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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부리지 않은 듯 멋스러운 길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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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관악산 관문 → 호수공원 → 연주 약수터 → 연주암 → 연주대 |
거리 | 약 7.2km |
소요시간 | 편도 2시간 5분(왕복 4시간 10분) |
가는 법 |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 입구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린 후 서울대 쪽(왼편)이 아닌 오른편으로 걸으면 녹색 펜스가 보이고, 펜스가 끝나는 부분에 등산로로 진입하는 길이 보인다. |
멀지 않는 곳에 도로가 있고 대학교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코스다. 깊이 들어갈수록 울창한 산속에 갇힌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좋다. 호수공원에서 연주암까지는 무섭지는 않지만 길이 거칠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연 속을 걷는 기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코스 정보
관악산 관문에서 제4야영장까지는 큰 오르막길이 없어 걷기에 좋다. 제4야영장에서 연주대까지는 오르막이라 부를 법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특히 깔딱고개 구간은 제법 가파른 편이다. 연주암에서 정상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맞아준다.
화장실
등산로 입구에 크고 깨끗한 화장실 있다. 가급적이면 이곳을 이용하도록 하자. 호수공원을 벗어나면 화장실을 만나기 어렵다. 연주암에도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 입구로 오면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서울대 안에서 즐기는 식사도 괜찮다. 동원생활관 쪽에 위치한 ‘키친’에서는 파스타와 피자 등을 카페 분위기에서 맛볼 수 있다. 동원 생활관 안에는 학생 식당과 매점도 있다.
사시사철 예쁜 호수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호수공원
관악산은 예로부터 경기금강 또는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봄에는 철쭉꽃이, 늦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을 이루는 관악산은 정기가 뛰어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효자와 효부, 충신을 여럿 배출한 명산이기도 한데, 고려시대의 강감찬 장군과 조선시대의 신자하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늘날의 관악산도 옛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고운 자태를 뽐내며 산을 곱게 물들인 철쭉과 단풍은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특히 호수공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호수를 중심으로 그 자태를 뽐내는 호수공원은 관악산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의 문예 중흥기에 정신적 지주였던 자하 신위 선생의 동상도 있으니 꼭 들러보도록 하자. 자하라는 선생의 호는 이곳의 옛 지명인 자하동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기암 절벽 위 암자
연주대까지 오르는 길은 관악산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자 제일 아름다운 코스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경기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된 연주대는 기암 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암자다. 연주대 주변은 경관이 매우 뛰어나서인지 내려오는 전설도 많다. 원래 신라 문무왕 17년(677), 신라의 승려였던 의상 대사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당시 함께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이 붙은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 고려를 그리던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망한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절터
연주암과 연주대 사이에 있는 관악사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절터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관악산 정상부에 건립된 전형적인 산지가람 양식으로, 경기도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지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불교와 건축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는 관악사지 우물과 관악사에 주석했던 승려나 불사에 참여했던 장인 또는 시주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진 임각문은 관악사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관악사지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연주대가 보인다.
관악사지는 연주암과 연주대 사이에 있다. 연주암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조금 걸어오다 보면 오른편에 관악사지로 가는 내리막 계단이 있다. 100m 정도 걸어 내려가면 왼편에 관악사지가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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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디지털 뉴스센터 웹에디터, SBSi 미디어 기획팀 취재기자로 일했다. '풀빵닷컴'에 여행 웹툰 '나 홀로 즐기기'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연예, 영화와 관련하여 다양한 칼럼..펼쳐보기
'중앙일보' 디지털 뉴스센터 웹에디터, SBSi 미디어 기획팀 취재기자로 일했다. '풀빵닷컴'에 여행 웹툰 '나 홀로 즐기기'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연예, 영화와 관련하여 다양한 칼럼을 썼다. 웹툰 제작은 물론 원고 집필 등 다양한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으며 펴낸 책 중 여행서 'ENJOY 서울'은 해외로 수출되었다. 주요 경력으로는 인터넷 중앙일보(조인스닷컴) 뉴스팀, '중앙일보' 디지털 뉴스센터 근무, 'SBSi' 미디어기획팀 취재기자, '중앙일보' 이 주일의 기자상 수상, '조인스닷컴'영화 칼럼 연재, '스포츠서울닷컴' 가요 칼럼 연재, LG생활건강 콘텐츠 작가, CJ미디어 tvN 콘텐츠 홍보물 제작, 주요 저서로는 여행서 'ENJOY 서울', 'ENJOY 부산' 등이 있다. '중앙일보' 디지털 뉴스센터 웹에디터, SBSi 미디어 기획팀 취재기자로 일했다. '풀빵닷컴'에 여행 웹툰 '나 홀로 즐기기'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연예, 영화와 관련하여 다양한 칼럼..이제 막 등산을 하게 된 여자가 찾으면 좋을 코스는 물론, 등산 초보자라도 산이 주는 건강하고 행복한 기운을 마음껏 만끽할 코스로 채워져 있다. 욕심내지 않고 걷는다면..펼쳐보기
역사와 함께 하는 산행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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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거리 | 약 11.70km |
소요시간 | 편도 3시간(왕복 6시간) |
가는 법 | 1. 지하철 3, 6호선 연신내역 3번 출구에서 704번, 34번 버스 이용 → 북한산성 입구 하차 후 도보 5분 2.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2 번 출구로 나온 뒤, 직진하지 말고 뒤돌아 걷는다. 704번, 34번 버스 이용 → 북한산성 입구 하차 후 도보 5분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중성문 근처까지는 거의 포장도로다. 오르막이지만 가파르지 않아 힘들지 않다. 대남문 코스는 긴 편이지만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고 난코스가 없기 때문에 거리에 비해 힘들지 않는다.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등산객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런 곳 흔하지 않다. 천 년 넘는 사찰과 고적지, 문화재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니. 여자 혼자 들어가도 편한 분위기의 사찰과 지루해질 즈음이면 나타나는 문화재들은 등산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뭐 하나라도 얻어 갈 수 있는 등산을 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다.
화장실
탐방로 시작 지점과 인근에는 비교적 많이 설치되어 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없다. 되도록 화장실이 보일 때 볼일을 보는 것이 좋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편의점, 식당, 카페, 의류매장이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지원센터 사이에 모여 있다. 탐방로 안에는 물을 살 수 있는 곳이 한 곳도 없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대남문 코스 입구에는 컵라면, 김밥 등 비교적 가격 부담이 적은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특히 주말에는 길까지 나와 판매할 정도다.
예쁜 오솔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탐방로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실은 달구지가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길의 좌우에는 빗물을 빼내는 기구인 누혈이 설치되어 있다. 문루각주1) 는 일제 말기에 파손된 이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1958년 당시 경기도 지사인 최헌길이 698만 환을 들여 복원하고 오솔길도 확장하였다. 대서문에 올라서면 예쁜 곡선처럼 보이는 오솔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서문은 가장 낮은 곳에 있어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잦은 곳이기도 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이곳 주위에는 사람이 살았다. 특히 대서문 바로 옆에는 손수건 등의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성문상회’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러나 성문상회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집들은 북한산성지구 이주 및 정비 사업으로 모두 떠났고, 그 자리에는 현재 세월의 흔적만 남아 있다.
역사 탐방의 출발점
대서문에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중성문이 보인다. 북한산성을 축성한 다음 해인 숙종 38년(1712년), 북한산성의 수비 보완 대책의 일환으로 성 안에 성을 겹쳐 축조했는데, 이 성이 바로 중성이다. 성곽의 규모는 영취봉과 증봉 방향으로 약 200m에 달하며 성문으로는 홍예 형태의 중성문 그리고 시구문, 수문을 건립하였다.
중성문은 대서문이 적에 의해 뚫릴 것을 대비해 만들었다. 행궁과 유영 등의 성내 시설물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문의 단층 문루는 19세기 말, 수문은 1915년 8월의 홍수에 의해 소멸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중성문과 대남문 사이에는 문화재와 고찰 등이 많다. 중성문은 역사 탐방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적사도 중성문을 통과해야 만날 수 있다.
등산객들을 품어 안는 사찰
조선 숙종 때(1712년)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충성문 안쪽 노적봉 아래에 고즈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산에 폭 안긴 느낌이 드는 이 사찰은 찾아온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미륵불입상, 약사여래불좌상, 용궁전 등을 갖춘, 규모가 제법 큰 절이다. 노적사의 옛 이름은 본디 진국사였다. 완전히 소실되어 빈터만 남게되자 이를 애석히 여긴 스님과 스도들이 뜻을 모아 1960년 새로이 중창하였다. 이후 이름도 노적사로 불리게 되었다. 경내에는 이름을 듣고 합장 공경하는 것만으로도 50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면한다고 전해지는 미륵부처님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
대남문 위로 올라가면 북한산의 다양한 풍경이 보인다.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성문이다.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대남문은 특히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남문에 올라서면 북한산의 대표 봉우리인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오봉, 주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이 한눈에 보인다. 대남문은 비봉 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었다. 성문 상부에는 군사를 지휘하고 성문을 지키기 위한 단층의 문루가 있다. 대남문과 연결되어 있는 북한산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면서 뺏고 빼앗기던 곳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외침을 당하자 궁의 외곽에 성을 쌓자는 건의를 받아들여 조선 숙종 37년(1711년)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였다.
