가는 주민의 모습
1951년 3월 22일. 3∼6세된 전쟁고아들이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잠자리에 든 모습이다.
1950년11월 2일. 전쟁고아들이 트럭으로 실려와 서울의 한 고아원에 내리기 직전의 모습.
1951년 6월 9일 한 소녀가 동생을 업고 M-26 탱크 옆을 걷고 있는 모습.
한미 해병대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다음날인 1950년 9월 16일 인천 시내 길거리에 혼자 앉아 울고 있는 어린 소녀 모습.
1950년 10월 장승포에 있는 한 난민캠프의 일가족 모습.
1950년 11월 8일 유명 여류시인 모윤숙씨가 공산치하의 서울에서 un군의 도시 탈환 이전까지 산에서 숨어 지냈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
1954년 2월 17일 마릴린 먼로가 제3보병대대 위문공연후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1951년 8월 28일 케니 린치 목사가 31연대 신자들을 위해 화천에서 집전하고 있는 모습.
1950년 8월 28일 학동리에서 한 위생병이 사망자의 인식표를 정리하는 가운데 작전 중에 사망한 친구로 슬픔에 잠긴 한 미군 보병이 다른 병사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 .
1951년 7월 17일 한국 문산리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한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한국군 병사의 모습. 앞에 보이는 것은 한국군을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야전 전투식량.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때 네대의 상륙정이 인원과 장비를 내리고 있는 모습.
1950년 11월 1일 한 노인이 폐허 잔해 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 .
1950년 수원공항에서 37미리 대전차포가 수리를 위해 견인되고 있다.
1950년 12월 26일 미주리함이 흥남지역에 함포를 발사하는 모습이다.
1951년 2월 21일 맥아더 장군이 최전방 시찰 중 김포공항에 도착해 24대대 장병들을 사열하는 모습.
1951년 B-26기가 북한 원산지역 시설물을 폭격하는 모습.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음.
1950년 9월 2일 사망한 한 한국군 병사와 구멍난 철모.
1951년 4월 부산의 유엔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들.
1950년 9월18일 제389 보병연대 관할지역인 서울 신당동에서 한 미군이 북한군에 복무했던 두 소년을 심문하고 있는 모습.
1951년 6월 6일 인천에 있는 미 수송대대에서 몸을 회복한 한 어린 고아의 모습. 이 소년은 수송대대내 다른 소년들 사이에서 '넘버 원'으로 통했다.
1950년 미 해병대가 전투 끝에 붙잡은 북한군 포로들을 논길을 따라 이동시키는 모습.
1950년 11월 17일 서울의 한 철길 변에서 전쟁통에 집을 잃은 어린 남매가 조그만 화톳불 옆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이 어린 남매는 먹을 것을 찾아 빈 깡통들을 뒤지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 당시 평양에서 철수, 38선을 넘어 후퇴하고 있는 UN 부대.
1950년 9월 18일 인천항에 상륙하고 있는 31연대 장병들.
1951년 3월 2일 강원도 횡성에서 미 해병 1사단이 중국군 포로를 붙잡은 모습.
1950년 9월 27일 전주에서 한국인 가족들이 북한 인민군에 대량학살 당한 부친의 시신 곁에서 통곡하고 있다.
1951년 한국전 당시 UN 공수부대원들의 낙하 모습.
1951년 12월 14일 미 19보병연대 소속 장병들이 고향에 신년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유엔군 대표단과 북한 인민군 대표단간 휴전협상이 열린 1951년 11월 1일의 판문점 전경.
투항하고 있는 인민군 병사들.
임진강 부교를 정비하고 있는 국군병사.
북한에 억류된 유엔군 포로들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중인 유엔군 병사들이 강추위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움막에 살고있는 다섯 어린이.
김포비행장을 시찰중인 맥아더 장군.
첫댓글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비극! ^^
잘보고 같니다^^*
보지은못했지만사진으로 6.25의비극을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