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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釋대원성
부산연합회 임제록 제1강-2 (2012.06.28)
1-1 曲順人情 方登此座(곡순인정방등차좌)
1-2 佛法의 大意(불법의 대의)
1-3 三度發問 三度被打(삼도발문삼도피타)
40-1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40-2 黄蘗의 佛法은 簡單(황벽불법간단)하다
조사스님들께서 법문을 하시는데 여러 가지 격이 있습니다.
上堂 법어는 결제나ㆍ해제나 정말 법상에 제대로 올라가서 법을, 살아있는 법을 擧揚(거량)하는 것. 법을 드러내는 것을 上堂법문이라고 그럽니다.
그 외에는 示衆이라고 하는 법문이 상당한 량이 있는데, 그 示衆이라고 하는 량은, 법문 형식은 요즘말로 하면 소참법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소참법문입니다. 성철스님이 제일 옛날 격식에 따라서 제대로 법문을 하셨는데 그 스님께서도 법상에 올라가서 上堂법문을 할 때는요? 다른 이야기, 자질구레한 소리 절대 안 합니다.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법만 擧揚합니다. 진짜 법만 거량했습니다.
그 다음에 100일 법문이라든지ㆍ육조단경이라든지ㆍ임제록이라든지ㆍ신심명ㆍ증도가, 이런 것을 많이 강설하셨는데 그것은 전부 소참법문입니다. 이렇게 앉아서 우리가 강설을 하듯이 이렇게 했어요. 법상에 안 올라갔습니다.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한다면 이것은 무슨 인과 이야기나 하고ㆍ옛날이야기나 하고ㆍ자질구레한 그런 이야기하면 사실은 법상에 올라가서 하는 법문이 아닙니다.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분별이 없어졌습니다만, 상당법문은 그래서 격이 상당히 높은 그런 내용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이 시간을 위해서 책을 다시 편집을 했습니다. 책도 일부러 출판을 했는데요. 이해하기 쉽도록 짤막짤막하게 내용별로 잘라서 과목을 붙였습니다. 1-1인데요.
1-1 曲順人情 方登此座
府主王常侍가 與諸官으로 請師陞座하니 師上堂云
山僧今日에 事不獲已하야 曲順人情하야 方登此座하나
若約祖宗門下하야 稱揚大事인댄 直是開口不得이라
無儞措足處니라 山僧此日에 以常侍堅請이니 那隱綱宗이리오.
還有作家戰將하야 直下展陣開旗麽아 對衆證據看하라
曲順人情(곡순인정) 方登此座(방등차좌). 그랬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임제스님께서 청을 받고 법상에 올랐어요.
법상에 올랐는데 인정 때문에, “사실은 내가 법상에 오를 일이 아닌데 인정에 이끌려가지고, 할 수 없이 법상에 올랐다.” 이 뜻입니다. 무슨 내용이가 한번 봅시다.
府主王常侍(부주왕상시)가, 王常侍 = 하북부에 지방장관입니다.
府主王常侍라는 관원 사람이
與諸官(여제관)으로, 여러 관료들, 지방장관이니까 도지사쯤 됩니다.
그러면 그 도처에 있는 모든 직원들, 그날 국장ㆍ부장할 것 없이 모든 직원들 다 동원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사람들 많이 모으고 해가지고서 임제스님에게 “스님 우리를 위해서 법문 좀 해주십시오.” 그래서
請師陞座(청사승좌)라.
스님을 청해가지고서 법좌에 오르게 했다ㆍ법좌에 오르게 했다. 그래서
師上堂云(사상당운), 임제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갔어요.
上堂 =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첫 마디가 그렇습니다.
山僧今日(산승금일)에 事不獲已(사불획이)하야,
曲順人情하야 方登此座라. 산승이 오늘 일이 부득이해서ㆍ일이 부득이해서 인정에 이끌려가지고, 그 놈의 인정이 무언지 인정에 끌려가지고서 비로소 이 자리에 올랐다.
