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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더풀 큐레이터 원문보기 글쓴이: [B/S]구라테스
2013년에 첫걸음을 내딛은 민중미술 주제 특별전이 이제 해마다 열립니다. 오늘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현실인식과 예술발언을 우리 시대의 문제로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 바탕 위에 새로이 알아차리고 댓거리 하고 딴죽 거는 현실주의 미술의 그림마당을 열었습니다. 눈빛과 눈빛이 마주치고 째려보고 홅아보는, 추임새와 욕지거리와 말다툼이 어지러이 춤추는 우리시대 미술의 마당판이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원도심 주요 전시시설 6곳에서 같은 동시 분산하여 펼쳐집니다. 민주공원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 홍성담 화백이 동북아의 역사문제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룬 ‘야스쿠니의 미망’ 연작 50여 작품이 펼쳐집니다. 가톨릭센터의 대청갤러리에서는 팝아트와 민중미술의 다리를 놓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팝아트작가 강영민, 낸시랭, 임경섭, 박경효 등의 도발적이고 발랄한 작품이 기다립니다. 가톨릭센터 C&C갤러리에서는 시사만화가들의 현실 풍자 만화와 김효산, 최우창 등 사진가들의 작품이 함께 걸립니다.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는 1980년대 활발했던 판화운동 관련 사료들을 전시합니다. 일찍이 오윤 특별전을 연 바 있는 미부아트센터에는 민중미술 소장 주요 작품 30여 점을 전시합니다. 올해 새로이 마련한 민중미술 신세대 발굴프로젝트는 원도심창작공간의 스페이스닻, 또따또가 갤러리 두 곳에서 발랄하고 도발적인 현실주의 미술의 젊은 시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6/13(금) 개막식에 앞서 마련된 민중미술 심포지움에서는 민중미술의 과거를 되새겨 보고 현재를 갈무리하며 미래를 가늠해보려 합니다. 전시 행사가 집중된 6/14(토)에는 ‘홍성담 작가와의 만남’(민주공원 오전 10시-12시), ‘팝아트와 친구들 아트토크’(오후 2시-4시, 가톨릭센터), ‘토끼들의 반란’(오후 5시-8시, 스페이스닻)이 마련되어 작가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하루 종일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시 기간 중에는 큐레이터의 해설로 진행하는 전시 기행 프로그램이 6/21(토), 6/28(토) 두 번 마련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전시실 5곳에서 인증스탬프를 모두 받은 관람객에게 기념품을 드리는 행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1. 전시 개요
○ 제목 : 잠수함 속의 토끼 – 민중미술 2014
○ 일시 : 2014. 6. 10.(화) ~ 7. 20.(일) 월요일 휴관
○ 장소 : 민주공원, 가톨릭센터,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또따또가 갤러리, 스페이스닻, 미부아트센터
○ 세부 일정 및 배치
* 2014. 6. 10.(화) ~ 7. 20.(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부산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C&C갤러리, 보수동책방골문화관 전시실,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갤러리, 원도심창작공간 스페이스닻
* 2014. 7. 2.(수) ~ 7. 20.(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미부아트센터
○ 주최: 민중미술2014추진위원회
○ 주관 : 민주공원, 부산가톨릭센터,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미부아트센터
○ 후원 : (재)5.18기념재단
○ 문의 : 051_790_7414
2. 주제별 전시 배치
○ 야스쿠니의 미망 Ⅳ - 민중미술가열전 1 홍성담
2014.06.10.-07.20.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민중미술가열전’ 첫 번째 기획으로 마련된 홍성담 작가 특별전
○ 망각금지 – 시사만화와 사진전
2014.06.10.-07.20. 부산가톨릭센터 C&C갤러리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사만화가들의 작품과 사진프로젝트
○ 팝아트와 친구들의 위장취업
2014.06.10.-06.29. / 07.08~07.20. 부산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현실을 얼싸안고 놀고 자빠진 팝아티스트(강영민, 낸시랭, 박경효, 임경섭, 썬킴)들의 아트프로젝트
○ 판화의 틀을 타고 날아오르다 - 사료로 만나는 민중미술
