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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현재 젊은 층들 사이에서
박정희의 경제 개발 이면에 숨어있는
극심한 부작용을 알고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 박정희 정권 시절에 대해 찾아 봤던 자료들에서는
정말... 정치를 떠나서 경악할 만한 일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숨어있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박정희 정권의 그 유명한 4대 경제 의혹 사건
증권 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
아무리 독재 정치의 시기가 길었다고는 해도
이정도 '대박' 부패를 한 정권에서 저질렀다는 사실이 참 믿기지가 않죠.
무려.. 중앙 정보부가 주가 조작에 개입 했던 증권 파동과
워커힐 호텔 공사 자금 일부를 횡령해 공화당 창당 자금으로 유용한 워커힐 사건,
국내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서 만든 새나라 공장에서 되려 일본 차를 수입해서
막대한 차익을 남겨 파는 행위로 창당 자금을 마련했던 새나라 자동차 사건,
당시 수입 금지 였던 빠찡꼬 수입과 영업 허가를 내주며 그 댓가로 비자금을 조성했던 빠찡꼬 사건.
뭐.. 벌써 부터 놀라고 분노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이후에 수많은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1964년 6월 3일
한일 정상 회담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립니다.
이명박도 여기에 참여했다는 경험이 있다는데 뭐 이건 중요한게 아니고..
이 때 부터 그 지긋지긋한.. 계엄령이 처음 선포됩니다.....
박정희는 시위를 진압한다는 이유로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 과정에서 200명이 부상당하고 1200명이 체포 당합니다.
참... 정말 무식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박정희는 항상 자신의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이 고조될 때마다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을 때에는 갑자기 뜬금없는 '간첩 사건' 등을 발표하며
저항 세력, 시위 세력 들의 배후에 좌익 용공분자들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정보'에 취약한 국민들은 곧이 곧대로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죠..
설탕, 밀가루, 시멘트를 생산하는 3분 재벌이 가격 조작과 세금 포탈로
폭리를 취하고 그 댓가로 공화당 정권에 거액의 정치 자금을 제공했던 3분 폭리 사건(1964)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점철된 계획이었습니다.
군사 쿠데타에 의해 만들어진 군사 정권이다 보니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통제했죠.
자신처럼 누군가가 쿠데타로 세력을 전복시키지 않을까 우려해서 항상 배후에 제2, 제3의 세력을 키웠고
그 세력이 너무 커졌다 생각하면 그들을 버리고 또 다른 세력을 키워서 그들을 죽이기를 반복하는 사이클로 돌아갑니다.
군대식 밀어 붙이기..
외양은 무조건 삐가번쩍하게 보여야 했고,
언제나 단시간내에 끝나야 했습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과 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해야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문제는..... 이 군대식 정책이 '건축'에 적용되면서 부터였죠.
1970년 4월, 그 유명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이 일어납니다.
박정희는 서울시 와우산 일대를 아파트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웁니다.
속전속결 아파트는 세워지고 비극의 그날, 15동 5층 건물의 아파트 한 채가 무너져 내립니다..
그것도 입주 20일 만에.... 사망 33명, 중상 19명, 경상 21명
멀쩡해 보이던 이 아파트가 왜 무너졌는고 하니...
그 내용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45세대 기준 시민 아파트 1동의 건축비는 평균 1200만원 이었습니다.
헌데 이 와우 아파트는 4동을 짓는데 2000만원의 건축비가 들었던 아파트였습니다....-_-;
게다가 세상에 그 어떤 나라가 아파트를 산 중턱 경사 70도가 넘는 곳에다 올릴까요?
1966년 역사에 남을 치욕적인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때 당시에도 여전히 대기업이었던 삼성은 이때도 아주 명성을 날렸습니다.
삼성이 일본에서 도입한 자재 속에 몰래 사카린 원료를 밀수한 것이 적발된 것이었죠.
당시 국내에서 귀했던 사카린을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통해서 '비료공장 자재' 라고 속여
밀수한 이 파렴치한 행태는 막대한 정치 자금의 마련을 위한 박정희의 작품이었습니다.
(자칫 묻힐 뻔 했던 이 밀수 사건은 <경향신문>의 대대적인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대기업이 불법 밀수를 정권의 비호아래 공공연하게 하다니요....
정-경 유착... 치가 떨리네요
지역 편중에 따른 차별정책....
영남에 집중되었던 박정희 정권의 지역개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 감정' 이 고조됩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의 분신자살로
국민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노동의 실태를 알게 되었고,
박정희 정권이.. 이에 크게 감화되어 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정책을 폈으면 박정희가 아니었죠.
노동 실태는 하등 나아질 것이 없었습니다.
1972년 8월 3일
일명 '8.3 조치' 라는 걸 규정하며 대기업들의 위기를 국가가 일련의 자금 지원를 통해 도와준다는 규정을 맺습니다.
참으로 그럴 듯한 이 8.3 조치로 인해 국민들은 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을 그대로 떠맏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초헌법적 조치는 국가가 규정하고 '부담'은 국민들이 안고... 뭔 놈의 나라가..