若約祖宗門下(약약조종문하)하야, 그런데 만약에 祖宗門下의 일이라면,
정말 부처님법이 살아있는, 특히 선불교에 있어서, 말하자면 그 宗旨를 드날리는 그런 입장이라면, 그런 말입니다.
祖宗門下하야 大事稱揚(칭양대사)인댄, 큰 일. 大事를 稱揚한다.
큰일.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한번 들먹여 보자 말입니다. 큰일이 뭡니까?
인생사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사입니다. 生死大事입니다. 깨닫는 일입니다. 도를 이루고 견성성불 하는 일을 大事라고합니다. 만약에 그 문제라면, 불교를 정말 제대로 아는 일이지요. 만약에 그 문제라면
直是開口不得(직시개구부득)이라. 입을 열 수가 없다.
그것 입 열어서 될 일 아니다 말입니다. 정말 진짜 불교를ㆍ진짜 불교를 우리가 이해하려면 입을 열어서 설명하고 귀로 듣고 하는 그것가지고 안 된다. 그리고
無儞措足處(무이조족처)니라. 그대들도 발을 붙일 곳이 없다.
어디 발붙일 곳ㆍ손 붙일 곳ㆍ입댈 곳이 없다 말입니다.
山僧此日(산승차일)에, 그런데 산승이 오늘
以常侍堅請(이상시견청)하니, 왕상시, 지방장관, 도지사쯤 되는 사람이 굳이 청해, 할 수 없이ㆍ굳이 청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가 이제 宗旨를
那隱綱宗(나은강종)이리오? 어찌 근본 宗旨를 내가 숨길 수 있겠나?
還有作家戰將(환유작가전장)하야,
이 자리에, 作家戰將. 말하자면 뛰어난 장군ㆍ눈 밝은 선사ㆍ한 소식한 사람이 있다면
直下에 展陣開旗麽(직하전진개기마)아?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에 진을 펼치고 깃발을 열어서 싸움 한번 붙을 수 있겠는가? 이 말입니다. 이 표현이요? 임제스님 당시에, -중국은 넓은 땅이 돼놔서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계속 전쟁이 끊이지 않던 그런 나라기 때문에, 특히 임제스님 무렵에 그런 분위기가 아주 컸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부 그 당시의 전쟁 술어입니다. 우리가 법문을 하는 것도요? 스님들이 강의를 하든지 법문을 하는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전쟁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 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보는 겁니다.
누가 한번 여기서 뛰어난 장군이 있으면, 훌륭한 눈 밝은 선지식이 있으면 나와서 나하고 한 번 붙자. 이런 뜻입니다. 그래 이야기가 경전이야기하고 전혀 다르지요.
對衆證據看(대중증거간)하라. 대중들은 한 번 보아라.
대중들이 딱~ 지켜보는 가운데서 “누가 눈 밝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나하고 한번 법 거량하자.” 이런 말입니다. 나하고 한번 법 거량하자.
1-2 佛法의 大意
僧問 如何是佛法大意오 師便 喝한대 僧 禮拜어늘
師云 這箇師僧이 却堪持論이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佛法大意(불법대의).
“누구 나하고 한번 법 거량하자.” 하니까 어떤 용감한 승려가 딱 나왔어요.
僧問(승문), 如何是佛法大意(여하시불법대의)오?
떡~ 나와서 묻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이것이 우리승려나ㆍ속인이나ㆍ염불하는 사람이나ㆍ참선하는 사람이나ㆍ기도하는 사람이나, 궁극적 문제는ㆍ궁극적 문제는 전부 佛法大意에 귀결되어 있습니다.
