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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준) 스크랩 붓다의 생애 중 마지막 하루
이재운1045 추천 0 조회 97 12.07.12 13: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제 김재영 법사를 뵈었다. 다른 분을 뵈러갔다가 오랜만에 법사까지 뵈니 감격스럽고 반갑다.

법사께서는 최근 붓다의 대열반을 글로 쓰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렸다고 말씀하셨다.

 

붓다의 생애 중 마지막 하루는 죽음의 길이다.

붓다 역시 늙고 병드는 인간이다.

팔순 노인이던 붓다는 춘다라는 대장장이가 바친 버섯국을 드시고 식중독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구시나가라까지 가야 한다며, 거기 자신을 기다리는 말라족 가난한 백성들을 만나야 한다며 길을 재촉한다.

피똥을 싸며 걸었다. 비틀거리며 걸었다.

붓다도 식중독에 걸리면 피똥을 싸고, 피똥을 싸면 그도 비틀거린다.

붓다는 신이 아니다. 인간으로 오셨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장 가난하나 마을 구시나라가에 이르러 가장 가난한 사람들 말라족을 만나려 한다.

마침내 구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나무 두 그루 사이에 눕는다.

말라족들이 붓다가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다.

붓다가 그들에게 법을 전하고 축복한다.

붓다는 식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의식을 놓는다.

그 때 마지막 제자가 찾아온다.

붓다는 몸을 일으켜 이 제자를 맞이하고 마지막 가르침을 준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제행무상. 하늘도 땅도 신도 인간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팔정도에 의지하라.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나를 모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붓다는 머리를 북쪽에 있는 고향 가필라를 향한 채 모로 누웠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듯 그도 숨을 놓았다.

말라족들이 붓다의 장례를 도왔다. 화장한 뒤 뼈를 수습하여 탑을 세웠다.

붓다는 가고 팔정도는 남아 있다.

여덟 가지 바른 길, 동영상 아래에 적는다.

 

 

여덟 가지 바른 길 - <바이오코드 응용>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여덟 가지 질문을 하여 스스로 그 답을 구한다. 따로 특별히 훈련할 것은 없지만 생활 속에서 늘 자문자답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 내가 본 것이 정말 사실 그대로일까? - 정견(正見)

 

인간은 자신이 두뇌에 사전에 인지된 영상만 보려는 습성이 있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이미 알고 있던 어떤 것과 연관지어 단정하려는 본능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이미 알고 있던 누군가의 영상을 투영시키거나 선입관을 갖는 것 등을 경계해야 한다. 보이는 그대로 바로 보고, 들리는 그대로 바로 들어야 한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뇌로 듣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자의 경우 6세 이전에 인공달팽이관을 이식하면 정상인과 다름없지만 12세 이후에는 이식하더라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미 뇌에서 소리에 대한 기능을 없애버리고 그대신 감각 인지 부위를 늘렸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앓는 사람은 꿈에서조차 시각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장에 맞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피해야 한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자는 꿈을 꿔도 청각으로만 꾸게 되고, 선천적인 청각장애자는 소리없는 색깔만으로 꿈을 꾸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사람마다 입장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사실 그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붓다는 “깨닫기 전에는 너 자신마저 믿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진(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 젊은 첩이 있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자 그는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내가 죽더라도 네 서모는 아직 젊으니 꼭 개가(改嫁)시키도록 하라.“고 유언했다. 그런데 위무자는 죽기 직전 그 첩을 순장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위무자가 죽은 뒤 큰아들은 서모를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시켰다.

