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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수목원을 읽다(윤승원 : 경북 경주)
봄, 수목원은 만연체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화려한 문장을 쓰느라 술렁거린다. 노랗고 빨갛고 흰 색깔들이 나의 독서를 유혹한다. 나는 청명의 안개 속을 걸어 만화방창 꽃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 깃털 같은 햇살이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낮 시간도 좋고, 청자빛 하늘이 노을로 채색되는 저녁 무렵도 좋지만 나는 푸르스름한 이내가 깔린 여명의 수목원을 좋아한다.
제비꽃, 족두리꽃, 목련, 명자꽃들이 새 명찰을 달고 제 이름을 불러 달라는 듯 손을 흔들고 서 있다. 문고판 같은 야생화며 전집류의 나무들이 수목원 도서관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이 푸른 도서관의 사서는 잠시 출타중인 모양이다. 바람이 먼저 책을 읽으려는지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는 서둘러 달려온 마음을 옆에 내려놓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신간들을 골라 읽는다. 사춘기때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 앉아있던 생각이 나서 설핏 웃음이 난다. 깨알같은 글씨들을 놓치지 않으려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굽혔다 팔뒤꿈치를 들었다하면 그때마다 나무와 풀꽃들이 내 불편을 덜어주려는 것과 같이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폈다 키를 낮추어 준다.
제자백가의 백자쟁명이 이만큼이나 할까. 초신성처럼 노란 별을 마구 터뜨리는 생강나무, 자주색 튀밥을 뻥튀기처럼 튀겨내는 박태기나무, 개불알을 덜렁덜렁 매달고 있는 개불알꽃, 초록모양의 귀걸이를 흔들고 있는 히어리. 나는 꽃과 나무가 전하는 휘황찬란한 문장에 주-욱, 밑줄을 긋는다. 문장들은 내 마음의 텃밭에 새겨진다. 꽃의 문장은 화려하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무량한 깊이를 가진다.
꽃의 문장은 넉 장이다가 다섯 장이다가 홑받침이다가 더러는 겹받침이다가 변화무쌍하다. 꽃들의 배색은 어떤 단청보다 곱고 정겹다. 어느 채색가나 디자이너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다. 현호색은 보라의 농담이 아름답고 꿩의 바람꽃은 흰색과 노랑의 어우러짐이 다정하고, 깽깽이풀은 금방이라도 여우 울음소리를 낼 것 같다. 꽃을 꺼내는 줄기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과 꽃잎의 황금비율의 기울기 등은 인위적인 힘으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천연의 아름다움이다.
야생화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동물원처럼 야생의 식물을 가두워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 해 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나마 꽃을 가까이 두고서야 각박한 현실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을 바라볼 때의 마음엔 악이 없다. 사람들은 보는 순간 선해지고 샘물처럼 맑아지게 된다. 잠시 꽃을 바라보면서 세파에 찌든 자신을 전화시키는 것이다.
꽃들은 피어날 때를 알고 져야할 때를 제대로 지킨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한다. 명예와 부에 집착하지 않고 시들어 사라지는 것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타자와 더불어 대동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지면 더 가지려하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만을 고집하며 주변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한낱 풀과 나무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꽃과 나무들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수목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의 고비를 넘어오느라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받는 것이다. 추위와 강풍을 인내한 꽃들이 피워올리는 환희의 시간들을 보면서 내 삶의 고난들도 어느 순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저 풀과 나무처럼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내가 나를 반성하는 때도 바로 이곳 수목원에서이다.
혹, 도연명의 도원가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나는 고기잡이가 되어 길을 잃고 여기 수목원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도 가도 온통 꽃으로 덮여있는 화원의 심연. 꽃잎은 푸른 잔디 위에 펄펄 눈처럼 날아내리고 나는 그런 속세에서 실종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이제 꽃과 합일하여 한 몸이 된다.
