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대제지 관련 사료
Ⅰ. 삼국지위서동이전
변한과 진한의 24국으로 이들 국가 중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은
신라 때 문소군(聞韶郡)의 속현이었던 단밀현(單密縣)이 본래 무동미지현(武冬 彌知縣)
이므로, 역사학자 이병도와 천관우는 단밀현으로 비정하고 있다.
* 中國正史朝鮮傳, 이병도, 천관우
※ 삼한시대 저수지인 수산제가 있는 밀양은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이고
미동(彌凍)은 무동(武冬)과 동음으로 수제(水堤)라는 뜻이라고도 함
Ⅱ.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
만악산(萬嶽山) 단밀현(丹密縣) 남쪽에 있으며 주(州) 북쪽 47리에 있다
대제지(大堤池) 단밀현(丹密縣) 북쪽에 있으며 주에서 68리다
* 1530년(중종25년) 이행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편찬
Ⅲ. 상산지
堤堰
恭儉池[주:在州北二十七里高麗明宗時司錄崔正汾因舊址築堤長八百
六十步周一萬六千六百四十七尺其池實在咸昌而尙民專灌
漑之利洪貴達有記]
大堤池[주:在丹密縣北距州六十八里]
* 1617년(광해군9년) 이준(李埈)이 편찬한 경상도읍지
Ⅳ. 모암집
정도백장
[ 丹密縣 북쪽에 있는 ‘大堤’라는 못의 제방이 붕괴되었는데, 조정에서 그 지역
일부를 鄕校 學田으로 허가해 주었다. 때문에 1643년(인조21년) 제방을 수리
하고 물을 가두었을 때 물이 미치지 않는 땅을 향교에서 전처럼 경작 했으나,
올 봄에 堤堰司가 경작을 금지했다고 하면서 道伯에게 해결해 줄 것을 청하기 위해
올린 狀啓]
* 모암 조릉(1607년~1683년)
* 이 때 보주(지금의 예천군) 유생들이 소를 제기한 사실 등 제반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대제지 구역 일부가 보주(예천군) 다인현 현동면 관할로 보여짐
Ⅴ. 단밀현지
묵계제는 현의 동쪽 7리쯤에 있는데 둘레가 2,416척이고 순화화가 있다.
대제는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우제는 현의 북쪽 7리에 있다(現存)
연제는 현의 동쪽 6리에 있다(現存)
* 상산지 기록을 보완하여 1743~1776년사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됨
* 순하화 : 연꽃 * 묵계제 : 말지지, 미끼못
Ⅵ. 여지도서
恭儉池 在州北二十七里 - 周一萬六千六百四十七尺 深十尺池在咸昌
-공검지는 주 북쪽 이십칠리에 있고, 둘레가 일만육천육백사십칠척, 깊이는 십척으로 함창에
에 있다)
大堤池 在丹密縣北 - 周二千八百九十六尺 深十尺
- 대제지는 단밀현 북쪽에 있고 둘레가 이천팔백구십육척이고 깊이는 10척이다
月峯堤 在丹東 - 周九百三十九尺 深七尺
-월봉제는 단동면에 있고 둘레가 구백삼십구척 깊이는 칠척이다
硯堤 在丹東 - 周一千五百九十八尺 深四尺
-연제(벼락지)는 단동면에 있고 둘레가 일천오백구십팔척이고 깊이는 사척이다
末只堤 在丹東 - 周二千四百六十五尺 深三尺
-말지제는 단동면에 있고 둘레가 이천사백육십오척이고 깊이는 삼척이다
*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
Ⅶ. 조선환여승람
대제는 군북 20리에 있다. * 비안현 기준임
매년 정월 밤에 미기(米圻)가 논을 가는 것 같은데 용(龍)이 간다고 하고
이로써 흉풍을 점치는데, 지금은 미기(彌機)못이라 부른다.
* 1934년 이병연 저작
Ⅷ. 교남지
상주군편
월봉제(현위치 : 이연3리 월봉산 뒷편 추정) 단동면
연제(현위치 : 면사무소 앞 벼락지) 단동면
말지제(현 안계면 용기2 , 단북면 노연리) 단동면
대제지단밀현 북쪽에 위치(현위치: 단북면 효제2리) 단북면 + 다인현 현동면( ?)
* 대제지 위치를 단밀현 북쪽이라 함은 당시, 몽리민은 단북면민, 저수지 구역이
보주(예천군) 다인현 현동면 관할이므로 면명을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됨
비안군편
말지지는 군서 25리에 위치
* 1940년 정원호가 김천지역의 지리, 인물, 풍속을 포함하여
경상도 각 군의 지지를 묶은 통지
Ⅸ. 의성승감
대제는 단북면 노연동에 있다.
매년 정월 밤에 미기(米圻)가 논을 가는 것 같은데 용(龍)이 간다고 하고
이로써 흉풍을 점치는데 미기지라 부른다.
* 1962년 박재구 임태순 저작한 경상도 각 군의 지지를 묶은 통지
- 대제는 단밀현 북쪽에 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산지, 여지도서 ,단밀현지
교남지 등에 기록이 있음
- 그 위치가 단북면 노연동(단동면)이라 함은 당시 대제지가 이미 없어지고
최근까지 말지지가 존치, 조선환여승람의 내용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노연동은 상주목 속현인 단밀현 단동면 지역이므로
- 1940년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이나, 1962년에 발간된 의성승감은 현존하는 유지를
기준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임
(일본 강점기때 제작된 지도에 말지지 위치 표기)
대제지의 위치
- 모암 조릉선생의 모암집 "정도백장"기록에 의하면 1643년 제방을 수리한 기록이
있으며,, 효제2리(대제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경지정리 전에
대제지의 높은 둑 일부가 존치했다고 일관되게 증언
- 효제2리가 대제마을, 하류에 있는 신하2리는 하제마을, 단밀면 서제리 등
지명(대제지-아래마을 하제-서쪽마을 서제)해 볼 때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음
첫댓글 기회가 되면 선생님을 모시고 향토사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번역문까지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사료를 찾을려고 노력했으나 역부족입니다.
앞으로 많은 조언과 충고, 지도편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