2014.06.10.-07.20.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80년대 사회운동과 발맞춘 판화운동 작품 및 사료 전시
○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들 – 민중미술의 새물결
2014.06.10.-07.20.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갤러리, 원도심창작공간 스페이스닻
민중미술의 새로운 담론과 흐름을 표현하는 작품들의 도발적 시선
○ 민중미술 소장 작품전
2014.07.02.-07.20. 미부아트센터
(사)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중미술 컬렉션 30여 점 전시
3. 전시 행사
○ 민중미술 심포지움 / 2014. 6. 13.(금) 11:00-16:00 민주공원 소극장
○ 개막식 / 2013. 6. 13.(금) 17:00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 홍성담 작가와의 만남 / 2014. 6. 14.(토) 10:00-12:00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 팝아트와 친구들 아트토크 / 2014. 6. 14.(토) 14:00-16:00 부산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 토끼들의 반란 / 2014. 6. 14.(토) 17:00-20:00 스페이스닻
4. 미술관 기행 프로그램
① 민중의 발길 따라 미술의 눈길 따라
큐레이터의 해설로 진행하는 전시 기행 프로그램
일정 : 1회 / 2014. 6. 21.(토) 09:30-12:30, 2회 / 2014. 6. 28.(토) 09:30-12:30
동선 : 민주공원→부산가톨릭센터→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또따또가갤러리→스페이스닻
참가비 : 없음
② 민중미술 스탬프 찍기
전시실 5곳에서 인증스탬프를 받은 관람객에게 기념품을 드립니다.
기념품 배포장소 : 원도심창작공간 스페이스닻
* 기념품 수량 한정, 소진할 때까지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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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시 서문
잠수함 속의 토끼는 토낄 수 없다.
<잠수함 속의 토끼 - 민중미술 2014>를 여는 너름새
신 용 철
(민주공원 큐레이터)
‘잠수함 속의 토끼’를 건져내다.
2006년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다. 예술가의 인권을 다룬 것이었다. 화가, 예술기획자, 춤꾼, 가수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담고 있었다. 그 작품은 그 해 마련된 ‘인권’을 다룬 기획전에 나갈 것이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작가들의 술자리에 몸을 실었다. 정신을 잃었고 다음 날 촬영 영상을 확인하다가 ‘잠수함 속의 토끼’를 주절대는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정신이 나간 내 말을 누군가가 찍은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은 촬영 내도록 마지막 시퀀스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 즈음에 ‘잠수함 속의 토끼’는 내 무의식의 바다에 도사리고 있다가 술의 힘을 빌어 물 위로 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지금도 내가 언제 그 말을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엔 소설의 이론을 쓴 현실주의 문예이론가 게오르규 루카치가 한 말인가 하여 대학 1학년 때 들었던 황국명 선생의 <문학개론> 강의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것이 소설가 게오르규가 예술가의 사회적 숙명을 잠수함 속의 산소량에 민감한 토끼에 비유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억을 의심해보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것대로 황국명 선생을 만나 여쭈어 보면 밝혀질 일이다.
이 문제의 ‘잠수함 속의 토끼’를 다시 건져낸 것은 지난해이다. 원도심 주요 전시시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은 우리시대 ‘민중미술’을 다시 불러오는데 마음을 모았다. 원도심 5곳의 전시실에 민중미술 소장 작품 99점의 자리를 만들고, 이들에 ‘잠수함 속의 토끼’들이란 겉옷을 만들어 입혔다.
2013년에 첫걸음을 내딛은 민중미술 주제 특별전이 이제 해마다 열린다. 오늘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현실인식과 예술발언을 우리 시대의 문제로 다시 불러 들였다. 그 바탕 위에 새로이 알아차리고 댓거리 하고 딴죽 거는 현실주의 미술의 그림마당을 열었다. 눈빛과 눈빛이 마주치고 째려보고 홅아보는, 추임새와 욕지거리와 말다툼이 어지러이 춤추는 우리시대 미술의 마당판이 열렸다.
