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증거되어 있는 등과 같은 아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케 하실 때에 그 당시의 바벨론 땅 바사 아닥사스다 왕이 어느 정도로까지 협력하고 지원했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실상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지역의 총독으로 파송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필요하고 요청한 거의 모든 부분들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특히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필요한 모든 사안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군대 장관과 마병까지 함께 보내어 보호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있어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신 것이라 고백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사실은 그러한 이방 왕의 파격적인 도움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예루살렘 성벽의 실질적인 재건에 있어서도 느헤미야 3장 1~3절에서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과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들을 볼 때 얼마나 많은 동역자들이 예비되어 있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러한 재건을 방해하고 저지하려는 수많은 대적들의 위협과 음모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며 하나같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게 된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들에 있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어떤 면에서는 순간순간이 결코 우연이거나 요행일 수는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그때 당시의 느혜미야와 그 땅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능력들이 있었다거나 세상적으로 유리한 면들이 컸던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부분과 사안들이 더욱 많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이 실제로 가능했고 생생하게 누리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인 것으로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고, 그 속에서의 가장 핵심 당사자인 느헤미야도 잘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듯이 사실상 단 하나, 단 한 순간도 예외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그러한 모든 일들에 있어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은혜와 역사들마다, 특히 그러한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전적으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무엇보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과 반드시, 생각 이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진정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위시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지성소, 성전,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그와 같은 놀라운 일들, 기적 이상의 역사들이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일어나고 흔하게 경험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자 실수인 것으로 참으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실질적인 기준과 관건, 방법과 통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한 시라도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그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분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인데..
조금만 살펴봐도 아래 본문에서의 느헤미야부터 느헤미야 1장 3~7절에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증거된 말씀과 그 전후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어느 정도로 겸비하고 신실하며 절실한 말씀의 신앙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총독으로서의 사례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험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들 하나하나에 있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본을 보이고 기꺼이 헌신했을 정도로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대로의 실천적인 믿음이었던 것이며, 더 나아가 이방 왕 앞에서의 요청 때의 상황이나 수많은 대적들의 방해와 위협들 속에서의 모습과 대응들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것이듯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의 사람을 얼마나 원하시고 찾으시며 사용하시는지, 실상 그러한 믿음을 통해 어느 정도로까지 역사하시고 뒤바꾸시며 기이한 일들까지 보이시는지를 아래의 본문 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 구석구석에서, 또한 2000년 교회사와 오늘 이 시대 가운데에서도 다 셀 수 없고 말로는 다 표현도 못할 정도로 보이시고 나타내셨으며, 또한 계속해서 보이시고 있고, 게다가 이후로도 상상 이상으로 예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2:1~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9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