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고달프다 / 마광수
요즘 일본에서는 ‘어른을 위한 탁아소’라는 것이 생겨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 탁아소는 아파트 같은 곳에 설치돼 있는데, 여자 종업원들이 성인 남성들을 손님으로 받아 젖을 먹여주기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며 기저귀까지 채워준다는 것이다. 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대부분의 회원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회사의 중견 간부나 의사, 변호사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물론 다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남자는 평생 어린애’라는 말이 있어 왔다. 하지만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역시 ‘자궁회귀본능’ 또는 ‘유아기(幼兒期)로의 퇴행 욕구’가 평생 동안 지속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할 수 있었던 유아기에 비해 성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고달픈 역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여성 비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남성은 그러한 욕구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감에 시달리게 되는 중년 나이의 남성들은 그러한 부담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기 위해 ‘엄마 같은 여자’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 윤리가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덜 경직돼 있는 일본 나라에서 그러한 남성들을 위한 탁아소가 고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요즘 ‘에스 엠 클럽’(S. M Club)이란 곳도 생겨 꽤 번창하고 있다고 들린다. ‘S. M.’이란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줄인 말인데,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남자는 사디스트적 속성이 강하고 여자는 마조히스트적 속성이 강한 것이 보통인데, 일본의 ‘에스 엠 클럽’에서는 그와 반대로 남자 손님들이 마조히스트가 되고 여자 종업원이 사디스트 역할을 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거기에는 ‘여왕님’이라고 불리는 여자 사디스트들이 있어 남자 손님들을 노예처럼 학대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한다. 여왕님이 욕을 하거나 채찍질을 할 때마다 남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오르가즘을 느끼고, 여왕의 학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 큰 쾌감을 느끼며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른을 위한 탁아소’나 ‘에스 엠 클럽’이나 거기에 찾아가는 남자 손님들의 심리는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어른을 위한 탁아소가 자궁 희귀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면 에스 엠 클럽은 마조히즘의 충족을 위한 것인데, 자궁희귀본능이든 마조히즘이든 인생의 고달픈 의무감과 부담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도피해 보려는 안쓰러운 욕구가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내가 어머니 역할도 해주고 ‘여왕님’ 역할도 해주어 성인 남성들이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럭저럭 풀어주었지만, 요즘 같은 남녀평등시대, 아니 여성상위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여자들은 어머니로서든 사디스트로서든, 남편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봉사’조차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은 요즘의 일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일본 여성상, 즉 남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여성들이 차츰 자취를 감춰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일본 남성들에게 마조히스트적 속성이 특별히 강하다는 것도 어른을 위한 탁아소나 에스 엠 클럽을 번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천황 제도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것이나, ‘사무라이 정신’을 전통적 덕목으로 숭상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 남성들은 절대적 ‘복종’을 통해서 포근한 안식감과 쾌감을 얻고자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일본 근로자들의 애사심(愛社心)이 특별히 강한 것이고, 일본인들의 국민적 단결력 또한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나라에도 ‘어른을 위한 탁아소’ 같은 게 생겨난다면 인기를 끌 것이다.그러나‘에스 엠 클럽’ 같은 것은 별로 인기를 못 끌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마조히즘은 우리나라에서 지극히 변태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여성 독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 하소연을 했다. 남편이 너무 어린애처럼 굴어 보기 싫어 죽겠다는 것이었다. 퇴근한 후 집에 돌아오면 한시도 자기 곁에서 떨어지질 않으려고 하며, 무릎을 베고 눕는 등 잔망스럽게 군다는 것이다. 자기는 남편이 좀더 늠름 당당해 줬으면 좋겠는데, 점점 더 얘기처럼 굴기만 하여 이제는 이혼까지 고려해 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남자는 평생 어린애이게 마련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여성 독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대답하며 계속 남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그 여자가 꽤나 밉게 생각 되었다.
남자는 평생 어린애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늠름 당당한 남편의 모습을 위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남자는 결국 울화가 뭉쳐 일찍 죽는다. 이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여, 과부가 되기 싫거든 어서 빨리 남편을 어린아이로 받아들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