금위영을 옮긴 것을 기념하는 비석
중성문에서 1시간 정도 오르면 금위영유영지가 보인다. 그 생김이 화려하지 않아 무심코 그냥 지나칠 법도 하다. 금위영이건기비는 조선 후기 군사기관인 금위영을 옮긴 기념으로 세운 비다. 원래는 소동문 안에 있었지만 위치가 높아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도제조 이이명이 지은 비문에는 ‘백제의 옛성인 북한산성을 나누어 다시 쌓고 각 군영을 설치하여 군량을 저장하고 유사시에 대비하게 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금위영유영은 혼돈기인 19세기 말에 관리 소홀로 방치되다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위영이건기비 주변에는 왕이 전란시에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한 북한 행궁과 삼군문의 하나였던 어영청의 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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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에 좋은 분위기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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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삼청공원 입구 → 말바위 등산로 입구 → 말바위 쉼터 → 숙정문 → 창의문 쉼터 |
거리 | 약 3.2km |
소요시간 | 1시간 25분 |
가는 법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동십자각이 보일 때까지 5분 정도 걷는다. 사거리에서 동십자각이 보이면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참을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 길로 접어든다. 우측길을 따라 걷다 보면 좌측으로 삼청공원이 보인다.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삼청공원 입구까지는 도보로 15분 소요된다. |
30m 간격으로 군인이 서 있어 여자 혼자 걸어도 무섭지 않다. 등산의 시작점인 삼청공원도 시간을 내 둘러볼 만하다. 서울 도심에 있는 공원치고는 꽤 아름답고 공기도 좋다. 말바위 쉼터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아름답다.
삼청공원 입구에서 말바위 쉼터까지는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계단길이다. 이후에는 서울 성벽을 따라 잘 다듬어진 길을 걷는다고 보면 된다. 이 길 또한 주로 계단으로 조성되어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무방하다. 청와대와 가까워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있으니 사진을 찍으려면 유의하도록 하자.
화장실
동십자각에서 삼청공원으로 가는 길과 삼청공원 안에 화장실이 있고 이후에는 없다. 창의문 쉼터에는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역에서 삼청공원에 이르는 길에는 맛집이 많다. 밥집은 물론 커피숍과 매점도 있다. 말바위 쉼터부터 창의문 쉼터까지는 매점은 물론 음료수 자판기도 없다.
조용하고 예쁜 공원
‘삼청(三靑)’이란 산이 푸르고 하늘이 푸르고 마음이 푸름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삼청공원은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옛 서울의 정취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머리와 목에 푸른빛이 도는 박새, 몸 전체가 잿빛을 띤 어두운 갈색 직박구리, 광택이 나는 오색딱다구리 등 다양한 새들도 삼청공원에 살고 있다. 오래되고, 소박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삼청공원에는 1897년 종로에서 출생한 소설가 염상섭의 동상이 있다.
염상섭은 1920년 <폐허> 창간 동인으로 신문학운동을 시작한 이래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봄이면 다양한 꽃들이, 가을이면 아름다운 나무가 그 빛을 발하는 삼청공원은 찾은 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고 기쁘게 만든다. 등산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나서 휴식 겸 찾으면 좋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
조선시대 말을 타고 온 문무백관이 녹음을 만끽하며 시를 읊고 쉬던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또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말바위 바로 밑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전망대는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 조망 명소다. 전망대 위에 서면 종묘, 청계산, 창덕궁, 남산, 관악산, 광화문, 63빌딩, 경희궁 공원, 사직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말바위자체는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말바위 주변 풍경은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아름답다. 전망대 말고도 앉아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그래서 이곳을 말바위 쉼터라 부른다. 말바위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삼청공원에서 말바위까지는 신분증이 따로 필요 없다.
비상시 목적으로 지은 곳
고개를 들면 보이는 숙정문의 속살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北大門)이다. 원래 숙정문은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울 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은 문이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었기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이 형성되지 못했다.
조선 후기 학자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정월대보름 전에 민가의 부녀자들이 세 번 숙정문에 가서 놀면 그 해의 재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저서에서 숙정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시 문을 닫아두게 했다는 속설을 기록하였다. 그만큼 숙정문 지역은 풍수적으로 음기가 강한 곳이었다. 태조 5년(1396) 처음 서울 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총탄 흔적이 있는 나무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나무
1·21 사태 소나무 (총탄 흔적이 있는 나무)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일당은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김신조 등 북한군 31명은 1968년 1월 21일 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을 벌인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다. 이후 이 소나무의 이름은 ‘1·21 사태 소나무’로 불리게 되었다. 15발의 총탄을 맞았는데도 소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북한에서 침투한 31명 중 29명은 사살되었고, 1명은 도주, 1명은 생포되었다. 생포된 1명이 바로 김신조다. 김신조는 이후 우리나라로 귀순하여 신학을 전공한 뒤 목사가 되었다.
무장공비와 교전 중 순직하신 분
창의문 바로 아래 청와대로 가는 길이 바라보이는 곳에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정종수 경사 순직비가 있다. 최규식 경무관은 종로 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파주 지역에서 남하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관들을 현장에 배치, 지휘하였다. 무장공비 일행이 청와대 바로 옆에 이르렀을 때 최규식 경무관이 그들을 막아섰고, 검문을 통과할 수 없었던 공비들이 외투 속에 감추고 있던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최규식 서장은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은 와중에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현장에서 순직하였다. 정종수 경사 역시 최규식 경무관과 함께 무장공비와 교전하던 중 순직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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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사랑하는 서울 산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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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사직공원 → 황학정 → 만수천 약수 → 치마바위 → 윤동주 시인의 언덕 |
거리 | 약 4.4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20분(왕복 2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 로 나와 3~5분 정도 걷다 보면 길 건너 왼편에 사직공원이 보인다 |
사직공원을 지나 5분 정도 걸으면 황학정이 보인다. 지금도 활을 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황학정 정자 뒤편으로 난 좁은 계단을 따라 도로 쪽으로 올라선 후 오른편으로 걸으면 청와대와 경복궁을 지키는 호랑이 상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걸으면 만수천 약수터로 들어가는 길과 만난다. 만수천 약수터에서 치마바위까지는 오르막길이다. 이 길로 가면 서울 성벽과도 만나게 된다.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어 땀이 난다. 치마바위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는 내리막길이라 걸을 만하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코스다. 성벽을 볼 수 있고 올라서면 서울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 만수천 약수는 쉬어가기에 좋다. 등산로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여자가 걷기에 제격이다.
화장실
사직공원에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이후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 꼭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자. 윤동주 시인의 언덕 길 건너 북악산 탐방로 입구에 공동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가 왼편으로 나 있는 길로 고개를 돌리면 ‘토속촌 삼계탕(서울 종로구 체부동 85-1 1층)’이 보인다. 경복궁역 1번, 2번 출구 주변에는 국숫집과 커피숍도 있다.
현재도 활쏘기가 계속되는 곳
황학정의 활쏘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조선 제26대 왕 고종은 경희궁 내의 황학정을 방문하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한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군대의 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射亭)각주1) 도 사라졌다. 이 점을 안타깝게 여긴 고종은 백성들의 심신 단련을 위해 궁술을 장려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또 궁궐 안에 황학정을 지은 후 백성들에게 개방했다. 지금의 이 정자는 1898년 경희궁 회상전 북쪽 담장 가까이에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이다.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고 궁내의 전각들을 일반에게 불하하면서 황학정은 사직단 북쪽, 옛 등과정이 있던 현 위치로 이건하게 되었다. 활쏘기를 금지한 일제 강점기에도 황학정은 그 맥을 이어왔으며 현재도 활쏘기는 계속되고 있다. 고종이 사용했던 활 호미(虎尾)와 화살을 보관하는 전통(箭筒)은 황학정에 보관되어 오다가 1993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 사직공원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 후 길이 나오면 왼편으로 걷는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황학정이 보인다.
2. 황학정 정자 뒤편에 난 작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도로가 나온다. 이때 오른편으로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왼편에 인왕산 호랑이 동상이 나오고, 호랑이 동상을 마주 본 상태에서 오른편으로 계속 걸으면 된다. 처음 만나는 석굴암 등산로 입구를 지나쳐 계속 걸으면 만수천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3. 만수천에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곤란하다. 만수천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편에 철제 펜스가 쳐진 작은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을 따라 간다.
애절한 전설의 현장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신씨는 남편 중종과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정치가 문제였다. 중종을 왕위에 앉힌 자들은 자신들이 살해한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의 보복이 두려워서 중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경왕후를 폐위시켰다. 왕후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옛 거처로 쫓겨났다. 단경왕후는 궁을 나오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왕산 바위에 붉은 치마를 걸어두겠다는 약속을 중종에게 남겼고, 이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아침이면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저녁이면 걷는 일을 51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중종 또한 부인을 잊지 못해 경회루에 올라 부인이 있는 인왕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인왕산 치마바위에 전해지는 슬프고도 애잔한 전설은 단순히 큰 바위로만 보일 수 있는 치마바위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멀리서 보면 모양이 치마처럼 보이는데, 바위에 올라서면 서울이 한눈에 보인다.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등산 중에 만나는 아름다운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 윤동주가 1941년 11월 20일 쓴 ‘서시’가 적혀 있는 시비가 언덕에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종로구는 2009년 7월 11일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인왕산 자락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등 대표작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면 인왕산 자락 아래의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길’, ‘자화상’ 등의 시도 엿볼 수 있다. ‘시인의 언덕’에서 길 건너편에 보이는 것은 창의문이다.
세월도 비켜간 분위기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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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천지약수터 → 상봉약수터 → 국기봉 → 관음사 → 사당역 |
거리 | 약 2.6km |
소요시간 | 1시간 35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5~20분(4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 후문 방향으로 걷는다). 마을버스 관악02번을 이용하면 더 빠르다. |
천지약수터에서 삼거리까지는 제법 힘든 오르막길로 큰 바위를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국기봉에서 관음사까지는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라 힘들지 않다. 코스가 짧은데도 쉬어가기에 좋은 약수터가 두 곳이나 있다. 걷기만 하는 등산보다는 담소나 데이트가 목적인 사람들에게 알맞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옛 정취가 물씬 풍겨나 분위기가 남다르다. 등산로도 여느산에서 만나게 되는 그것과 다르다. 그 흔한 나무 계단도 쉽게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자연 그대로다. 제법 큰 바위들은 제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코스 정보
이 코스는 등산로 초입을 찾기가 어렵다. 낙성대공원을 지나 서울대 방향으로 걸어오다 보면 왼편에 신한은행이 보이고 연구동 건물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신한은행 뒤편의 연구동 쪽으로 가면 SK 등 기업체 건물이 보인다. 등산로는 갈색의 웅진(woongjin) 건물 옆에 있다. 건물 옆에 보면 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길이 보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녹색으로 된 철제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철제 펜스를 따라 걷다가 웅진 건물 뒤쪽의 왼편 길로 가면 천지약수터와 만난다.
