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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1929년의 불황에 관한 한 가지 설명
387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자.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불황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그토록 장기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실물 요인 때문인가, 화폐 요인 때문인가? 그 기원은 미국에 있는가, 유럽에 있는가, 주변부의 1 차 산업국에 있는가, 아니면 이들 나라들 간의 관계에 있는가? 치명적인 약점은 국제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에 있었는가, 아니면 그것이 운영된 방법 즉 각국 정부가 시행한 정책에 있었는가? 정부 정책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면 그같은 정책은 무지, 단견, 또는 악의 중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가? 불황의 심각성과 장기성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에 가해진 충격의 크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시스템이 정상적인 힘의 일격 또는 연타를 맞고 불안정해진 크기(그것이 어떤 식으로 측정되더라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는가? 또는 논점을 밀튼 프리드먼과 폴 새뮤얼슨의 견해 차이로 돌아가서 구하자면, 1929년의 불황은 미국의 금융 정책의 귀결이었는가, 아니면 일련의 역사적 우발 사건에 따른 것이었는가? 이와 같은 논의들의 맥락을 추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당히 많은 선입관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험적으로 선택된 어떤 입장을 지지해 주는 통계와 사실 및 사건만을 1930년대의 역사에서 골라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한 설명에 맞지 않는 사실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여러 가지 다른 설명, 즉 미국 금융 정책 원인설(프리드먼), 금본위제 오용설(로빈스), 디플레이션 실책설(케인스), 장기 정체설(한센), 구조적 불균형설(스베닐손) 등에 대해 무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의 제목은 1929년의 불황에 관한 "설명(The Explanation)"이 아니라 "한 가지 설명(An Explanation)"이다.
이 책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929년의 불황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장기적이었던 까닭은 국제 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1) 투매되는 상품에 대한 비교적 개방된 시장의 유지, (2) 경기 조정적인 장기 대부의 공여, (3) 공황시의 어음 할인이란 세 가지 점에서 국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책무를 영국은 능력을 상실해서, 그리고 미국은 맡을 의사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맥과 같은 몇 가지 1차 산품의 과잉 생산이 국제 경제 시스템에 가한 충격도, 1927년 미국의 금리 인하가 가한 충격 (그것도 충격이라고 한다면)도, 1928년 독일에 대한 대부정지 및 1929년 주식 시장의 붕괴가 가한 충격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발생한 1920년 봄의 주식 시장 폭락과 1927년의 경기 후퇴는 그와 유사한 강도의 충격이었지만, 수습된 바 있었다. 세계 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 19세기에서 1913년까지 영국이 그렇게 하였듯이 어떤 나라가 안정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29년에는 영국은 그럴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개별적인 국익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을 때, 세계 전체의 이익은 고갈되었고, 그와 함께 각국의 개별적 이익도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과의 관련성
388 리더십이란 말은, 의사 결정에 대한 관여가 한층 심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1970년대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즉 총통이나 수령의 뉘앙스가 상당히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십이란 말이 추종자를 착취하거나 사적 이익으로서의 위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일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각국의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주권을 공동 관리하는 일은 언젠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공동 관리는 오늘날 세계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기능의 하나로서 실제로 실현되고 있다. 예컨대 스왑 및 단기 신용을 위한 바젤 협정은 세계 중앙 은행이 현실화될 때까지 위기시에 세계 재할인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그리고 좀 더 자유로운 무역 및 자본과 원조의 자유로운 이동을 유지하기 위한 세계적 기관에 있어서도 위임된 권한이 없기 때문에 리더십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지도력은 약화 추세에 있다. 유럽 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확대를 통해 유럽의 힘이 증대됨에 따라, 유럽이 투매 상품 및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상품에 시장을 제공하고 국제적인 자본 이동을 안정시키고 위기시에는 할인 기구를 제공하는 데 지도력을 주장하고 발휘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아마도 위기시의 신용 공여에 관한 바젤 협정은 존속할 것이다. 유럽의 상품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는 있다. 단 세계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예외인 농업을 제외하면 그렇다. 자본 이동을 경기 조정적으로 안정시키기에는 여전히 길이 멀기만 하다.
389 불안정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결과는, 첫째 미국과 EEC가 세계 경제의 지도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것이다. 둘째는 1929년부터 1933년 사이에 보았듯이, 한쪽은 능력이 없고 다른 한쪽은 능력은 있지만 의사가 없는 경우이다. 셋째는 각국이 적극적인 자체 계획을 확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세계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한 계획에 대한 거부권을 쥐고 있는 경우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정관은 미국이 반대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작성되었다. 국제 통화 시스템에 대한특별인출권(SDR)의 추가를 인정한 1969년도 개정안에서는 IMF에 대한 출연 규모에 따라 EEC에도 거부권을 주도록 조정되었다. 그 결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우와 같이 두 개의 대 세력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막다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우에는 퇴행 현상이 거미줄처럼 얽히다가 전쟁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경제 분야의 경우 그에 상응하는 것은 경기 침체 및 공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권한과 주권을 가진 국제 기관을 창설한다고 하는 세 번째의 적극적인 대안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