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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釋대원성
부산연합회 임제록 제1강-4 (2012.06.28)
1-5 입을 열면 벌써 틀린다.
3. 無位眞人(무위진인)
4-1 喝, 喝, 喝 (할, 할, 할)
不屬因不在緣故(불속인부재연고)라하니라.
因에도 속해있지 않고 緣에도 속해있지 아니했다. 우리는 입만 떼었다 하면 인연, 인과연기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고급 법은, 명품 법은 인과하고 관계없습니다. 연기도 아닙니다. 저~ 저급한, 초등학생법문이 인연이야기이고ㆍ인과이야기고ㆍ연기이야기지, 진짜 명품불교는 인과 아닙니다. 연기도 아니고, 空도 아닙니다. 보십시오. 부처님말씀입니다.
法離文字라. = 법은 문자를 떠났다. 말로 설명하는 것 다지고 안 돼.
인연에도 속해있지 않다. 진짜 법은 인연하고 관계없다. 이것만 가지고도 오늘 수확이 아주 큽니다.
불교 안에는 수준 따라서 별의별, 천차만별의 법이 있다.
그런데 임제스님이 말씀하시는 이 명품 법. 석가모니도 같이 말했네요.
그러니까 임제스님 배짱이 딱 맞으니까 이끌어 온 겁니다.
명품 법은ㆍ고급 법은, 文字하고 관계없습니다. 인연하고도 관계없습니다.
爲儞信不及(위이신불급)일새.
그대들이 그 도리를ㆍ그 도리를 믿지 아니할세.
所以로 今日葛藤(소이금일갈등)이니라.
그래서 오늘 이 소리 저 소리하고, 누구하고 시시비비하고, 한 번 나와 봐라 나하고 법거량 하자하고, 옳으니 그르니 하는 이런 소리하게 됐다.
이 葛藤이라는 말 속에는 얽히고설킨 그런 사연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이 사실, 아주 흔한 일인데요. 보고 듣고 하는 이 사실이 무슨 인연하고 관계있습니까?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무슨 설명이 필요해요?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자고 시간 마치면 돌아갈 줄 알고, ‘중간에 쉰다더니 왜 안 쉬는가?’ 하고...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며 그 사실ㆍ그 당체, 여기에 무슨 인과가 필요합니까? 그것이 진짜 법이거든요ㆍ그것이 진짜 법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나를 움직이고ㆍ세상을 움직이고ㆍ내 주인공이고ㆍ참 주인공이 바로 그거거든요. 그것 하나 잘 챙기면 그만 끝입니다. 불교 끝이라고요.
천수경 몰라도 좋아요. 반야심경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진짜 핵심을 내가 잡고 있는데, 무슨 반야심경이고ㆍ천수경이고 뭐 그것 몇 푼어치겠습니까?
임제록불교는ㆍ임제록의 불교는 그렇습니다. 수준이 다르지요? 앞으로 넘어가면요? 정말 기절초풍할 내용들이 많습니다. 어떤 기절초풍할 내용이 있느냐?
옛날에 무착문희 선사라고 아주 신심 있는 이가 있어요.
저 장안에서 오대산까지 문수보살 친견하러 간다고 일보 일 배하고 갔어요. 겨울이고 여름이고 할 것 없이 몇 년 걸려서 갔어요.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그 사람보고 하는 소리가 “야 문수보살, 오대산에 문수보살 없다.” 몇 년이 걸려서 오대산까지 온 사람보고... 하~~ 일보 일 배하면서,
- 요즘 티벳 불교인들, 일보 일 배하면서 걷는 것 많잖아요. 그런 식입니다. 옛날에는 더 했지요. “오대산에 문수보살 없다. 뭐가 문수보살인지 니 아냐? 일러주랴? 문수보살 친견하려고 한걸음, 한걸음 절하면서 가는 너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문수다.” 그랬습니다.
