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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실실(虛虛實實)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비어 있음과 가득 참, 거짓과 진실됨, 완성됨과 미흡함 등의 대비되는 요소를 이용한 계책으로, 적의 강점은 피하고 약점을 노리면서, 나의 강점은 감추고 약점은 노출시키는 계략이다.
虛 : 빌 허(虍/6)
虛 : 빌 허(虍/6)
實 : 열매 실(宀/11)
實 : 열매 실(宀/11)
출전 :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五) 제갈량전(諸葛亮傳)
허(虛)를 찌르고 실(實)을 꾀하는 계책(計策)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①계략(計略)이나 수단(手段)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 ②허실을 살펴서 상대방의 동정(動靜)을 알아냄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잘 알려진 삼국지에서 촉나라 제갈량(諸葛亮)이 위나라 사마의(司馬懿)에게 쓴 공성계(空城計)에서 연유한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갈량이 촉군을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과 왕평에게 위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했다. 정예군을 모두 공격으로 보내고 성에는 부상병과 늙은 병사만 남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위의 사마의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으로 쳐들어 왔다. 이 때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문을 활짝 열어두고 군사 몇 명을 백성처럼 보이게 해 성문을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성루에 앉아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이런 모양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분명히 자신을 속이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 군사를 후퇴시켰다.”
亮屯于陽平, 遣魏延諸軍並兵東下, 亮惟留萬人守城。晉宣帝(사마의)率二十萬眾拒亮, 而與延軍錯道, 徑至前, 當亮六十里所, 偵候白宣帝說亮在城中兵少力弱。亮亦知宣帝垂至, 已與相偪, 欲前赴延軍, 相去又遠, 回跡反追, 勢不相及, 將士失色, 莫知其計。亮意氣自若, 敕軍中皆臥旗息鼓, 不得妄出菴幔, 又令大開四城門, 埽地卻洒。宣帝常謂亮持重, 而猥見勢弱, 疑其有伏兵, 於是引軍北趣山。明日食時, 亮謂參佐拊手大笑曰:司馬懿必謂吾怯, 將有彊伏, 循山走矣。候邏還白, 如亮所言。宣帝後知, 深以為恨。
이런 책략을 공성계(空城計)라고 한다. 허허실실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세상을 사는 오래된 처세술 중의 대명사격인 허허실실(虛虛實實)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상대방이 허할 때 나도 허하고 실할 때 같이 실하는 전략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허한 척 하면서 실하고 실한 척 하면서 허하는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는 전략이다.
허허실실의 철학에 대하여 조선 중기 문인 김창흡(金昌翕)이 쓴 잡설(雜說)에 재미있는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근일 동내에 양상군자(梁上君子; 도둑)이 들었는데 중문후장지가(重門厚墻之家; 몇 겹의 문을 만들어 걸어 잠그고 담장을 높게 쌓은 집)는 다 털렸다.
그러나 오히려 담장도 낮고 문도 안 걸어 잠근 집은 도둑이 안 들었다고 하면서 이것이 병법에서 말하는 허허실실의 전술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제갈공명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거문고를 타고 있음으로서 상대방이 오히려 뭔가 있다고 생각하여 지레 겁을 먹고 침범하지 못한 것도 허허실실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近日洞內多樑上君子。重門厚墻之家。鮮免其偸。獨我無墻者尙免。此在兵法。虛虛實實之術也。諸葛孔明甞開門鼓琴。賊不敢犯。
⏹ 이하는 김태희(실학21네트워크 대표)의 허자와 실옹의 대화 글이다.
허자(虛子)는 30년 동안 은둔하여 공부했다. 마침내 통달하여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모두 비웃었다. “작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큰 이야기를 함께할 수 없구나.”
허자는 서쪽 북경으로 들어가 60일을 머물렀다. 끝내 상대할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허자가 깊이 탄식했다. “지혜로운 사람이 모두 사라졌는가? 내가 배운 도(道)가 그릇됐는가?”
짐을 꾸려 돌아오는 길에 의무려산(醫巫閭山)에 올랐다. 남으로 넓고 푸른 바다를, 북으로 큰 사막을 바라보니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마침내 세상을 등질 생각을 품었다.
수십 리를 걸어가니 실거지문(實居之門)이라 쓰인 돌문이 서있었다. “의무려산은 조선과 중국이 만나는 경계에 있고, 동북의 이름난 산이다. 반드시 숨은 선비가 있을 터. 내 반드시 만나볼 것이다.”
돌문으로 들어가니, 다락집 위에 한 거인이 홀로 앉아 있는데, 모양이 기이했다. 나무를 깎아 ‘실옹(實翁)이 사는 곳’이라 쓰여 있었다.
허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허(虛)라 이름한 것은 장차 천하의 실(實)을 깊이 살피려는 뜻이요, 저 사람이 실이라 이름한 것은 장차 천하의 허를 깨뜨리려는 뜻이리라. 허허실실(虛虛實實)은 오묘한 진리이니, 저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겠다.”