화장실
낙성대 공원에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이후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 꼭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가자. 관음사를 지나면 화장실이 보인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서울대 안에는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내 자연과학대학 대학원 교육연구동 501동)’가 있다. 비비고 라이스, 돌솥비빔밥, 콩나물국밥 등을 선보이는데 분위기가 카페 같아 쉬기에 좋다. 지하철 4호선 사당역 주변에도 음식점이 많다.
시간이 멈춘 듯 아늑한 쉼터
이 약수터는 1970년경에 발견되었다. 이후 뜻있는 사람들이 마음과 정성을 모아 찾는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처로 만들었다. 만들어진 때가 1970년대라서 그런지 약수터의 분위기는 시간이 그 당시에 멈추어 있는 느낌이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쉬어가는 사람이 많다. 아늑하고 조용해 책을 읽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서울대 바로 뒤편에 있어 약수터 주변에서 운동을 즐기는 학생들도 간간이 보인다.
관악산에는 1,500여 봉우리와 구릉 곳곳에 사찰이 산재해 있고 약수터도 많다. 등산길에서 만나는 약수터는 마치 쉼표와 같다. 힘들지 않아도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쉬게 된다. 삶에도 이런 쉼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우리네 인생에는 쉬어가라는 혹은 쉬어도 좋다는 표시가 정확히 없다. 천지약수터가 그 누군가의 발견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듯 인생의 쉼표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관악산의 비타민 같은 곳
상봉약수터에는 운동 기구가 많다.
천지약수터에서 2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상봉약수터는 천지약수터만큼이나 크다. 운동 기구는 천지약수터보다 더 다양하지만 마찬가지로 19970~1980년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관악산은 '불기운의 산'이다. 조선 태조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한양을 에워싼 산 중에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산을 화덕을 가진 산으로 보았다. 화기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기도 하였다. 그 불을 다스리기 위함일까. 관악산에는 유난히 약수터가 많다. 상봉약수터에는 물소리보다 사람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여기저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깊은 산중의 약수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상봉약수터에서 관음사로 가는 길은 자칫 헛갈릴 수 있다. 이정표에는 호암생활관과 마당바위로 가는 방향만 표시되어 있다. 왼편도 오른편도 아닌 위쪽을 선택하면 된다. 이 오르막길은 천지약수터에서 상봉약수터로 오던 길과 쭉 연결되어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음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는 연주대 반대 방향 길인 왼편을 선택하면 된다.
천 년 역사를 간직한 곳
관악산 줄기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천 년 역사를 지닌 사찰로, 신라 말엽인 895년(진성여왕 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비보사찰이다. 1977년 극락전을 해체할 당시에 발견된 상량문을 보면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 4월 21일에 극락전을 개축하였고, 영·정조 시대에 쓰인 ‘범우고’와 ‘가람고’ 및 ‘여지도서’에는 관음사에 대한 대강의 기록과 함께 사찰 근처에 승방벌이라는 마을과 승방교가 있었던 사실이 기술되어있다. 기록으로 보아 당시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케 한다. 물론 지금도 사찰의 규모는 제법 큰 편이다. 사찰 앞에 있는 감나무는 가을이면 등산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번 들러볼만하다.
생각 없이 무작정 걷기 좋은 길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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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회룡 탐방지원센터 → 회룡사 → 회룡사거리 → 송추 분소 → 송추 입구 |
거리 | 약 6.2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55분(왕복 3시간 50분) |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회룡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큰 도로가 나오면 북한산 국립공원(회룡계곡) 방향으로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북한산 둘레길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등산로와 만난다. 회룡역에서 회룡 탐방지원센터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
진입로에서부터 회룡사거리까지는 오르막 길이라 보면 된다. 오르막길이라 힘들어도 무서운 구간은 없다. 회룡사거리에서 송추분소까지의 내리막길은 가파르지 않아 힘들거나 무섭지 않다. 하지만 사패능선 쪽은 무섭고 힘든 구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도봉산 등산로 중에서도 쉬운 코스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해진 코스대로 걸아야지, 자칫 조금만 벗어나면 힘든 길을 만나게 된다. 거칠어 보이지만 계단 등으로 등산로를 잘 꾸며 놓아 위험하지는 않다. 여자가 걷기에 무난한 코스다.
화장실
탐방지원센터 옆에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이후에는 송추샘과 송추 분소 부근에 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1호선 회룡역 2번 출구로 나와 등산로까지는 김밥과 짜장면 등을 파는 음식점과 슈퍼마켓이 몇 곳 있다.
조선시대의 생활용수 저장소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1년(서기 681)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2년에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님의 현신을 친견한 곳이기도 하다. 회룡사 경내로 들어오면 회룡사 석조가 눈에 띈다.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17호로 지정된 이 석조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다. 전체 길이 224cm, 폭 153cm, 깊이 67cm로 현존하는 석조 중에서는 대형에 속한다.
표면은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고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어 시각적으로도 안정된 자태를 보인다. 이 석조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서산 보원사지 석조에 버금갈 만한 규모와 솜씨를 지니고 있어 서울 인근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조선시대 석조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조선시대의 석탑
문화재의 보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회룡사.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나서 이곳을 다시 찾아와 절 이름을 ‘회룡사’라고 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무학대사를 찾아오자 무학대사가 ‘회란용가(回鸞龍駕)’라 하면서 기뻐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회룡사 오층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15세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오층탑신을 올린 높이 3.3m 규모의 일반형 석탑이다. 지대석과 기단의 상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공기와 물이 맑은 곳
길지만 비교적 완만하여 걷기 좋은 송추계곡은 국립공원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곳이다. 송추라는 이름은 소나무 송(松)과 가래나무 추(楸)가 합해진 것으로 볼 때 이곳에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숲이 내뿜는 깨끗한 공기와 맑게 흐르는 물을 만날 수 있는 이곳에는 식물, 곤충, 동물 등 자연생태계에 대한 해설이 적힌 안내 표지판을 설치한 자연 관찰로도 있다.
송추 관찰로는 1998년 1월 1일부터 일대를 ‘특별보호구’ 구간으로 지정하여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는데, 자연 스스로가 복원하는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송추계곡을 통해서 사패산 쪽으로도 오를 수 있다. 사패산은 조선 선조의 여섯 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 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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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도 빌고 등산도 하고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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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안양예술공원 입구 → 염불사 → 삼막사 → 마애삼존불상 |
거리 | 약 4.8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40분(왕복 3시간 20분) |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안양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 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탄 후 종점에서 내린다. 버스에 승차하기 전에 안양예술공원으로 가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탑승하자. |
버스 종점에서 내리면 안양예술공원 입구와 만난다. 안양예술공원에서 염불사까지는 포장도로이고, 염불사에서 삼막고개 쉼터까지는 조금은 거친 바위길이 이어진다. 삼막고개 쉼터에 올라선 후 우측으로 걸으면 저 멀리 삼막사가 보인다. 삼막고개 쉼터에서 삼막사까지의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아 능선을 걷는 기분이다. 한참 걷다 보면 막다른 길에서 잘 만들어진 좁은 돌길을 만나게 된다. 돌길로 진입해서 왼편(내리막)으로 가면 삼막사가, 오른편(오르막)으로 가면 마애삼존불상과 남녀근석이 나온다.
삼막사에는 소원을 빌 수 있는 곳이 있어 등산의 재미를 더해준다. 남녀의 성기 모양과 닮았다해서 남녀근석이라 이름이 붙은 바위에는 아이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기도 한다. 꽤 영험이 있다고 하니 건강과 출산을 바란다면 속는 셈 치고 한번 빌어보자.
코스 정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I Saw U.F.O(10월 14일 13:35분 나는 유에프오를 보았다)’ 작품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염불사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를 따라 좌측 길로 들어가 쭉 올라가면 염불사와 만날 수 있다.
화장실
종점에서 내린 후 도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오른편에 큰 건물인 알바로 사자홀이 있는데 이곳에 화장실이 있다. 이후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꼭 볼일을 해결하자.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마을버스 2번 종점에서 안양예술공원까지 이르는 길은 경기도 음식 문화의 거리다. 커피숍을 비롯하여 짜장면집, 칼국수집 등 다양한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경기도 음식 문화의 거리를 벗어나 등산로로 진입하면 음식점과 매점을 찾기 어렵다.
돌에 새겨 넣은 독특한 문양
삼막사에 들어서면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새겨 넣은 세 가지 형태의 거북 귀(龜) 자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글자는 조선말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982~1935)이 새겨 넣은 것이다. 지운영은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서화가이자 정치가, 사진가였다.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와 서울에 사진관을 개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정부의 극비지령을 받고 개화파의 일원인 김옥균과 박영효를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특파되었다가 암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배 생활이 끝난 후 그는 삼막사 위에 백련암을 짓고 은거에 들어갔고 당시 ‘삼귀자’를 새겼다. 전서체로, 우측 각자머리에 ‘관음몽수장수 영자’라고 적은것으로 보아 꿈에서 관음보살을 본 후에 글자를 새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좌측에 ‘불기 2947년 경신중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라는 명문으로 보아 1920년에 쓴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삼막사 경내에 있는 탑
삼막사는 신라시대에 승려 원효가 건립한 뒤 조선 초기의 승려 무학이 중수하였고 승려 서산 등이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고종 17년에는 명부전도 건립하였다. 삼막사는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삼막사 경내에 들어서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층석탑이 눈앞에 보인다. 이것은 삼막사 승도인 김윤후가 몽고군의 원수인 살이타이를 살해, 싸움에서 이긴 승적을 기념한 탑이다.
높이는 2.55m로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그 모습은 경내에서 단연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편으로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보이지만 비교적 가깝게 관찰할 수 있다.