”아버지가 임종 직전에 하신 말씀은 아버지의 본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다. 아버지의 진심은 정신이 맑으실 때 하신 말씀이시다.“ 이것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다.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 오해도 나오고 오판도 나온다. 범부(凡夫)가 생각하면 번뇌망상이지만 깨달은 자가 생각하면 경(經)이라고 했다. 그러니 올바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만 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가시광선만 보도록 눈을 조정해 왔다. 불가시광선은 생활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감지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가시광선도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만 인식할 수 있도록 간상체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색깔만이 인간의 두뇌가 인식할 수 있는 원색이고, 나머지는 모두 세 가지 색깔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내가 보는 그대로 다른 생명체가 보질 못한다. 뇌에 이미 기억되지 않은 정보는 반드시 학습과정을 통해 배운 다음에야 인식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이 다 마찬가지다.

 

같은 인간이지만 누군 보고, 누군 보지 못한다.

<인연의 법칙>은 똑같은 조건에서 누군 어떤 사실을 보고, 누군 전혀 보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치는 간단하다. 동물들은 인간이 보는 방식과 다르게 세상을 본다.

그 차이를 보자.

 

동물의 눈과 인간의 눈은 어떻게 다른가?

동물도 세상을 인간처럼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인간의 눈에는 간상세포 1억 개와 원추세포(망막) 500만 개가 매우 복잡하게 작용한다. 사물을 본다는 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뜻이다.

눈이 처음 생겨난 시기를 과학자들은 캄프리아기 생명의 대폭발 시점으로 본다. 5억 4400만 년 전에 눈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다. 100만년의 시간이면 피부에서 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원시적인 눈을 말한다.

 

원시적인 눈은 어떤 기능을 갖고 있었을까?

눈이란 빛을 감지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빛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눈의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초기에는 빛이 있느냐 없느냐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빛이 있다는 걸 감지하는 능력으로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은 단세포 생물에서 처음 나타났다. 유글레나(Euglena)라는 단세포가 바로 눈을 갖고 있다. 눈이라기엔 너무 원시적이어서 안점(眼點)이라고 하는데, 이 안점으로 보는 세상이 가장 단순한 눈이다. 유글레나가 안점으로 보는 세상은 빛과 어둠 두 가지밖에 없다. 빛이 있느냐 없느냐만 분간하는 것이다. 형태는 물론 운동성도 감지하지 못한다. 빛의 강약도 모른다. 가장 원시적인 눈이다.

 

이 단세포생물보다 한 단계 발달된 눈을 가진 동물은 불가사리다. 불가사리의 몸 표면에는 눈에 해당되는 광세포가 산재한다. 불가사리 역시 주변의 세상을 밝음과 어두움만으로 식별한다. 빛을 인식하는 세포가 여기저기 있어서 인식이 빠르다는 점이 다르다. 이것이 아마도 다세포 동물의 초기 눈일 것이다.

 

 

고양이 눈 / 곤충이 본 데이지 / 물고기의 눈 / 달팽이 촉수

 

뱀의 눈으로 본 오리 / 오징어눈 / 잠자리 눈

 

해파리의 눈은 촉수의 끝에 달려 있다. 편평하다 해서 평안(平眼)이라고 부르는데 불가사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흑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 물체의 형태는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원시적인 눈으로는 여전히 물체를 분간 하지 못하는데, 평안 가운데 움푹 파인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공안(孔眼)이다. 공안은 평안에 비해 빛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시각세포에 도달하는 빛이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다. 빛의 강약만으로 적이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감지할 수가 있다. 달팽이가 바로 수백만 년간 이 공안을 갖고 살아왔다.

 

만일 이 공안 가운데의 홈이 더욱 깊어져 입구가 좁아지기 시작하면 구멍눈이 생겨난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눈이라고 볼 수 있다. 빛을 통한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면 상은 거꾸로 맺힌다. 이곳에 맺힌 상은 어둡긴 해도 선명하다. 두족류(頭足類)의 일종인 앵무조개(오징어처럼 생기고 달팽이처럼 껍질 안에 들어 있는 동물)는 이 구멍눈을 사용한다. 앵무조개는 5억년이라는 긴 세월 거의 변화시키지 않고 이 눈을 사용해 온 것이다. 좀더 선명하게 빛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앵무조개와 친척인 오징어는 구멍눈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작은 피부조직이 입구의 구멍을 덮는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투명한 이 피부조직은 빛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렌즈(수정체) 역할을 했다. 여기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징어가 보는 상은 예리할 뿐만 아니라 앵무조개보다 훨씬 밝다. 오징어의 눈은 색깔이 있고 선명해진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광감각세포가 수정체 눈으로 이어지는 진화는 곤충이나 가재와 같은 갑각류(甲殼類)에서 극적인 발달을 가져왔다.