담헌 홍대용의 '의산문답'의 시작 부분이다. 허자는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담헌을 연상시킨다. 실옹의 말은 담헌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허자에게 실옹은 일갈했다. “아아! 슬프다. 도술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구나. 공자가 죽은 후 제자들이 공자의 뜻을 어지럽혔고, 주자 문하의 말기에 유학자들이 학문을 어지럽혔다. 그 업적은 높이면서 그 참은 잊고, 그 말은 익히면서 그 본뜻은 잃어버렸다.”
박제된 학문을 붙들고 권력을 추구할 뿐 그 본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학(正學)을 지킨다는 건 실은 긍심(矜心; 자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사설(邪說)을 배척한다는 건 실은 승심(勝心; 이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인(仁)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건 실은 권심(權心; 권세를 부리려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명철하게 자신을 보전한다는 건 실은 이심(利心; 자기만 이로우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네 가지 마음이 서로 뒤엉켜 참뜻은 날로 사라지고, 천하는 휩쓸려 나날이 허(虛)로 치닫는다.
⏹ 허허실실(虛虛實實)
허와 실이 일정치 않아, 허한 듯 실하고 실한 듯 허하다
🔘 서로 재주와 꾀를 다하여 다툼
조조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자신 있게 출전했으나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 연합군에 크게 패한 뒤,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갈량이 숨긴 군사들에게 공격 받았다.
오림 지역 서쪽으로 도망치다 조자룡에게 당하고 다시 호로구 쪽으로 도망쳤으나 장비에게 혼이 났다. 마침내 화용도에 이르자 그곳에는 관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관우는 이곳에 오기 전에 제갈량과 실랑이를 벌였다. 제갈량은 장수들에게 해야 할 임무를 맡겼지만 관우에게는 무엇도 맡기지 않았다.
관우가 이를 강하게 따지자 제갈량이 말했다. “장군은 의리가 깊은 사람이오. 조조를 만나면 지난날, 입은 은혜 때문에 틀림없이 그를 살려 보낼 것이오.”
관우는 이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소. 조조를 살려 보낸다면 군법에 따라 내 목숨을 내놓겠다는 각서를 쓰겠소.”
제갈량이 말했다. “좋소. 장군께서는 지금 당장 군사들을 이끌고 화용도에 매복해,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내시오. 틀림없이 조조는 그 길로 올 것이오.”
관우가 말했다. “매복하려면 조용히 숨어 있어야지 왜 불을 피운단 말이오? 적들이 연기를 보면 당연히 도망칠 텐데 어찌 조조를 잡겠소?”
제갈량이 말했다. “병법에 허허실실 이라는 게 있소. 허한 곳은 실한 듯, 실한 곳은 허한 듯 꾸미라는 말이지요. 조조는 병법에 능해 우리가 허세를 부린다 생각하고 그리로 올 것이오. 내 말이 틀리다면 나도 목숨을 내놓겠소.”
관우는 그 말에 따라 숨어서 모닥불을 놓아 연기를 피워 올렸다.
화용도에 이른 조조는 갈림길에서 고민에 휩싸였다. 숨어 있던 유비군에게 혼이 난 터라 군사를 보내 앞을 살폈다. 살펴보러 간 군사가 돌아와 말하길, '한쪽 길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또 한쪽 길에서 연기가 난다'고 했다.
장수들은 고요한 길로 가기를 청했지만 조조는 제갈량이 그곳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나는 화용도로 향했던 조조는 제 꾀에 넘어가고 말았다. 골짜기 깊숙이 들어섰을 때 느닷없이 관우와 군사들이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위기에 빠진 조조는 관우에게 몸을 굽히며 목숨을 구걸했다. “나 조조가 싸움에 져서 이곳까지 쫓겨 왔으나 갈 길이 막혔구려. 부디 옛정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 주시오.”
관우가 말했다. “공께 입은 은혜는 이미 안량과 문추를 베어 갚았소. 어찌 사사로운 정을 앞세워 큰일을 망칠 수 있겠소?”
조조가 말했다. “장군께서는 신의를 중히 여기는 분이 아니시오? 그대가 나를 떠날 때 뒤쫓지 않은 일을 기억하시구려. 부디 우리를 풀어 주시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린 관우는 결국 군사를 뒤로 물리며 조조를 살려 보냈다. 조조를 놓아준 관우는 돌아와 제갈량에게 죽음을 청한다.
제갈량이 군법대로 처형하려 할 때 유비가 막아서며 용서를 구하자 마지못한 듯 이를 받아들여 관우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은 허와 실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빈곳처럼 보이는 곳이 차 있고 차 있는 듯 보이는 곳이 비어 있어 짐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계략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실제로 아주 튼실하고 실속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여러분이 운동장에서 축구할 때 수비하지 않는 듯 골 앞을 비워 두었다가 그쪽으로 공격이 오면 재빨리 압박해 공격을 막는 것도 허허실실 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허실실과 공성계
허허실실 전법에 재미난 예가 하나 더 있다. 훗날, 제갈량이 위나라와 싸울 때 사마의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에 몰려왔다.