효험이 있다고 소문난 바위
동전이 곳곳에 붙어 있는 여근석
소원 바위로 알려진 남근석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녀근석은 아이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2개의 자연 암석으로 된 남녀근석은 그 모양이 마치 남녀의 성기
모양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가 삼막사를 건립하기 이전부터 이 남녀근석은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 순조로운 출산을 하게 됨은 물론 가문의 번영과 무병, 장수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촛불과 과일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린다.
바위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붙여 놓은 동전이 가득하다. 10원부터 시작해 500원 동전까지 붙어 있는데 경사진 면에서도 동전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잔잔한 미소가 인상적인 불상
얼굴과 당당한 어깨 등 상체 표현에 중점을 둔 듯하다.
남녀근석 바로 앞에 있는 마애삼존불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조선 영조 39년(1763)에 만들어졌다. 석굴사원 양식으로 암벽을 얕게 파서 만들었다.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협시보살을 거느린 삼존불로 모두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불상이 모셔져 있는 칠성각은 조선 영조 40년(1764)에 세워졌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고, 옷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가슴에는 내의인 군의의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이 마애불은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얼굴과 당당한 어깨 등 상체 표현에 치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조선 불상의 형식으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칠성각은 마치 산속에 덩그러니 자리한 작은 사찰의 느낌이며 주변 풍경 또한 뛰어나다. 삼막사는 서울 주변 4대 명찰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 이유를 칠성각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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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생활 에너지가 가득한 길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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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등산로 입구 → 원터골 쉼터 → 옥녀봉 |
거리 | 약 3.7km |
소요시간 | 편도 40분(왕복 1시간 20분) |
가는 법 | 매봉 코스와 가는 길은 동일하다.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해서 쭉 걷는다. 5분 정도 걷다 보면 왼편에 원지동 미륵당이 보이고 그 뒤로 굴다리 같은 것이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해서 3분 정도만 더 걸으면 청계산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산책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하며 높이는 매봉보다 낮다. 가파르지 않은 계단과 평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 청계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코스다. 옥녀봉에는 오래 머물며 쉴 수 있는 의자와 탁자도 많다.
옥녀봉 코스는 언뜻 보면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것 같다. 나무가 빽빽한 숲도, 쓰레기 하나 없는 등산로도 모두 사람의 관리를 받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쾌적하다. 숲도 관심과 애정을 많이 받으면 더 예뻐지는 것 같다.
화장실
원터골 쉼터 근방에 간이 화장실이 있으나, 지하철역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걸으면 아웃도어 매장과 음식점들이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한 후 청계산 원터골 입구로 들어오면 음식점 국시 맞은편에 '조선면옥(서울시 서초구 원지동 379-4)'이 보인다. 냉면, 장국밥, 순두부 정식, 파전 등을 판매한다.
예쁜 여성의 자태와 같은 봉우리
옥녀봉에서 보이는 시원스러운 풍경
청계산은 청룡산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옛날 옛적 푸른 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승천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옥녀봉이라는 이름은 어느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이름이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산에 옥녀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존재하고 내려오는 전설도 많다. 옥녀봉 꼭대기의 바위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면 옥황상제가 노하여 비를 내린다는 전설을 비롯하여 옥황상제의 딸인 옥황선녀가 옥구슬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실수로 옥구슬을 떨어뜨렸는데 그곳이 바로 옥녀봉이라는 전설까지, 이야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청계산의 옥녀봉은 봉우리가 예쁜 여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옥녀봉의 예쁜 모습을 보니 맞는 것도 같다. 옥녀봉에 올라서면 과천경마공원, 과천정부청사, 과천성당, 과천외고 등이 보인다.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는 곳
지하철 청계산입구역에서 청계산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원지동 원터였다. 조선시대 공무(公務)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통 요충지에 역(驛)과 원(院)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도 큰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원지동 미륵당 안에는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다. 225cm에 달하는 큰 규모의 석불입상은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영험함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이곳 주민들은 1년에 한 번씩 동제를 지내기도 한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큰 기둥의 모양을 하고 있고 표면에 호분각주1) 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머리가 커다랗고 머리 윗부분이 뾰족하며, 얼굴이 길고 어깨가 좁아 토속적이고 위축된 모습이다. 미륵당 앞의 작은 삼층석탑은 지붕돌의 귀퉁이가 훼손되었고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석탑과 석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원래 절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땀은 뻘뻘 살은 쏙쏙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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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불암산 공원 → 정상 → 학도암 → 노원교회 |
거리 | 약 4.1km |
소요시간 | 2시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로 나와 맞은편에 보이는 길로 들어간 후 큰 도로가 나올 때까지 걷는다. 도로가 나오면 길을 건넌 후 왼편으로 걷는다. 쭉 걷다 보면 성관사와 상계제일중학교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불암산 공원이 나온다. |
등산로 이름 중에 깔딱고개가 있으면 일단 힘든 구간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코스 또한 깔딱고개가 예외 없이 자리하고 있다. 편하게 올라간다 싶었는데 가파른 돌길과 나무계단이 대미를 장식해준다. 거북바위에서 숨을 돌리고 나면 또 오르막길이다. 가을에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꽤 힘들다. 정상에서 노원교회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라 힘들지 않다.
불암산 코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코스가 아닐까 싶다. 혼자서 오르는 사랃모 은근히 많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등산로가 깨끗하고 눈길이 닿은 곳마다 풍경이 예쁘다. 쉬워 보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산인지라 걸으면 땀이 꽤 흐른다.
화장실
불암산 공원에 화장실이 있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간이 화장실이 보인다. 이후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보이는 즉시 볼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로 나와 맞은편에 보이는 길로 들어서면 음식점 거리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음식점이 많다. 보쌈집을 비롯해 커피숍과 편의점도 있다. 돈가스 카페 ‘돈스’ 음식이 괜찮다. 돈가스, 초밥, 알밥 등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만날 수 있다.
거북이를 닮은 바위
진짜 넓적한 거북이의 등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에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바위와 고개들이 많다. 거북바위라는 이름도 그러하다. 도봉산, 금강산, 삼성산, 치악산 등등에서도 거북바위라는 이름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치악산의 거북바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했다. 치악산 비로봉 앞 신선대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토끼는 거북이보다 빨리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거북이가 자기보다 훨씬 뒤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토끼는 잠시 잠을 청했다. 토끼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 거북이는 결승선 목전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빨리 달렸던 토끼가 보이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긴 거북이는 주변에 물었다. 거북이는 토끼가 잠이 든 것을 알게 되었고 정정당당하게 시합을 펼칠 생각으로 토끼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나도 토끼는 깨어나지 않았고 거북이는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 버렸다고. 삼성산의 거북바위는 바위가 거북이 등껍질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불암산의 거북바위는 진짜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기할 정도로 거북이를 닮았다.
마애상이 있는 사찰
학도암이라는 이름은,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노닐다갔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학도암은 조선 인조 2년(1624) 무공화상이 불암산에 있던 옛 절을 이곳으로 옮겨 창건하였다. 이후 고종 15년(1878) 벽운화상이 중창하고 고종 22년(1885) 경선화상이 불상 1구를 개금하고 탱화 6점을 그렸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를 1965년 김명호 주지가 재창건하였다.
학도암에는 대웅전, 불법당,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대웅전 뒤편 암벽에는 명성왕후의 염원에 따라 1872년 조성된 높이 22.7m, 폭 7m의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조선후기의 뛰어난 마애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학도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포장도로여서 걷기에도 편하다.
남양주 갈림길에서 헬기장/공릉동 방향으로 가야 학도암을 만날 수 있다. 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학도암이 표시된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편에 보이는 내리막길을 선택해 400m 정도 걸으면 학도암이 바로 보인다.
에너지가 흐르는 명당자리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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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고구려대장간마을 → 큰바위얼굴 → 대성암 → 4보루(정상) → 긴골 입구 → 아차산역 |
거리 | 약 4.2km |
소요시간 | 2시간 5분 |
가는 법 | 지하철 2호선 강변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우측으로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길을 건넌 후 우측으로 걷다가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1-1번, 9번, 100번 등 고구려대장간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에서 내려 좌측을 보면 고구려 대장간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
이 코스는 이정표가 별로 없어 다소 불편하다. 큰바위얼굴을 본 후 더 올라가 옆으로 보이는 마당바위 같은 큰 바위를 건넌 뒤 좌측으로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계곡 같은 작은 경계 지점이 보이는데, 여기서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된다. 한참 올라가다가 녹색 펜스가 보이면 좌측으로 걷는다. 대성암 뒤쪽에는 체력 단련장이 있고 그 오른편에 한 사람이 겨우 오를 수 있는 철제 계단이 있다. 철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당바위 같은 곳이 있다. 바위를 오른 후 오른편으로 걸어가면 4보루를 만날 수 있다.
큰바위얼굴 코스에서는 왠지 모를 기가 느껴진다. 바로 거대한 바위들 때문이다. 큰바위얼굴 바위 주변은 거대한 바위로 가득 차 있다. 예부터 바위가 많은 산에는 좋은 기가 흐른다고 하지 않던가. 바위를 보고 밟으면 그 힘찬 기가 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화장실
고구려대장간마을에 화장실이 있다. 고구려대장간마을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이 가능하다.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대성암까지 가는 길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고구려대장간마을에 음료수 자동판매기가 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긴 고랑길 마을을 지나야 한다. 아차산역까지 가는 길에는 시장도 있고 음식점도 많다. 긴 고랑길 마을과 아차산역 사이의 신성 골목 시장에는 튀김이나 분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잘알려진곳
고구려대장간마을은 아차산 4보루에서 발견된 간이 대장간을 보존하여 조성한 마을이다.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시설과 소품들을 재현해 놓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마을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촬영장으로 더 유명하다. 태왕사신기는 한류 스타 배용준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로, 고구려의 왕자 ‘담덕’이 광개토대왕으로 등극하기 전까지의 활약상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시대가 고구려이다 보니 가옥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낯설다. 칸막이가 아닌 장막으로 공간을 구분한 고구려 귀족들의 생활공간인 ‘연호개채’와 벽면에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나 있는 북방의 현무를 사방에 그려 넣은 ‘거믈촌’ 등은 이색적인 흥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고구려대장간마을은 ‘태왕사신기’뿐만 아니라 배우 고현정의 열연으로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드라마 ‘자명고’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우리에게 친숙하다.