진짜 부처님 뜻이 무엇인가? 뭐가 부처님의 大意인가? 불교의 大意가 도대체 뭐냐? 이것이 우리의 최종 숙제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용감한 승려가 떡 나와 가지고 如何是佛法大意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이것이 영원한 숙제니까 그것을 물을 수밖에 없지요. 그것을 떡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師便 喝(사변 할)한대, “할~” 하고 소리를 한번 지른 겁니다. 그러니까
僧 禮拜(승예배)어늘. 승려가 예배를 했습니다.
“할~” 소리에, 고함 소리 한 마디에 예배를 턱~ 했습니다.
師云(사운) 這箇師僧(자개사승)이 却堪持論(각감지론)이로다.
“야~ 이 중이 뭣 좀 아는구나. 나하고 한번 이야기 할 만 한 상대가 되겠군.”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如何是佛法大意오? 라고 하니까 임제스님은 고함을 쳤어요, 할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 스님은 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거기까지는 대화가 그런 대로 오고갔습니다. 거기까지는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있다가
‘야~ 이 사람 나하고 한번 붙어 볼 만하구나ㆍ불법가지고 한번 붙어 볼 만하구나.’ 이런 이야기입니다.
1-3 三度發問 三度被打
問 師唱誰家曲이며 宗風嗣阿誰오
師云 我在黃檗處하야 三度發問하야 三度被打니라
僧擬議한대 師便 喝하고 隨後打云
不可向虛空裏하야 釘橛去也니라
三度發問(삼도발문) 三度被打(삼도피타).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다ㆍ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다. 이 뜻입니다.
이 三度發問 三度被打라는 것이 임제록의 大旨입니다. 모든 경전과 어록은 여섯 자, 또는 여덟 자로 大旨를 요약합니다. 중요한 宗旨를 요약을 하는데, 임제록의 大旨는 三度發問 三度被打.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다. 이 뜻인데,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서장의 大旨는 삿된 견해를 물리치고 바른 소견을 드러낸다.
법화경 같은 경우는 會三歸一(회삼귀일)이라. 삼승을 모아가지고 일승으로 귀일 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뭔가 근사해요.
그런데 여기는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다. 이것이 임제록의 근본취지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임제록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다. 또 승려가 묻습니다.
問(문), 師唱誰家曲(사창수가곡)이며 宗風嗣阿誰(종풍사옥수)오?
스님께서는 누구집안의 어느 전통의 노래를 부릅니까?
그리고 종풍은 누구에게 이었습니까? 법은 누구에게 이었습니까?
누구 제자입니까? 이 말입니다. 말하자면 도지사쯤 된 지방장관의 초청을 받아가지고, 온 사부대중이 다 모이고, 심지어 그 도청의 모든 직원들 까지 다 동원해가지고 이렇게 큰 법석을 마련했는데 도대체 당신 근본이 어디냐? 어떤 스승 밑에서 공부했고ㆍ어디서 온 사람이냐? 이것을 물은 겁니다.
師云, 我在黃檗處(사운, 아재황벽처)하야
三度發問 三度被打니라. 나는 황벽스님 계신 곳에서 세 번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았느니라. 이겁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았다. 뜬금없이 이렇게 이야길 하니까 僧擬議(승의의)한대, 스님이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니까
師가 便喝(사변 할)하고, 또 할을 했습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스님이 머뭇거리니까요. 그러면서, 할을 하면서 그대로, 할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隨後打云(수후타운). 바로 주장자를 가지고 후려쳤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不可向虛空裏(불가향허공이)하야 釘橛去也(정궐거야)니라.
내가 허공에다가 괜히 말뚝 박고 있는 사람을 가지고, 저 되도 않는 짓을 하는 사람을 가지고 내가 상대를 했구나. 허공에다 왜 말뚝 박는 짓을 하느냐? 허공에다 말뚝 못 박지요. 땅에다 박아야 안 되겠습니까?
아무 근본도 없고ㆍ실력도 없고ㆍ안목도 없는 저 사람이 나한테 와서 저런 소리를 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거기서 말하자면 K O패를 하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살펴봐야할 대목이 있습니다. 88쪽 넘겨주십시오.
