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AT VOLUNTAS TUA!
원죄 없는 잉태 축일 9일기도 묵상
< 9일기도 여덟째 날- 12월6일 >
28권-26
1930년 9월 30일
빛의 현장인 에덴 동산.
하느님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인간 자신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
피조물의 작은 땅. 거룩한 천상 파종자.
1 내 가난한 마음이 여느 때와 같이 ‘거룩하신 의지’ 안의 행위들을 계속하다가 에덴 동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그에게 생명을 넣어 주시는 현장이었다. 이때 내 사랑하올 선이신 예수님께서 더할 수 없이 정답고 자애로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에덴은 ‘지극히 높은 존재’인 우리가 사람을 창조한 빛의 현장이다. 사람이 우리 ‘피앗의 빛’ 안에서 창조되었으니, 빛(의 소유가) 사람 생명의 첫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3 즉, 빛이 아담의 전후좌우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 빛의 영역 속에서 자기의 생명을 형성할 길을 따라가면서, 하고자 하는 행위의 수만큼 많은 빛을 그 행위들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 행위들로 빛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비록 내 거룩한 뜻에서 끌어당긴 빛이었지만 말이다.
4 그런데, 자기 존재의 시작이며 끝인 내 거룩한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 곧 그의 생명이 형성되었고 또 그 생명의 첫 행위를 이루는 이 빛의 근원과 결합되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5 빛은 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며 지키고, 이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이 빛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오직 빛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하는 반면, 이 빛에서 인간 자신의 뜻이라는 어두운 감옥 속으로 내려가서 활동하는 사람은 어둠을 끌어당긴다. 그가 하는 행위들의 수만큼 많은 어둠을 끌어당겨, 그 모든 어둠을 스스로 이룬 그 자신의 것으로, 그 자신의 재산으로 삼는 것이다.
6 한데 어둠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을 보존할 줄도 수호할 줄도 모른다. 그러니 그 사람이 이 어둠 속에서 어떤 선행을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언제나 어두운 것이 되고 만다. 어둠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7 그처럼 어둠은 사람을 수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둠 자체와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온다. 즉, 성가신 결점들이 들어오고, 격정이라는 원수가, 흉포한 도둑이 들어와서 그 인간을 죄 속으로, 영원한 어둠 속으로 ― 빛의 희망이 전혀 없을 지경인 어둠 속으로 던져 넣는 것이다.
8 그런즉 내 거룩한 뜻의 빛 안에서 사는 사람과 인간 자신의 뜻 안에 갇혀 사는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느냐!
9 그 후에도 나는 하느님의 뜻이 창조된 만물 안에 세우신 질서에 따라 그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하느님께서 ‘원죄 없으신 동정녀’를 창조하시는 순간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작고 하찮은 마음안에서 나오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10 “딸아, 예언자들과 조상들, 곧 옛 사람들의 모든 선행과 거룩한 행위들이 땅을 형성하였고, 이 땅에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천상 아기 마리아’의 생명이 싹틀 씨를 뿌리셨다. 이 씨는 인간이라는 그루터기에서 취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11 그런데 동정녀 마리아는 자기 안에 하느님 뜻의 활동적인 생명을 품고 있어서 자신의 행위들로 이 땅을 확장하고 비옥하게 하며 거룩하게 하였다. 또한 유익하고 상쾌한 빗물 이상으로 자기 덕행들의 거룩함과 그 사랑의 열기를 흘러들게 하면서, 자신의 재산으로 소유한 하느님 뜻 태양의 빛살을 화살처럼 쏘아 넣어 ’천상 구원자‘를 싹틔울 땅을 마련하였다.
12 그러자 우리 (성삼위)의 신성이 하늘을 열고, ‘의인’이요 ‘거룩한 이’가, 곧 ‘말씀’이, 그 새순(筍) 속에 빗물처럼 내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이며 하느님인 나의 생명이 인류를 ‘속량’하기 위하여 형성되었다.
13 보아라, 그러니 우리는 모든 사업을 피조물의 선익을 위하여 하지만,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는 그 좋은 것을 놓을 선반이나 그 정도의 작은 땅은 그들에게서 찾아내고자 한다. 그런 자리가 없다면 어디에다 그 선물을 놓겠느냐? 공중에 놓을 수야 없지 않겠느냐?
14 이를 알고 자신의 행위들로 우리를 끌어당길 작은 땅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천상 파종자’로서 주고 싶어 하는 선의 씨를 어떻게 뿌릴 수 있겠느냐?
15 그러나 그런 땅을 준비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창조주와 피조물 쌍방이 서로에게 끌어당겨짐을 느낄 것이다. 피조물은 그의 작은 행위들로 받을 준비를 하면서, 하느님 편에서는 주는 행위를 하시되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처럼 주시면서 말이다.
16 그러므로 피조물의 그 행위들은 ‘거룩한 파종자’에게 씨를 뿌릴 땅을 마련해 준다. 땅이 없으면 파종할 수 없으니, 작은 땅도 없는 사람은 숫제 씨 뿌리러 가지 않는다.
17 하물며 ‘천상 파종자’이신 하느님께서야! 아무리 작아도 피조물의 땅이 보이지 않으면, 그분 진리의 씨앗이나 그분 사업들의 열매를 던져 주시지 않는다.
18 하느님께서 활동을 펴기 위해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영혼과의 일치이다. 하느님과 영혼이 서로 일치를 이룰 때, 그때에는 영혼이 그 선을 놓을 땅을 마련하면서 우리에게 간청하는 것을 ― 그만큼 간절히 받고 싶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을 다하여 그것을 주는 것이다.
19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업들이 무용지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Deo Grat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