“너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문수다. 어디까지 가서 문수보살, 무슨 문수를 본단 말이냐?” 이런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殺佛殺祖.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 간혹 들어 보셨지요? 못 들어본 분들도 많을 겁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 부처 죽이고 조사 죽이는데 부모는 왜 안 죽이겠습니까? 그 소리 여기 다 있습니다. 그런 것은 곡해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너무 부처니ㆍ조사니ㆍ관세음보살이니ㆍ지장보살에게 빠져있습니다. 하~~ 너무 빠져있습니다. 나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 갖고 나는 어디 가버리고 부처님만 있고, 관세음보살만 있고 나에게는 온통 지장보살만 있는 겁니다. 나는 어디 가버리고...
참 나 찾고자 하는 것이 불교인데, 나는 어디 가버리고 관세음보살만 나한테 있고 지장보살만 있으니까요. 물론 그런 불교는 그런 불교대로 일리가 있지요. 많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주고요. 또 영험도 주고요. 관세음보살 때문에 나는 살았습니다. 하는 사람도 솔직하게 많습니다. 물론 그런 불교도 일리가 있지만, 이 명품 불교ㆍ임제스님의 불교는 그런 차원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 이것 곡해하면 임제록공부 하러 잘못오신 것이 되고, 제대로 알아들으면 한 번 눈이 활짝 열리고 키가 흠씬 커진 것을 느낄 겁니다. 불교 안에서 소견이...
‘야~ 오늘 내가 임제록 공부 조금 맛봤지만 이것 가지고, 야~ 이것 상당히 내 가슴이 넓어지고 뭔가 시원하다.ㆍ밑이 쏵~~ 빠진 것 같이 후련하다.
하~~ 뭐 자질구레한 것이 불교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이 법회에 인연을 아주 참 잘 맺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恐滯常侍與諸官員(공체상시여제관원)하야,
왕상시 = 도지사하고 그리고 관료들, 많은 관료들에게 아주 꽉 막히게 = 정체되게, 생각이 정체되게 해가지고서
昧他佛性(매타불성)이니, 오히려 불성을 어둡게 할까 봐 두렵다. 그러니까
不如且退(불여차퇴)니라. 그만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가는 것이 낫겠다.
이쯤하고, 이제 법문 그만하고 물러가는 것이 낫겠다.
喝一喝云(할일할운)
少信根人(소신근인)은, 믿음이 적은 사람,
정말 진정한 불법에ㆍ살아있는 불법에 믿음이 제대로 안 미쳐지는 사람은
終無了日(종무료일)이로다. 마칠 때가 없을 것이다.
끝없이ㆍ끝없이, 밖으로ㆍ밖으로만 쫓아다니다가 불법에 대해서 끝낼 날이 없을 것이다.
久立珍重(구립진중)하라. 오래 섰으니 그만 이제 쉬어라.
중국에서는요? 법사가 법상에 앉고, 청중은 서서 듣습니다. 청중은 법문을 서서 들어요. 그래 법문이 길지가 않아요. 요것 금방, 사실 요것가지고 한 10분이면 끝낼 법문입니다. 제가 길게, 이렇게 장황하게 해서 그렇지, 이 내용은 10분, 10분도 채 안 걸리지요. “오래 섰으니 그만 쉬세요.” 이렇게 해서 上堂법문 일단락이 막 이제 끝났습니다.
2. 正眼(정안)이란 은 뛰어 넘겠습니다.
여기 너무 좋은 내용이 많으니까요. 그 다음에 3 無位眞人(무위진인)봅시다. 야~~ 이것 중요한 말입니다. 이것은 “차별 없는 참사람.”
無位, 位 = 차별이라는 뜻도 되고, 지위도 되고요. 우리의 여러 가지 차별. 지금 눈앞에 스님도 보이고 일반 신도도 보이고, 남자도 보이고 여자도 보이고, 무슨 이런 얼굴도 보이고 저런 얼굴도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도 차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位자입니다. 차별 位ㆍ지위 位.
