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602〉
■ 장롱 이야기 (박형준, 1966~)
나는 장롱 속에서 깜박 잠이 들곤 했다
장에서는 항상 학이 날아갔다
가마를 타고 죽은 할머니가 죽산에서 시집오고 있었다
물위의 집을 스치듯―
뻗는 학의 다리가 밤새워 데려다주곤 했다
신방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오동나무 장롱처럼, 할머니는
― 잎들이 자개붙이에 비로소 처음의 물소리로 빛을 흔들었고,
차곡차곡 할아버지의 손길을 개어 넣고 있었다
나는 바닥없는 잠 속을 날아다녔다
그리운 죽은 할머니의 검은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고추가 간지러워 천천히 깨어날 때,
마지막으로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장롱에서―
학의 길고 긴 다리가 물 위의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곤 했다.
- 1994년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학과지성사)
*봄이 와 있는 요즘, 우리집 정원에서는 맨 처음 꽃을 피우는 산수유가 노랗게 만발했고 미선나무도 하얀 꽃들을 가득 피웠습니다. 마을에는 매화가 활짝 꽃잎을 연 가운데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고 있더군요.
그런데 봄비가 자주 들락거려선지 아직은 쌀쌀한 날씨라, 집 밖보다는 실내가 더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유년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던 이때쯤 형제들과 집안에서 숨바꼭질 같은 장난을 치며 노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장롱 같은 안락하고 포근한 곳에 숨어서 깜박 잠이 들었던, 그래서 부모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 새로울 것입니다. 이 詩는 우리의 그런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겠습니다.
이 詩는 오동나무 장롱에 담긴 시인의 유년 시절 추억과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詩에서는 어린 시절 장롱 속에서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장롱에 그려진 학을 타고 자신을 예뻐한 할머니의 아름답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 행복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마 장롱은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이었고, 할머니의 손때가 듬뿍 묻은 가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할머니의 체취가 흠뻑 느껴지는 장롱 안에서 잠들고, 자연스럽게 할머니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시인은 그 장롱을 우연히 보고 그 시절의 그리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담담하게 표현하며, 우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