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숙 전도사는 1900년 화양면 창무에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돈독한 신앙으로 가난을 이기며, 매산학교 전신인 은성학교에 입학했으나 1916년 일제탄압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19년 3월 10일 윤 전도사는 광주 수피아여고 교정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선봉에 서게된다. 그때 일본 경찰의 칼에 왼팔을 잃고 혹독한 고문으로 오른쪽 눈까지 설명한다.
이후 윤 전도사가 여수제일교회와 봉산교회에서 활동할 때 14연대 반란 및 한국전쟁 발발했고 인민군들은 제2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윤형숙 전도사는 기독교인이자 반공인사로 인식해 1950년 9월 28일 '민드래미'라 불리던 둔덕동 야산으로 끌려가던 중에 총구에 의해 순교를 했다.
독립유공자로서 2004년에는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순교 유적지로서 윤형숙 전도사는 살아있는 순교자로서 이 시대를 짊어지자는 다짐을 나눌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여수은천수양관에 수련회를 오는 교회들은 창무리에 잠들어 있는 윤형숙 전도사 묘소를 찾아 순례를 한다면 생애 잊을 수 없는 산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사진은 창무리 윤형숙 전도사 묘역 모습과 여수시 11월 인물로 윤형숙 전도사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1981년부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한창일 때 영암 삼호 용당중앙교회 청빙을 받아 갈 때까지 화양먼 백초교회 사역을 할 때 윤형숙 전도사가 출생한 창무리를 경유해야 시내를 오고가는 관계로 창무와 관련한 일이라 애정이 더 간다는 것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25데스크】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 yjjw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