그런데 우리 진짜 참 생명은 그런 것 없습니다. 그것이 無位眞人입니다.
임제록에서 꼭 기억해야할 낱말이 無位眞人입니다.
이것이 참 생명입니다. 이것만이 우리 인간의 궁극적 차원입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 차원. 역사적인 차원은 이렇게 차별이 있습니다.
남자다 여자다. 배웠다 못 배웠다. 있다 없다. 늙었다 젊었다 하는 그런 차별이 다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부처님이 별로 관심 없습니다. 궁극적 차원. 보자기가지고 부처님은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보자기에 싸인 그 내용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보자기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내용물은 이것은 아주 훌륭한, 지극히 고귀한 보석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다른 표현으로 하면 뭐라고요? “부처님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그대로 “부처님이다.” 우리 이렇게 생긴 보자기 안에 내용물은 부처님이다. 이것이 인간의 궁극적 차원입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바의 차원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멀리 있는 것 아닙니다. 바로 그 보자기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보자기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보자기 안에 그것이 다 있다니까요. 그것이 無位眞人입니다. 밖의 보자기는 차별입니다. 여기는 차별 없는 참사람. 참 생명이고 참사람이지요.
그것 아는 것이 불법이다. 그것 아는 것이 진정한 불교다. 명품 불교다.
3. 無位眞人(무위진인)
上堂云 赤肉團上에 有一無位眞人하야
常從汝等諸人面門出入하나니 未證據者는 看看하라
時有僧出問 如何是無位眞人고
師下禪狀把住云 道道하라
其僧擬議한데
師托開云 無位眞人이 是什麼乾屎橛 하시고 便歸方丈하다
上堂云(상당운), 오늘, 이 날은 다른 날입니다.
赤肉團上(적육단상)에 有一無位眞人(유일무위진인)하야,
赤肉團上. 이것은 고깃덩어리, 뻘건 고깃덩어리. 우리 몸뚱이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의 無位眞人이 있어. 차별 없는 참사람이 거기 있어.
아까 제가 보자기라고 하고, 보자기는 赤肉團上입니다. 고깃덩어리.
거기에 차별 없는 참사람. 진짜 내용물이 있어.
常從汝等諸人面門出入(상종여등제인면문출입)하나니,
항상 그대들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ㆍ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글도 보고, 얼굴도 쳐다보고, 말소리도 듣고, 眼耳鼻舌身意, 전부 얼굴에 집중 되어있지요. 眼 耳 鼻 舌 身 意. 그래서 뭐, 발가락에도 있지요. 있기야 있지만, 대다수 99%가 얼굴에 있으니까요. 面門出入이라.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보고 듣고, 얼굴 찡그리고 울기도 하고요. 面門出入하나니,
未證據者(미증거자)는 看看(간간)하라. 證據하지 못한 사람, 아직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은 잘 보아라ㆍ잘 살펴보아라. 그러니까
時有僧出問(시유승출문), 그 때 어떤 스님이 있다가 턱~ 튀어나와서,
- 이 법문은, 제대로 법문이 되려면 서로 오고 가고 묻고 되도 않는 객기로써 법거량도 하고, 우리 어릴 때는 선방에 그런 분위기가 사실은 많았습니다. 큰스님이, 조실스님이 법문하면 나와서 절하고, 막 되도 않는 질문도 하고, 그런 패기가 있었는데 요즘 선방에는 그것마저도 사라져 버렸어요.
참 유감스러워요. 사람을 대해본 경험이 적은 어떤 선지식들은요? 벌써 벌벌벌벌 떨어요. 저기서 수좌가 앞에 나와서 절 삼배하고 질문하려고 하면, ‘저 놈이 무슨 질문 할까?’ 하고 벌써 겁을 내는 겁니다. 대중관계에 익숙하지 아니한 순진한 선지식들이 많잖아요. 오히려 젊은 수좌들은 능글맞아요. 능구렁이 같아요. 그런 젊은 수좌들이 있어요. 또...
