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의 대통령은 웃고 있었다. 그럴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웃고 있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하며 웃고 있었다.
봄은 깊어가는데... 대통령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살짝 짜증이 났다. 저 연설문은 누가 썼을까. 연설비서관부터 바꿔야겠군. 시선은 대통령의 입을 향하고 있지만, 생각은 허공을 떠돈다.
국민 여러분과 울고 웃으며 지난 2년간 쉴 틈 없이 뛰어왔단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저 연설문은 사람 아닌 AI가 초딩 고학년 수준에 맞춰 쓴 것 같다.
연설문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만기친람의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 걸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집중하고, 애쓰고, 힘을 쏟았고 그리하여 구축하고, 혁파하고, 확립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뒤에 그럼에도 세계적인 고물가와 고환율과 고금리와 정쟁을 일삼는 정치로 인하여 그 노력과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남 탓을 한다.
지루하다. 대통령의 말은 허공을 떠돌고 나의 시선은 ‘The BUCK STOPS here’라는 글귀가 적힌 대통령 책상의 장식물로 향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라는 그 장식물은 미국의 ‘날리면’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준 선물이다.
The buck stops here.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글귀란다. 그런데 좋아하는 그 글귀와는 달리 책임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하나씩 따져보자.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정상회담’을 하고 나오는 길에 무심코 뱉은 비속어 실언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일이 지금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비속어 실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대통령은 앞에 나서서 수습하는 대신 참모들에게 떠넘겼다. 그래서 나온 게 ‘바이든-날리면’이다. 대통령은 지록위마의 억지로 책임을 회피했고, 국민은 자기의 청각을 의심해야 했고,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부인이 받은 ‘명품백 선물’이 알려졌을 때 곧바로 선물을 돌려주고 사과했더라면 지금처럼 일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함정취재의 피해자라고 우기다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다가, 국가기록물로 보관 중이라고 억지를 부리다가, 박절하지 못해서 매정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동정심에 기대어 슬쩍 넘어가려다 화를 키운 건 책임을 회피하려다 그런 거다.
이태원의 좁은 언덕길에서 15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대통령은 참사의 책임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예상되는 위험에 대비하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면, ‘경찰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들 딸 잃은 부모들이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피눈물을 흘리고, 이태원 특별법으로 여야가 대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채수근 해병 문제도 그렇다. 책임을 아는 지휘관이라면 전시도 아닌 평시에 대민 지원을 나간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책임을 아는 대통령이라면,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 범위가 넓고 무겁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단장을 책임 범위에 명시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향한 대통령의 그 ‘격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참 군인’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의 수괴로 몰려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특검 문제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게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The buck stops here’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숙연함이 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선물 대신 노무현 말씀을 액자로 만들어 집무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어야 한다.
나는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그 장식품이 맘에 들지 않는다. 미국을 숭상하는 사대주의가 느껴져서 싫다. 영어를 섞어 쓰는 걸 좋아하는 대통령은 이번 연설문에 ‘하이 타임’이라는 영어를 썼다. 지금이 무엇을 하기에 적기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영어를 쓸까.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지만, 내 눈에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외교에서 실리와 실용을 앞세우고 국익과 국격을 중시하는 대통령은 봤지만, 가치 외교라며 미국에는 굴종, 일본에는 굴신, 중국에는 적대, 러시아에는 도발을 외교로 아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1년 9개월 만에 열렸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두 번째 기자회견은 낙제점이 아니라 채점 불가다. 총선 다음 날 내놓은 56자짜리 반성문에 국민은 화를 냈고, 그러자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중계하는 기괴한 편법으로 반성 아닌 자화자찬의 염장질을 하여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그리하여 마지못해 기자회견을 했는데, 자화자찬에 남 탓이나 하는 이전의 반성문 재탕이니 채점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
기자들의 질문은 ‘외람되지만’에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로 바뀌었고, 대통령의 답변은 본질과 핵심을 비켜가는 동문서답에 ‘하여튼’ ‘어쨌든’의 두루뭉술이거나 내가 싫은 건 절대 안 된다는 독선의 고집불통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그걸 어떤 언론은 대통령이 ‘종이 한 장 없이’ 73분이나 기자회견을 했다고 미화하고, 어떤 언론은 기자회견을 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치켜세운다. 거듭 말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과 독선은 성정 탓이기도 하지만 ‘친윤’ 언론의 과보호에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친윤’ 언론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과 이재명과 조국에게 정쟁 프레임과 정치 공세 프레임과 ‘범죄자’ 방탄 프레임 등등 온갖 혐오 프레임과 양비론 프레임을 씌워 대중의 정치 불신을 더욱더 조장할 것이다.
암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중심적이라 역지사지를 모르고, 남들의 망막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볼 줄 모르고, 그러하니 남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부족하다.
오만과 불통과 독선은 그 결과물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걸 모른다. 그러니 반성문 써내라 해도 매번 같은 걸 써낸다. 나는 옳은데 남들이 몰라주는 것이라는 고집불통의 'My way', 지긋지긋하다. 정답을 알려줘도 거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My Way'는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다음에 또 집무실 책상에서 연설문 낭독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제발 ‘날리면’ 대통령이 선물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장식물을 치우고 하기 바란다. 참과 거짓이 뒤바뀐 세상에 사는 리플리가 연상되어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