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순례
봉명동 성 마태오 성당
신성근 신부(문화유산교육지도사)
「부르심을 듣고 일어서는 공동체」
청주시 제1순환로를 따라 돌다가
도심의 대표적인 생활공간인 주택가로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이 눈길을 끕니다.
바로,
이 지역 신자들과 40년을 함께해 온
청주교구 스물여덟 번째 본당인
봉명동 성 마태오 성당이 있습니다.
봉황이 우는 마을, 봉명
봉명(鳳鳴),
‘봉황이 우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옛사람들은 금반산에서 내려다본 이곳의 지세가
마치 봉황을 닮았다고 하여 봉명이라 불렀습니다.
자연스레
‘봉황(鳳凰)’의 울음소리를 상상하다 보면,
좋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란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봉명이라는 이름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신앙은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인
“나를 따라라.”(마태 9,9)는 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창동에서 봉명동으로
1980년대 새로운 주거지역 형성되면서
신자 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봉명동 지역을 위한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마침내 1986년 5월 18일,
봉명동 본당은 사창동 본당에서 분가하여
새로운 본당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한 공동체가 새롭게 시작함은
자신들의 신앙을 이어 가며,
다음 세대에게 그 믿음을 물려주겠다는
새로운 출발이 되기도 합니다.
한 사제의 세례명에서 이어진 수호성인
봉명동 본당이 사창동 본당에서 분가할 당시
모 본당인 사창동 본당의 주임은
청주교구 첫 번째 한국인 사제인
이중권 마태오 신부님이셨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는
그 인연을 기억하며
사도 성 마태오를 수호성인으로 모셨습니다.
이처럼
한 사제의 세례명이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의 주보성인으로 이어지고,
수십 년 동안 신자들의 입에서 불리고 있다는 것은
작지만 소중한 교회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거창한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이름 하나,
성당에 놓인 작은 성물 하나,
공동체가 함께 선택한 주보성인 하나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믿음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성전을 봉헌하다
본당 설립 후 약 4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 4월 30일,
마침내 봉명동 본당은 성전을 봉헌하였습니다.
‘우리 성당’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봉명동 성당은
1990년부터 오늘까지
‘성 마태오’라는 이름에 대한 기억,
1986년 사창동 본당에서 분가하던 날의 기억,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애쓴 사목자와 신자들의 기억,
성당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기도,
성당을 오고 간 이들의 발걸음을
역사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며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봉황의 울음보다
예수님의 부르심 한마디가 더 오래 남습니다.
“나를 따라라.”
마태오는 그 말씀을 듣고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평생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986년 이곳에 새로운 본당을 세운 신자들도
같은 부르심을 듣고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성당을 세웠고,
이웃들에게 믿음을 전하는
복음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봉황의 울음소리는 전설 속에 남을지 모르지만,
복음의 부르심은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부르심을 듣고
누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설 때,
봉명동 성 마태오 성당은
오늘도 ‘봉황이 우는 마을’ 한가운데서
복음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살아있는 성전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