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팽목항에 도착하다. 팽목리에 위치하여 팽목항으로 불리던 이 조그마한 항구는 2013년 팽목항에서 진도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나기 일 년 전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팽목항이다.

팽목항 방파제. 방파제가 잔잔한 바다 위에 길게 누워 있다. 하늘의 구름도 초가을 양떼구름과 같아서 너무도 평화로운 느낌이다. 지금 여기서 2014년 4월 16일 당시의 비극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붉은 색의 등대가 '기다림의 등대'이다. 세월호 침몰 직후 가족들과 수 많은 사람들이 저 등대 주위를 서성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배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은 승객들이 구조되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였으리라.

기다림의 등대와 함께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방파제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노란색의 리본 모양의 조형물이다. '노란리본 조형물'이라고 불린다. '기다림의 등대'나 '노란리본 조형물' 모두 바다를 향하여 서 있다. 여기서 30 km 떨어진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4명이 희생되었다.

방파제 입구에서 본 기다림의 등대. 방파제 오른쪽으로는 '기억의 벽'이 설치되어 있다. 침몰한 세월호 선체를 목포 신항으로 옮겼는데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팽목항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기억의 벽에 전시된 타일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을 리가 없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말없이 그날의 아픔를 되뇌인다.

이 '기억의 벽'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그해 11월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 주도하여 설치하였다. 전국민이 호응하여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타일'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모인 1,700여 개의 타일을 2015년 3월에 설치하였다. 1차 '기억의 벽'이다.

2차 기억의 벽 설치 작업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두고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2920개의 타일을 붙였다. 도자기 산업으로 잘 알려진 여주에서 타일을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구웠고 트럭은 연료비만 받고 이곳 팽목항까지 실어 왔다. 모두 합치면 기억의 벽 타일은 4,656장이다. 길이는 약 170m에 달한다.

노란리본 조형물 받침대에는 2014. 416 이라고 적혀 있다. 세월호가 온 국민들이 보는 가운데 정말로 거짓말같이 침몰한 날이다. 그날 온나라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바다 가운데 전복된 세월호는 전혀 현실감을 주지 못했다. 그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체감하는 데는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가까이 가 보면 '노란리본 조형물' 오른편에는 안내 간판이 서 있다. 세월호 참사 지점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동거차도와 병풍도 사이의 바다이다. 여기서 약 30km 떨어진 곳이다.

왼쪽 옆에는 기다림의 의자가 놓여 있다. 이날 세월호에 승선한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476명이었다. 이 가운데 172명만 구조되었다. 구조되지 못한 304명 가운데는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가 5명이 있다.

노란리본 조형물에서 본 기다림의 등대. 오른쪽으로 기억의 벽이 설치되어 있고 왼쪽으로는 각종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이들의 발길은 무겁다. 무엇보다다 희장자들의 절대 다수가 학생들이어서 더욱 심정이 착잡하였으리라.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어른들을 신뢰할까?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단원고는 이 배를 타고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학생 325명과 인솔교사 14명이었다. 이 가운데 학생은 75명이 구조되고 인솔교사는 3명이 구조되었다. 구조된 인솔교사 중 한 명인 교감은 죄책감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기억의 벽에서 웅변을 토하고 있는 타일들. 국회의사당인지 청와대인지 모르지만 건물을 그려놓고 '쓰레기통'이라고 적은 타일이 눈에 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 권력의 말로는 참담하였다.

단원고교 학생들 248명이 희생되고 2명은 아직 실종상태이다. 교사는 인솔자 11명이 희생되었다. 한 명은 실종. 학생 250명 교사 12명 모두 262명이 희생되었다.

오후 5시 45분. 8월의 햇볕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방파제 위에 설치된 난간에 매어 놓은 노란색 리본. 비바람에 많이 퇴색하여 세월이 흘렀음을 알려 준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기억의 벽을 설치한 이들은 다시 '팽목 바람길'을 조성하였다. 팽목항을 한 바퀴 두르는 둘레길이다.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의 길이다.

추모조형물 기다림의 등대. 그 앞에 세월호 추모 벤치가 놓여 있다. 이 벤치에는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타공 기법으로 새겨 해가 비치면 아래에 이름들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태양이 있는 한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남은 사람들의 비원을 읽는다.

가까이서 본 추모 벤치.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말이 회자되지만 실제로 우리는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냥 잊고 사는 것이 아닌지 돌아도 보게 한다.

기다림의 등대 문 위에는 '남겨진 5명의 기다림'이라고 적혀 있다. 아직 세월호 참사가 끝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글귀이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5명을 위한 신발. 가슴이 저리다.

'하늘나라 우체통' 역시 추모 조형물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 세워졌다. 붉은 색의 하늘나라 우체통은 배 위에 실려 있다. 배의 측면에는 041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4월 16일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등대를 한 바퀴 돌고 말없이 돌아 온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이들의 시선은 기억의 벽에 고정되어 있다.

이 추모의 벽을 장식한 타일도 역사적인 현장을 떠나서 이곳에 건립될 국민해양안전관에 영구히 보전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세월호 참사를 '야만 시대의 대참사'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하늘에서 내려온 노래비. 단원고 이다운 학생이 생전에 만든 노래를 가수 신용재가 완성한 것으로 노래 가사와 이 노래를 앱으로 실행하는 방법을 적어 놓았다.
"사랑하는 그대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댈 안아주고 싶어요
....................................................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방파제 맞은편 공터에 설치된 희생자 분향소.

분향소 내부. 희생자들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이제 이들 영정들도 9월이면 이 자리를 떠나게 된다. 팽목 분향소가 철거되기 때문이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5명을 위하여 신발이 준비되어 있다. 검은 고무신 안의 노란 고무신이 가슴 시리다. 고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의 신발이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팽목항을 뒤로 하고 20분을 달려 우리는 낙조로 유명한 지산면 세방낙조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6시 25분. 오늘 일멀은 7시 34분이다. 아직 여유가 있다.

낙조를 보기 위하여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은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구름이 약간 있지만 해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해가 바다 가까이로 떨어지면서 바다는 온통 붉은 빛이다.

해가 점점 수평선에 가까워지면서 진도 앞바다 섬들은 그 신비한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남아 있을 시간이 짧아지자 사람들이 일어선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의 모습을 담기 바쁘다.

낙조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2018년 8월 6일 태양의 마지막 모습이다. 아......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다시 수 많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의 말끔한 모습이 흡사 말갛게 떠오르는 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