行錄(행록). 이것이 말하자면 임제스님이 걸어온 길입니다. 行 錄.
행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하는 그 행장에 대한 기록인데요. 이것을 조금 살펴보면 ‘아, 임제스님은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임제록강의를 여러 번 했지만, 늘 이런 식으로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이야기할 겨를이 없으니까요. 시간이 없으니까요. ‘임제스님의 정신을ㆍ임제스님의 불교를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우리가 머릿속에 좀 새겨둘 수 있겠나?’ 이것이 제일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0-1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師初在黄蘗會下하야 行業純一이어늘 首座乃歎曰 雖是後生이나
與衆有異로다
遂問 上座在此多少時오 師云 三年이니다
首座云 曾參問也無아 師云 不曾參問이니 不知問箇什麼오
首座云 汝何不去問堂頭和尚호되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師便去問한대 聲未絶에 黄蘗便打하다
師下來에 首座云 問話作麼生고 師云某甲問聲未絶에
和尚便打하니 某甲不會니다
首座云 但更去問하라하니 師又去問이라 黄蘗又打하야
如是三度發問하고 三度被打하니라
師來白首座云 幸蒙慈悲하야 令某甲問訊和尚하야
三度發問에 三度被打니다 自恨障縁으로 不領深旨하니
今且辭去하노이다
首座云 汝若去時에는 須辭和尚去하라 師禮拜退하니라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이것이 三度發問 三度被打.
여기는 해석을 해놨네요.
師初在黄蘗會下(사초재황벽회하)하야, 임제스님이 그 동안 律寺(율사).
律을 공부하는 사찰에서 한 8년간 공부하고, 그 외에 화엄경 내지 온갖 경전 공부를 여러 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황벽스님의 회상에 왔어요. 그런데 行業純一(행업순일)했다. 꼭 기억해 두십시오.
行業純一. 수행하는 업이ㆍ수행하는 업이 아주 순수하다. 한결같다.
行業이 純一하다. 임제록에서 아주 빛나는 말씀입니다. 아주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行業이 純一해야 됩니다. 경을 공부하든지ㆍ기도를 하든지ㆍ참선을 하든지ㆍ청소를 하든지 뭘 하든지 간에 純一해야 됩니다.
순일하지 못한 것은 온갖 잡념이 뒤범벅이 돼가지고 이것 했다ㆍ저것 했다. 이것하면서 저것생각하고ㆍ저것하면서 이것생각하고, 그래가지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行業이 純一이라. 그 스님의 일상생활 공부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을 딱 글자 넉 자로 표현했습니다.
“아~ 그 사람은 수행하는 업이 純一한 분이다.”
首座乃歎曰(수좌내탄왈), 수좌는 공부하는 스님들을 지도하는 맡은 소임 자가 首座입니다. 찬탄해 말하기를,
雖是後生(수시후생)이나, 비록 후배이지만,
與衆有異(여중유이)로다. 다른 대중들하고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遂問(수문), 드디어 묻기를
上座在此多少時(상좌재차다소시)오? 상좌는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때 대중들이 한 1000여명 되거든요. 한 1000여명 되는 대중에서 관리하는 사람이지만 잘 몰라요.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느냐?”
師云(사운) 三年(삼년)이니다. 3년이 됐습니다.
首座云(수좌운), 수좌가 말하기를 曾參問也無(증참문야무)아?
일찍이 가서 조실스님에게 한 번 參問했느냐? 공부에 대해서 한 번 질문한 적이 있느냐? 그랬습니다.
師云(사운) 不曾參問(부증참문)이니, 일찍이 가서 질문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不知問箇什麼(부지문개십마)오?