여섯 가지 겹
이번 전시는 원도심 주요 전시시설 6곳에서 나누어 펼쳐진다. 민주공원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 홍성담 화백이 동북아의 역사문제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룬 ‘야스쿠니의 미망’ 연작 50여 작품을 펼쳐 보인다. 가톨릭센터의 대청갤러리에서는 팝아트와 민중미술의 다리를 놓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팝아트작가 강영민, 낸시랭, 임경섭, 박경효 등의 도발적이고 발랄한 작품이 기다린다. 가톨릭센터 C&C갤러리에서는 시사만화가들의 현실 풍자 만화와 김효산, 최우창 등 사진가들의 작품이 함께 걸린다.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는 1980년대 활발했던 판화운동 관련 사료들을 전시한다. 일찍이 오윤 특별전을 연 바 있는 미부아트센터에는 민중미술 소장 주요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올해 새로이 마련한 ‘민중미술의 새물결’에서는 원도심창작공간의 스페이스닻, 또따또가 갤러리 두 곳에서 발랄하고 도발적인 현실주의 미술의 젊은 시선들을 만날 수 있다.
민중미술 물타기와 7080 카페
현실동인 선언(1969), 현실과 발언(1979)을 거치며 민중미술은 한국미술사에서 뚜렷한 너름새와 목소리를 내었다. 그들 민중미술가들이 뽑아든 갖가지 예술의 칼날들은 예리했다. 이식적인 근대화를 겪지 않았으면 자생적으로 마련되었을 봉건제 해체 무렵의 우리 예술사의 근대적 씨앗들에 대한 눈뜸, 현실을 담기 위한 새롭고도 오래된 매체의 복원과 활용(걸개, 판화, 탈 등), 서양미술사의 리얼리즘 개념을 넘어서는 우리다운 ‘현실, 현실인식, 현실주의’의 미적 근거 확보,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서양적 시각체계에 주눅 들었던 범동양적인 시각체계의 발견과 이론화 등은 우리 민중미술의 선언적인 본풀이였다. 하지만 민중미술이란 이름은 지난 35년을 거쳐 오며 안과 밖으로 갖가지 오해와 폄하를 겪어야 했다.
민중미술을 바라보는 바깥의 눈빛들은 지우기 또는 물타기였다. 민중미술을 아마츄어리즘을 벗어나지 못 한 미술운동으로 깎아내리거나 ‘형상미술’이라는 허울로 물타기 하더니, 이제는 잘 알려진 민중미술 일부의 사례를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과 체계 안으로 애써 넣으려는 새로운 물타기의 조짐도 보인다. 민중미술계 스스로도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현실의 갖가지 결들을 더듬지 못 했다.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을 만난 적 없는 젊은 작가들이 달라진 현실에 대한 갖가지 결들을 나름의 눈길로 찾고 있었지만, 이들과 민중미술은 만날 수 없었다. 젊은 작가들은 민중미술이란 이름이 두렵고 무서웠고, 민중미술의 이름으로 살던 작가들은 무슨 ‘7080 카페’처럼 듣던 노래 또 듣고 또 듣고 있었다.
돌팔매와 눈길 사이
민중미술의 자리를 둘러싼 안과 밖의 눈길을 두루 밝혀야 하는 마당에 나앉으니, 곳곳에서 날아올 돌 맞을 채비를 한다. 다만 돌을 던지기 전에 그대들이 든 돌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 그 돌이 무엇인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무엇에 쓰일 것인가?