제갈량은 정예군을 모두 전투에 내보내서 군사가 적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제갈량이라도 어쩔 수 없었던 터라 성을 비우는 공성계를 썼다.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고 부하들과 함께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탔다. 사마의는 허술한 그 모습이 함정에 빠뜨리려는 속셈이라 생각하고 군사를 뒤로 물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사마의는 크게 후회했으며, 제갈량은 “두 번 쓰지 못할 위험한 계책이었다”라고 되뇌었다.
⏹ 물 흐르듯 용병하라
故形兵之極, 至於無形.
양동(陽動) 작전의 극치는 적이 아군의 행적을 전혀 모르게 하는 데 있다.
無形, 則深間不能窺, 智者不能謀.
그리되면 설령 아군에 깊숙이 잠입한 간첩일지라도 아군의 허실을 알아낼 수 없고, 지모가 뛰어난 적군의 책사일지라도 뾰족한 계책을 내지 못할 것이다.
因形而錯勝於衆, 衆不能知.
적의 내부사정 변화에 따른 전술로 승리를 거두는 까닭에, 승리를 거둔 정황을 자세히 드러내 보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오묘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因敵形而立勝)
(적의 움직임을 쫓은 임기응변으로 승리한 것을 말한다)
人皆知我所以勝之形,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
세인들은 적에게 승리를 거둔 정황만 알 뿐 승리를 거둔 임기응변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不以一形勝萬形. 或曰, 不備知也. 制勝者, 人皆知吾所以勝, 莫知吾因敵形 制勝也).
(판에 박힌 전술로는 수만 가지 형세로 변화하는 적과 싸워 이길 길이 없다. 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싸움에 나선 장수가 임기응변으로 승리를 거두면 사람들은 그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만 알 뿐 적의 움직임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승리한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
한 번 승리를 거둔 계책을 되풀이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적의 내부사정 변화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시켜 대응해야만 한다.
(不重複動而應之也)
(적이 재차 공격해올 경우 똑같은 전술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적에게 의도를 간파당해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夫兵形象水, 水之形, 避高而趨下.
무릇 군사작전은 물과 같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른다.
兵之形, 避實而擊虛.
용병도 적의 강한 곳을 피해 허점을 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
물은 지형에 따라 흐르는 방향을 결정한다. 군사작전도 적의 내부사정 변화에 따른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승리할 수 있다.
故兵無常勢, 水無常形,
군사작전에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은 물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과 같다.
能因敵變化而取勝者, 謂之神.
적의 내부사정 변화를 좇아 승리를 거두는 것을 일컬어 신무(神武)라고 한다.
(勢盛必衰, 形露必敗. 故能因敵變化, 取勝若神).
(도덕경이 설파했듯이 세상의 모든 형세는 성대해지면 반드시 쇠미해지는 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병법도 한 가지만 고집하면 이내 의도가 드러나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다. 적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임기응변해야 귀신과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다)
故五行無常勝, 四時無常位, 日有短長, 月有死生.
이는 오행이 서로 돌아가며 도와주거나 견제하고, 사계가 서로 돌아가며 자리를 바꾸고, 밤낮이 서로 돌아가며 짧아졌다 길어지고, 달이 돌아가며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
(兵常無勢, 盈縮隨敵).
(용병할 때 고정된 틀이 없다는 것은 마치 해와 달이 늘 차고 기우는 것처럼 적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공수를 바꿔가며 진퇴를 결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解說]
형병지극(形兵之極)은 거짓으로 적을 유인하는 양동(陽動) 작전의 지극한 경지를 말한다. 지어무형(至於無形)은 적이 아군의 형세를 전혀 알 수 없는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심간불능규(深間不能窺)에서, 심간(深間)은 깊숙이 침투한 첩자를 말한다.
지자불능모(智者不能謀)의, 지자(智者)는 적군 내에 있는 뛰어난 책사를 지칭한다.
인형이조승어중(因形而錯勝於衆)의, 인형(因形)은 적의 내부정황에 따른 임기응변을 말한다.
조승(錯勝)의, 조(錯)는 조치한다는 뜻의 조(措)와 같다. 무경본에는 조(措)로 되어 있다. 사람들 앞에 승리할 당시의 정황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승(勝)을 조조는 적의 형세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응으로 승리를 결정짓는다고 풀이했다.
응형어무궁(應形於無窮)의, 응형(應形)은 인형(因形)과 마찬가지로 임기응변을 뜻한다.
병형상수(兵形象水)의, 병형(兵形)은 양동작전을 포함한 일체의 군사작전을 뜻한다.
오행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상극상생 관계를 말한다.
무상승(無常勝)은 묵자 경 하에서, “오행은 서로 돕거나 견제하는 까닭에 늘 이기는 오행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 것과 취지를 같이한다.
무상위(無常位)는 춘하추동의 사시가 서로 돌아가며 자리를 바꾸는 것은 언급한 것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며 차고 기우는 것도 같은 이치다.