뭘 물어야 할지도 몰라서 나는 3년이나 와서 공부했지만, 저 혼자 그냥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하~~ 나 혼자 그냥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간화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때는 화두를 들고 공부하지 않았는가? 전혀 아닙니다. 五家七宗(오가칠종)이라고 해서, 흔히 선종을 5종을 이야길 하는데 저는 6종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혜종 이라고 해서 대혜스님 시대에 와서 참선을 하는데 참선 중에서도 간화선을 주장을 했습니다. 간화선 하는 것은 이것은 대혜종 입니다. 사실은 임제종 아닙니다.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임제종ㆍ위앙종ㆍ법안종. 이런 종하고 차이보다도 임제종하고 대혜종, 간화선하는 대혜종 하고 차이가 훨씬 더 큽니다.
이 간화선은요? 후대에 생긴 겁니다. 대혜스님 시대에 와서 생긴 겁니다. 지금부터 한 8ㆍ900년 전에 대혜스님 당시 때 와서 생긴 참선이 간화선인데요. 그것을 저는 대혜종, 또는 경산종, 경산 대혜니까요. 경산종, 또는 대혜종. 이런 표현을 하는데요. 그 간화선만의 독특한 참선입니다. 임제스님 때는 그런 것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佛法大意만 생각했습니다. 佛法大意.
불법의 큰 뜻이 무엇인가만 생각 했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무어라고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首座云(수좌운), 수좌가 말하기를
汝何不去問堂頭和尚(여하불거문당두화상)호되, 조실스님에게 가서
如何是佛法的的大意(여하시불법적적대의)오?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라고 왜 묻지 않느냐?
그것이 우리 숙제 아니냐? 우리공부 해야 할 과제가 결국 佛法大意가 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그것 물으면 될 것 아니냐? 이겁니다.
佛法的的大意.
的的이라고 하는 말은 명백한ㆍ분명한.
불교학개론에서 불교는 어떤 것이다. 라고 설명한 것 말고, 다른 경전에서 잡다하게 불법이 어떤 것이다. 라고 설명한 것. 그것도 아니고, 진짜ㆍ핵심ㆍ살아있는 불교ㆍ피가 튀는 불교, 이런 불법 좀 알고 싶다 이겁니다.
경전이나 불교학개론이나 불교대학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그런 불교, 나도 이미 다 졸업했어. 그렇지만 그것은 말이야. 하나도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아. 정말 내 가슴을 울리는 그런 불법이 아니다 말이야, 그런 불법, 진짜 그런 불법을 알고 싶다. 이 뜻입니다.
아마 여기 오신 분들도 거기에 관심이 있어서 모였다. 라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합시다. 그 동안 이론적인 불교 다 알았지요. 다 알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아나마나 입니다. 이 임제록에 오면 그런 불교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입니다. 그것은 별 가치 없습니다. 여기 와서 진짜 제대로 된 불교. 그것이 佛法的的大意입니다. 확실한 大意. 불법이 정말 살아서 피가 튀고ㆍ막 그냥 살아서 막 움직이는ㆍ꿈틀대는 그런 불교ㆍ그런 불교를 물으면 될 것 아니냐? 가서 그렇게 물어라. 그 말입니다.
師便去問(사변거문)한대, 師가 가서 물었어요.
황벽스님한테 올라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물었느냐?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무엇이 불법의 분명한 대의입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聲未絶(성미절)에,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黄蘗便打(황벽변타)하다. 황벽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있다가 사정없이 후려쳤어요ㆍ사정없이 후려쳤어요. 왜 때렸겠습니까? 이 사람이 얼마나 착했는데, 얼마나 공부를 잘하기에 “순일 무잡” 이라고 표현했겠습니까?
3년간 하~~ 옆도 돌아보지 않고 佛法大意ㆍ佛法大意. 그것만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굳이 화두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화두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인데 왜 때렸겠습니까? 佛法大意를 물었는데 왜 때렸느냐? 때리는 그 사실이 바로 佛法大意입니다. 맞은 사람은 맞아서 아픈 그 사실이 佛法大意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불교하고는 전혀 다르지요. 이 불교는 전혀 딴판입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 보고
“임제이전에 임제 없고 임제이후에 임제 없다.” 이런 겁니다. 야~~ 과거 역대 우리나라 조사스님들이 보니까 세상에 임제스님 같은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없거든요.
