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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본 기사는 2008년 2월 인터뷰 기사를 바탕으로 재송고된 기사입니다.
한국 축구계의 카리스마. 홍명보가 본 일본과 J리그
한국 축구계에서 영원한 주장으로 불리는 홍명보.
현역시절 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4대회 연속하여 월드컵에 출전하여,
주장을 역임한 2002년 대회에서는 한국대표팀의 4강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고,
J리그에서도 그 이름을 떨친 선수였다.
1997년에 벨마레 히라츠카(현 벨마레 쇼난)으로 이적.
1999년부터 카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한국인 J리거로서는 처음 주장을 맡아,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발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를 마지막으로 2004년에 은퇴한 후, 그대로 한국대표팀 코치에 취임.
2006년 월드컵에 지도자로서 처음 참가하여, 그 후에도 한국대표팀 및 올림픽대표팀 감독팀 코치를 맡았으며
2009년부터 감독이 되었다.
2009년 U-20월드컵에서는 한국을 8강을 기록하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로 이끌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런 홍명보에게는 이제까지 몇번이나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있었고, 그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영원한 주장은 항상 한국과 일본 축구를 냉정히 바라보고, 그 과제와 희망을 이야기해주었다.
선수들을 명령조로 지도하는 일은 없다.
지도자 생활도 3년째를 맞이하는데 보람은 있나요?
선수시절과는 다른 재미도 있는데 어렵네요.
처음에는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어도, 반대편 사이드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파악되지 않기도 했고 여유가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겨우 벤치에서 경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에도 익숙해졌어요.
벤치에서 시합을 보는 눈은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코치로의 도전은 갑작스러웠어요. 2004년에 MLS의 LA갤럭시에서 현역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후,
2005년 9월에 아드보카트 감독의 한국대표팀 감독 취임과 함께, 코치에 임명되었습니다.
조금 의뢰롭고 놀라운 인사였어요.
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지도자 경험은 제로였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는데 갑작기 대표팀 코치였으니까요.
그것은 자신의 도리에 반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베어벡 감독(당시 코치)이 강하게 요청해와서 수락했습니다.
다만, 자신으로서도 외국인 코칭스탭과 선수들을 연결하는 파이프 역할에 철저히 하려는 의식도 있어서
코치라는 지도적인 입장으로 선수들을 대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진심으로 제가 코치라고 자각하게 된 것은, 독일 월드컵 이후에요.
핌 베어벡 감독 아래에서 새롭게 한국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코칭스탭 자리를 맡았기 때문이죠.
거기서 지도자로서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 할 수 있을거에요.
선수시절과 코치 어디가 어려운가요?
그건 단연코 지도자죠. 선수시절에도 몸관리와 플레이 질 등,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면 좋았는데
코치는 선수 전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서, 팀으로서 무엇을 만들어가면 좋을지 이끌어가야만 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개성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대면작업이기에 어려워요.
다만 그런 대면작업을 통해서 선수, 팀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인 이 직업의 묘미라 생각해요.
그것은 현역시절에는 느끼지 못한 축구의 새로운 매력이기도 하죠.
기자 : 그러나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죠. 홍 감독의 경우는 현역 시절의 실적이 대단한 만큼
선수들도 긴장할테고, 감독 자신도 "이런 것도 못해. 왜 이해 못하나?"라고 스트레스 받진 않나요?
그건 절대 없고 선수들을 명령조로 지도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간단한 것이라도 특히 젊은 선수 앞에서는 시범을 보이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것은 젊은 선수들을 위축시키고, 좌절감과 열등감을 심어줄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하나의 플레이 예를 보이는 경우는 있어요.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며
선수들에게 자신이 생각하여 플레이하도록 지도하고 있고, 전술 등도 선수 본인이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몇번이나 서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 지도방침은, 현역 시절의 경험에 근거한 것인가요?