소설 속에서 뛰쳐나온 것 같은 풍경
소설 <주홍글씨>로 유명한 작가 너대니얼 호손이 쓴 단편소설 <큰바위얼굴> 속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있는 큰바위얼굴 덕분에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풍작을 이루는거라고 믿는다. 큰바위얼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오막살이집에 사는 어니스트 또한 마을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큰바위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을 얻는다고 믿었다.
아차산에도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큰바위얼굴이 있다. 누가 일부러 조각한 것 마냥 그 모양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신기한 바위가 발견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짓고 태왕사신기 촬영이 한창이던 무렵, 배우 배용준이 대장간마을에서 촬영을 할 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배용준이 서 있던 위치에서만 보인다고. 이런 뒷이야기 때문인지 바위가 배용준을 닮은 것도 같다.
인간의 욕심을 엿볼 수 있는 곳
쌀이 나왔다는 바위의 모습
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를 비롯하여 기이한 바위가 많은 아차산은 기가 충만하게 흐르는 명당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소원을 빌러 찾는 사람도 많다. 명당자리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가 잘 자라고 베어내도 움이 잘 튼다.
대성암에 있는 쌀바위에서도 이런 아차산의 넘쳐나는 기운이 여실히 느껴진다. 대성암 안에는 쌀이 나왔다는 바위 구멍이 있다. 쌀이 많이 나오게끔 더 크게 뚫었다는 구멍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엿보여 기분이 다소 씁쓸하다. 지금의 대성암 자리는 신라의 유명한 승려인 의상 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기도 하다. 의상 대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수도 자리 뒤의 바위 구멍에서 쌀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공양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내려준 쌀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욕심에 바위의 구멍을 더 크게 뚫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쌀뜨물과 타버린 쌀이 수삼일 동안 나오다가 멎더니만,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파르지 않아 걷기 편한 길
이곳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랑처럼 생긴 길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다. 걷기 편한 길 주변은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파르지 않아 점심시간이면 구두를 신고 찾아오는 직장인들도 더러 있다. 30여 분 정도 숲길을 걷고 나면 긴 고랑길 마을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 마을길은 앞서 걸었던 긴 고랑길과는 주변이 숲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점만 빼고는 흡사하다. 1970~1980년대 단독주택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은 과거 종종 홍수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의 마을은 마치 거대한 갤러리를 연상케한다. 가옥 벽과 대문에 그려진 ‘아차산 가을 나들이’, ‘우리나라 꽃 무궁화’, ‘꽃 계단과 사계’, ‘집에서 머리 깎던 추억’, ‘도심 속의 산책로 이야기’, ‘짐바리 아저씨 아이스케키’ 등 서른 개가 넘는 그림에서는 과거의 향수가 느껴진다.
긴 고랑길이 끝나고 긴 고랑길 마을이 시작되는 지점에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이곳에서 02번 버스를 타면 지하철 5호선 군자역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까지 걷는 것도 매력 있다. 벽화가 인상적인 긴 고랑길 마을을 구경하면서 내려오면 도로가 나온다. 이때 좌측으로 걸으면 신성 골목 시장과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이 나온다.
아름다운 서울 풍경을 마주하다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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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부암동사무소 → 반계 윤웅렬 별장 → 등산로 → 기차바위 → 창의문 |
거리 | 약 3.3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20분(왕복 2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2분 정도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부암동 사무소로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린 후 길을 건너면 부암동 사무소와 만날 수 있다.각주1) |
안평대군 이용과 현진건 집터를 본 후 반계 윤웅렬 별장을 지나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이 보인다. 이 길은 사유지이므로 조용하고 깨끗하게 이용하도록 하자.
무성한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 기차바위가 반긴다. 바위에 올라서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암벽으로 되어 있는 기차바위는 보기에는 무섭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기차바위에 올라서면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데, 어딜 봐도 예쁜 모습 일색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화장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부암동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가급적이면 지하철역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공중 화장실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 길 건너 북악산 탐방로 입구에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부암동사무소 주변에는 조용하고 깨끗한 음식점이 많고 편의점과 커피숍도 있다. 부암동사무소에서 경복궁역 방향으로 가면 만두를 판매하는 천진포자도 있다.
길에서 만나는 집터
부암동사무소에서 2분 정도만 올라가면 안평대군 이용과 현진건 집터를 만날 수 있다. 안평대군 이용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꿈에서 본 무릉도원 자리에 정자를 세워 글을 읽고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한때 이곳에서 원대한 꿈을 꾸었지만 계유정난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집터는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평대군 이용 집터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현진건 집터는 말 그대로 집터 표시만 덩그러니 있어 아쉬움이 크다.
현진건은 대구 출생으로 근대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다. 작품으로는 소설 <운수 좋은 날>, <무영탑>, 등이 있다. 평생을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진건의 친형 현정건도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평양의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부암동사무소(부암동 주민센터)를 마주한 상태에서 오른편으로 보면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음식점 ‘오월’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부암동사무소와 ‘오월’ 건물 사이의 큰길
말고, ‘오월’ 건물과 다른 상가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안평대군 이용의 집을 만날 수 있다. 2분 정도만 걸으면 우측으로 보인다.
근대 서울 한옥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곳
이 집은 무관 출신으로 군부대신을 지낸 윤웅렬이 창의문 밖 경승지에 지은 별장이다. 윤웅렬은 개화파 지식인으로 독립협회에 참가하여 서재필 등과 함께 국민계몽에 힘을 쏟은 윤치호의 아버지인데, 윤웅렬이 죽은 후에는 셋째 아들 윤치창이 이 집을 상속받았다. 윤치창은 집을 상속받은 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1906년에 건립된 이 집은 현재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및 광채, 문간채 등 세 채다. 사랑채의 한쪽 끝 부분에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 벽돌 건물이 있는데 사랑채와 2층 건물은 모두 남쪽의 계곡을 향하고 있다. 이 별장은 외국에서 도입한 근대 건축 양식을 주택에 적용한 흥미로운 사례인데, 안채는 근대 서울 한옥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서울의 풍경이 보이는 바위
기차를 연상시키는 바위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재미있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와 바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그리고 바위는 나무보다 더 오래 산다. 기차바위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고 하니 그보다는 덜 먹었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음에도 기차바위는 볼 때마다 새롭고 깨끗하다.
기차바위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바위에 구멍을 내 안전 울타리를 쳐놓은 것이 아쉽다. 기차바위에서 내려오면 소나무 숲이 사람들을 반긴다. 기차바위에서 부암동으로 연결된 코스는 서울의 중심에 있는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크게 위험하지도 힘들지도 않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기차바위 위에 오르지 않는 게 좋다. 암벽이라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반계 윤웅렬 별장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 올 라가면 정면으로 담장과 집 사이에 작은 길이 보인다. 유심히 보면 길은 대나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길로 걸어가면 기차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때 잘못하여 왼편으로 들어서면 길을 헤맬 수 있으니 주의하자. 부암동사무소에서 편의점과 백영 세탁소 사이에 있는 길로 걸어가도 인왕산 등산로가 나온다.
산은 행복을 전해주는 단어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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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등산로 입구 → 돌문바위 → 매봉 |
거리 | 약 4.7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왕복 2시간) |
가는 법 |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곧장 걷는다. 5분 정도 걷다 보면 오른편에 원지동 미륵당이 보이고 그 뒤로 굴다리 같은 것이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해서 3분 정도만 더 걸으면 청계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
오르막이지만 계단으로 꾸며져 있어 무섭거나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는 각오해야 한다. 등산로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기쁨을 안겨준다. 매바위와 매봉에 올라서면 탁 트인 주변 경치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등산을 하면서 소원도 빌 수 있다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매봉 코스가 즐거운 이유는, 바위의 문을 세 번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 돌문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난구간이 없어 산이 주는 행복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코스 정보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걸어오면 매봉으로 갈 수 있는 이정표를 두개나 만나게 된다. 이때 왼편 길(매봉2,2km)을 선택하면 된다.
화장실
원지동 미륵당 뒤편과 옥녀봉 코스 초입에 화장실이 있다. 되도록이면 지하철역에서 볼일을 본 후 출발하는 게 좋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걸으면 아웃도어 매장과 음식점들이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한 후 청계산 원터골 입구로 들어오면 ‘국수(서울시 서초구 원지동 377-1 2층)’가 보인다. 3대를 이어온 집으로 45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수 명가이다. 무시래기밥도 맛있고 국수맛도 일품이다. 원터골 입구에는 음식점이 상당히 많으며 커피를 판매하는 작은 슈퍼와 김밥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문
세 번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돌문
창덕궁에 돌로 만든 작은 불로문이라는 문이 있다. 키가 큰 사람은 허리를 숙여야 통과할 수 있다. 불로문은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졌는데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늙지않고 무병장수를 누린다고 믿었다. 문에 담긴 의미를 알아서일까, 외국인들도 불로문 앞에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소원을 빌며 지나간다. 중국 서산에도 소원을 이루어주는 문이 있다. 서산을 넘으면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옥황상제의 약속을 믿고 물고기들이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통과한 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문 앞은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계산의 돌문바위에도 바위 문을 세 번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물론 입증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청계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돌문바위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청계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세요’라고 쓰인 나무판을 보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이야기가 바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곳
옛날에는 청계산에 매가 많았던 모양인지 매가 이름 앞에 붙은 매바위도 있고 매봉도 있다. 하지만 정작 매는 없다. 매가 속해 있는 맹금류는 성질이 사납고 행동이 민첩한육식성 조류다. 그래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매의 눈을 지녔다고 한다. 현재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를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이 있다. ‘꿩’을 잡지도 못하는 무늬만 ‘매’인 것은 의미가 없고 ‘꿩’을 잡을 수 있어야 진짜 ‘매’라는 뜻이다. 실제로 매는 꿩 사냥에 이용되었다. 총알 같이 민첩한 행동과 날카로운 발톱이 꿩을 잡는 데는 제격이었다. 이런 속담으로 미루어보면 그 옛날 청계산에는 꿩이 살았을 법도 하다. 오늘날 매봉에는 매와 꿩은 없지만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매봉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우면산, 서울N타워, 북한산, 삼성타운, 스타타워 등 눈부시게 발전한 서울의 모습이 보인다.