다산은 죽란시사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시를 나누웠다고 한다. 조선조 책벌레인 이덕무는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자신 방을 소완정이라 불렀다. 푸럴레며 새들의 죽란시사에 귀를 기울여본다. 꽃책으로 울타리를 삼은 이곳을 가만히 나의 소완정이라 불러보기도 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라 했다. 무릇 글씨에서는 향기가 있어야 하고 서책에서는 기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벌, 나비며 햇살과 바람, 사람까지 찾아들게 하는 꽃들이야말로 자연이 쓴 최고의 금석문이 아닐까?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꽃잎 끝에 매달려있던 이슬꽃들이 반짝 마지막 문장을 남기며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살다 가는 꽃. 생과 사를 한몸에 담고 있는 저 촌철살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묘미 때문에 나는 여명의 수목원을 즐겨 찾아오는 것이다.
봄, 수목원은 싱그럽고 향기로운 도서관이다. 저마다 제 몸속의 붓을 꺼내 혼신의 힘으로 일필휘지하는 꽃과 나무들. 나의 독서는 초록의 묵향에 흠뻑 물이 들었다. 나는 무슨 문장으로 이 봄을 기록할까? 수목원을 걸어나오는, 오늘은 내 몸이 꽃이다.
옹기 / 윤승원
옹기 일가족이 베란다에 오종종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쌀이며 고추장을 담은 크고 작은 배불뚝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는다. 요즘엔 플라스틱, 스테인 그릇들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옹기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것들엔 물질문명을 지향하는 획일성만 있어 좀체 정이 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옹기는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따뜻한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어 볼수록 친근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울러 말한다. 질그릇은 오지잿물을 덮지 아니하고 진흙만으로 구워 만든 것이고 오지그릇은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위에 오짓물을 입힌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옹기는 주 부식을 저장하거나 고추장 된장 등 양념이나 주류를 발효시키는 용구로 사용되었으며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음식저장 용기라고 한다.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는 아니었지만 종갓집이 해야 하는 제사며 집안 대소사들을 묵묵히 치러냈다. 그중 고추장, 된장을 담그는 일은 그해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된장을 담글 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몸가짐을 단정히 한 후 우물물을 길어다 큰 독에 붓고 왕소금을 자루에 넣어 녹였다. 물과 소금의 농도를 알맞게 맞춘 다음 잘 띄운 메주를 큼지막하게 쪼개고 솔로 씻어 물기 뺀 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었다. 불에 구운 참숯과 말린 빨간 고추 몇 개도 함께 들어갔다. 그런 다음 항아리 둘레에 새끼줄로 금줄을 치곤 버선을 거꾸로 해서 매달았다. 행여 범접할 악신(惡神)을 물리치고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전래의식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들은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이웃마을까지 이구동성으로 소문이 났다.
장독들은 시간을 숙성시키는 도구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시간을 품고 있는 장독들은 나를 있게 해준 과거와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릴 적, 혹 장독대에서 놀다보면 파평 윤(尹)씨의 그 짭짤하고 달콤하고 한편으론 고집 센 내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뭉게구름처럼 아득해지곤 했다. 눈을 감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의 인기척들이 두런두런 장독 사이를 돌아다녔다. 달그락! 뚜껑을 열어 항아리에 담긴 것들을 손으로 찍어 맛을 보곤 하던 흰 옷자락들의 할머니들.
여름날 풋감을 주워 보리쌀 담긴 항아리에 넣어두고 일주일가량 기다리면 감은 홍시처럼 물렁물렁하게 익었다. 어린 우리들은 서로 제 것이라 표시해두면서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때 항아리는 조급한 우리에게 기다림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한번은 남동생과 서로 감춰둔 감 때문에 싸우다 항아리 뚜껑을 깨뜨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벌을 섰는데 장독간에 앉아 울다보면 어느 순간 동생에게 향해 있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항아리처럼 둥글어지곤 했다. 그때 장독대며 내 무릎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달빛들은 아직도 내 기억의 항아리에 풋감처럼 저장되어 있다.