임제스님은요? 불교의 2600년 역사 속에서 쭉~~ 태백산맥처럼 산맥이 쭉~~ 이어져 내려오다가 그 중에 높은 산도 있고 낮은 산도 있는데, 임제스님이라고 하는 산은 그 길고 긴 불교의 2600년 산맥 중에서 높이, 끝 모를 그런 높이의 높은 산봉우리입니다. 그러면서 그 산봉우리에서 다시 내려와 가지고 또 높고 낮은, 높고 낮은, 높고 낮은 산이 쭉~~ 이렇게 이어져 와요. 지금은 우리나라에 까지 이렇게... 아무튼 이 순간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법력은 평지가 됐든지ㆍ아니면 조그만 동산이 됐든지ㆍ아니면 약간 높은 산이 됐든지ㆍ아니면 저 바다보다도, 해수면보다도 더 낮은 산맥이 됐든지 아무튼 간에 그 나름대로 이 시대는 우리가 그 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그 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인연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그 속에 이미 동참이 돼있고, 또 함께 책임을 지고 있고, 그 임무를 다 하고 있습니다. 비록 해수면보다도 낮은 봉우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임제스님이라고 하는 그 산봉우리는 그 끝을 몰라요. 그 산 높이를 모를 정도로 높은 분입니다. 대단한 분입니다.
聲未絶에 便打했다. 후려쳤다 이겁니다.
여기에 바로, 말하자면 불법이 있습니다. 화엄경에 불법이 있고ㆍ법화경에 불법이 있고ㆍ금강경에 불법이 있고가 아닙니다. 그런 세계하고는 전혀 다를 세계라니까요. 黄蘗便打. 쉽다고 생각하면 아주 쉬운 불교입니다.
師下來(사하래)에, 임제스님이 얻어맞고는 내려왔어요. 그래
首座가 云(수좌운), 스님들을 지도하는, 공부 인들을 지도하는 수좌입니다. 수좌가 말하기를 問話作麼生(문화자마생)고? 물으러 갔던 일이 어떻게 됐느냐? 그랬습니다.
師云(사운) 某甲問聲未絶(모갑문성미절)에,
제가, 질문하는 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和尚이 便打(화상변타)하니, 그 황벽화상께서, 막 후려갈겼습니다.
-이때 때릴 때 20방망이를 때렸다고 그랬어요. 여기는 숫자가 안 나와 있는데, 다른 기록에는 20방망이라고 그랬어요. 때리는 것이요? 선사들이 사람 때리는 것은 얼굴이다ㆍ머리다ㆍ팔이다ㆍ다리다. 이것 보고 때리지 않습니다. 사정없이 후려쳐버립니다. 사정없이 후려쳐버려... 세게 후려칠수록 법을 세게 주는 겁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들은 하도 문을 안 열어 주니까 기어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발부터 들이밀었어요. 사람 몸 들어가는 것 보다 발부터 들이 밀었어요. 그러니까 이 방에 있던 선사는 또 고집이 있어가지고 문을 발로 콱 차버렸어요. 그래 다리가 뚝 부러져 버렸어요. 제자 다리가 뚝 부러졌어요.
하~~ 불법 참 세지요? 사정없어요. 그런 역사가 비일비재 합니다.
여기도 20방망이를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그래 어디 안 다치려면 등이라도 들이대고 그래야지 얼굴 들이댔다가는 큰일 나지요. 아무튼 사실은 여기에서 우리가 뭔가 조금 낌새를 차려야 됩니다. 이런 새로운 불교ㆍ아니 정말 근원적인 불교ㆍ살아있는 불교. 살아서 피가 튀는 불교를 공유하려면 여기에서 뭔가 낌새를 차려야 됩니다. 이 문제에...