그리고 1972년 10월 27일... 끔찍한 유신헌법이 공포됩니다.
유신헌법 아래 진보와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습니까...
이 끔찍한 법으로 인해 대통령 독재체제와 종신 대통령제가 가능해졌죠...
국민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고, 민심을 잃을대로 잃었으니 아예 법을 바꿔버린 거죠...-_-;
철저한 반공주의자 박정희가 딱 한번 북한에 호의적인 말을 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이 무렵, 박정희는 "남한도 북한에게 배울 것이 있다" 라는 말을 남북 대화 무렵에 하게 되고,
이 말의 속내는... 북한의 김일성 숭배를 부러워하고 배워야 한다는 뜻이었죠. (뭐 이런...)
유신헌법 공포로 정비된 국가 체제는 다분히 파시즘 적인 성격을 띄었습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을 최초 보도했던 경향 신문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고,
의회와 언론은 이미 국가 권력에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위장된, 거짓된, 포장된 보도는 말할 것도 없었죠.
바로 이 시기에 발기.. 아니 좆선.. 아니 조선 일보는 극도의 친유신적 보도를 자행하며 '예쁨'을 받습니다
이쯤해서 1964년,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기억되는 '인혁당 사건'이 다시금 고개를 듭니다.
1974년 4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해서 전국적으로 학생 궐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헌데 이런 학생 궐기를 주도한 민청학련의 배후에 있는 8명이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 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8명을 구속하고, 치욕적인 고문을 하며..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사형대로 끌고 가서 1975년 4월 사형을 집행합니다.
하지만 이런 유신헌법은 장난이었습니다.
1975년 5월 13일... 악명 높은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며
독재자의 탄압은 절정을 맞이합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유신헌법에 대해 반대 왜곡 하는 신문사, 언론사, 방송국은 '목숨'을 연장할 수 없었습니다.
(신문사의 폐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들의 '목숨'을 말이죠..)
유신헌법, 박정희 정권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영장 없이 바로 구속, 체포됩니다.
전국에 정치적 논의는 아예 금지 됩니다. 실제로 1979년 한 해 동안만 무려 1230명이 구속되기도 합니다..
긴급조치 9호 아래 일어났던 사건들은 참....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1976년 연세대에서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백지 성명서를 사람들에게 배부합니다.
정치적 발언은 아예 금지되었기에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4.19 영혼들의 넋과 정신과 혼을 전달한 것이었죠.
현재 정권에 대한 비판은 굳이 말로 할 필요 없이 바로 우리 생활 그 자체라는 의미와 함께...
도저히 체포할 수 있는 껀덕지가 없는 이 행위를 정부는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라는 죄목으로 주동자들을 구속합니다-_-;;;;;;;;;
뿌리부터 썩어버린 박정희 정권의 부패는 1976년 '코리아 게이트' 사건으로 절정을 맞습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 한국 정부의 기관 요원 박동선에 관해 발표했던 말은 충격적이었죠..
1970년대에 50 ~ 100만 달러의 뇌물로 약 90여명의 의원과 공직자들을 매수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주한 미군 철수에 반대하거나 박정희 정권이 비판적인 미국 의회 여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던 것이죠..
.....참으로 스펙타클한 인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국내로도 모자라 미국까지 뇌물로.....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모두다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였죠......
일명 코리아 게이트 사건으로 철옹성 같던 박정희 정권은 위기를 맞이하게되고
거기다 눈엣가시였던 김영삼을 총재직에서 박탈하면서 정권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부마 항쟁이 발생하고..
독재자의 최후는 모두가 알고 있으시겠죠.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개발의 단꿈에 숨겨진 우리나라의 비극.
또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른들이 젖어있는 박정희의 향수를 우리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항상 우물 안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우물을 밖에서 보는 사람은 그 우물이 얼마나 좁고 썩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직접 우물 안에서 몸을 부딪치며 생활했던 기성 세대들과 우리의 가치관은 다를 수 밖에 없죠.
박정희 정권을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영광 뒤에는 썩어 빠진 부패가 있었고,
또 그.. 악질적인 부패로만 판단하기에는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결과물들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한쪽에 빠져서 등 뒤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죠.
첫댓글 악 열받아!!~~!!!!!!!
사진이 하나도 안떠요ㅕ...........
사진 없는데요...ㅠㅠ
빈공간들이 사진자리인줄알앗어요...;;ㅎㅎㅎㅎㅎ
왜 어른들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왜 경제를 살려줬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안가요. 고등학교때 선생님이 박정희는 친일파에 독재자 라고 했는데.....
갑자기 떠오르네요. 김대중땐지 노무현땐지 모르겠지만..한일회담을 하는데 일본측 대표가 그런말을 했죠. '김종필은 어디갔냐. 한일회담은 지금껏 일본어로 해왔는데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다.' 전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정말 심하거든요..그런데..그 얘기를 듣고 정말 자존심이...참..한일회담보니까 떠오르네요.