왕국유(王國維)의 생패사패고(生霸死霸考)에 따르면 서주 때는 달의 영축(盈縮)을 초길(初吉), 즉생패(卽生霸), 즉망(卽望), 즉사패(卽死霸)의 4단계로 구분해 불렀다.
조조는 일월과 사계의 순환을 병무상세(兵無常勢)의 구체적인 예로 거론하면서 용병은 늘 적의 내부사정에 따라 임기응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병무상세는 허허실실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허허실실의 이치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허실이 감탄법을 구사해 “미묘하고도 미묘하니, 아무런 자취도 보이지 않는구나! 신비롭고도 신비로우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구나!”라며 그 묘리를 칭송한 이유다.
역대 병법가 가운데 조조만큼 허허실실의 전술을 절묘하게 구사한 인물은 없다. 그가 구사한 전술은 원소를 격파하고 하북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는 사건의 전후로 적잖은 차이가 있다.
그 이전은 주로 기병을 구사했다.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후는 정병을 위주로 하면서 기병을 가미하는 식으로 군사를 운용했다.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조조가 자주 구사한 기병의 전술은 병사를 미리 매복시킨 뒤 사정권에 들어와 적을 격멸하는 복병계(伏兵計)를 비롯해 성동격서의 양성계(揚聲計), 적장을 격동시키는 격장계(激將計), 상대의 계책을 역이용하는 장계취계(將計就計) 등으로 요약된다.
삼국연의는 조조가 유비를 죽이기 위해 순욱의 계책을 받아들여 이른바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와 구호탄랑계(驅虎呑狼計) 등의 암수를 구사한 것으로 묘사해놓았으나 정사 삼국지와 자치통감 등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오히려 조조는 일부 장수가 유비의 제거를 건의했을 때 민심을 잃을까 거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조가 구사한 기병은 기본적으로 임기응변의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 임기응변의 진수가 바로 조조의 기병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허실은 임기응변을 이같이 해석해 놓았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른다. 용병도 적의 강한 곳을 피해 허점을 치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물은 지형에 따라 흐르는 방향이 결정된다. 군사작전도 적의 내부사정 변화에 따른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승리할 수 있다. 군사작전에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은 물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과 같다. 적의 내부사정 변화를 좇아 승리를 거두는 것을 일컬어 신무(神武)라고 한다. 이는 오행이 서로 돌아가며 도와주거나 견제하고, 사계가 서로 돌아가며 자리를 바꾸고, 밤낮이 서로 돌아가며 짧아졌다 길어지고, 달이 돌아가며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
임기응변의 요체가 허허실실에 있음을 물의 흐름과 계절의 변환 이치 등에 비유했던 것이다.
도덕경의 무위겸하(無爲謙下) 통치술과 취지를 같이한다. 무사법치(無私法治)를 강조하는 법가의 통치사상과 허허실실을 주장하는 병가의 통치사상이 도가의 통치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비자 등의 법가는 도덕경의 무위지치(無爲之治) 통치술을 무사법치로 해석한 데 반해 병가는 이를 허허실실로 분석한 것만이 다를 뿐이다.
조조는 양자를 통합해 해석했다. 바로 무상형세(無常形勢)다. 실제로 그는 구체적인 전투상황에서 천지운행의 이치를 좇아 적의 움직임을 비롯해 당시의 상황에 따라 용병했다.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조는 구체적으로 허허실실의 상징인 기병을 어떻게 구사한 것일까?
그는 '모공'의 주석에서 먼저 적과 아군의 병력이 같을 경우를 상정해 이같이 말했다. “적과 아군의 병력이 비등할 때는 매복이나 기습 등의 다양한 전술을 활용해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병력이 서로 비슷할 때에는 정병으로 승부를 가릴 수 없는 만큼 ‘매복계’와 ‘유병계’ 등의 기병을 통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적이 아군보다 우세하거나 압도적으로 우세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일까?
그의 주장이다. “아군이 적을 때는 성벽을 높이고 보루를 튼튼히 하는 방법으로 맞서야 하고, 결코 가벼이 접전해서는 안 된다. 병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적군과 정면으로 맞붙으면 이길 도리가 없다.”
현실을 수긍하고 후일을 도모하라고 권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아군의 병력이 적보다 5배나 많을 경우에 비로소 적을 능히 공격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의 주장에 이의를 단 점이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기본적으로 수긍하면서도 병력의 5분의 3만 정병에 투입하고, 나머지 5분의 2는 기병에 투입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조조의 실전경험을 통한 구체적인 필승의 계책을 제시한 사례에 속한다. 그가 역대 수많은 주석가와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손자병법의 해당 대목이 자신의 실전경험과 많이 차이가 날 경우 실전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이론을 폈다. 조조처럼 이론과 실제를 종합해 자신만의 병법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수천 년 동안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여포를 깨뜨렸을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모공'의 주석을 살펴보자. “아군의 병력이 적보다 10배가 되면 포위해 싸울 수 있다고 한 것은 적과 아군의 장수가 지략과 용맹 등에서 거의 같고 병사의 사기와 무기가 거의 비슷할 때 적용되는 원칙이다. 만일 공격하는 아군의 장수가 뛰어나고 병사의 사기나 무기가 적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주약객강의 상황일 때는 병력 차이가 반드시 10배까지 날 필요가 없다. 나 조조는 단지 2배의 병력만으로도 하비성을 포위해 용맹하기 그지없는 여포를 생포한 바 있다.”