일부분은 그렇게 말할수 있겠죠. 한국 대표팀에서 많은 국제경험을 쌓고, 일본, 미국에서 프로생활을 통해 느낀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중요성이에요.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하는 그대로라면, 축구 로봇에 불과하고 선수로서도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류 선수들을 모두 스스로 생각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런 생각하는 힘을 환기시키는 지도법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한 것은
아드보카트 감독이나 핌 베이벡 감독 아래에서 코치라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 두명에게서 배운 게 많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죠.
아드보카드 감독, 핌베이벡 감독은 선수와 코칭스탭, 그리고 코칭스탭간들의 의견교환 자리를 매우 중요히 하는 지도자였어요.
두명은 매일같이 미팅하고, 선수나 팀 상태나 완성도를 서로 확인하고
다음 트레이닝, 팀 강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빈번히 의견을 교환하였죠.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선수들의 레벨 UP을 촉진하고 팀을 구축해갑니다.
그 어프로치는 매우 신선했고,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저에게는 큰 공부가되었습니다.
특히 2년 가까이 함께 일 한 핌 베어벡 감독에게는 코치로서 많은 것을 배웠죠.
연습방법, 분위기 만들기, 선수들에게 효과적인 설명 방법 등,
그는 한국 축구계에 많은 것을 남겨줬고, 저 자신도 코치로서 많은 것을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만큼 아시안컵 후에 베어벡 감독이 한국을 떠나게 되어 아쉬웠어요.
일본은 허리진이 두텁고 항상 안정된 경기 운용이 가능하다.
2007년 아시안컵 3위 결정전에서는 일본과의 대전이었는데 당시 일본의 인상은?
아시안컵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일본은 허리진의 구성력이 뛰어나요.
먼저 그것을 확실히 인식한 후 대책을 세우지만,
과거 한국이 맨마크로 일본의 개인을 지우려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에 비해
아시안컵에서는 다른 어프로치로 일본의 허리진에 대처했어요.
어쨌건, 아시안컵에서의 일본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공격이 눈에 띄었고,
맨마크로는 대처할수 없는 것은 명확했죠. 다행인 것은 한국도 핌베어벡 감독의 지도아래에서
지역방어를 마스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시안컵에서는 맨마크가 아닌 지역으로 대처했어요.
시합은 한국이 조금 밀리는 경향이었지만, 레드카드를 받아 수적으로 불리해졌는데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것에서 증명되듯
우리들은 일본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안 컵때의 일본은 오심 감독의 아래에서 "사람과 볼을 움직이는 축구"를 침투시키는 시기였어요.
그때 캐치 프레이스는 사전에 들었었고, 올리픽 대표끼리의 한일전에서도 가려는 방향성도 보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시안컵에서는 선수들에게 강조했죠. 공간으로 달리는 일본선수를 불필요하게 쫓지마라고.
그 움직임을 따라가버리면 일번에는 그 공간에 다른 선수가 침투해서 그곳에 볼이 넘어가면
자신들의 공간을 넓혀가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각각의 공간을 지키고, 가능한 한 사이드로 몰아 패스 코스를 한정시켜서 볼을 탈취하도록 지시했어요.
맨투맨마크로 대처했다면 일본의 움직임과 볼 돌리기에 당했을거에요.
동아시아 선수권 등에서 다시 한일전이 벌어지는데 승패의 포인트는 어디에 있다고..
한국도 일본도 감독이 바뀌고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거다!라고 단언하진 못하는데,
과거의 한일전과 마찬가지로, 긴박한 공방이 될거란 건 확실해요.
어찌됐건, 일본은 중반에서 세밀한 패스 연결이 능숙하고, 항상 안정된 경기 운용을 할수 있는게
스트롱 포인트입니다.
반대로 한국은 중반의 구성력에 과제가 있지만 폭발력을 갖추고 있어요.