장독들은 대개 조금씩의 간격을 두고 장독대에 놓여있다. 핫바지처럼 헐렁한 품 사이로 햇살과 바람과 빗물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며 장들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는 안과 밖이 단절되어 있지만 옹기는 안과 밖을 연결시켜주는 숨구멍이 있어 이곳으로 들숨과 날숨을 쉰다. 끊임없이 숨을 쉬면서 옹기의 내부는 외부를 지향하고 외부는 또 내부와 소통하며 그 경계를 무애하게 넘나드는 것이다. 장독대에는 그러나 모든 항아리들이 다 내용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 쓰임을 위하여 비워둔 항아리엔 감나무 잎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거나 귀뚜라미가 세를 들고 있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심심할 땐 빈 항아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기도 했는데 당! 당! 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항아리종(鍾)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들이 마당과 뒤뜰을 푸르게 적시곤 했다.
경주박물관 안압지유물관에는 유명대옹(有銘大瓮)이라는 큰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주로 곡식을 저장하던 항아리로 곡물이 자그마치 10석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빗살무늬가 그려져 있는 회청색 경질 토기는 불뚝한 배 둘레에 비해 아래위가 좁아 불안정해 보인다. 그런데도 상한데 하나 없이 천년 세월을 건너온 옹기의 모습에서 어쩌면 대갓집 곳간을 지켰을 당당한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항아리에 저장되었던 곡식이 한 집안과 마을의 양식(糧食)이 되었고 그 양식의 힘이 천 년을 지나 오늘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항아리의 의미가 여간 큰 울림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니었다. 장맛이 좋아야 복이 든다는 말이 있다. 장맛은 그 집안만의 고유한 음식 맛을 내고 좋은 음식은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다. 집안이 번성한 집 장독간을 보면 하나 같이 윤기가 흐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항아리에다 신을 모시고 어떤 소원도 빌면 이루어진다며 신성시하기까지 했을까. 유명사찰이나 종가 댁 안방 실근위에 모셔져있는 신주단지가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나지 않아 나쁜 기운이 맺히지 않고 좋은 기(氣)가 자연스럽게 돌아 안으로 모아질 것 같은 옹기. 만월이라도 비추는 날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정안수 그릇이 장독간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기도 했다.
옛 사람들은 옹기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옹기는 일상생활에 그릇의 용도로 쓰는 외 순장의 부장품으로도 사용하였다 한다. 그런가하면 죽음을 항아리 속에 넣고 영혼을 잠재우는 널로 사용하기도 했다. 육신도 영혼도 독널에서 발효가 된다고 믿었던 걸까.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 흙으로 빚어진 옹기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태어날 것을 믿었던 때문이 아닐까? 메주는 죽어서 장을 만든다. 태아를 가진 산모의 몸과 닮은 항아리는 그러니까 제 안에 죽음과 삶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옹기의 둥글게 흘러내리는 선(線)은 부석사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처럼 완만한 곡선을 가진다. 그 둥근 선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슬픔들이 발효되어 편안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서울시에서 타임캡슐 안에 여러 가지 자료들을 넣어 땅에 묻는 것을 본 적이 있다. 500년 후에 타임캡슐을 꺼내 지금의 시대상을 후손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그 타임캡슐이 항아리모양을 닮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타임캡슐은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역할을 한다. 현재를 숙성시켜 미래를 준비하는 항아리의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햇살목욕을 하고 있는 장독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장을 담그려 하는데 좀 와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내일은 마침 휴일이니 딸애와 함께 가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그것을 장독에 함께 저장하며 아이는 또 어느 훗날에 어머니가 되어 이 전래의 풍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것이다. 문득 칠순의 어머니야말로 유구한 시간을 저장해둔 옹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내 몸이 천천히 둥글어지고 있었다.
오솔길을 펼치다 / 윤승원
산그늘에 앉아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본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곡선이 굽이굽이 능선을 휘감으며 시냇물처럼 흘러간다. 등산로 초입부터 어깨를 겯고 졸래졸래 따라오던 오리나무며 상수리나무도 다소곳이 곁에 앉아 숨을 고른다.