조조가 실전에서 얼마나 탁월한 용병술을 구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포는 천하무적의 효장(驍將)이었다. 병력 차이가 겨우 2배밖에 되지 않는데도 포위공격을 가해 천하의 효장 여포를 사로잡았던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주약객강의 조건만 맞으면 2배의 우세한 병력으로 적장을 포획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조는 그 계책을 이같이 밝혔다. “아군의 병력이 5배나 많을 때는 5분의 3을 정병, 나머지 5분의 2를 기병으로 활용한다. 아군의 병력이 2배나 많을 때는 군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한 부대를 정병, 다른 한 부대를 기병으로 활용한다.”
여포를 포획한 비결은 바로 정병과 기병을 동시에 구사했던 데 있다. 조조는 여포를 사로잡을 때 수공을 통한 정병을 구사하면서 반간계 등을 포함한 기병을 동시에 구사했다. 적과 아군의 병력 차이가 단지 2배만 나도 얼마든지 포위공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전략 면에서 보면 당대 최고의 전술가인 가후(賈詡)도 조조와 비교될 수 없었다. 조조야말로 전술전략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병가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조조가 보여준 전략전술은 ‘무상형의 임기응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도덕경이 최상의 치도로 거론한 ‘도치’를 병가의 관점에서 해석한 덕분이다.
조조는 병도가 치도의 일환임을 실전을 통해 증명한 최초의 인물에 해당한다. 그가 실전에서 임기응변에 입각한 정병과 기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사서는 물론 제자백가사상에 두루 밝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장에서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수불석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가공동체와 군사공동체 및 기업공동체의 명운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위정자와 장군, 기업 CEO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허허실실의 전술은 말할 것도 없이 판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다. 허실은 이를 치인(致人)으로 표현해 놓았다. 내가 상대방을 임의로 조종한다는 뜻이다.
이와 정반대되는 것이 치어인(致於人)이다. 같은 치(致)인데도 치인에서는 능동사, 치어인에서는 피동사로 사용되었다.
생사를 가르는 전투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지휘관이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 무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지휘관의 리더십에서 판세가 갈리게 마련이다.
허실이 치인을 역설하며 치어인의 피동적인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은 임기응변을 주문한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든 전투이든 그 규모와 상관없이 통상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을 그리게 마련이다. 도전과 응전, 작용과 반작용이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킨 결과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할지라도 노동과 휴식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일시적으로 주도권을 놓쳐 피동적인 입장에 처할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피동적인 위치에 서는 기간을 줄이고 주도적인 입장에 서는 시간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전세를 장악하는 일이다.
주의할 것은 공격이 반드시 주도적이고, 방어가 반드시 피동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격 속에 방어가 있고, 방어 속에 공격이 있다. 마치 창과 방패의 관계와 같다. 아무리 날카로운 창일지라도 방패를 뚫지 못할 경우 이내 무뎌지게 마련이다.
축구경기에서 최고의 공격수를 여러 명 배치해 전반에 상대방 문전을 난타할 경우 의도한 바대로 많은 득점을 올리면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빗장수비에 막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후반에 고전할 수밖에 없다. 지쳐 있기 때문이다.
사자가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자랑할지라도 사냥감을 2, 3차례 연거푸 놓치면 이내 힘이 빠져 오히려 하이에나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은 지휘관이 먼저 수비하고 나중에 공격하는 선수후공(先守後攻)의 원칙을 좇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격이 수비보다 몇 배나 많은 전력을 소진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병사의 높은 사기만 믿고 무턱대고 공세를 취할 경우 이내 주도권을 놓치고 수세에 몰려 참패할 수 있다. 허실이 힘을 비축한 후 적의 빈틈을 집중공략해 승세를 잡으라고 충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병력이 많은 쪽이 싸움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 자체가 하나의 군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운용이다. 병력을 사방으로 나누어 배치하다 보면 아무리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아무 곳도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허실이 아군 병력의 집중과 적군 병력의 분산을 역설했던 이유다.
이런 이치는 개인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팔방미인이 대표적인 실례다. 팔방미인은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조금씩 손대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도 사용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공과목이 탄탄한 가운데 여러 부전공이 있는 것은 전자의 경우다. 그러나 전공 없이 부전공만 여러 개 있을 경우 후자의 조롱을 들을 소지가 크다. 많은 병력을 사방에 배치한 것은 결국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 허실(虛實)
쌍방의 약점과 강점을 이용한 작전, 즉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을 말한다. 허허실실이라고도 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 허실(虛實)편에는 아군의 병력을 적군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배치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방법에 대해 나와 있다.