지우기와 물타기의 고수들과 함께 락페스티벌을 즐기고 싶다. 락음악을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메탈음악의 꼴로만 한정해서 보는 사람들은 락의 갖가지 꼴들을 알아볼 수 없다. 민중미술을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틀이나 꼴로 한정해서 보는 사람들은 이후 펼쳐진 민중미술의 갖가지 꼴들을 알아차릴 수 없다. 락의 갈래가 다양한 것은 갖가지 다른 갈래 음악의 바탕들이 락이라는 태도 안에서 만나고 섞였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의 다양한 갈래들은 갖가지 다른 시각언어의 바탕들이 민중미술이라는 태도 안에서 서로 만나 놀고 자빠졌기 때문이다. 오디션프로그램 <탑밴드>에서 신대철과 유영석이 늘 다투었던 것은 태도와 테크닉의 문제였다. 민중미술을 둘러싼 논쟁들이 맨날 똑같은 소리로 반복되는 것은 민중미술이 애써 마련한 태도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줄창 ‘7080’만 듣는 7080의 고수들의 손을 잡고 미술관 옆 영화관에 가고 싶다. 현실주의의 미적 태도에 따라 갖가지 예술 형상들이 나올 수 있다. 그것들 중엔 우디 알렌의 영화처럼 정말 수다스러우면서 농담에 뼈를 박아놓은 것들도 있고, 홍상수의 영화처럼 비루한 일상의 민낯을 집요하게 전시하는 것들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나 사건을 추상의 몰골로 드러내는 김기덕의 영화 같은 것들도 있다. 미적 인식이 미적 태도를 갖추게 하는 것이고, 이러한 갖가지 태도가 작품의 다양한 결로 드러난다. 이들의 갖가지 다름들을 아우르고 꿰뚫는 오래된 미래 같은 눈길이 필요하다.
2014년 민중미술의 꿈자리에서 나는 밤마다 40년을 거슬러 잠수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토끼의 공포에 찬 눈길을 만난다. 이 눈길을 따라 죽음 같은 물고문 속에서 화가 홍성담이 만난 고향의 바다와 만난다. 그 바다 언저리에서 서서히 죽어간 아이들의 두려움에 찬 눈길과도 만난다. 우리의 눈길은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켜 볼 것이다!
야스쿠니의 미망 Ⅳ - 민중미술가열전 1 홍성담
홍 성 담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1979년)하고
제1, 3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광주오월항쟁 연작판화집 ‘새벽’(1985년),
환경문제 그림과 글 ‘나무 물고기’(2008년),
그림소설 ‘바리’(2013년)를 발표했다.
이 그림들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민족들을 비극과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대한 범죄 행위의 여러 가지 문화적 요인과 역사적 원인을 미술로 밝혀본다.
아울러, 현대동아시아를 언제든지 전쟁의 위협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북한 그리고 중국이나 타이완에도 언제든지 국민을 전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주의의 어두운 면은 없는가를 살펴본다.
일찍이 서해성은 내 그림을 ‘샤먼 리얼리즘’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요컨대 그가 도달한 양식적 단계를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샤먼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거의 한국의 리얼리스트만이 선취할 수 있는 특수한 문화적 거점이기도 하다. 사쿠라로 덮여 있는 ‘야스쿠니와 칼’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쿠라는 지금 샤먼 리얼리즘의 주술적 조형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사쿠라 양식화 시도는 넓은 의미에서 샤먼 리얼리즘의 양식 안에 포섭되어 있다는 뜻이다.…(중략)…오늘 한국사회는 홍성담을 비롯한 그 리얼리스트들이 가졌던 자세와 성취를 절박하게 부르고 있다. ‘야스쿠니와 칼’은 거기에 대한 정직한 대답으로 들린다. 이제 대중과 후배들이 답할 차례다.” - 한홍구, 서해성 「샤먼 리얼리즘論 ; 홍성담의 ‘야스쿠니와 칼’ (홍성담 「야스쿠니의 미망」(2009. 8. 14.-8. 31. 평화박물관)의 전시서문
이번에 민주공원에서 전시하는 그림은 본인이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렸던 <야스쿠니의 迷妄(미망)>연작이다. 이 그림의 일부는 2007년 일본 토쿄 ‘마키 갤러리’에서 전시했고, 또한 2008년에 ‘제주 아트스페이스 C'에서 2차 전시와 2009년 서울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99’에서 3차 전시를 했다. 그리고 새롭게 창작된 그림이 더 추가되어 이번 민주공원에서 4차 전시를 하게 되었다. 이번 4차 전시를 기점으로 본인의 <야스쿠니의 미망> 연작은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민중미술과 팝아트, <민중미술 2014>에 참여하며
- ‘팝아트와 친구들의 위장취업’ 전시 서문
강 영 민
(팝아트조합 대표 )
