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기억과 망각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잊어버린다. 금방 둔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기도 한다.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는 재미있는 속담도 그런 상황을 빗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것은 기억하고 또 어떤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뇌가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뇌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의 우리의 그런 궁금증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이 책은 기억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기억의 실체를 살핀 역작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탁월한 글 솜씨를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저자는 ‘과학자의 눈과 시인의 귀를 가진 신경과학자’라는 칭송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기억에 대한 모든 것을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소설 같은 문장으로 설명해준다. 저자는 기억에 대해 설명하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심각해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인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금방 손에 있던 것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고 찾는다면 그보다 더 답답할 데가 없지만 그것이 정상이라니 일단 마음이 놓인다. 저자는 우리가 중요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은 뇌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기억이건 생성되려면 반드시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지니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꺼내 쓰며, 어떻게 유지해야하는지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억은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들의 총합이고 기억과 망각 모두 어떤 면에서는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다. 오늘 경험하고 배운 것을 내일이면 잊을 것인가, 세세한 추억과 지식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간직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의 기억은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동시에 허점투성이인 채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22쪽)
나. 기억의 생성
우리의 기억은 단순하거나 복잡한 온갖 종류의 정보를 저장하는데, 그 저장용량은 거의 무한하다. 기억의 생성은 말 그대로 뇌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하나하나는 우리의 경험에 대응하여 뇌가 물리적으로 영구적인 변화를 겪음으로써 만들어진다.
오늘 있었던 일을 내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뇌가 변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경험 가운데 감각, 감정, 사실 등을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낀다. 서로 관련 없는 일도 상황을 서로 연결하여 한 묶음으로 떠올릴 수도 있다.
서로 무관하게 일어나던 신경 활동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후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 구조가 변화하면서 이 패턴은 지속성을 갖게 된다. 이제 새로 형성된 신경회로가 점화되면 영구적으로 달라진 신경 배선과 연결 구조를 재경험, 즉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이 기억이다. 기억은 부호화, 강화, 저장, 인출 등 4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즉, 정보를 뇌에 입력(부호화)하고, 서로 연결(강화)하여 뇌 내부의 영구적인 변화를 통해 저장(저장)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에 접근하고 싶을 때 저장된 정보를 가져오는(인출) 과정이 이루어진다.
뇌가 정보를 수집하면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정보들을 연결한다. 이 해마는 기억들을 하나로 묶는다. 의미가 있거나 혹은 어떤 의미로든 기억할 만하다고 여기게 된 새로운 정보는 무엇이든 해마에서 기억으로 강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해마는 이렇게 기억으로 전환될 정보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 부위들을 반복해서 활성화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특정 부위들이 안정적인 활성 패턴으로 연결된다. 말하자면 여러 부위가 하나로 배선되는 것이다.
여기에 관여하는 것이 작업 기억이다. 작업 기억은 기억의 최초 관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세한 정보 가운데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고,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은 따로 선택되어 해마로 전송된다.
정보는 작업 기억 안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시각정보는 시공간메모장에, 청각정보는 음운루프에 겨우 15~30초 정도 보관되며, 보관했던 정보는 새로 들어오는 정보에 자리를 내준다. 해마에서는 신경세포들이 흩어져 있는 찰나의 감각정보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기억으로 엮어낸다.
이러한 기억은 한곳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경험을 접수한 뇌의 각 부위로 분배되어 장기기억 된다. 뇌에 담당 부위가 정해져 있는 인지나 운동과는 달리 기억은 저장을 전담하는 신경세포나 기억 피질 같은 것이 따로 없다. 장기기억은 보관 기간과 용량에 제한이 없다.
이 책은 기억을 근육기억과 의미기억, 섬광기억과 일화기억, 설단현상과 미래기억 등 다양한 관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한 시간과 기억의 상관성, 스테레스와 수면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다. 기억 강화
기억은 인간의 거의 모든 활동에 꼭 필요하다. 기억이 엄청난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기억은 작년에 있었던 일이나 나중에 할 일에 대한 기억은 불완전하고 허술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기억은 정말 대단하지만 한편,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 기억을 소중히 여기되 너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지나간 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애초에 어느 정도 부정확하다. 게다가 기억은 떠올리고 강화할 때마다 점점 더 부정확해진다. 불필요한 것들을 잊는 것은 사실 꽤 쓸모 있다.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한다면 기억을 어느 정도 향상시킬 수 있다.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머리에 넣고 필요할 때마다 정확하게 가져다 쓰기 위한 최선의 방법들을 이 책은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여 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각화하고, 공간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마음속 공간에 가져다 둔다. 그리고 나와 이것을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반복해서 되새겨 보는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도 기억을 돕는다. 특별한 날은 오래 기억된다. 한편 반복하고 되뇌면 기억은 강화된다. 학창 시절에 수도 없이 외웠던 많은 것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근육기억은 기능을 반복해서 연습할수록 강화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때 기억도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메모지 등 보조 장치를 사용하면 당연히 기억력은 높아질 것이다. 맥락, 스트레스 관리, 충분한 잠 등도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