아군과 적군의 우세와 열세를 이용해 군대를 어떻게 분산, 집결하고, 포위, 우회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사작전은 물과 같다(夫兵形象水). 물은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른다(水之行避高而趨下). 용병도 적의 강한 곳을 피해 허점을 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兵之形避實而擊虛). 물은 지형에 따라 흐르는 방향을 결정한다(水因地而制流). 군사작전도 적의 내부사정 변화에 따른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승리할 수 있다(兵因敵而制勝). 군사작전에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은, 물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과 같다(故兵無常勢, 水無常形)."
물이 지형에 따라 유연하게 흐르듯, 전쟁에서는 적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임기응변(臨機應變)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허(虛)는 허술한 약점이고 실(實)은 내실을 갖춘 강점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허점을 정확하게 찌르는 계책으로 응하면 싸움에서 우위에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전하여 허실은 어떤 대결이나 싸움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하여 능동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말하며,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고도 한다.
⏹ 기정과 허실
태종이 물었다. “짐은 여러 병서를 보았으나 손자병법을 벗어나는 것이 없었고, 손자병법 열세 편 모두 '허실'에서 벗어나지 않았소. 용병하는 자가 허실의 전세(戰勢) 이치를 잘 알면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없소. 오늘날 여러 장수가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쳐야 한다고 말하나 막상 실전에서 적과 부딪치면 허실의 형세를 제대로 이해하는 자는 매우 드문 실정이오. 이는 대개 적을 유인해 아군의 사정권에 두지 못하고 오히려 유인을 당해 주도권을 빼앗긴 탓이오. 이를 어찌 생각하시오? 경이 여러 장수를 위해 그 요체를 설명해주시오.”
太宗曰, “朕觀諸兵書, 無出孫武, 孫武十三篇無出虛實. 夫用兵, 識虛實之勢, 則無不勝焉. 今諸將之中, 但能言背實擊虛, 及其臨敵, 則鮮識虛實者. 蓋不能致人, 而反爲敵所致故也. 如何? 卿悉爲諸將言其要.”
이정이 대답했다. “장수들에게 이를 가르치고자 할 경우 우선 기병과 정병이 서로 변화하는 전법을 가르치고, 이어 허실의 전세를 가르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장수 대부분은 기병으로 정병을 삼고, 정병으로 기병을 삼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적의 허가 도리어 실이고, 실이 도리어 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靖曰, “先敎之以奇正相變之術, 然後語之以虛實之形可也. 諸將多不知以奇爲正以正爲奇, 且安識虛是實實是虛哉?”
태종이 물었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싸우기 전에 미리 헤아려 적의 계책을 파악하고, 짐짓 일부 군사를 동원해 적이 움직이는 행태를 알아내고, 짐짓 아군의 형태를 보이고 적의 반응을 살피고, 적이 생지와 사지 등 여러 지형 가운데 어떤 곳에 있는지 헤아리고, 짐짓 소규모 접전을 통해 적의 허실과 강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다고 했소. 이같이 하면 기정은 우리에게 있고, 허실은 적에게 있는 것이오?”
太宗曰, “策之而知得失之計, 作之而知動靜之理, 形之而知死生之地, 角之而知有餘不足之處. 此則奇正在我, 虛實在敵歟!”
이정이 대답했다. “아군은 기정의 전법을 통해 적의 허실을 파악한 뒤 그에 따른 적절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적이 실하면 아군은 정병으로 대하고, 적이 허하면 아군은 반드시 기병으로 엄습합니다. 장수가 기정의 전법을 모르면 설령 적의 허실을 알지라도 어찌 능히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격파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명을 받들어 여러 장수에게 기정의 전법을 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장수들이 허실에 대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靖日, “奇正者, 所以致敵之虛實也. 敵實, 則我必以正. 敵虛, 則我必爲奇.苟將不知奇正, 則雖知敵虛實, 安能致之哉? 臣奉詔, 但教諸將以奇正,然後虛實自知焉.”
태종이 말했다. “기병을 정병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기병을 예상한 적의 의표를 찔러 정병으로 공격하고, 정병을 기병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정병을 예상한 적의 의표를 찔러 기병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오. 적의 세를 늘 허하게 만들고, 아군의 세를 늘 실하게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싶소. 속히 이 전법을 장수들에게 가르쳐서 쉽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오.”
太宗曰, “以奇爲正者, 敵意其奇, 則吾正擊之. 以正爲奇者, 敵意其正, 則吾奇擊之. 使敵勢常虛, 我勢常實. 當以此法授諸將, 使易曉耳.”
이정이 말했다. “예로부터 병서의 가르침은 천장만구(千章萬句)로 표현될 정도로 무수히 많지만 ‘내가 적을 조종할 뿐 적에게 조종되지 않는다’는 치인이불치어인(致人而不致於人)의 한마디 구절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신은 마땅히 이를 장수들에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靖曰, “千章萬句, 不出乎致人而不致於人而已. 臣當以此敎諸將.”
