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부산의 <신해운대역>
1. 오랜 기차 여행을 했다.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의 조금은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코스였다. 중앙선의 마지막 지점과 가까운 <신해운대역>이다. 중앙선은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부전역>까지 7시간에 가까운, 철도여행 중에서 가장 긴 코스이다. 80년대 진도 여행을 하기 위해 탔던 목포행 야간열차의 기억이 난다. 7시간 넘게 어둠 속을 달리던 열차에서는 그저 잠만 잔 기억만이 남아있다. 조금은 무리이다 싶어 시도하지 않았지만, ‘양동’에서의 거주도 6월에 마무리하기로 했기 때문에 긴 기차여행을 결심한 것이다.
2. 그런 이유로 오늘의 역답사는 ‘역’보다는 기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5월의 한반도 풍경이 중심 주제로 바뀌었다. 지난 주말 며칠 비가 내린 산과 들 그리고 강과 하천은 청량하고 깔끔한 얼굴로 푸릇푸릇 빛나고 있었다. 여름의 짙은 색으로 변모하기 전인 지금, 산과 들은 연한 빛을 띤 새 생명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의 침묵과 고독의 느낌과는 다른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아직 모내기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에서 바쁜 농부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특히 의성과 영천 구간에서는 푸른 마늘밭에서 수확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힘찬 노동의 열기까지 느껴졌다. 지난 겨울 이 지역을 지날 때 마늘을 심던 사람들이 이제 결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5월이 되면서 산과 들을 장식하는 것들은 라일락이나 이팝나무와 같이 하얀 꽃들의 흐름이다. 꽃을 품은 나무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울 때 그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벚꽃을 필 때는 거리에 있는 나무들이 온통 벚나무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꽃들의 모습은 수많은 다양한 존재들이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3. <신해운대역>에 내렸다. 평소 점심 시간을 훌쩍 지난 오후 1시가 가까웠다. 역 주변에는 식당이 없다. 조금 내려가니 해운대구의 아파트와 상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가지 가게들이 보이지만, 제대로 된 식당은 보이지 않고 프랜차이즈 상점들만 난무하고 있었다. 결국 <맥도날드>에서 새우버거와 치킨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런 패스트 음식은 먹고나서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칼로리는 높지만 포만감은 부족한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직선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걸음은 계속 멈추어야만 했다. 조금 이동하면 곧바로 신호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산책의 기분으로 걸어야 했다. 약 50분 정도 이동하자 다행히 ‘바다’가 나타났다. ‘청사포’이다. 해운대까지는 조금 무리가 되어 이 쪽으로 방향을 뜬 것이다. 부산에 와서 ‘바다’를 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억울한 일인지 않은가. 도시와 연결된 바다는 신선한 모습이다. 소박한 어촌과는 다른 공간적 얼굴로 도시민들에게 일상적인 여유와 낭만을 함께 해주기 때문이다. 해변가를 걷고 바닷물을 만질 시간은 없어 아쉽지만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다시 바쁘게 역으로 돌아가 기차를 탔다. 긴 기차여행에, 짧은 도보여행이었다.
첫댓글 - 긴 기차여행 생각은 부산부터 떠오르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