오솔길의 사전적 의미는 폭이 좁은 호젓한 길이다. ‘오소리가 다니는 길’, ‘오소리길’이라 부르다가 오솔길이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오소리는 평소 늘 다니던 길을 찾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짧은 다리로 가던 길만 다니니 오소리가 오가던 곳은 자연스레 길이 난 것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기 편한 넓은 길을 선호하지만 나는 왠지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좋아한다.
잘 닦여진 길은 아무래도 산행의 맛이 덜하다. 여럿이 섞여 가다보면 주변의 풍광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서로 앞 다투어 걸으니 다소 번잡스럽다. 하지만 수풀 사이로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살짝 비켜나있는 오솔길은 왠지 정감이 간다. 바쁘지 않고 느긋하여 생각에 집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고요해져 좋다. 크고 화려한 것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는 듯 하지만 실제론 작고 소박한 것들이 더 알찰 때가 많다.
오솔길처럼 변화무쌍한 길이 또 있을까. 봄이면 쫑긋 여린 꽃잎을 내미는 바람꽃과 노루귀가 반가워 얼른 쪼그려 앉게 된다. 싱그러운 잎사귀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여름엔 몸과 마음이 초록으로 물이 든다. 가끔씩 만나는 소나기는 당황스럽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비의 연주를 듣는 맛이 있다. 낙엽이며 단풍과 더불어 은빛억새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가을엔 아늑한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거기다 은은히 풍겨오는 구절초향기는 호사스런 덤이다. 겨울산행은 망설여지지만 마음먹고 나선 길에 눈을 만나기라도 하면 괜히 그리운 누군가가 생각나 설레기도 한다.
르누아르의 그림 중에 <풀밭사이 오솔길을 올라가는 여인들>란 작품이 있다. 풍성하고 짙은 색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걷고 있다. 풀밭 사이로 수를 놓듯 들꽃이 피어있고 드문드문 키 큰 나무 몇 그루가 길을 안내한다. 살짝 부는 바람사이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던가, 하얀 길을 따라 그녀들이 금세라도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오솔길을 걸을 땐 큰길을 걸을 때보다 조심해야 한다. 하지정맥처럼 불쑥 솟아오른 나무뿌리를 잘못 디뎠다간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이른 아침엔 거미줄이 길을 막아 귀찮을 정도로 얼굴에 달라붙기도 한다. 산이 깊을수록 괜한 무섬증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호젓하기 때문일 것이다. 숲에서 푸드덕 꿩이라도 날아오를라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있어 오히려 긴장감을 유발하니 지루하지 않다.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삶이 깊어지는 것처럼.
돌아보면 오솔길을 걷는 듯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3때, 고등학교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산업고등학교를 가라고해 갈등을 겪었다. 그렇지만 고3때까지도 대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혼하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꾸려나갈 줄 알았으나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혼자여도 둘이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수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외딴길이 된 친구가 있다. 세상이라는 거친 숲에 혼자 남겨졌어도 그녀는 언제나 꿋꿋하게 살아간다. 소박하고 검소한가하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도 감탄할 줄 아는 정 많은 사람이다. 척추측만증이 심해 장애가 있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앞장서 돕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작은 체구에 말을 할 땐 목소리를 낮춰 조곤조곤 얘길 한다.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고마운 친구다.
오솔길에선 각별한 조우가 이루어진다. 초원하늘소며 딱정벌레, 풍뎅이를 만나는가하면 청설모가 쪼르르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어느 날엔 새끼를 등에 업은 두꺼비가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멀지 않은 날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싶어 내심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소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녀석은 제 길을 놔두고 어디로 다니고 있는 것일까?
오솔길은 적당히 드러내고 알맞게 감추는 분별심이 있다. 큰길처럼 제 속의 것까지 다 드러내지 않고 가파른 비탈길처럼 짐짓 내숭떨지 않는다. 직선이 아니라서 딱딱하지 않고 가파르지 않아서 수월하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호들갑스러우면 왠지 신뢰가 가지 않고 너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 다가서기 어렵다.