그래서 저는 얻어맞았습니다. 그런데
某甲不會(모갑불회)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적도 없고, 오늘 생전 처음 봤어요. 제가 이 회상에 3년간 와 있었지만, 그 스님 만나러 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오늘 가서 처음 만났는데 저를 그렇게 때렸으니 무슨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首座云(수좌운), 수좌가 말하기를,
但更去問(단갱거문)하라하니, 한 번 그러고 말 것이 아니라 다시 가서 물어라. 이왕 내친 김에 다시 가서 물어라.
師又去問(사우거문)이라. 임제스님께서 또 가서 물었어요.
또 가서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黄蘗이 又打(황벽우타)하야, 황벽스님은 아무 말 없이, 사정없이 또 20방망이를 후려쳤습니다. 어제 20방망이를 후려쳤으면 어느 정도 눈을 떴어야지요. 눈을 못 떠놓으니까 오늘 또 가서 20방망이 얻어맞는 겁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요?
如是三度發問(여시삼도발문)하고 三度被打(삼도피타)하니라.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았다. 이것이 임제록의 宗旨입니다.
임제록의 근본취지에요. 이 속에 살아있는 불교가 다 있고ㆍ임제스님의 불교가 다 있고ㆍ진정한 불법이 이 속에 다 있습니다.
三度發問三度被打라.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 그랬는데 눈을 못 떴으니까
師來白首座云(사래백수좌운),
스님이 내려 와가지고 수좌 스님에게다 물었습니다.
幸蒙慈悲(행몽자비)하야, 다행히 스님의 자비를 입어서
令某甲問訊和尚(영모갑문신화상)하야,
가서 화상에게, 큰스님에게 물었지만,
三度發問에 三度被打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自恨障縁(자한장연)으로, 그렇지만 제가 원결 없습니다. 제가 한탄하는 것은 제 자신에게 장애 인연이 있어서
不領深旨(불령심지)하니, 깊은 뜻을 제가 모를 뿐이지,
今且辭去(금차사거)하노이다. 그런데 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으니까 떠나렵니다. 이렇게 60방망이나 얻어맞고 제가 무슨 체면으로 여기에 살겠습니까? 떠나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首座云(수좌운) 수좌가 말하기를
汝若去時(여약거시)에는, 만약에 가게 되거든 그래도 조실스님이니까
須辭和尚去(수사화상거)하라. 師禮拜退(사예배퇴)하니라.
조실스님에게 가서 하직인사나 하고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 그러니까 이 착한 임제스님께서는 60방망이나 얻어맞고도 수좌스님이 시키는 대로 또 하는 겁니다.
아~ 그래가지고 참, 어른 스님이 시키니까 ‘맞은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가서 인사나 하고 가야지.’ 이렇게 해서 막 떠나려고 합니다. 걸망을 싸놓고는 인사하러 올라가려고 하는데, 수좌가 선도, 뭐라고요?
황벽 불법은 간단하다. 이제 아주 근사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40-2 黄蘗의 佛法은 簡單하다
首座先到和尚處云 問話底後生이 甚是如法하니 若來辭時에는
方便接他하소서 向後穿鑿하야 成一株大樹하야
與天下人作廕涼去在리이다
師去辭한대 黄蘗云 不得往別處去요 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하라
必爲汝説하리라
師到大愚한대 大愚問 什麼處來
師云 黄蘗處來니다
大愚云 黄蘗有何言句오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三度被打하니 不知某甲이
有過無過닛가
大愚云 黄蘗與麼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 ←1-2
↓1-3
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 師於言下에 大悟云
元來黄蘗佛法이 無多子니다
大愚搊住云這尿牀鬼子야 適來道有過無過러니
如今却道黄蘗佛法이 無多子라하니 儞見箇什麼道理오
速道速道하라
師於大愚脅下에 築三拳한대
大愚托開云 汝師黄蘗이요 非于我事니라
首座先到和尚處云(수좌선도화상처운),
지름길로 수좌스님이 먼저 황벽스님 방에 빨리 뛰어 올라갔습니다. 지름길로 조실 방에 먼저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래가지고
問話底後生(문화저후생)이, 방금 왔던 그 후배가
甚是如法(심시여법)하니, 사실은 아주 여법한 사람입니다.
