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샘 덕분에 <빨간 모자>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어 아주 즐겁습니다. 특히 <동화의 정체>는 제가 요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서 한층 더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스스로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고 한다는 점이 중요한 거지요... 누구에게나요.^^ 제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바로 옛이야기가 동화화되는 과정인데요. 거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변형되어가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잭 자이프스가 명백하다고 밝힌 동화의 기원 부분입니다. 잭 자이프스는 동화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아주 쉽다고 얘기하는데요. 옛이야기의 원형을 밝히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데 반해서 말입니다. 그 쉽다는 그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은 게 저의 바램이지요. 하지만 아직 책을 조금밖에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에 반해서 아주 어렵게 느껴집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처럼 좀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을 받는데요. 아마도 제가 사회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이해하도록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잭 자이프스나 로버트 단톤이 비판하는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 말인데요. 전 오래전부터 부르조아의 가치관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지요. 근데 이번 전주 토론회에서 한 도덕 선생님이 근대의 정신이 바로 공정한 거래에 있다고 얘기하시는데 그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단순화한 생각이긴 하지만 잭 자이프스의 책을 읽다보면 어떻게 윤색이 되어졌는지 밝혀져 있을 거 같아 더 기다려보기로 하구요. 다른 분이 아시면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근데 제목에도 썼지만 이야기가 변형되어 가는 과정은 새로운 시대 또는 지역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이미 로버트 단톤도 얘기했던 거지요. 망탈리테라고 하는 개념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망탈리테 자체도 변한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도 그런 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이나 부르노 베텔하임이 그림형제의 옛이야기로 분석을 행한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형성되어진 이야기이니까 말입니다. 단톤이 <할머니 이야기>로 분석을 한 것처럼 말이죠.
근데 단톤은 왜 <할머니 이야기>를 <빨간 모자>라고 생각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것일까 궁금했는데요. 김환희 선생님의 <옛이야기의 발견>을 읽기 전까지는 전 그 이야기가 <빨간 모자>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할머니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 그것도 뒷부분이 남아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왜 뒷부분이 짤린 이야기를 가지고 논지를 전개해나갔을까 하는 읩문이 생깁니다.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왜 적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인 거지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김환희 선생님도 비판하시긴 했지만 전 왜 그랬을까가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건 연구자에 대한 모독인 거 같구요. 스스로도 그런 줄 모르면서 그랬다고 본다면 그 당시 시대의 어떠한 부분이 그렇게 사고하도록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쨌든 이건 좀더 공부하면서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잭 자이프스는 그런 점에서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를 부르조아 정신의 세례를 받은 작품,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이야기로 보고 있으므로 그 역사적 기원으로부터 변화해온 이야기로 인정하기는 하는 셈이죠. 단톤은 <할머니 이야기>와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를 조합해 만든 이야기로 보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왜 그림형제는, 아니 그림형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여인은 그 두 이야기를 이어붙였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 이야기>가 프랑스에서 그렇게 널리 알려졌던 이야기라면 왜 뒷부분을 변형시킬 필요가 있었을까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종교 박해를 피해 독일로 간 위그노파 여인이라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 속에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들어간 것일까요? <할머니 이야기>와 <빨간 모자>의 세부와 결말이 달라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비교연구한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제가 원하는 자료가 있을 것도 같은데요.
기독교적인 것은 현대인에게 무척이나 적합하다고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그림형제는 어쩌면 그러한 것을 예견하고 이 이야기를 동화집에 실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림형제의 동화집에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유럽의 중세 시대에 민중들은 기독교보다는 오히려 이교적인 샤머니즘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황금가지>에 보면 많이 나와 있는데요. 물론 기독교가 모든 인간의 생활을 좌우했지만 기독교가 아무리 변화시키려 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은 기독교 안으로 흡수해서 섞이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많은 종교들이 샤머니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거지요. 그런데 샤머니즘에서 인간이 신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중세 기독교와 비슷한 점도 있는 거 같습니다.
첫댓글 그러니까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 역시 역사적 변형의 뒷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것만 따로 떼어 연구, 분석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단톤은 변형된 <할머니 이야기>로 그렇게 했던 것이구요. 그런데 이러한 변형은 어느 시대에나 비판받을 만한 일이었던 거 같은데요. 왜냐하면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치를 가져오려는 사람들 사이에는 늘 대립과 갈등이 생겨나는 거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플라톤도 <국가>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임의대로 변형하는 것을 무척 비판했거든요. 신들이 인간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이지요.
플라톤이 그렇게 비판했던 것은 그 당시에 시가 사람들을 교육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인데요. 옛날 사람들은 모두 신을 모방하며 살아갔는데 말이죠. 신을 정말 올바른 존재로서 그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우리는 지금 그런 신들을 보면서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여기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또한 비판하기도 하지요. 그게 무슨 신이냐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인간화된 신의 모습은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모습이기도 한 거지요. 그래서 플라톤은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그리고 있는 호머의 시를 구절구절 인용해가며 바로잡으려고 한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재미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는데요. 이야기를 들려줄 때 상급(?)의 이야기꾼은 올바르고 훌륭한 것만 모방하기 때문에 진지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반해 하급(!)의 이야기꾼은 이것저것 온갖것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생생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재미'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 재미있죠! 그래서 올바른 가치관을 알고 있어도 우리는 재미에 이끌리게 되는 거지요. 재미없지만 좋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죠. 이것저것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본질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죠.
부르조아는 역사의 흐름 속 한 시대을 지배하고 있는 집단으로 중세 봉건시대의 상인들로 부터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근대는 르네상스이후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철학이 문화,종교,산업에 공고화되는 과정이었고...물물교환처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장이 서는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 소비되는 시장이 형성되고 도시가 확산되고 ...현재는 세계화되고...부르조아의 가치관을 말하려다가 횡설수설하게 되었는데요..^^ 잘은 모르겠지만...근세초기에 조차도 부르조아의 탄생은 상품의 생산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품의 속성이 부르조아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상품은 잉여품이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이것을 소비하기위해서라면 부르조아는 무슨일이든 해야겠지요? 공정거래는 아마 소비를 위해 잠깐 빌려온 가면중에 하나일 듯 한데요...
이 토론이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담고 있어서 잘못하면 너무마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통에 중구 난방이 될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하여튼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천천히 해 봅시다. 헷갈리며 가는 와중에 무언가 하나로 정리되는 지점이 보이는 날이 오겠지요.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 하나만 통과하고 나도 상당히 많은 길을 해매며 사고하고 사유한 흔적을 발견하게 될테니까요. 그러면 여기서 얻은 다양한 사유들이 다른 이야기들을 공부하는데 하나의 거름이 되겠지요. 시작은 복잡하나 점점 정리가 되면서 단순한 길로 접어들 수 있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그 날이 쉽게 오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네, 제가 너무 사방팔방으로 생각이 튀어가는 스타일이라서 말이죠... 좀 집중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