민중미술과 팝아트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2013년 1월 팝아트조합을 결성 해 <박정희와 팝아트투어>를 시작으로 한국현대사투어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아마 팝아트는 상업적인 미술이라는 통념에서 나온 질문인 것 같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고, 본인도 그 관련성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접점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구체적인 시발점은 2012년 대선 무렵 발표된 홍성담의 작품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를 보면서부터이다. 이 작품은 대선시국과 맞물려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나에게도 어떤 충격을 주었는데, 물론 그 엽기적인 작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예술작품이 첨예한 대선시국의 현장에서 이슈를 만들 수 있다는 현상자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예술이 현실과 유리 된 것이 아니라 개입하고 각성을 줄 수 있다는 점, 전문가를 넘어선 시민대중이 각자의 감상을 격렬하게 토로하는 장이 한 그림에 의해 형성됐다는 점에서 예술의 힘을 느꼈다.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때부터 홍성담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한국의 민중미술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민중미술이 낯설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홍대 미대 학창시절에도 민중미술계열의 작품을 하는 학우들이 있었으며, 미술계 현장에서도 그룹전이 많이 열려 꽤 익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씬(scene)에 관심이 없었으며 혐오감마저 들었었다. 그 이유는 현실을 은유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거나, 색감이 후지다거나, 데생이 이상하다는 등, 주로 조형성의 미숙함에 대한 비호감이 주였지만, 무엇보다 표현양식이 진부하다는 점에서였다. 왜 색깔은 빨간색이 많으며 인물은 하나같이 굵은 테두리에 도끼눈인 건지. 이 그림이나 저 그림이나 똑같은 데 개별 작가의 어떤 개성이 드러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민중미술을 배태한 문화는 어떠한가.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으로 80년대의 영미권 팝컬쳐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던 이른바 X세대인 나에게 운동권문화는 촌스럽고 과격하고 청승맞고 불쾌스러운 혐오문화였다. 그건, 그러니까 지금의 일베(일간베스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자면, 결국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당선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는데 스스로 놀랐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통)의 딸이고, 그 사실이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박통은 친일파이자 독재자라는 단순한 정보 뿐이었다. 이 후 부정선거 논란도 있었지만 어쨌든 절반 가량의 국민이 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으니, 나는 대한민국의 절반을 모르는 셈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박통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는 대부분 진보진영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이는 균형잡힌 시각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작업실(홍대 앞) 인근의 박정희 기념관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디자인 평론가 최범 선생님과 의기투합해 투어의 형식으로 참가자들을 모았다.
투어는 매우 재미있었고, 독재자로 굳어진 박통의 예술가적인 면모, 인간적인 면모 등 입체적인 관점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박통이 재임기간 중 한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대한민국 근대의 조물주라고나 할까. 당시 최범 선생님이 평론집 <한국 디자인의 신화를 넘어서>를 출간하셨는데, 이 책에서 박통의 '미술수출'이라는 휘호를 보고 도대체 이 사람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구나, 라는 감탄마저 하게 됐다. 이 구호는 오늘날까지 한국 미술계의 숙원사업이 아닌가. 그간 한국 미술계의 단 하나의 구호가 있다면 단연코 이것이리라.
