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허무’에서 해방되려고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연중 제5주일 강론>
(2025. 2. 9.)(루카 5,1-11)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4-11).”
1) 여기서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들의 상황은, 먹고사는 일만 신경 쓰면서 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상징합니다.
시편 작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
이 시편은, 단순히 ‘인생은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목적지가 없는 ‘유랑’이고, 그래서 허무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인생은, 목적지가 분명히
있고, 그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허무한 유랑이 아니라 ‘본향’으로 가는 ‘귀성 여행’입니다.
신앙생활은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누구든지,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그 허무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어부들은 ‘인생의 허무’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또 벗어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바로 그분이 인간을 허무에서
해방시켜 주실 ‘메시아’ 라고 믿었습니다(요한 1,41).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때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때 사이에는 적어도 몇 달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기간 동안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응답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2)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는 말씀에서 ‘깊은 데’는 ‘허무하지 않은 인생’,
즉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인생’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는 일은
인간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시고, 그 나라에
가는 길을 알려 주시는 일까지만 해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곳에서 그곳으로
들어 옮겨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은 기적”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
어부들만 체험한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 기적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기 위한 기적인데,
기적 자체가 ‘부르심’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3) 그런데 만일에 어부들이 밤새도록 애썼는데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이 아니라, 몇 마리 정도 잡은 상황이었다면?
또는 그럭저럭 생계에 도움이 될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면?
그래도 ‘허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3-14).”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더 큰 허무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릅니다.
사실 세속의 성공과 출세는 허무하게 사라질 먼지 같은
것이고, 먼지는 아무리 많이 모아도 먼지일 뿐입니다.
4)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라는 말은,
‘주님의 권능’에 압도된 인간이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말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이기도 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신의 희망을 반어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어부 시몬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불렀는데,
8절에서는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경외심’은,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사랑의 주님’이신 분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을 사도로 뽑으시겠다고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어부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 ‘모든 것을’ 버린 것은,
단순히 가지고 있던 소유물들을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옛 인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새 인생’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시고,
그 나라에 가는 길을 알려 주시는 일까지만 해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