공중비행을 해야 하는 곤충의 눈에는 수많은 홑눈이 모여 겹눈을 이루고 있다. 곤충들이 본 상의 선명도는 이 홑눈의 수에 비례한다. 부엌을 날고 있는 파리는 4,000개의 홑눈을 갖고 있지만 이보다 더 비행능력이 뛰어난 잠자리는 3만 개의 홑눈으로 이루어진 겹눈을 갖고 있다.

겹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자이크 상이다. 파리가 본 상은 가끔 우리가 TV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보는 것처럼 아주 거칠지만, 잠자리가 본 상은 이보다 훨씬 선명하다.

사람은 초당 25개의 장면을 소화할 수 있는 반면 파리는 250개의 장면을 소화한다. 인간이 만든 영화를 파리가 본다면 움직이는 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상을 보는 셈이다. 인간은 자외선을 볼 수 없지만 곤충들은 자외선을 본다. 흰 꽃의 데이지가 꿀벌의 눈에는 파란색으로 보이며, 꽃잎의 안쪽으로 갈수록 자외선은 더 강렬해진다. 꿀벌이 꿀을 찾으려면 자외선이 강한 쪽으로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진화한 것이다.

 

물고기는 색을 구별한다. 색을 구별하는 추상체(錐狀體)가 있기 때문 입니다. 다만 물고기 눈은 멀리 보지 못한다. 불과 1m 이내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 물고기의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는 구슬처럼 둥근데, 거의 360도 각도에서 들어오는 빛을 인지한다. 그러다보니 원거리에 있는 사물의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이 구슬눈은 사람 눈의 수정체처럼 가늘고 굵게 할 수 없고 수정체에 붙은 근육을 수축 또는 이완시켜 전후로 움직여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그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거리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개구리도 수정체의 굵기를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먼 거리는 역시 보지 못한다. 다만 근접거리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상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파리가 천천히 움직이면 개구리는 전혀 보지 못한다.

뱀도 마찬가지다. 구슬처럼 생긴 수정체를 전후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어 눈 밑의 적외선 감지기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래서 뱀은 먹이동물에서 발사되는 적외선을 감지한다. 정지되어 있는 사물은 역시 보지 못한다.

 

새와 포유류는 수정체의 굵기가 자유롭게 조절된다. 그래서 먼 거리의 물체를 볼 수 있다. 참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거리보다 3배나 멀리 본다. 조류의 눈은 전체 풍경을 잡는 데서 사람의 눈과 다르다. 사람은 풍경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대상의 한 지점에만 눈을 고정시켜 초점을 맞추어 본다. 그러나 하늘 높이 날아오른 매나 독수리는 나뭇가지와 풀숲 사이로 움직이는 쥐의 영상을 또렷하게 포착한다.

그 비밀은 물체의 상을 맺게 하는 황반(黃斑)에 있다. 사람은 망막 위 한 군데에 황반이 있는데, 매나 독수리는 황반이 또 하나 있어 동작이 느껴지는 즉시 다른 황반을 활용한다. 따라서 조류의 색 구별 능력은 사람 못지 않다.

 

그러나 개는 녹색을 옅은 노란색으로, 빨강색을 짙은 노란색으로 인식한다.

황소는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빨강으로 보지 못한다.