선지식들은 오히려 옛날스님이 돼놔서 아주 순진하고 공부 밖에 모르니까 벌벌벌벌 떠는 겁니다. 질문도 하기 전에 白骨이 滿山이라고 그래요.
백골이 만산이라. 백골이 산에 가득하다 이 말입니다. 너희 전부 송장이다. 송장 중에서 뼈다귀 하나만 남아서 뭐라고 뭘 질문 할 것이 있느냐? 라고 아예 질문도 하기 전에 무시해 버려요 또. 그래가지고 얼버무려 버립니다. 아무튼 그런 것도 우리가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기 어떤 스님이 떡~ 나왔습니다. 뭐라고요?
如何是無位眞人(여하시무위진인)고?
어떤 것이 無位眞人이냐? 차별 없는 참사람이냐? 스님이 차별 없는 참사람 이야기를 하니 내가 차별 없는 참사람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러니까 이 임제스님은 참 친절 하신 분입니다. 저 같으면 안 그럴텐데.
師下禪狀把住云(사하선상파주운), 禪狀에서, 법상에서 떡~ 내려와요.
정말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그럽니다. 질문 했으니까 그 사람을 자비로 제대로 일깨워 주려고 禪狀에서 내려와 딱~ 멱살을 잡고 “일러 봐”
道道(도도)하라. 道道가 “일러 보아라ㆍ일러 보아라.” 이 말입니다.
이를 道. 말할 道. 한번 말해 봐라. 무엇이 무위진인가? 말해 봐라.
너도 무위진인이고, 나도 무위진인데 무위진인이 무엇인지 일러 봐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其僧擬議(기승의의)라. 그 중이 머뭇거려요.
擬議라고 하는 것은 머뭇거리고 머뭇거려요. 어떻게 대답할 길이 없는 겁니다. 질문은 했지만 안목이 없으니까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師托開云(사타개운), 임제스님이 잡았던 멱살을 확 밀쳐버리고,
無位眞人(무위진인)이 是什麼乾屎橛(시십마간시궐)고?
無位眞人이 이 무슨 똥 막대기 같은 놈이냐?
乾屎橛. 간시궐 이라는 화두도 있긴 있습니다. 여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무위진인이 이 무슨 똥 막대기 같은 놈이냐? 천하에 쓸모없는 놈. 제일 천하디 천한 것. 냄새나는 놈. 아주 더러운 냄새나는 놈. 세상에 무위진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줄 알았는데, 이것 제일 천한 놈이잖아.
우리는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참 생명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사람이고ㆍ정말 무위진인이고, 자신의 참 생명을 모르는 사람은 똥 막대기다. 그 뜻입니다. 스님이 나와서 떡~ 질문을 했는데, 무위진인이 떡 떡 걸어 나오거든요. 무위진인이 무위진인의 멱살을 잡고 한번 일러 보아라. 하니까 아무 대답을 못하잖아요. 뭔가 표현을 해야지요. 하다못해 할을 하든지, 아니면 임제스님을 한번 업어치기를 하든지, 귀싸대기를 한번 후려갈기든지, 그랬어야 하는데 이것이 뭐 얼떨떨해가지고 어떻게 칼을 빼놓고는 무도 못 자르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근사하잖아요.
無位眞人이 是什麼乾屎橛고?
이 무슨 똥 막대기냐? 하~기가 막힌 무위진인인데 “무위진인이 어느 순간에 똥 막대기가 돼버렸잖아~ ” 안타까워서 그런 표현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便歸方丈(변귀방장)하다. 곧 방장실로, 조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보십시오. 이것이 이 3번이 법문 한 단락입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이것 10분이 걸리겠습니까? 5분이 걸리겠습니까? 너무너무 간단합니다.
