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오빠 되던 날
정상희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 덕에 가끔씩 동반한지도 꽤 여러 번이 되었다. 민물이 건 바다 낚시든 기회만 오면 가리지 않고 다니는 남편은 거절 당할 줄 알면서 도 늘 같이 가기를 원한다. 처음엔 얼굴도 타고 지저분하고 무슨 재미로 가느 냐고 핀잔도 해보고 요리 조리 핑계를 대며 피하기만 하였다.
기다림 끝에 인 생의 묘미를 통째로 낚아 올리는 짜릿한 황홀함을 가르쳐 준다고 호언하지만 사실은 내가 있으면 식사 문제가 수월하다는 걸 미리 눈치채고 있다. 릴의 사 용법이며 미끼를 달아 던져 주지만 별 흥미가 없어 산으로 다니며 취나물이나 고사리를 뜯는 재미가 더 쏠쏠해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가한 여름에 싱싱한 회를 질리도록 먹게 해준다는 꼬임에 훼리호 사건으로 시끄럽던 위도로 남편 친구인 P씨 내외와 바다 낚시를 가게 되었다. 그 부부 와는 가끔 모임에서 만나기는 하지만 여행은 처음이어서 편안한 마음은 아니 었다. 두 집 모두 첫딸들을 결혼시키고 난 후였는데 부부끼리 부르는 호칭부 터 우리를 서먹하게 하고 놀랍게 하였다.
부인은 형, 이라고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부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꼭 요즘 대학생 연인들 같았다. 순간, 신선하고 젊음의 활력이 '탁' 하고 스쳐 가는 기분이었다. 다정하고 사랑스레 대하는 P씨와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애교스럽고 상냥하게 얘기하는 부부를 보면서 남편과 나는 민망하고 부담스러웠다.
남편도 마땅치 않은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내게 그들의 절반이라도 하려는 듯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지금의 젊은이들이야 행동하고 표현하며 살지만 익숙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겐 잔잔한 충격이었다.
낚시 배 안에서, P씨의 줄에 우럭 두 마리가 한꺼번에 걸려 나왔다 . 큰놈은 - 당신이고 작은 놈은 당신 여자야, 하고 소란스럽게 웃는 그들 부부를 보면서 나는 미끼도 없는 낚시 줄을 던져 놓고 바다 한 가운데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하늘을 본다. 문화적인 혜택을 선두로 누리지 못하면 안달이 나고 변화하는 세대에 뒤떨어 지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자처하면서 정작 남편만을 위해서 무엇을 했나 하고 씁쓸한 기분이었다.
늘 바쁜 생활을 핑계로 가정을 위해 열심히만 살면 내 임 무는 다한다고 생색내기 일수고 한번도 내게 감동을 줘 본적이 없다고 멋도 낭만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라며 투덜대면서 결국엔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나였 다. 다른 사람에게는 베풀기도 잘하고 여유를 부리면서 왜 유독 남편에게만은 용서도 양보도 어렵기만 하고 보상받고 싶은 심리를 억제 할 수 없는지 모르 겠다.
그저 삶의 동반자이고 늘 옆에 있어 주는 남자인 채로, 어느 땐 전부이 다가도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에도 확신이 없어 접었다 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 때도 있다.
내성적인 남편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시작해야 대화가 되고 다투고 난 후에도 마무리까지 확실히 하고 싶은 내 성격 때문에 나이 값도 못 한다고 구박하면서 내가 먼저 말을 시킨다. 물건을 사는데 서툴 러서 못한다고 하지만 남편에게 선물 받아 본적이 드물어서 서운하고, 맛있는 음식점도 내가 먼저 알고 함께 가자고 조르면 마지못해 따라 나선다.
내가 무슨 백과사전이라고 모두 내게 맡기어 버리는 척 하지만 중요한 대목엔 가끔 제동도 거는 얄미운 남자다. 하지만 사소한 일 까지도 꼭 나에게 의논하고 내 뜻을 존중해주는 맛에 정서 적이거나 달콤한 부드러움은 없지만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남편을 신뢰하며 살고 있나 보다.
P씨 내외와 함께 한 시간들은 활기차기도 했고 부산스러웠지만 나에겐 색다 른 감정을 느끼게 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농어 낚는 걸 목적으로 한 위도에 서 낚시는 우럭과 놀래미로 만족해야 했다. 금방 건져 올린 맛있는 회를 마음 껏 먹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었다. 형형색색인 자갈밭의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노송들이 내 멋대로의 모습을 뽐내면서 자랑스레 서있고 바위 틈새로 소라며 굴이 지천을 해 잔재미를 더했다.
새벽엔 통통배들이 잡아온 새우, 병어,가자미, 게, 멸치 등 다양한 종류의 생선들을 쏟아 놓는다. 힘든 바다 농사임에도 불구하고 한 바가지 푸짐하게 주는 인심 좋고 정 많은 섬 사람들이었다. 타원형의 모양인 이 섬은 그림과 같아서 어느 한 곳도 지워 버 릴 수 없는 필름처럼 마음속에 새겨져 꼭 한번 다시 오리라 하는 아쉬움을 같고 우리는 그 섬을 떠나왔다.
그후 나는 변하고 싶었다. 학창시절의 순수했던 마음과 캠퍼스의 나무 그늘에 앉아 아름다운 미래만을 꿈꾸며 희망에 들떠 있던 그 시절이 그리워져 거꾸로 달려가 본다. 세상사에 오염되지 않고 밝고 투명했던,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그때, 외로움도 미 움도 좌절도 모르던 그 시절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갑자기 남편에게 오빠? 하고 부르니 무반응이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 니겠지, 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생전 하지도 않던 말을 하니 남편이 어리 둥절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도 나는 오빠, 오빠하며 자꾸 불 러 보았다. 나의 허전함과 그리움을 이겨 보려는 듯이...
새내기들이야 오빠 로 시작해 여보가 되는 게 능사이지만 이순을 넘긴 남편을 오빠라며 처음 부 르는 나도 뭐 먹다 들킨 사람처럼 화끈거리고 쑥스럽기 그지없다. 내겐 사촌 오빠도 없어 평생 처음 불러보는 말이었다. 말이라는 것이 나오는 데로 불쑥 할 때와는 달리 의도적으로 만들어 하려니 시험 보는 것처럼 어려웠다.
갑자 기 수다를 떨기도 하고 푼수 끼를 발휘해 엉뚱한 짓으로 웃기기도 하니 처음 엔 당황해 얼굴을 돌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도 싫지는 않은지 지금은 “응, 왜 그래!" 하면서 맞장구를 치기도한다.
이젠 잘난 자존심 다 버리고 최소한 지키고 살았던 부부간의 예의도 다 벗어 버렸다. 둘이만 있을 때는 “오빠”라고 부르며 발로 툭 툭 건드려도 보고 조금은 헐렁하고 부족한 척 하 는 아내로 기대이며 편안함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밖에서 듣고 온 섹시한 유머 도 들려주며 분수스럽게, 그렇게 살고 있다.
2000/ 8집
첫댓글 이젠 잘난 자존심 다 버리고 최소한 지키고 살았던 부부간의 예의도 다 벗어 버렸다. 둘이만 있을 때는 “오빠”라고 부르며 발로 툭 툭 건드려도 보고 조금은 헐렁하고 부족한 척 하 는 아내로 기대이며 편안함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갑자기 남편에게 오빠? 하고 부르니 무반응이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 니겠지, 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생전 하지도 않던 말을 하니 남편이 어리 둥절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도 나는 오빠, 오빠하며 자꾸 불 러 보았다. 나의 허전함과 그리움을 이겨 보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