글쓰기로 치자면 오솔길은 수필이다. 시처럼 빛나는 비유나 소설의 대하 같은 서사는 없지만 한 사람의 진솔한 삶과 사색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오솔길은 은근한 맛이 있다. 화려하다거나 값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자꾸 먹고 싶은 쫄면 같기도 하다. 사십년 단골집 쫄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면발에 국물 맛이 일품이다. 유부나 어묵이 들어가 맛을 더하는데 살짝 얹은 쑥갓은 금상첨화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길이 예뻐서 ‘좋다. 참 좋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연발한다. 춤을 추듯 왔던 길 돌아보고 또다시 앞으로 걷기를 반복하면서 핸드폰에 꼭꼭 눌러 담는다. 어떨 땐 내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걷는다. 그럴 때 길과 나는 한 몸이 된다. 나무와 풀꽃, 새소리와 구름과 바람이 되기도 한다. 오솔길을 자주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사람들은 걷기 편안한 큰길로 가고 싶어 한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이왕에 가야하는 길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의 인상이야말로 오솔길처럼 편안하고 부드럽지 않을까 싶다.
저쪽 앞에서 부부가 다정스럽게 손을 맞잡고 걸어온다. 표정이 선하고 맑다. 내 모습도 저들처럼 편안해 보였으면 좋겠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인다. 어느새 등허리의 땀이 식어 서늘하다.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구름처럼 가벼워진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니 오솔길 저도 슬쩍 엉덩이를 털며 길채비를 한다.
<에세이문학 2021년 가을호>
처마의 마음 / 윤승원
기어코 비가 쏟아지고 말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수상해 서둘러 하산을 했는데도 주차장에 닿기 전 비를 만나고 만 것이다. 염치 불구하고 길가 집으로 뛰어들어 툇마루에 앉아 비를 그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댓돌 아래 마당에 일렬횡대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처마는 혹 내 신발에 흙탕물이라도 튀길까봐 제 몸을 마당 쪽으로 한 뼘 더 길게 뻗어 빗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처마의 마음이다.
처마의 마음을 잊고 지내다가도 이렇듯 비를 그을 일이 있으면 그 존재가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다. 처마라면 단연코 초가집처마다. 물론 버선을 신은 듯 공중으로 제 생각을 살짝 치켜 올리는 날렵한 기와집 처마도 있고 떨어지는 빗물을 그대로 흘려 보내는 성격이 급한 슬레이트처마도 있지만 초가집처럼만큼 정겹진 못하다. 초가집처마는 아무리 센 빗줄기라도 제 안에서 그 열정을 충분히 삭인 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처마 끝 볏짚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풍경은 흡사 보석을 주렁주렁 매단 것처럼 보인다. 그 물방울들에 햇살이 비치기라도 하면 처마는 제 폼을 한껏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공중으로 목을 빼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초가집 처마는 품이 넓고 컸다. 기와집에선 보기 흉하다며 광이나 헛간에 있어야 할 농기구들조차 우리 집에선 처마아래 두었다. 쟁기며 가래, 쇠스랑, 호미, 풍구들이 나란히 걸려 있는 처마의 풍경은 박물관의 진열대 같았다. 그건 또 우리 집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친구들이라도 찾아오면 나 혼자 괜히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것뿐이랴. 처마는 철따라 마늘이며 곶감, 메주들을 걸어놓고 삼대가 함께 사는 가난한 대가족 살림을 한 마디 불평 없이 꾸려가는 것이었다. 살림살이가 나을 때면 처마 밑은 넉넉했고 살림살이가 좀 못할 때면 처마 밑엔 궁기가 돌았다. 그래서 처마는 그 집안의 살림살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인 처마는 한 치라도 더 집을 보호하려는 지붕의 마음씀씀이가 은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마는 혹여 집안으로 곧바로 들이칠 눈, 비나 햇살을 막아주는 훌륭한 호위병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지붕은 처마에서 그 의미가 완성된다 할 수 있겠다. 아파트나 빌딩 같은 요즘의 건물들에선 처마를 볼 수가 없다. 