옛날에는 전부 세워놓고 법문했고, 또 조실스님의 진짜 큰 법문은 그렇게 장황하게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눈을 뜰 사람들은 다 떴고, 내용 알 사람들은 다 아니까요.
임제스님 법문을 “덕산 방ㆍ임제 할” 그래요.
덕산스님은 방망이로 잘 후려쳤어요. 아까 황벽스님처럼... 황벽스님처럼 방망이를 가지고 사람을 잘 팼어요. 그것도 아주 친절한 법문이고, 임제스님은 할입니다. 고함치는 겁니다. “할~” 하고 고함치는 겁니다.
큰스님들 법문하실 때 더러 그런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이것도 우리나라 법맥이 전부 임제스님 후손이고, 임제스님 법문을 물려받았다. 라고 해가지고 큰스님들이 “할” 을 좋아하네요. 할을 좋아해요. 제가, 여기저기 행사에 쫓아다녀서 보니까 큰스님이 열반하셨는데, 조사를 하는데 할을 하고 있어요. 아, 그 전부 슬픔에 젖어있고, 스님의 행적을 찬탄하고 또 슬퍼하고 애도하는 그 마당에서 할을 하고 있다니까요.
임제스님의 할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우리나라 큰스님들이 남의 상가에 와서 할을 하고 자빠졌겠습니까? 이것은 이렇게 표현해야 딱 맞아요.
“할을 하고 자빠졌어.” 세상에 그렇게 분별이 없다니까요. 아무리 임제스님의 할을 좋아해도 그렇지, 그것은 그 자리가 아니잖아요ㆍ그 자리는 아니잖아. 아무튼 그런 정도로 앉을 자리 설 자리ㆍ똥오줌 못 가릴 정도로 임제스님을 좋아한다. 이 뜻입니다. 임제스님을 높이 숭상하고 그래 임제스님 할이라도 흉내 내자 이것이지요. 내가 뭔지는 모르지만, 할이라도 한 번 흉내 내자. 그런 분위기도 있습니다. 이것 다 임제록을 이야기할 때는 이 이야기 다 해야 됩니다.
4-1 喝, 喝, 喝 (할, 할, 할)
上堂에
有僧出禮拜어늘 師便喝한대 僧云 老和尙은 莫探頭好하다
師云 儞道하라 落在什麼處오 僧便喝하니라
又有僧問 如何是佛法大意오 師便喝한대 僧禮拜어늘
師云 儞道하라 好喝也無아 僧云 草賊大敗로다
師云 過在什麼處오 僧云 再犯不容이로다 師便喝하니라
그래서 제가 제목을 喝, 喝, 喝 이렇게 했지요? 喝, 喝, 喝
제목도 아주 잘 붙였네요. 이것도 다른 법회입니다. 법회가 달라요.
딴 날 법회입니다. 오늘 법문을 여러 번 하네요.
上堂에, 법상에 올랐다. 이 뜻입니다.
有僧出禮拜(유승출예배)어늘, 이 보십시오. 분위기가 이렇습니다.
옛날 임제스님 당시의 선방 분위기는ㆍ선방 분위기는 최소한도 이랬습니다. 법상에 올라와서 법문을 할 텐데, 법사가 법문을 하기 전에 승려가 떡 나와 가지고 예배를 하는 겁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했지요? 그러면
‘저 학인한테 창피나 안 당할까?’ 하고 순진한 조실은 그때부터 벌벌 떠는 겁니다.
예배를 하는데 임제스님은 간단해요.
師便喝(사변할)한대, “할” 입니다 그냥 할. 師便喝. 그러니까
僧云, 나왔던 승려가 老和尙(노화상)은 莫探頭好(막탐두호)하다.