지금 떠나려고 하는데, 스님한테 인사 하러 올 겁니다.
若來辭時(약래사시)에는 方便接他(방편접타)하소서.
그러거든 이 사람 잘 좀 지시해주십시오. 만약에 이 사람을
向後에 穿鑿(향후천착)하야, 잘 키우기만 하면
成一株大樹(성일주대수)하야, 큰 나무가 돼가지고
與天下人作廕涼去在(여천하인작음양거재)리이다.
천하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울 그런 인물입니다. 천하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울 만한 큰 나무, 그런 재목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이 수좌스님은 얼른 내려 와 버렸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
師去辭(사거사)한대, 임제스님은 황벽스님 찾아갔습니다.
黄蘗云(황벽운), 不得往別處去(부득왕별처거)요, 딴 곳에 가지 말고
汝向(여향), 내가 시키는 대로가라. 어딘가 하니
高安灘頭大愚處去(고안탄두대우처거)하라.
대우스님이라고 하는 처소에 가서 대우스님을 만나라. 그러면 아마 그 대우스님이라는 이가
必爲汝説(필위여설)하리라. 반드시 너에게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師到大愚(사도대우)한대, 임제스님이 대우스님한테 이르니까
大愚問(대우문), 대우스님이 묻기를
什麼處來(삼마처래)오? 네 어디서 왔느냐? 으레 그러지요.
객스님이 오면 으레 네 어디서 오느냐?
師云 黄蘗處來(황벽처래)니다. 황벽스님 회상에서 왔습니다.
大愚云, 대우가 말하기를
黄蘗이 有何言句(황벽유하언구)오?
무슨 말을 하더냐? 황벽이 뭐라고 가르치더냐?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三度被打니다.
세 번 佛法大意를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그랬어요.
不知某甲(부지모갑)이 有過無過(유과무과)닛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허물이 있는지 허물이 없는지, 없는데도 맞았는지, 무슨 허물이 대개 있는 모양이니까 그런데 저는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大愚云, 대우스님이 말했어요. (이것 중요합니다. 줄그으세요.)
黄蘗與麼老婆(황벽여마노파)하야 爲汝得徹困(위여득철곤)이어늘,
황벽스님이 그렇게 노파심이 가득해가지고, 자비심이 많아서 = 老婆心.
자비심이 가득해가지고 뼈에 사무치도록ㆍ뼈에 사무치도록 너를 위해서 일러줬거늘, 그 말입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일러줬거늘” 정말 뼈에 사무쳤지요. 60방망이나 얻어맞았으니까요. 세상에 60방망이나 죽어라고 얻어맞았으니까 정말 徹困. 이것은 저~ 문안에까지 그 말입니다. 이 徹困이라고 하는 이 낱말 뜻은 문밖에가 아니고ㆍ마당도 아니고ㆍ마루도 아니고 방안에, 안방 안에 들여놓고, 아무나 안방 안에 들이겠습니까? 안방 안에다 들여놓고 아주 한 이불 밑에서ㆍ한 이불 밑에서 정말 살을 섞고ㆍ피를 섞어가면서 친절을, 있는 친절, 없는 친절을 다 베푸는 것을 徹困이라고 그래요. 徹困. 문지방 안에까지 사무치게 했다.
그러니까 황벽스님으로서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어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법을 온통 다 쏟아 부어서 가르쳐 준 것이 60방망이 후려친 겁니다.
이것 잘 알아야 됩니다. 60방망이 후려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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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釋대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