탄성을 자아내는 숲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면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바로 메타세쿼이아 나무 때문이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 몇 그루의 나무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 어느 숲에도 뒤지지 않는다.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살아있는 화석식물로 불리는 나무로, 1940년까지 화석으로만 존재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때 ‘신의 나무’라 부르기도 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매력은 엄청 큰 키다. 나무 밑에 서 있으면 마치 숲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어 편안해진다. 청계산에서 만날 수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은 옥녀봉 코스로가는 길에서도 보인다. 메타세쿼이아 숲 바로 앞에는 계곡 물이 흐르는데, 잠시 앉아 계절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도심 속 천연 공기청정기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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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관악산 관문 → 제2광장 → 깃대봉→ 삼성산 정상 |
거리 | 약 7.0km |
소요시간 | 편도 2시간(왕복 4시간) |
가는 법 |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 입구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려 서울대 쪽(왼편)이 아닌 오른편으로 걸으면 녹색 펜스가 보이고 펜스가 끝나는 곳에 등산로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
관악산 관문에서 제1깔딱고개까지의 길은 비교적 걷기에 무난하다. 특히 제2광장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많다. 갈닥고개 부근에 들어서면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므로 조금 힘들어진다. 깔딱고개를 넘어 걷다보면 왼편에 오래돼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이 바위 위에 깃대봉이 있다. 거북바위에서 삼성산 정상까지는 포장도로인데 길이 그닥 멋지지는 않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깃대봉이나 거북바위에서 쉰다.
조금만 올라가도 도심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공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에 도로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맑고 신선하다.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인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사람이 많아 여자들이 걷기에 안전한 편이다.
화장실
등산로 입구에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제2광장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이후에는 찾기 어렵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오른편으로 보면 사누끼면을 선보이는 ‘미소야’가 있다. 버스 정류장과 가까이 위치해 있다. 메밀국수, 우동, 초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주변에 커피숍과 음식점이 상당히 많다.
멋진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곳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보면 정상 가까운 곳에 기이한 바위가 보인다. 바로 깃대봉(국기봉)이 있는 바위다. 바위 옆을 지날 때면 마치 동굴 속을 걷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 빛깔도 삼성산에서 보이는 여타 바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눈에 확 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히 수준급이다. 하지만 국기 쪽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위험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니 되도록 깊숙이 올라가지는 말 것!
쉬어가기에 좋은 바위
삼성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거북바위는 마치 거북이의 등처럼 널찍해서 쉬어가기에 좋다. 거북바위로 오는 도중에는 1997년 10월 울산에서 검거된 부부 간첩 최정남, 강연정의 행적도 볼 수 있다. 두 간첩 부부는 삼성산 등산로 부근에 장비를 은닉했다가 발각되었는데, 무전기와 김일성 부자에게 보내는 충성 맹세문, 주민등록등본과 지하철공사 직원 인사기록카드 등이 있었다. 부부 간첩 최정남과 강연정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울지하철공사에 근무하는 심정웅이 40여 년간 고정 간첩으로 활동한 사실도 밝혀졌다. 거북바위는 깔딱고개를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더 반갑다. 거북바위로 정상까지는 5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정상까지는 가급적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싶다면 거북바위로 오는 길에 거치는 깃대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도록 하자.
북한산 절경이 한눈에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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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백련공원 지킴터 → 진달래능선 → 대동문 |
거리 | 약 5.4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30분(왕복 3시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에서 강북 01번 버스 이용 → 백련사 하차 후 도보 5분각주1) |
등산은 건강과 행복을 나에게 돌려준다.
이 코스의 오르막길은 크고 작은 돌과 계단으로 채워져 있지만 크게 힘들지는 않다. 진달래능선은 걷기에는 무난하지만 길이 좁아 낙상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어린아이들도 오를 정도로 무난한 길이지만 정상 가까운 곳에 힘든 구간이 하나 있다. 삐죽한 모양의 돌들이 거칠게 솟아 있어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진달래 능선에 서면 북한산 경관의 으뜸으로 꼽히는 암봉군이 보인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봄에는 진달래가, 가을에는 단풍이 사람들의 입에서 '아!'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절경을 즐기러 젊은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화장실
백련 공원 지킴터 주변에 있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위로 올라가면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버스를 타고 백련사 앞에서 하차하면 주변에 음식점이 많아 보인다. 다른 지역에 비해 커피숍도 많다. 국립 4.19 민주묘지 방면으로 내려오다 보면 국숫집 ‘심지 국수’가 보인다. 10가지 과일과 야채를 으깨 김치 국물에 버무린 비빔국수와 남해 멸치로 국물 맛을 낸 잔치집 촌국수를 각 4,000원에 맛볼 수 있다.
등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는 곳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사용 가능한 운동기구
대동문 코스 입구에는 체력 단련장이 두 곳 있다. 두 곳 모두 80년대 분위기가 풍긴다. 칠이 벗겨진 운동기구는 이곳의 세월과 역사를 말해준다. 거울도 나이를 먹었다. 오래된 거울 앞에 서니 묘한 기분이 든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그때 그 시절의 어린 내 모습이.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기 전 이곳에서 몸을 풀고 가는 것도 괜찮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 산행에도 준비운동은 필수다. 운동기구는 적지만 몸을 풀기에는 적당하다.
꽃과 단풍이 어우러진 진풍경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려 진달래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꼭 4월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주말에는 그야말로 사람 엉덩이 구경 실컷 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노적봉 일대의 암봉군은 북한산 경관의 으뜸으로 꼽히는데 진달래능선에 올라서면 암봉군이 보인다. 가을이면 단풍도 곱게 물든다. 굳이 먼 곳까지 고생하며 단풍구경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봄, 가을은 북한산 진달래능선에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 같다. 진달래능선은 아름답지만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자연은 겸손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냉정한 법이니까 낭떠러지 가까이의 바위 위에 앉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서울의 동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관문
대동문을 통과하면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크고 탄탄하게 보이는 문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성문인 대동문은 산성이 축성된 숙종 37년(1711년)에 지어졌다. 서울의 동북쪽을 잇는 관문으로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고 있다. 문의 형식과 모습은 대남문이나 대성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부의 단층 문루는 다른 문들과 마찬가지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문루는 소실되었다가 1993년에 새로 복원되었다. 몸을 숨기거나 활이나 총 등을 쏠 수 있도록 설치된 군사 시설이라 그런지 아름답다기보다는 장엄함마저 느껴진다. 대동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다른 문들에 비해 그 규모가 조금 크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홍예문각주2) 은 이 문이 가장 크다. 규모가 커서인지 보국문에 비하면 주변도 굉장히 넓은 편이다. 주변에는 대남문, 백운대, 대성문, 용암문, 보국문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만나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곳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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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도봉 탐방지원센터 → 성도원 → 마당바위 → 천축사 → 도봉 탐방지원센터 |
거리 | 약 4.3km |
소요시간 | 2시간 5분 |
가는 법 | 지하철 1, 7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
진입로에서 성도원까지는 숲과 계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걷는 것이 즐겁다. 마당바위에서 천축사를 거쳐 내려가는 길은 무섭지는 않지만 다소 험한 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크고 작은 바위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고 깊고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도봉산은 위험한 구간이 몇 군데 있기 때문에 등산로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구간은 계곡이 있어 예쁘다. 여름에는 발을 담그고 쉬어가는 여자 등산객도 많다. 천축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화장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도봉산 등산로로 오는 길에 화장실이 있다. 광륜사를 지나서도 한 군데 있다. 이후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 가급적이면 보이는 즉시 볼일을 해결하자.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오면 ‘우리술상(국순당 직영)’이 보인다. 비빔밥, 국수, 파전, 오징어순대 등을 카페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지하철역에서 도봉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음식점과 아웃도어 매장이 상당히 많다.
조대비가 기도하던 곳
조만영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그는 1839년(기해년, 헌종 5년)에 발생한 천주교 탄압 사건인 기해박해를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조만영의 딸은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기도 하였는데, 광륜사 금강선원은 조만영의 딸인 조대비가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던 곳이다. 조대비는 신정왕(1808~1890)로서 조선 익종의 비(妃)다. 순조19년(1819)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올리고 헌종이 즉위한 뒤 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승하하자 왕위 결정권을 갖게 되어 고종을 즉위케 하고 대왕대비로서 흥선대원군에게 정책 결정권을 내려 대원군의 집정을 이루게 했다. 그후 조대비는 이곳에 팔곡대사를 불러 나라의 안녕과 자식들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1890년 수릉에 안장되었다.
광륜사 금강선원에서는 자운봉 방향으로 걸으면 된다. 고산앙지와 도봉서원을 지나친 후 조금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이때부터는 자운봉이 아닌 우이암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서원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면 계곡길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는 왼편으로 가도 되고 오른편으로 가도 된다. 어자피 하산할 때 자운봉 방향 길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풍경으로 따지면 우이암 쪽이 조금 더 예쁘다.
곡운 김수증이 쓴 글씨
도봉서원은 서울의 하나뿐인 서원이다. 국·공립교육기관인 향교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사립교육기관인 도봉서원은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당시 무릉도원에 비유되기도 했다. 조선의 정치가 정암 조광조 선생도 소년 시절부터 이곳을 자주 왕래하였다. 청년기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명승지로 이름난 도봉서원 주변에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많다. 특히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는 도봉서원 바로 앞 계곡에 있다. 숙종 26년(1700) 곡운 김수증이 쓴 글씨인데 아직도 그 모양이 선명하다. ‘고산앙지’란 시경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왕들의 관심을 받은 사찰
경관이 뛰어난 이곳은 예부터 참선도량으로 이름난 곳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는 이 자리에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흐르자 옥천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398년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왕위에 올랐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치고 천축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성종 5년(1474)에는 어명으로 중창되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을 헌납하여 불좌를 만들었으니 천축사는 그야말로 왕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곳에 있는 무문관은 근대 6년 묵언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지금도 도봉산 10대 명소로 손꼽히니 꼭 한번 들러보자.
