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나서 학교에 갔더니 우과장이라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우과장은 국어선생님인데 어느날 보충수업시간에 내가 수업하는 반 옆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우과장이 내가 수업하는 반에 들어오더니 "어디 가야할 데가 있다."면서 애들을 부탁한다고 하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라고 생각하고 양쪽 반을 왔다갔다 하면서 지도를 했고 국어 문제의 답을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우과장께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어보니 "입이 텁텁해서 막걸리를 마실려고 나갔다"고 해서 수업하다 말고 술먹으러 나가도 되나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우과장은 하루에도 몇번씩 술마시러 나간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학생들 수업은 엉망이 되고 말아서 다른 선생님이 맡은 반과 학생들 국어성적 평균이 40에서 50점 차이가 났습니다. 우과장이 맡은 반 학생들이 "국어는 학원에서 보충이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음해 2월에 한 열흘정도 수업을 하던 때인데, 우과장이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와서 하는 말이 "오늘 수업하고 나니 피곤하네."해서 "왜요?"하고 물어보니 요즘 국어 진도를 나가는데 한시간에 3단원씩 나가느라고 피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거의 나가지 않은 진도를 2월 중에 끝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고군분투를 한 듯 합니다.
가을 비오는 어느 날에 우과장이 숙직하는 날인데 5시가 다 되었는데도 학교에 오지 않아서 교장선생님이 남교사 한분과 나에게 "읍내를 돌아다니면서 우과장을 찾아봐라. 아마 도랑에 코박고 쓰러져 있는 모양이다."라고 해서 읍내로 우과장을 찾아 다녀보니 물에 코를 박은 것은 아니지만 만취가 되서 인사불성 상태였습니다.
우과장을 데리고 학교에 오니 교장선생님은 같이 찾으러 다녔던 교사한테는 그날 숙직을 부탁하고, 나한테는 우과장을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셔다 드리려고 부축하려고 하니 우과장이 출퇴근할 때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술드시고 오토바이 타시면 안된다"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동을 걸고 나서 나한테 "뒷자리에 타라"고 했지만 "아녜요. 제가 뒤에서 뛰어 쫓아갈께요."하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부르릉 소리를 내고 어두운 길거리로 오토바이가 출발했고, 나는 할 수 없이 오토바이 뒤를 뛰어 따라갔습니다. 한참 뛰어가다 보니 오토바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해서 잘 보니 우과장이 벽에 오토바이를 박아서 어두운 땅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이고 큰 일 났네." 얼른 우과장댁에 가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고 알려서 그 가족들이 우과장을 모셔가고, 나는 오토바이를 챙겨서 집에 갖다 주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냥 넘어가던 시대였습니다. 그 후에 우과장이 교사 생활을 계속 했는지 퇴직했는지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과장 아들은 공부를 꽤 잘 해서 사대부고를 입학했었는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