야행성인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도록 망막세포에 추상체보다는 빛의 밝기에 민감한 간상체(幹狀體)가 훨씬 잘 발달되어 있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5배나 더 빛을 모을 수 있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보다 다섯 배 더 밝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빛이 많은 낮에는 빛이 너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동공을 길게 닫아 둔다. 이 망막세포층 뒤에 있는 반사판은 희미한 빛을 반사시켜 망막세포를 한 번 더 자극한다. 밤에 고양이의 눈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반사판에서 반사된 빛 때문이다.

 

인간이 보는 세상과 동물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

또한 같은 인간이라도 두뇌에 기억해 놓은 영상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필요에 따라 멀리 볼 수도 있고, 가까이 볼 수도 있다. 설사 어느날 갑자기 시력을 잃어도 두뇌에 기억된 영상 정보를 활용하여 꿈도 꾸도 생각도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본다는 행위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습을 해야만 한다.

 

나) 내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 - 정사유(正思惟)

 

생각이 잘못되면 결과도 잘못된다. 그러니 생각이 발라야만 한다. 바르게 보는 눈(正見)이 있어야만 정사유가 가능하다.

남의 분야에 뛰어들면 으레 생각을 잘못하여 오판하기 마련이다. 사기당하기 좋은 것이 이것이다. 바둑에 지는 것은 생각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저 자리가 더 좋다고 오판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판단을 하면서 선입관, 무의식 등이 개입하지 않고 문제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특히 코드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틀리기 쉽다.

여성에게 큰 상처를 한번 입은 남성은 다른 여성을 볼 때마다 경계를 한다. 두 여성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한다. 이것은 옳은 사유가 아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 그것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이 가리키는 대로 가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사실은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은 성공할 수 없다.

생각 단계에서 대부분 일의 성패가 결판이 난다.

 

생각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이해해야 사유가 발라진다. 사유가 바르지 못하면 나쁜 결과가 오는 것은 자명하다.

마음이 주변 환경이나 조건에 얼마나 이끌리는지 이해해야 한다. 마음은 질량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중력에 이끌린다.

 

오리, 닭, 거위 등 조류의 병아리는 부화한 직후 처음 만난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고 졸졸 따라다닌다.

두뇌에 이상이 있으면 모자를 아내로 착각하기도 하고, 소리를 빛깔로 듣기도 한다.

두뇌가 저절로 만들어주는 생각은 굉장히 많다.

영양이 부족하면 화를 내기도 하고, 성질이 급해지기도 한다. 정사유의 길이 쉽지 않은 이유다.

 

다) 내 말이 과연 정확한가? - 정어(正語)

 

내가 한 말이 내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상대에게 내 생각 그대로 전달될지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상대도 똑같이 이해하는 어휘인지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하는 사람이 농담이라고 생각하여 한 말도 듣는 사람은 욕이나 비난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정확하지 않으면 상대가 오해하고, 말하는 자신도 착각한다. 정확하게 말하고 계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IMF 맞았다, 전화가 터진다, 차 뽑았다라고 무심코 말하는 중에 본래 의미가 왜곡되거나 퇴색될 수 있다. 언어는 한 치도 어긋나서는 안된다.

흔한 맹세는 단지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바르지 않으면 생각도 바르지 않고 시각도 바르지 않게 된다.

 

특히 한국인은 이성적으로 말하는 훈련이 덜 되어 있다. 대개 감정적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격정적으로 말해야만 알아듣지 논리적으로 이치를 따져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인이 우뇌가 지나치게 발달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극우뇌 성향을 보이는 우리나라는 매사 좌뇌 영역이 약해 감정적이고 일시적이고 즉흥적이기 쉽다.

따라서 말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사유가 발라져야 한다.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면 감정적인 말을 하게 되고, 이는 곧 화를 부른다.

 

라) 내가 지금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 정업(正業)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것인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관성에 따라 움직일 때가 많다.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각성해야 한다.