[解說]
무출손무(無出孫武)는 당태종이 역대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최고의 병서로 꼽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훗날 명대 모원의(茅元儀)도 무비지(武備志)의 병결평(兵決評)에서 손자병법을 이같이 칭송했다. “손자 이전에도 손자와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손자 이후에도 손자와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배실격허(背實擊虛)는 병서에서 논하는 작전의 근본 이치를 언급한 것이다. 손자병법 '허실'은 이를 피실격허(避實擊虛)로 표현해 놓았다.
당리문대는 중권에서 병법의 핵심에 해당하는 허실(虛實)의 문제를 깊이 논하고 있다. 역대 병서 가운데 허실의 이치를 이처럼 깊이 있게 논한 것은 없다. 당리문대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정재아(奇正在我), 허실재적(虛實在敵) 구절도 배실격허와 취지를 같이한다. 이 또한 손자병법 '형세'에 나오는 불가승재기(不可勝在己), 가승재적(可勝在敵)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고, 내가 적을 이기는 것은 전적으로 적이 틈을 보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셈이다. 사실상 동어 반복이기는 하나 방점이 달리 찍혀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정재아의 주체는 적이 아닌 나다.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려면 내가 임기응변의 기정병용 전술을 절묘하게 구사해야 한다. 임기응변을 하지 못하면 적에게 패할 소지가 크다고 경고한 것이다.
허실재적의 주체는 내가 아닌 적이다. 내가 적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이 먼저 허점을 보여야 한다. 적의 허점을 유인하기 위해 구사하는 것이 바로 허허실실과 기정병용의 전술이다.
그러나 적이 빈틈을 보이지 않을 경우 병법에서 말하는 모든 종류의 전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양측이 서로 지피지기를 충실히 하며 대응할 경우 어느 쪽도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병서에 나오는 모든 허허실실과 기정병용의 전술은 적과 나를 아는 지피지기의 전략만 못하고, 전략은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병도만 못하다.
내가 적을 이기는 가승(可勝)의 이치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는 불가승(不可勝)의 이치가 주역의 음양론처럼 서로 긴밀히 맞물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양의 이치가 병도는 물론 전략의 전도(戰道)와 전술의 쟁도(爭道)에도 수미일관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정이 승리의 요체를 치인이불치어인(致人而不致於人)이라는 단 한마디로 요약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손자병법 '허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싸움의 주도권을 쥐라는 이야기다.
▶️ 虛(빌 허)는 ❶형성문자로 虚(허)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범호 엄(虍; 범의 문채, 가죽, 허)部와 丘(구; 큰 언덕)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큰 언덕은 넓고 넓어 아무것도 없다는 데서 텅 비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虛자는 '비다'나 '공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虛자는 虎(범 호)자와 丘(언덕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丘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구)자로 바뀌기 때문에 虛자는 丘자가 결합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丘자는 '언덕'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니 虛자는 마치 호랑이가 언덕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맹수의 왕이 나타났으니 모두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그래서 虛자는 드넓은 언덕에 호랑이가 나타나자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비다'나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虛(허)는 (1)내용(內容)이 비어 있는 것 (2)방심(放心)하여 게을리 한 곳이나 틈. 허점(虛點) 등의 뜻으로 ①비다, 없다 ②비워 두다 ③헛되다 ④공허(空虛)하다 ⑤약(弱)하다 ⑥앓다 ⑦살다, 거주(居住)하다 ⑧구멍 ⑨틈, 빈틈 ⑩공허(空虛), 무념무상(無念無想) ⑪마음 ⑫하늘 ⑬폐허(廢墟) ⑭위치(位置), 방위(方位) ⑮큰 언덕 ⑯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열매 실(實), 있을 유(有), 찰 영(盈)이다. 용례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을 허위(虛僞), 비거나 허술한 부분을 허점(虛點), 사실에 없는 일을 얽어서 꾸밈을 허구(虛構), 몸이 허약하여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멍함을 허탈(虛脫), 사람됨이 들떠서 황당함을 허황(虛荒), 텅 비어 실상이 없음을 허무(虛無), 실상이 없는 말로 거짓말을 허언(虛言), 텅 빈 공중을 허공(虛空), 피곤하여 고달픔을 허비(虛憊), 마음이나 몸이 튼튼하지 못하고 약함을 허약(虛弱), 쓸 데 없는 비용을 씀을 허비(虛費), 실상은 없이 겉으로 드러내는 형세를 허세(虛勢), 어이없고 허무함 또는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음을 허망(虛妄), 때를 헛되게 그저 보냄을 허송(虛送), 몹시 배고픈 느낌을 허기(虛飢), 쓸데없는 헛된 생각이나 부질없는 생각을 허상(虛想), 너무 과장하여 실속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허풍(虛風),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을 겸허(謙虛), 속이 텅 빔을 공허(空虛), 속이 빔을 내허(內虛), 정신이 허약한 병증을 심허(心虛), 위가 허약함을 위허(胃虛), 원기가 약함을 기허(氣虛), 마음이 맑고 잡된 생각이 없어 깨끗함을 청허(淸虛), 높고 텅 빔으로 지위는 높으면서 직분은 없음을 고허(高虛), 마음이 들뜨고 허황함을 부허(浮虛), 푸른 하늘을 벽허(碧虛),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을 일컫는 말을 허심탄회(虛心坦懷),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을 이르는 말을 허장성세(虛張聲勢), 세월을 헛되이 보냄을 일컫는 말을 허송세월(虛送歲月), 방을 비우면 빛이 그 틈새로 들어와 환하다는 뜻으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실생백(虛室生白),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계략이나 수단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을 이르는 말을 허허실실(虛虛實實), 말하기 어려울 만큼 비고 거짓되어 실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허무맹랑(虛無孟浪), 허명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허명무실(虛名無實), 예절이나 법식 등을 겉으로만 꾸며 번드레하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허례허식(虛禮虛飾), 사심이 없고 영묘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의 실체와 작용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령불매(虛靈不昧) 등에 쓰인다.