양국의 장점이 믹스되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쓴웃음)
한국은 결정력 부족이 지적되는데, 감독으로서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미디어는 FW에 원인이 있다고 쓰는데, 개인적으로는 라스트 패스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경우, 중반에서의 스루패스든, 사이드에서의 크로스든 정밀도가 높은데,
한국은 그런 패스들이 FW로서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요약하자면 패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봐요.
그런 섬세한 부분, 즉 기술력을 더 높이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고 보고,
올림픽 대표 선수들에게도 하나하나의 플레이를 스스로 생각해서 예측하도록 강조하고 있어요.
그런 경험과 생각이 있어야 좋은 플레이가 나타나는 것이죠.
동아시안컵에서는 올리픽대표에게 있어 선배격에 해당하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질 높은 플레이를 기대하고 싶어요.
그런데 올림픽 대표 감독도 겸임하고 있던 핌 베어벡 한국대표팀 감독의 사임의 맞춰,
당신도 사임설, 올림픽대표팀 감독설도 있었는데 새로운 올림픽 대표팀에 임명된
박성화 감독아래에서도 코치로서 남았어요. 그 이유는?
핌 베어벡 감독이 사임한 이상, 본래라면 자신도 책임을 지고 떠나야한다고 생각한건 사실이에요.
개인적인 감적으로 결정하면 저도 깨끗이 떠났을테죠.
다만 그 한편으로 올림픽대표팀에 대한 애착도 있었어요.
그들이 처음 소집된때부터 지도 해왔기 때문에.
게다가 당시는 북경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산이 눈앞에 있었죠. 새로게 올림픽 대표를 맡은 박성화감독은
팀을 잘 아는 저를 필요로 했고, 저로서도 팀에 애착와 책임감이 있어 거절할수 없었어요.
제가 한국 축구를 위해 할수 있는 것은 충실히 하려고 결단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 선수들의 실력과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기술 있고, 전술이해도가 높은 선수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경험이 부족해요.
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컨디션의 등락이 심하고,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면
스스로 타개책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도 경험은 이제부터 얼마든지 쌓을수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게 선수들을 성장으로 연결되고 팀을 강하게 합니다.
아시안컵에서는 종반에 고전했지만,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팀은 성장했고, 1월 스페인 합숙을 통해서
팀으로서의 조직력이 향상되었어요.
북경 올림픽까지 특별한 강화일정이 짤 수 없는게 아쉽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북경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남길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본 올림픽 대표가 이끄는 소리마치 감독이나 이하라 코치는,
현역시절을 함께한 동료인데, 현재 일본 축구의 인상은?
일본 올림픽 대표와는 친선시합으로 2회, 연습시합으로 1회 대전했는데, 선수들의 능력이 높고
팀으로서 목표로하는 방향성도 느껴집니다. 확실히 "사람과 볼을 움직이는 축구"였어요.
소리마치, 이하라씨에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료로서, 서로 좋은 성적을 올리자고 메세지를 보내고 싶네요.
일본의 축구팬에게 매세지있나요? 홍명보 코치에게 있어서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떤 나날들이었나요.
일본시절은 선수로서 최고의 날들이었어요.
물론 언어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고생도 많았지만,
레이솔에서는 타이틀 획득이란 최고의 결과를 얻기도 했죠.
고생한만큼 그거에 걸맞는 기쁨도 손에 쥐었기 때문에 일본 생활은 잊을수 없어요.
J리그 시절에 잊을수 없는 시합이나 추억이 있나요.
가시와 레이솔시절의 1999년에 쥬빌로 이와타와의 시합이었어요. 당시 이와타는 J리그 최강이었는데
가시와는 전혀 경기 리듬을 잡을수 없었어요.
특히 잊을수 없는 것은 나비스코컵 준준결승에서 종료 직전 넣은 동점골이죠.
절대 질수 없는 시합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흥분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리고, 가시와를 떠날 때 구단에서 준비해준 세레모니였죠.