마당바위 앞에서는 도봉 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가야 천축사를 만날 수 있다.
힘들어서 오히려 매력적인 곳
난이도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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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제4등산로 입구 → 돌다방 쉼터 → 쥐바위 |
거리 | 약 3.4km |
소요시간 | 편도 55분(왕복 1시간 50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로 나와 맞은편에 보이는 길로 들어간 후 큰 도로가 나올 때까지 걷는다. 도로를 건넌 후 왼편으로 가면 보면 성관사와 상계제일중학교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불암산 공원이 나온다. 불암산 공원 화장실 뒤편에 쥐바위 코스 입구가 있는데, 이곳이 불암산 제4등산로 입구다. |
짧지만 강한 코스다. 올라오기도 쉽지 않고 내려가기도 쉽지 않다. 돌다방 쉼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이후에는 그야말로 가파른 거대한 돌산이다. 마치 암벽을 타는 듯한 기분이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거니와 이곳을 경험하고 나면 대부분의 산이 쉽게 느껴질 것이다.
생각보다 힘들어 산행 구간이 길게 느껴지는 코스다. 불암정에서 보이는 풍경이 멋지니 놓치지 말자. 쥐바위에서 덕능고개 쪽으로 가는 길 또한 힘들고 어렵다. 힘들지만 그만큼 해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보람도 크다.
화장실
불암산 공원에 화장실이 있으며 쥐바위까지는 화장실이 없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에서 불암산 공원까지는 음식점, 커피숍, 편의점이 있다. 도로 주변에는 24시간 운영하는 닭곰탕집과 돼지국밥집이 있다. 불암산 공원부터는 음식점과 매점이 없으니 참고하자.
경치 감상에 제격인 곳
2009년 12월에 세워진 불암정은 문화, 자연, 역사를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쥐바위 코스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도 손꼽힌다. 이곳에 올라서면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고국을 바라보며 충정한 마음으로 소회를 읊은 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마도에서 꿈에 한강을 건너다 깨면서사명대사
가을 동산이 고요하고 밤은 바야흐로 깊고
달은 밝으니 차가운 낙엽이 물가에 떨어짐이로다.
돌아갈 마음은 간절하여 험한 물결도 두렵지 않으니
꿈속에서 조급하게 서울에 이르렀음이로다.
두 귀밑 아래 천 가닥의 흰 수염이니
맑은 새벽에 거울 보기가 두려움이로다.
나그네 마음은 세월이 빠른 것에 놀라니
내일이면 또한 가을 바람을 보냄이로다.
숲에 둘러싸여 휴식을 맞는 곳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배우와 마라토너는 비슷하다. 죽으나 사나 혼자 뛰어야 하는 것. 그 누구도 대신 뛰어줄 수 없다는 것이 배우와 마라토너의 공통점이다.” 영화배우 김명민은 마라토너를 다룬 영화 ‘페이스 메이커’의 홍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세상 모든 인생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생겨난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은 셀프라고. 돌다방 쉼터에 오면 이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정표가 적힌 돌다방 쉼터를 처음 보고서는 진짜 커피와 음료수를 판매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커피와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공간만 있고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돌다방 쉼터는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북한 무장공비의 흔적을 따라서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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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북악공원 지킴터 → 여래사 → 하늘전망대 → 호경암 → 성북천 발원지 → 하늘전망대 → 하늘한마당 |
거리 | 약 6.2km |
소요시간 | 편도 2시간 03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 3번 출구로 나와 우측으로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7211번을 탄 후 국민대학교 앞에서 하차한다. 하늘한마당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1162번을 타면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 갈 수 있다. |
감동과 재미가 있는 코스다. 거리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직도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호경암과 무장공비가 잠시 서서 서울을 바라봤을 동마루는 등산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동마루에 놓인 의자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국민대학교 정문을 마주 본 상태에서 왼편으로 걸으면 북악공원 지킴터가 나온다. 북악산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북악공원 지킴터부터 시작해 호경암까지는 오르막길이라 보면 된다. 오르막이라 해도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호경암에서 성북천 발원지까지는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나름 가파른 곳도 있으니 천천히 걷도록 하자. 하늘 전망대 밑에서 하늘한마당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다.
화장실
국민대학교 정문 맞은편과 국민대학교 안에 화장실이 있다. 하늘한 마당에도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지만 등산로 중간에는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국민대학교 정문에서 우측을 보면 종합복지관이 보인다. 이곳의 학생 식당은 가격도 싸고 꽤 먹을 만하다.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 1968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간첩 김신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호경암은 1968년 벌어진 1·21 사태 격전지다.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한 김신조 외 30명이 자하문 일대에서 경찰과 접전을 벌이다가 습격에 실패, 구진봉과 성북동 뒷산 방향으로 분산해 도주하였다. 경찰 33대대 2중대는 호경암 일대를 수색하던 중 적을 발견하였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 중 무장공비 3명이 사살되었고 김신조는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다.
당시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앞 교전에서 패한 뒤 삼삼오오 모여 퇴각했는데 김신조는 인왕산을 넘어 도망치다 홍제동에서 붙잡혔다. 그때의 총탄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호경암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를 짐작케 한다. 수십발의 탄흔에서는 잔악성마저 느껴진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이곳은 ‘서울속 DMZ’로 불리게 되었고 일반인에게 그 모습을 오랫동안 숨겨왔다.
서울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북악산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동마루에 서면 저 멀리 북한산과 정릉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악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정도전의 말을 들어 주산으로 삼았던 산이다. 소음이 없고 걱정이 없는 산으로도 손꼽힌다. 동마루는 이런 북악산의 매력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소다.
동마루에서 쭉 밑으로 내려가면, 반딧불이 1,000마리와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 30kg을 방사하여 반딧불이 서식지로 만든 작은 연못인 성북천 발원지가 나온다. 김신조 루트에는 동마루 외에도 남마루와 서마루도 있다. 이곳 역시 북악산에서 손꼽히는 조망 명소답게 아래로 낙산, 아차산, 청계산, 경복궁, 관악산, 서울 성곽, 동대문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하늘교를 지나면 북카페에서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3산책로, 숲속 다리 방향을 선택해야 동마루로 갈 수 있다. 동마루를 본 후 다시 북카페로 돌아와 2산책로인 ‘김신조 루트’를 걷도록 하자.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곳
국민대학교에서 북악산 방향으로 걸어 올라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사찰이다. 여래사 안에는 순국선열 봉안소가 있다. 여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하다 순국한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진 호국사찰이며 현충사찰이다. 대다수가 자손이 없고 유해를 찾지 못한 무후선열이며, 대한민국장 이준 열사 외 21명을 포함하여 총 37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불기 2502년(1958) 창건된 이래 나라의 안녕을 위해 호국기원 법회를 열었고, 1963년부터 해마다 불교 의식에 따라 정초, 백중, 현충일, 추석에 신도들과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순국선열 추모제를 열고 있다.
다이어트 효과 만점인 코스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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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정릉 탐방지원센터 → 정릉계곡 → 깔딱고개 → 보국문 |
거리 | 약 4.8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20분(왕복 2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 3번 출구에서 버스 143번, 110B번 이용→ 종점 하차 후 도보 5분 |
북한산의 여느 코스처럼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짧지만 힘들다. 크고 작은 돌들을 밟고 오르다보면 숨이 넘어갈 만큼 힘든 구간과 만나게 된다. 바로 깔딱고개다. 특히 돌이 많아 넘어지기 쉬우므로 내려올 대도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등산로 초입에는 계곡이 있어 경치가 아릅답다.
서늘한 날씨에도 땀이 절로 송골송골 맺히는 코스다. 정상까지 올라가면 몸안에서 컵라면 하나 분량의 칼로리가 소모된듯한 기분이 든다. 오르막길이라 힘들기는 하지만 위험한 구간이 없어 여자가 오르기에 적당하다.
화장실
탐방지원센터에 관리가 잘 된 화장실이 있다. 가급적이면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입구 주변에도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버스 종점에 내리면 음식점과 매점 등이 보인다. 정류장에서 바로 보이는 ‘산장 두부촌(서울시 성북구 보국문로 205)’이 괜찮다. 해물순두부, 청국장, 보쌈정식, 콩비지, 대떡 등을 판매하는데 좋은 쌀을 사용하는지 밥맛이 좋다. 가격은 6,000원부터. 가격 대비 맛과 양이 훌륭하여 북한산을 찾는 사람들의 단골 맛집이다.
예부터 부호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
무료로 볼 수 있어 등산을 신나게 하는 북한산의 아름다운 자연
지금의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자리는 원래 청수장이 있던 장소다. 청수장은 예부터 장안의 부호들이 즐겨 찾았다고. 청수장 바로 위에 있는 정릉계곡은 청수동의 계류를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 인파로 붐볐던 곳이다. 지금도 산에서 흘러 내려온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어 찾아온 이들의 눈과 귀를 맑게 해준다. 정릉계곡 코스는 걷기에도 편하다. 계곡물이 흐르고 공기도 깨끗해 산책 겸 찾는 이들이 많다. 가을이면 색색이 곱게 물든 단풍이 계곡에 얼굴을 드리우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옛날 부호들이 왜 이곳을 즐겨 찾았는지 그 이유가 짐작된다.
편하게 걷는 산책길
정릉계곡 근처에 조성된 길이다. 한 사람이 걸으면 딱 알맞을 정도로 좁은 편이지만 잘 닦여 있어 살살 걷기에는 그만이다. 자연관찰로는 조용한 오솔길을 산책하며 시 한 편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와 정릉계곡의 유래, 숲의 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라는 시를 쓴 이해인 수녀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산행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찾기에 안성맞춤이다.