▶️ 實(열매 실, 이를 지)은 ❶회의문자로 実(실)의 본자(本字), 実(실), 宲(실)은 (通字), 实(실)은 간자(簡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貫(관; 끈으로 꿴 많은 동전, 재화의 뜻)의 합자(合字)이다. 집안에 금은재보(金銀財寶)가 가득함의 뜻으로 전(轉)하여 씨가 잘 여문 열매, 참다움, 내용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實자는 '열매'나 '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實자는 宀(집 면)자와 貫(꿸 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實자의 금문을 보면 宀자와 田(밭 전)자, 貝(조개 패)자가 결합해 있었다. 집에 밭과 재물이 있으니 이는 매우 풍족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밭과 재물이 貫자로 바뀌면서 집에 돈뭉치가 있음을 뜻하게 되었다. 實자는 '부유하다'를 뜻했으나 후에 '결과가 좋다'는 뜻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은 '열매'나 '재물', '내용'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實(실, 지)은 (1)내용(內容). 실질(實質) (2)실제(實際)의 착실한의 뜻으로 쓰이는 접두어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열매 ②씨, 종자 ③공물(貢物) ④재물(財物), 재화(財貨) ⑤내용(內容) ⑥바탕, 본질(本質) ⑦녹봉(祿俸: 벼슬아치에게 주던 급료), 작록(爵祿: 관작과 봉록) ⑧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행적(行跡) ⑨참됨, 정성(精誠)스러움 ⑩곡식(穀食)이 익다 ⑪굳다 ⑫자라다 ⑬튼튼하다 ⑭실제로 행하다 ⑮책임을 다하다 ⑯밝히다 ⑰적용하다 ⑱그릇에 넣다 ⑲참으로, 진실로 ⑳드디어, 마침내 그리고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지) ⓑ도달하다(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실지로 얻은 이익을 실리(實利), 진짜 이름을 실명(實名), 현실의 경우나 형편을 실제(實際), 실제로 시행함을 실시(實施), 실제로 해냄을 실천(實踐),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실태(實態), 실제로 시험하는 것을 실험(實驗), 실제의 업적 또는 공적을 실적(實績), 실제로 나타냄을 실현(實現), 실제의 역량을 실력(實力), 실제의 물체를 실체(實體), 실제의 사무를 실무(實務), 실상의 본바탕을 실질(實質), 실지로 행함을 실행(實行), 현실에 존재함을 실재(實在),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실제의 상태를 실상(實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事實), 현재의 사실이나 형편을 현실(現實), 틀림없이 사실과 같음을 확실(確實), 거짓이 아닌 사실을 진실(眞實),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음을 절실(切實), 몸이 굳세어서 튼튼함을 충실(充實), 정성스럽고 참됨을 성실(誠實),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과실(果實), 사실 그대로 고함을 실진무휘(實陣無諱), 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실사구시(實事求是), 꾸밈이 없이 성실하고 굳세고 씩씩함을 일컫는 말을 실질강건(實質剛健), 실제로 몸소 이행함을 일컫는 말을 실천궁행(實踐躬行), 사실 그대로 고함을 일컫는 말을 이실직고(以實直告),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다는 뜻으로 말만 꺼내 놓고 실행이 부족함을 이르는 말을 언과기실(言過其實),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을 온후독실(溫厚篤實), 꽃만 피고,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이부실(華而不實),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음 또는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계략이나 수단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 또는 허실을 살펴서 상대방의 동정을 알아냄을 이르는 말을 허허실실(虛虛實實), 사실에 근거가 없다는 뜻으로 근거가 없거나 사실과 전혀 다름을 일컫는 말을 사실무근(事實無根), 겉은 허술한 듯 보이나 속은 충실함을 일컫는 말을 외허내실(外虛內實), 갑자기 차거나 비어 변화를 헤아리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일허일실(一虛一實),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 또는 인품이 따뜻하고 성실함이 넘침을 일컫는 말을 온후독실(溫厚篤實),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뜻으로 일 처리 솜씨가 착실함을 말함 또는 행실이 바르고 태도가 성실함을 일컫는 말을 각답실지(脚踏實地),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