서포터에게 감사의 마음과 떠나는 아쉬움이 공존할때의 기억은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가시와는 제가 가장 정열을 쏟은 구단이기도 하고 지금도 애착이 있는 구단이에요.
지금도 레이솔이나 J리그 중계를 체크하고 있나요.
최근 몇년은 한국대표 코치로서 시찰이 많고 바빠서 예전 만큼은 아닌데요
J리그 결과나 근황을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잇어요.
은사로 불리는 니시노감독은, 감바오사카를 매우 강한팀으로 만들어 평가가 높은데요.
최근 몇년 얘기가 아니죠. 니시노감독은 레이솔시절부터 유능한 감독이었잖아요.
그 후 감바의 강함도 니시노감독이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J리그 전체에 대해서 어떻나요. ACL에서 K리그에게 못이겼는데요.
우라와가 ACL을 제패한 것으로 증명한대로, J리그는 계속적이고 착실히 발전하고 있다고 봐요.
일본시절에도 느꼈지만, 일본에게는 축구를 체계적으로 발전 성장시키는 기반이 갖춰져있죠.
예를들면 축구 그 자체는 즐기는 문화에요. 서포터들도 응원하는 팀이 지더라도 격려를 보내는 등,
구단과 축구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죠.
그것은 일본 축구계 전체가 그러한 환경만들기를 세밀히 진행해온 결과인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승리지상주의가 강하고,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K리그도 승패에 너무 고집한 나머지 재미없다고 스탠드에 빈자리가 눈에 띄거나, 팬이나 서포터들도
구단에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K리그의 문제점은 빠른 시점에 개선할 필요가 있겠죠.
추가로, 일본에서는 유스육성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죠. 그 시스템 아래에서 자례로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를 배출하고 있잖아요.
일본 축구는 최근 수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는데, 앞으로도 그 발전은 계속될 겁니다.
그런 일본의 준비시스템과 성장을 한국도 참고로해서, 배울 부분은 배워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요.
리그 및 각 클럽의 운영, 유스 육성, 지도자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필요한데,
현장에 있는 지도자로서 느낀 것은 좋은 않은 결과를
정신력, 체력의 결여로 정리해버리는 것이죠.
그러한 안이한 분석이 아닌 전술적인 문제, 선수의 배치 및 포지셔닝의 반성점, 추가로 팀만들기의 단계 속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정신력이나 체력만을 강조하는 시대에 한국은 종지부를 찍어야만 합니다.
올해부터 옛 동료인 황선홍씨가 K리그 부산아이파크에 감독으로서 데뷔하는데요.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2002년 월드컵 멤버로서는 첫 K리그 감독이니까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대표선수로서 활약한 하석수 선배나 최용수도 K리그 코치는 맡고 있는데
감독은 황선홍이 처음이죠. 그러니만큼 그에게 책임이나 부담감도 클거에요.
그의 성공여부에 따라 한국 축구계의 미래도 바뀔겁니다.
한국 축구계는 선수들의 세대교체는 물론이고, 지휘자들의 세대교체도 진행해야하는 시기에요.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클린스만이나 라이칼트 등, 우리들과 같은 세대에 현역을 보낸 전 대표선수들이 지휘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30대후반에서 30대의 지도자들이 축구계에 변화를 이끌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도 젊은 지휘자들이 점점 메인 부대에서 활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S-KOREA, 2017년 1월 10일 전송기사.
원문 : http://s-korea.jp/archives/13281
번역자 : 노가타무비자
주의 : 일부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옛날거 같은데? 황선홍 감독이 부산감독 부임할시기의 인터뷰면?
젤 윗단에 적어뒀어요. 2008년 2월 인터뷰 기사라고 ㅎㅎ
@노가타무비자 아. 넵. 항상 양질의 글 잘보고 있습니다.
@골아퍼덕 감사합니다~ ^^
홍명보
홍감독도 일본에서 부를만한데...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