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거배'를 품다
이난영
선산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품에 안은 풍속도 한 점,'蕙圓' 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던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성묘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선산 근처 식당으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업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내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제법 붐볐다. 핑계 김에, 바로 옆에 있는 골동품 상점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간이다. 눈을 뜨기조차 어려워 실눈을 뜨고 훑어보았다. 빛바랜 도자기와 녹이 슬은 금속공예, 금이 간 찻 잔들 사이로 낡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선술집 풍경이다. 언뜻 보아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 같았으나, 그저 이름 모를 모사본이겠거니 했다. 무심히 지나치는 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림 속 인물들이 말을 거는 듯했다. 동공을 한껏 넓혀 그림 한쪽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작은 글씨 하나가 또렷이 눈에 박혔다. '蕙圓'심장이 쿵쾅거렸다. 혜원은 신윤복의 호 아닌가, 영인본이든, 후대의 모사본이든 상관없었다. 그 두 글자가 주는 울림은 충분했다.
액자는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된 듯하다. 유리는 깨져 있고. 나무틀은 뒤틀리고 벌어져 덜렁거렸다. 백색이었던 여백에는 먼지 자국이 얼룩처럼 번져 있고. 세월의 때도 덕지덕지 붙어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공짜로 가져가라 해도 손사래를 칠 법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낡은 액자가 아니라 250년을 건너온 세월의 향기로 보였다.
주인은 값도 묻기 전에 "그거 가져가시겠어요?" 하고 묻는다. "네." 짧게 대답하고는 얼른 품에 안았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다. 주인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 눈길이 무슨 상관이랴. 나는 이미 한양의 선술집 한가운데 서 있는데. 보면 볼수록 웃음이 배어 나온다. 내가 꼭 조선의 선술집에 있는 듯 마음이 오달지다.
삶의 온기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했다. 혜원의 <주사거배酒肆擧盃> 이다. 주사거배는 술집에서 잔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그림 속 '거배요호월擧杯邀皓月, 포옹대청풍抱擁對淸風' 시구는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항아리를 끌어안고 맑은 바람 대한다'이다.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부뚜막, 솥단지, 찬장, 선반 위의 그릇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생활의 흔적과 문화의 층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와지붕 위로 보이는 곱게 핀 진달래꽃이 화사함을 더한다. 그림은 낡았으나 그 속의 시간은 낡지 않았다. 오래될수록 더 깊은 항을 내는 술처럼, 세월의 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오히려 빛을 발한다.
나는 그림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기로 했다. 표구를 새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낡은 액자를 벗겨내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혹여 종이가 상할까, 색이 번질까 손끝에 힘을 빼고 또 빼며 다루었다. 오래된 종이에서는 묘한 향 내가 났다. 시간의 냄새, 누군가의 손때가 밴 냄새였다. 표구점에 그림을 맡기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혹시나 원형이 훼손되지 않을지, 본래의 결이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며칠 뒤, 다시 마주한 그림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 액자 속에 단정히 자리 잡은 풍속도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또렷했다 배접을 새로 하고 테두리를 정갈하게 정리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색감과 선의 미묘한 떨림이 살아났다. 신윤복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필선과 다감한 색채의 감각적인 화풍이 그대로 살아났다. 주모와 심부름꾼, 손님들의 옷차림과 얼굴 생김새, 표정과 시선, 손끝이 생동감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 인물 누구도 실제로 잔을 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주사거배'는 눈에 보이는 동작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일곱 명의 등장인물은 각기 다른 신분과 사연을 지녔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자리에 모여 세상의 질서를 잠시 내려놓았으리라. 의금부 별감의 권위도, 하인의 낮은 자리도, 주모의 생계도. 그 틈으로 달빛과 바람이 스며들어 은은한 빛을 발했으리라. 선술집 풍경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작은 공동체의 모습이었지 싶다. 깨진 유리 뒤에 있을 때는 초라해 보이던 그림이 제대로 옷을 입자, 비로 소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한양의 선술집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과 흥취를 전하는 하나의 예술로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작품의 품격은 종이의 나이나 액자의 값비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표구를 새로 하니 공간의 공기마저 달라졌다. 벽에 걸린 풍속도는 집 안에 작은 전시관을 만들어 놓은 듯했다. 틈만 나면 나는 그림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더 값진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다. 일곱 인물이 모인 한양의 선술 집은 이제 나의 거실이 되었고, 나는 그들 곁에 조용히 앉아 맑은 바람을 맞는다. 술잔이 보이지 않아도 좋다. 내 마음은 이미 달을 향해 들어 올렸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다르지 않다. 세월은 겉모습을 바꾸었을지라도, 본래의 결은 여전히 살아 숨신다. 누군가가 정성으로 다듬고 존중해 줄 때. 숨은 빛은 드러난다. 이번 표구 작업은 단순히 액자를 바꾼 일이 아니었다. 시간을 존중하고, 예술을 예우하며, 삶의 흔적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새로 다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쁨은 나 스스로가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난영 lny2945@hanmail.net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청주지부 감사, 중부매일신문, 오피니언 필진 제 충북수필문학상 외 다수,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 선정(2026) / 저서 <바람을 덮다>외 2권 사랑으로 울도 담도 없는 정원을 가꾸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