그것 떠보지 않는 것이 좋겠네요. 임제스님이 할을 하니까 자신을 떠본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할은 종류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떠보는 할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자면 옛날에 도둑놈들이 도둑질 할 때, 대를 하나 잘라 가지고 대나무 그늘을 달빛에 비춰본대요. 그래가지고 창문에 대나무 그림자를 흔들어 봐요. 그러면 방에서 자고 있으면 대나무 그림자를 아무리 보여도 못 일어날 것이고, 자고 있지 않으면 창문에 비치는 대나무 그림자만 가지고도 사람 기척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기척을 하면 도망 가버리고, 아무 기척이 없으면 들어가서 훔치는 것이지요. 그런 할이 있습니다. 그런 할이...
할로 떠보는 것이지요. 이 사람이 그 말입니다. 莫探頭好 = 탐색해 보지 마십시오. 탐색 안 하는 것이 좋겠네요. 이 말입니다.
師云, 儞道(이도)하라. 그럼 네가 한번 일러봐라. = 儞道.
落在什麼處(낙재삼마처)오? 내가 할을 한 그 落處가 어디 있는가?
무슨 일인지 네가 말해봐라. 하니까 僧便喝(승변할)하니라.
그 때 질문 했던 스님이 할을 하는 겁니다. 다시 반대입니다.
그래 1차는 끝났고요.
又有僧問(우유승문), 또 어떤 승려가 떡~나왔습니다.
如何是佛法大意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師便喝한대, 큰 소리로 “할~ ” 했습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이것은 대답을 아주 근사하게 했습니다.
僧禮拜어늘, 그러니까 스님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예배를 떡~ 했습니다.
師云, 儞道하라. 네가 한번 일러 보아라ㆍ네가 한번 일러 보아라.
好喝也無(호할야무)아? 내가 할을 한 것이 좋은 할 이냐? 나쁜 할 이냐?
할도 좋은 할이 있고 나쁜 할이 있지요. 그것이 적재적소에 사람의 눈을 띄워 줄 수 있는 그런 할 같으면 이것은 정말 생명이 넘치는 살아있는 할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하는 할은 이것은 그야말로 掉棒打月(도봉타월)이라. 방망이를 가지고 달을 따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막대기 가지고 아무리 휘저어 봐야 달이 따지겠습니까? 그런 할이 있다는 겁니다.
참 듣다ㆍ듣다. 법문 많이 듣다가 오늘 같은 이런 희한한 법문 처음 듣지요? 우리는 자꾸 새로운 음식을 맛 봐야 됩니다. 하~~ 우리불교의 참 가르침은 정말 저 큰 바다와 같아요. 大海와 같다 그래요. 큰 바다와 같다.
큰 바다 속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있는데, 우리 불자들이 근래에는 참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는데,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노력이 참 필요합니다.
정말 놀라운 그런 가르침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이런 것들도 만나잖아요.
좋은 할이냐? 하니까
僧云, 草賊이 大敗(초적대패)로다. 말하자면 변방의 도적들.
여기 草賊이라고 하는 것은 반란군입니다. 반란군이 크게 패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은 정부군이 되고, 자기는 반란군이 되는 겁니다. 반란군이 크게 패했다. 그러니까 법주인 임제스님이 이겼다 이런 뜻입니다.
師云, 過在什麼處(과재삼마처)오?
그럼 네 허물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까
僧云, 再犯은 不容(재범불용)이로다.
재차 범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師便喝하니라. 또 할을 한 것입니다. 할이 여기에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할, 할, 할이라고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시간이 어지간히 됐는데,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지만, 이쯤해서 상당법어는 본보기로 이것으로 그치고, 내일 부터는 示衆. 시중법문이라고 하는 것은, 소참법문이 돼가지고 오히려 우리가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것은 최상 높은 법문이고, 그 다음에 한 차원 낮춰가지고 이야기하는 그런 내용들인데, 제가 여기서 중요한 것만 골라가지고 맛을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법회는 여기까지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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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釋대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