유신의 부활이니, 과거의 망령이니 하는 작금의 비판 속에서 박통을 비롯한 군부독재정권과 싸워왔던 민주화세력과 민중미술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대사를 돌아보는 <팝아트투어>를 계속 진행하는 중, 작년에 개최되었던 <6월 항쟁과 팝아트투어>를 통해 서울의 이한열 기념관과 부산 민주공원, 가톨릭센터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조합은 올해 6월 이 세 기관과 연계하여 기획전을 연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보수와 진보라는 역사의 큰 두 물줄기가 변증법적 작용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세대는 당연히 이 두 세력의 역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87년 체제'가 확산시킨 평등주의는 독재로부터 자본을 해방시켜서 시장주의를 확산시켰다. 이 평등주의 이념은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한 요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비자민주주의로 전환됐다." (이택광 <인생론> 86쪽)라고 말한다. 나는 팝아트적 태도가 바로 이 시장주의와 소비자민주주의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심화되는 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미술의 지형은 예술가들이 자본을 보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작품경향을 나눌 수 있다. 민중미술은 자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최정화, 박이소로 대표되는 90년대 신세대 미술은 자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2000년대 들어 팝아트는 자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급기야 낸시랭은 "아이 러브 달러"를 외치며 자본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이는 DJ, 노무현, MB 정권을 거치며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예술계에도 미치게 되는 징후로 읽혔다.
팝아트는 세간의 평가대로 무조건 자본을 찬양하는 미술장르가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초기 팝아트는 오히려 자본에 비판적, 풍자적이었다. 민중미술가 오윤의 '마케팅 연작'만 보더라도 코카콜라 등의 소재가 빈번히 등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대중소비문화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예술가의 인식에서 나온다. 팝아트는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오히려 주류 대중소비문화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세간의 평가는 한국적 팝아트의 척박함과 문제의식의 실종에서 오는 것이지 쟝르 자체가 무조건 친자본적인 것은 아니란 얘기다. 나는 진정한 한국적 팝아트가 가능하려면 현실과 맞부닥치며 예술가와 관객의 정치적 주체성을 고민한 민중미술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고 발전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당연히 현재 진행형이고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잊지 않겠습니다!
‘망각금지 – 시사만화와 사진전’ 전시 서문
천 명 기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장)
수백 명의 죄 없고 순수한 승객들과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혹자는 단군 이래의 모든 국가적 위기나 재난 앞에서 흘렸을 눈물을 모아도, 이번 세월호 참사로 흘린 눈물만큼은 안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과 유가족이 너무나 불쌍해서, 수 백의 생명을 가둬놓고 저들만 살겠다 뛰쳐나온 이들의 이기가 정말 놀랍고 분해서 울었습니다.
구조와 참사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기력과 무능, 무책임에 대한 절망, 그나마의 대국민 사과도 여론의 향배에 수위를 맞추는가 하면, 내도록 전지적 작가시점의 남 탓만 토해내는 이나라 최고권력자의 노골적인 당당함이 어이가 없어서, 그 무능과 무기력을 애써 싸고 도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그 안타까운 목숨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일련의 사람들이 슬퍼서도 울었습니다. 단일 참사에서 이처럼 다양한 이유의 눈물을 온나라가 흘렸던 역사는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흘려 모인 눈물 위로 우리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새긴 국화와 노란리본을 세월호가 잠긴 바다에 띄어보냈습니다.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무엇이 미안하고 무엇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배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목숨들을 모조리 놓치고 만 무능력과 무기력에 대한 책임과 비판은, 당장은 여객 회사와 현 국가운영주체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운영주체와 선박회사를 지지하거나 방치한 이유의 총합은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 개개의 크고 작은 이기와 탐욕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국가적 인재 참사를 겪었습니다. 때마다 다시는 실수가, 부실이 있어서는 안된다 외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다짐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과 다짐들은 진즉에 안전불감증과 망각이라는 바다에 침몰해 버렸었다는 사실을 이번 세월호 참사가 확인해 줬습니다. 크고 작은 인재형 참사 때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안타까워합니다. 사고원인과 주체에 분노하고,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가의 무능에 대해 절망 합니다. 