 

기왕 일하는 것, 남 도와가며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좋다.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생(相生) 정신으로 일을 하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줄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직업에는 분명 귀천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 천한 직업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거나 혹은 부끄럽기 때문일 수 있다. 무슨 직업이든 만족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일하자, 좀 더 일하자, 끝까지 열심히 일하자.

그렇게 해서 재산을 모으더라도 상생(相生) 이 말을 잊으면 안된다. 남이 부러워하기에는 약간 적고, 남이 멸시하기에는 조금 많은 재산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도 돈에 대한 애착이 끊어지지 않거든 돈을 더 벌기는 하되 땅에 쌓아 두지 말아야 한다.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번 돈을 하늘에 쌓아 두자. 돈을 수표로 바꾸듯 공덕(功德)으로 바꾸어 하늘에 간직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돈이 가는 곳에 그 주인의 마음도 간다. 그래서 직업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마) 내 인생은 내가 뜻한대로 바르게 가고 있는가? - 정명(正命)

 

신념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종교적으로 자문하든, 개인적으로 자문하든 늘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짚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길인가, 인생의 바른 길인가?

그러자면 영혼이 맑아야 한다. 영혼이 흐려지면 판단력 등 모든 게 뒤죽박죽 된다. 마약, 술, 담배 등에 탐닉해선 더욱 안되지. 취미를 갖되 지나치면 안된다.

추위에 적응하려고 진화한 북극곰이 도리어 더위는 못견딘다. 물에서 견디려고 진화한 고래가 뭍에서는 못산다. 창녀가 사창굴에서도 사는 건 그 환경에 친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에든 절대로 빠지면 안된다. 이 세상 그 무엇이라도 이해가 안되는 일은 없다. 살인, 강도, 강간이라도 젖어들면 다 이해가 간다. 상상으로 되는 일은 안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가지 않을 길은 가지 않고, 가야 할 길은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요,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것은 신의 일이라고 했다. 인간은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 정정진(正精進)

 

자기 자신의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아내와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혹시 게으름에 빠져, 놀이에 빠져 뭔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결코 게을러서는 안된다. 어떻게 해서 태어난 인생인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적어도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놀더라도, 비록 어두운 곳에 처해 있더라도 뜻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한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뜻을 잃기 때문이다.

초나라 사람 오원은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목표를 송곳처럼 세운 오원은 마침내 그 원수를 찾아 통쾌하게 빚을 갚았다.

위나라 사람 범저도 자신을 욕보인 사람들을 평생 저주하다가 마침내 원수의 머리통을 갖다가 요강으로 썼다. 그것이 선(善)이든 악(惡)이든 뜻을 쥐고 놓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 뚜렷한 목표를 잃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사) 내 사고방식은 바르고 효율적인가? - 정념(正念)

 

생각하는 방식이 완벽한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지식이 짧아 오판할 수도 있고, 선입관, 나쁜 기억 등에 의해 생각하는 방식이 잘못될 수도 있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數)를 둘 수 있듯이 바르게 생각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익혀야 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CEO가 되려면 생각하는 방식이 빠르고, 바르고, 일관돼야 한다.

특히 좋은 생각을 늘 해야 한다. 증오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없애고, 남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만족은 무진장한 천연 자원이다.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넉넉한 부자가 된다.

남을 속이는 것은 쉽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은 어렵다. 유능한 장수는 수족(手足)부터 먼저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생각을 따라 이루어지고, 생각을 따라 없어진다.

 

아) 내 마음은 지금 고요한가? - 정정(正定)

 

무슨 결정을 앞두고 자신이 마음이 과연 고요한지, 다른 감정에 매이지는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최적의 고요한 상태로 안정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순발력이 생기고, 급한 일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들뜨지 말고 항상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흥분하지 않는 게 최고다. 야구든, 농구든, 게임이든 흥분하지 않아야 이긴다. 참선 등으로 아랫배에 힘을 넣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쓰러지지 않는다. 항상 고요할 때 태풍도 그를 비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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