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2021년 1월 8일
마태 2:1-12. 이사 60:1-6.
열정과 순종으로 빛이 되기를.
공현대축일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옮겨서 지키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보게 된 이들은 멀고 먼 동방에서 온 박사(Magi)라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큰 별을 보았는지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별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별은 이스라엘에서 멈추었고, 그들은 당연히 임금 헤로데에게 아들을 낳았는지 묻습니다.
헤로데는 깜짝 놀랐고, 아기를 만난 후 자기에게도 알려 주면 나중에 경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천사의 명령을 듣고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만 매우 슬픈 이야기가 이어져 나옵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먼저 묵상할 것은 은총과 축복을 구하는 신앙인의 자세(마음가짐)입니다.
말씀이신 빛은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진리는 지금도 우리가 누리는 은총이고, 말씀을 통해 이미 그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진리를 알고 은총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찾으러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 여정이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별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길을 가는 우리는 이 여정에서 좌절도 사랑도 행복도 고통도 당연히 경험합니다. 거창한 환상을 좇기도 하고 사람에게 배신과 굴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옳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인생이 왜 이다지도 고달플까 원망도 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별 하나 보고 무작정 길을 나선 무명의 동방의 박사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인생을 반추해 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가듯 우리들에게도 별이 있고 그 빛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별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온갖 고난을 헤치며 따라 나섰을까요?
그 옛날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동방의 박사들도 길을 떠났고 우리의 신앙 선배들도 길을 떠났습니다.
그 길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길을 떠나 찾으려는 열정이 있을 때,
은총은 우리에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진리의 별은 어떤 상태이든 아직도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보일 것입니다.
좌절과 실패 가운데서도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나태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 말씀의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은총은 아직도 열정을 버리지 않고 길을 나선 성숙한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진리의 별은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줄 알며, 더 나아질 것을 바라는 이들을 이끌 것입니다.
차갑게 식지 않은 우리의 다짐이 별을 따라 나서는 열정으로 빛을 내기를 소망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진리를 보았기에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위기를 넘깁니다.
보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그들의 행동이 바뀐 것입니다.
기도 전통 중에 관상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며 훈련하는 기도입니다.
헬라어로 관상(θεωρία)이란 하느님(θεός)을 바라보는 것(ὁράω)을 말합니다.
영어로 관상(contemplation)은 함께(con), 성전(temple)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한자의 관상(觀想)은 서로의 마음으로 자세히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서로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즉 관상기도의 기초에는 경청(敬聽, 공경하며 들음)이 있습니다.
한자로 청(聽)을 풀이하면 귀이자(耳) 밑에 임금 왕(王), 오른쪽 위에 열십자(十)와 눈목(目)자를 가로로 놓고, 그 아래 한일(一)자와 마음심(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백성을 사랑하는 왕과 같은 귀를 가지고 집중해서 듣는 것입니다.
열 개의 눈을 가지고, 소리만이 아니라 얼굴 표정과 손짓까지도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진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 즉 일심(一心)으로 듣는 것이 청(聽)입니다.
이렇게 듣는 것에 더욱 열중하는 사람은 진리를 보았고 깨달았기에 순종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 순종은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하다의 헬라어 (ὑπακούω, 휘파쿠오)는 단순히 ‘순순히 따르는’ 행동’이 아니라, ‘주의 깊게 들음,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들음’이 전제된 ‘순종’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쉐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동사는 어떤 사실을 '듣는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들음에는 행동하라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쉐마는 들어야 깨닫고, 깨달아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7)” 들음과 순종의 마음가짐을 깊이 새기며 새해를 시작하기를 청합시다.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이 우리를 두려움과 나태함에서 구해 줄 것입니다.
의미 없고 허무한 진리로 포장된 허상을 버리고, 빛으로 나신 참 된 빛에 순종할 것입니다.
열정과 순종을 가지고 빛을 따라 가는 삶을 희망합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우리도 빛이 됩시다.
단순히 빛을 바라봄에서, 하느님의 뜻을 깊이 들음으로 성숙해지는 한 해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더욱 말씀에 깊이 집중하며 듣는 한 해이기를 기도합니다.
박사들이 메시아 탄생을 전했을 때 헤로데왕은 물론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립니다.
이는 거창하게 드러나는 일들만 찾으려는 번잡하고 불안한 마음 자세를 상징합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자기 나라로 돌아간 박사들처럼 우리는 올 해 듣고 깨닫고 기도하며 작은 일이라도 아주 잘 해내는 정중동(靜中動)의 성숙함으로 나아가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열정을 품고 진리에 순종하며 이제 우리가 빛이 되기를 함께 노력하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빛이 되어 밝게 비추면 사방팔방에서 그 빛을 보고 모여 들 것입니다.(이사 6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