저도 그 한일회담만 생각하면 화나요. 김종필 그 볏신같은 놈이 우리나라 역사를 몇 십년을 후퇴시켰어요. 그냥 후퇴만 시킨 게 아니라 다시 찾기도 어려울 만큼. 저도 일본 별로 안 좋아해요. 진짜 문제는 요즘 애들이 일본 문화에 빠져서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건 괜찮은데 그게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호감과 우리나라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애들 입에서 '그 당시 친일하지 않을 수 있었냐'는 친일파란 놈들이 자기합리화 수단으로 꺼내는 얘기가 나오는 거 보면서 식겁했어요. 이야기가 좀 샜는데 한일회담 하니까 생각나서 적어요.
저희 부모님이 왜그렇게 김종필을 싫어하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JP.....증오할테다
정말 어른들중에서 향수에 젖어 저때로 돌아가고싶다 저런시절이 다시와야 된다 이런말하시는거 보면 정말...지금사람들은 자유가 너무 당연해서 얼마나 중요한건지를 모르는거 같아요....
뭣보다 락음악에 사망선고를 내렸던 점..... - 신중현이란 천재락커를 매장했었죠.
요즘 베드하면서 느끼는 건데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일에 절대 무지해선 안됩니다!!!!우리가 깨어있어야 미래의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패의 잔재가 되물림 되지 않을거에요... 아무리 내 취업자리가 걱정이고 먹고 살기가 바쁘다지만 우리가 자꾸 무관심해질수록 이땅에서 영원히 사라져도 시원찮을 저 세력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사는겁니다..
저때의 잔재들이 아직까지도 이어내려오고 있다는 점...이제 이명박이 되면 영원히 대한민국은 한나라당 세상....
배고픈데 민주화를 논할 겨를이냐 있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네요. 또 왜 지금은 박정희같은 지도자가 나오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에게도요. 우리네 아들딸들이 한창 꿈을 키워야할 나이에 유서쓰고 데모하고, 쥐도새도 모르게 남산에 끌려가는 정권이 정말 진심으로 그리운 건지. 전에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박정희에 대해 긍정적으로 재평가하자고 한 걸 봤는데, 전 죽어도 거기에는 동의 못하겠어요. 오히려 이 글에 써있는 사실처럼 가려진 게 더 많지 않나요? 경제발전이 그의 죄를 얼마나 덮어 줄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정말 민주투사들이 피흘려 이뤄낸 이 자유를 한 볏신같은 후보가 도로 후퇴시킬 듯 이건 정말 막아야 하는데
저시대가 재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 보면 .... 답이 안나와요 싸울힘도 없고 젊은층에서 나서서 바꾸고 그래야 되는데 관심들이 없으니 ....
정말 무책임한 거죠... 전 아무리 어른이라도 그런 소리 하는 어른들은 죄송한 말이지만 대우를 해 주기가 싫어져요. 막연히 저 시대로 돌아가야 된다는 소리만 하고 있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돌아간다고 해도 어른들이 할 수 있는건 뭐가 있나요? 썩어 빠진 부패와 탄압은 고스란히 젊은 층들이 짊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치욕적인 역사는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요즘 애들이 정치를 뭐 아나?' 이런 말을 어쩌면 그렇게 무책임하고 당당하게 할 수가 있는지 너무나도 화가 나요.. 젊은 혈기에 멋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소한 자식들에게 암흑의 과거를 물려주긴 싫어요..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뭔가 통제를 받아야 국가가 있는것 같고 국가가 일을 하는것 같고..저도 그런말씀 하는 분들 보면 죄송하지만 식민지근성을 못버렸다고 생각해요.
울엄마는 그래도 박정희가 이만큼 해놔서 우리가 먹고사는거라고 우리 윗대에는 그게 있어요 박정희가 그래도 이만큼해놨다 라는 허상이
222우리아버지도 그래요.ㅠ
박정희가 아니라.. 정작 이렇게 살만큼 일구어낸 일꾼들이 당신들 자신이라는걸 모르고 계시는듯... 욕심 없이 그저 대통령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인데.. 박정희가 대단하다고 믿는 어른들.진짜 답답..솔직히 말하면 IMF터진것도 김영삼이 잘못했다기 보다..(물론 김영삼이 잘한것도 없지만)박정희때부터 저질러온 부패들이 곪아서 터진거 아니겠어요?? 아마.. 이명박이 대통령되면 5년동안은 경제 개혁이다 뭐다 해서 수많은 정책들 내 놓겠죠.. 뒷감당은 또 몇년 후의 정권이 책임져야 할꺼고.. 그럼또 그때의 대통령을 욕할꺼고... 돌고 도는 이 나라.. 어디까지 갈것인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야하는데
전 이런 사람의 딸이 정치판에 있는 것 자체가, 대통령하겠다고 나왔었다는 것 자체가 해외토픽감이 아닌가 생각해봐요-_-;
2222222 그러게나 말이에요~~~
33333333 우리 아빠가 박근혜 볼때마다 하시는 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박정희가 경제발전이룩했다고 박정희찬양하는사람들 답답해죽겠음. 제일 무서운사람들일세.
잘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