따뜻한 처마를 거세당한 도시는 그래서 더욱 황량하고 비정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처마가 없어졌다는 건 타인에 대하니 배려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그러한 배려가 고갈된 사회야말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처마만큼 오지랖이 넓은 것이 또 있을까! 비가 올 때는 물론이거니와 저녁이 되면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들이며 빨래들도 제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그 뿐이랴. 처마 아래로 날아든 새에게 둥지를 내어 주기도 하고 거미며 벌레들에게까지 집을 분양해준다. 그러나 제 품에 들어 온 것이라고 처마는 그것을 소유하려하지 않는다. 들어올 때 내치지 않는 것과 같이 나갈 때도 서운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때였다. 하교 길에 갑자기 비를 만났다. 다른 엄마들은 모두 우산을 들고 와 친구들을 데리고 갔지만 나는 엄마가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엄마는 농사일로 언제나 바빴던 것이다. 남의 집 처마 아래서 비를 긋는데 비는 그치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깨우는데 돌아보니 엄마였다. 밭에 나갔다 내가 걱정되어 대충 비설거지를 하고 달려 왔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등에 업혀오면서 나는 엄마야말로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훌륭한 처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처마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도 처마가 있다. 눈에 땀이나 티가 들어가지 않게 눈을 보호하는 눈썹은 얼굴의 처마일 것이다. 꽃받침은 꽃의 처마다. 깃은 새들의 처마이고 구름은 비의 처마이다. 고갤 들어보니 건너편 집 감나무에 몇 남은 홍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까치밥으로 남겨둔 것이리라. 다 떨궈 내지 않고 홍시 몇 개를 남겨둔 감나무의 마음이야 말로 감나무의 처마일 것이다.
그러니 처마야말로 이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처마는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처마가 없다면 비, 바람은 방으로 곧바로 들이칠 것이고 마루는 방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며 댓돌은 또 신발을 얹어놓지 못할 것이다. 새와 벌레들은 집을 잃어버릴 것이고 농기구들은 캄캄한 광에 갇혀 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처마가 없다면 지붕은 어떻게 자신을 부드럽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경주박물관에 가면 얼굴 수막새가 전시되어 있다. 수막새는 기와집의 처마 끝 수키와 끝에 붙이는 막새를 말한다. 신라여인의 얼굴을 한 이 수막새는 어느 도공이 자신의 아내나 아니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수막새에 새겼으리라. 꽃이나 동물 모양의 수막새가 여럿 발견되는 것에 비해 얼굴모양의 수막새는 한 개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희소가치의 소중함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중을 불러일으킨다. 처마 끝에 막새를 걸어놓고 이 도공은 삶의 고비 빼마다 위로를 얻었으리라. 지붕 끝에서 그윽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며 지붕 아래에 있는 것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그것이 처마의 마음인 것이다.
가을비는 짧아서 어느새 하늘은 개어 있었다. 살면서 내게 처마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물방울처럼 처마 끝에 맴돈다. IMF 당시 남편의 사업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선뜻 거금을 빌려주었던 이웃집 아주머니, 힘들 때마다 찾아가서 하소연을 해도 가만히 들어주던 친정엄마, 부족한 것이 많아도 이해해주는 가족들, 이 모든 것들이 다 내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처마다. 살아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처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금방이라도 공중으로 날아오를 듯 날개를 활짝 펴는 처마 끝에서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올려다보니 동쪽 산봉우리 위로 둥글게 하늘의 처마 같은 무지개가 떠 있다.
첫댓글 수준 높은 수필 작품입니다.
본질을 찾아 형상화가 잘 돼 있어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수필다운 수필을 만났습니다.
윤승원님의 글이군요. 긴 글 올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경주에 사시는 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