그리고는 한 목소리로 갖가지 대안마련 약속과 재발방지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외 없이, 여느 시기에 이르면 그 약속과 다짐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것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 반복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만 최적화 한 인재형 대형참사 매뉴얼이 아니냐는 여느 비아냥에도 별 대꾸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되갑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여전히 16명의 생사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즈음, ‘그동안 충분히 분노하고 슬퍼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 이제는 세월호 이야기 그만하고,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그러나 말의 저의는 시간이 갈수록 절망과 슬픔의 덩어리가 커져가는 실종자 유가족들 마음을 유린하는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실종자 생사가 모두 확인이 되고, 사고와 구조 책임자들에 대한 명명백백한 수사와 사후대책, 유가족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배상이 마무리 된 후에라도 그 말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실, 무책임한 구조주체들에 대한 책임부여, 보상과 배상, 심리적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수많은 난제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부모와 자식, 배우자와 형제, 제자와 스승을 잃은 한과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앞으로 감당하고 싸워야 할 주체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주체들이 어떻게 유가족들을 힘들게 할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즈음에 유가족들에게 절실 할 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와 응원입니다. 앞으로 감당할 유가족들의 싸움은 유가족들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앞으로 일어날 이 나라의 모든 사고원인들과 우리 국민들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시회 ‘망각금지’는 바로 그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시사만화작가들과 사진작가들의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각 작품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사의 원인, 구조작업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능력, 그 무능력이 딛고 있는 자본, 언론, 권력의 적나라한 본질 등, 그래서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며,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려드릴 것입니다.
부디 이번 전시회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억만 분의 일이나마 진혼과 위로를, 사고유발자들과 관리감독 주체에는 강한 경종을, 전시회를 다녀간 수많은 시민들에게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번 더 마음으로 다지고, 누대로 그 약속이 지켜져서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인재형 재난을 막아내는 거대한 둑의 밑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들
- ‘민중미술의 새물결’ 전시 서문
(민중미술의 새물결 큐레이터)
이미 몇 달 전인가 이 전시의 공동기획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도 작가이기에 전시 제안은 받아보았어도 전시 기획 제안은 처음 받아보는 일이라 한동안은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두려움 속에서도 이 일에 뒷걸음질 치기보다는 그 발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기획력에 대한 부담감 없이 조금 더 작가 친화적인 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혹은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기대들은 작가를 섭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꽤나 무참히 깨지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누구보다 작가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만들어보겠다는 우리의 마음만으로 전시를 꾸려가는 것에는 분명 어려움이 더 많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전시 기획자들의 마음(혹은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던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예전에는 미처 충분한 관심을 갖지 못했던 주변 작가들의 작업에 마음과 귀를 기울여보는 과정이었기에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선사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는 참으로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이러한 현실에 어떤 발언들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침묵하고 싶은, 혹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기도 합니다. 미술계의 소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집니다. 많은 이들이 요즘 미술계의 위기와 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많은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생활로서의 예술, 공동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주의 예술,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들의 모임 등 그 형태나 방식도 다양합니다. 본 전시에서는 그러한 작가들의 목소리를 곳곳에서 모아보고자 했습니다.
낭중지추, 울트라슈퍼애국토끼, 불안전국가국민전, 앵그리 래빗, 탈옥토끼들, 토낀 토끼들, 미로에서 온 요가 토끼들, 성난 토끼들, 썽난 토끼, 일상의 봉기를 행사하다, 모두에게 주어진 봉기, 어슴푸레한 봉기, 민중미술 리모델링, 우리가 우리를 부르는 휘파람, 우리, 여기 있소, 시시비비, 하얀 토끼를 찾아서, 민중미술 재장전, 침묵, 전세역전, 폭발직전, 썽난 폭발, 특보 : 새로운 소식 따위를 특별하게 알림,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들, 설욕전 등...
다소 유머러스해 보이기도 하고, 또 진지하기도 한 위의 문구들은 이번 전시 주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참여작가들의 제안을 모아놓은 것 입니다. 이번 전시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언어는 없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 오늘날의 현실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발언하는 장이 이 전시를 통해 펼쳐지기를,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고민과 실천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