숨겨진 비밀통로
문은 또 하나의 액자
전쟁 때 비밀 통로로 사용되었던 작은 문
보국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소동문 또는 동암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성이 축성된 숙종 37년(1711년)에 지어졌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비밀 통로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남문이나 대동문 등의 다른 문들에 비하면 입구가 좁은 편이다. 돌로 만들어졌지만 다른 들처럼 홍예 형태가 아닌 방형의 평문 형식이다. 상부에 문루도 없다. 보국문에 올라서면 길게 뻗은 북한산성이 보이고 0.6km 반경에는 대성문과 대동문이 있다.
예쁜 풍경이 펼쳐지는 곳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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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산성 로터리 → 남문 → 동암문 → 수문 → 지수당 → 산성 로터리 → 남문 → 유원지 입구 |
거리 | 약 4.7km |
소요시간 | 2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9번 버스를 탄 후 남문 매표소 앞에서 내리면 되는데, 이때 방송에서 남문 매표소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도 꼭 산성터널을 지난 후 내려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오른편으로 걷다가 다시 왼편으로 걸으면 남문을 만날 수 있는 비석 숲이 나온다. |
산성 로터리에서 남문을 지나 다시 산성 로터리로 돌아오는 길은 거의 평지와 내리막길로 이루어져 있다. 길은 어렵거나 무섭지 않다.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무방하다. 남문에서 유원지 입구까지는 내리막길이며 계단과 포장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볼거리가 많은 코스다. 보이는 모든 것이 최고의 풍경이요, 문화재다. 북문 코스보다는 어렵고 장경사 코스보다는 쉽다. 빨리 걷기보다는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거닐어보자. 날씨에 따라 예쁜 구름을 볼 수 있어 여자들 마음을 설레게 해준다.
화장실
남문에 오기 전과 동문 쪽에 화장실이 있지만 그 중간에는 없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산성 로터리 또는 종로라고 불리는 사거리에는 음식점이 즐비한데 ‘먹어야 산다’에서 판매하는 국수가 특히 맛있다. 이곳에서는 순두부 백반, 손두부, 도토리묵도 판매한다. 또 지하철 산성역 2번 출구 주변에는 커피숍과 분식집이 있다.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웅장하게 보이는 남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으로 들어올 때 바로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45일간 항전하였다. 하지만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남문의 또 다른 이름은 지화문(至和門)이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지화문이라 칭했다. 남문은 남한산성에 있는 4대문 중 가장 웅장한 중심문이다.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때문에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빈번하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동문, 남문, 수구문의 세 문을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문은 인조 2년(1624)에 수축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1976년 문루를 복원하였고 2009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하여 전면에 현판을 설치하였다. 남문 앞에는 350년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이 느티나무는 성곽 사면의 토양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차폐의 목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을 지나 검단산 정상 방향으로 걸어야 동암문을 만날 수 있다. 10분 정도 걷다 보면 이제껏 보이던 성벽과 다름 빛을 지닌 성벽이 보인다. 조금 더 하얗고 새것 같다. 이때 왼편으로 보면 성벽으로 갈 수 있는 샛길이 보인다. 샛길을 따라 걸으면 남문 코스에 해당하는 제1남옹성이 보인다.
천주교인의 성지 순례지
암문은 주로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되어 있다.
암문은 일종의 비밀통로인데, 적이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크기가 작다.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동암문은 제11암문으로 16개 암문 중 가장 크다. 계단이 있어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하고, 주로 수레나 일반인들이 통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암문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한데, 조선말 천주교 박해 당시에 희생당한 시신을 이 문을 통해 버렸다고. 때문에 동암문은 천주교인의 성지 순례 장소이기도 하다.
주변 연못이 아름다운 곳
지수당 옆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
남한산성은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등산보다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거닐 수 있다. 지수당이 있는 곳도 그렇다. 지수당은 아예 도로를 끼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지수당은 아름다운 연못을 자랑한다. 현종 13년에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로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부윤 이세화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제3연못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논으로 바뀌었다. 정자의 남쪽에는 서에서 동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정자 옆의 연못은 ‘ㄷ’ 자형으로 파서 연못이 정자를 둘러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을축년 대홍수(1925)로 매몰된 것을 근래에 고증을 통하여 복원한 것이다.
물이 통하던 문
남한산성은 지세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대부분의 물이 이 수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간다. 산성 내에는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하였다고 전해진다. 수구문 바닥과 천장에는 홈이 패여 있는데 이는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쇠창살을 가로질러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은 내부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런 환경적인 요건 때문에 병자호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군에 함락당하지 않고 47일이나 항전할 수 있었다. 이 수문은 동문 가까이에 있는 곳인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도로 가까이에 와서 오른편 밑으로 자세히 봐야 작은 구멍을 찾을 수 있다.
남한산성 역사의 현장
역사는 물론 자연생태의 보물창고인 남한산성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에 전해지는 여러 가지 전설도 들을 수 있다. 옛날 효성이 깊은 정남이라는 이름의 한 소년이 있었다. 산성 북문 안에 살던 정남이의 나이는 12세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병으로 들어 눕자 지나가던 사람이 잉어가 특효라는 말을 불쑥 내뱉고 가버렸다. 정남이는 그날 이후 매일 같이 잉어를 잡으러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날도 허탕을 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데 우물가에 황금 비늘잉어가 있는게 아닌가. 얼른 잡아다가 고아 드렸더니 아버지의병환이 나았다고. 이후 이 우물을 효자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남한산성에 얽힌 이야기도 엿볼 수 있으니 등산길에 꼭 들러보도록 하자.
다이어트를 정복하고 싶다면
난이도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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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수락골 입구 → 염불사 → 깔딱고개 → 석림사 → 박세당 사랑채 |
거리 | 약 6.5km |
소요시간 | 3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염불사와 수락골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정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수락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수락산역에서 염불사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서계 박세당 사랑채에서 도로 쪽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지하철 7호선 장암역이 보인다. |
염불사까지만 포장도로고 이후는 줄창 돌길이다. 오르막부터 내리막까지 크고 작은 돌을 밟고 걸어야 한다. 깔딱고개 구간은 가파르기까지 하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조심해서 걷도록 하자. 깔사거리를 지나 장암역으로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니 천천히 조심해야 한다.
등산로 초입에 계곡이 있어 마음을 가다듬기에 좋다. 하지만 계곡을 벗어나면 만만치 않은 돌길이 나타난다. 길은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깔딱고개가 있어 더 힘들다. 땀이 절로 흐른다. 이런 길을 매일 걸으면 살이 쏘옥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코스 정보
깔딱고개를 오르면 깔사거리가 나온다. 이때 장암역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정표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참을 내려가면 노강서원과 궤산정, 서계 박세당 사랑채가 나온다.
화장실
등산로 입구에서 염불사 사이에 화장실이 있고 수락교까지도 몇 곳 더 있지만 가급적이면 입구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곳 화장실이 제일 크고 깨끗하다. 숲속에 진입하면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음식점이 많이 보인다. 편의점과 아웃도어 매장도 있다. 염불사와 수락골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는 쪽에 자리한 ‘장독대 보리밥집(서울 노원구 상계동 1264 은빛 3단지 상가)’의 음식이 괜찮다. 된장찌개, 청국장 정식, 비빔밥, 순두부찌개 등을 판매한다.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
천천히 둘러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염불사에는 1700년대 전남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하였던 조각승 색난의 제자 혹은 후배인 특우 비구와 덕희 비구가 조각한 관음보살상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0호 지정되어 있는 이 관음보살상은 조선 후기 1695년 전남 장흥 봉일암과 수도암에서 조성된 아미타삼존불상의 협시보살상이다.
염불사의 지장시왕도는 1869년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금암당 천여스님이 사후 세계의 교주인 지장보살을 그린 것으로, 묘사와 필선 등이 19세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장시왕도는 서울특별시 유명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염불사는 산 위쪽에 자리하고 있지 않음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경내는 조용하고 깨끗해 찾아온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서원 철폐 당시 남은 서원
노강서원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경기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된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조선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출의 부당함을 죽음으로써 간언하였던 정재 박태보(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해 숙종 21년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숙종 3년(1677)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간 뒤 숙종 15년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 20년에 모든 죄를 사면받았는데 그의 충절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의 시호가 내려졌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9년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 터에 다시 지은 것으로 맞배지붕의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박세당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
궤산정은 노강서원을 지나 박세당 사랑채로 걸어오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이 너무 낡아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 정자는 조선 숙종 때 실학파의 선구자 서계 박세당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계당의 일부로서 17세기에 건립된 것이다. <사변록> 등의 저서를 남긴 박세당은 제자들에게 아홉길 높이의 산을 만드는 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 쌓은 공이 헛되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의 교훈을 주기 위해 이 정자의 이름을 ‘궤산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정자 아래쪽 바위에 음각된 석천동 서계유거 취승대는 박세당 선생의 친필이다. 서계유거란 서계가 한적하게 산다는 뜻이고 취승대는 경치가 좋은 곳이란 뜻이다. 궤산정 앞에는 서계 박세당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강론하던 장소인 청풍정유지가 있다.
박세당이 저술활동을 하던 건물
넓은 마당을 자랑하는 이곳은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였다. 박세당은 조선 현종 1년(1660) 과거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현종 9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 후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박세당은 자신의 스승인 김시습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렬사를 짓기도 하였는데 김시습 또한 박세당과 마찬가지로 수락산 자락에서 생활하였다. 김시습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3세가 되던 해에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였다. 과거 준비로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이후 전국을 떠돌아 다녔는데 수락산에서만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흙의 이로움이 전해지는 길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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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관리사무소 → 용진사 → 임도오거리 → 슬기봉 → 만남의 광장 → 관리사무소 |
거리 | 약 3.4km |
소요시간 | 1시간 35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산본역 3번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보면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2번, 3-1번, 15번을 탄 후 중앙도서관 앞에서 하차한다. 4번 출구 방향에서 왼편을 보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혹시 모르니 중앙도서관에 가는지 확인하고 탑승하자. |
태을봉 코스보다는 쉽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것만도 아니다. 이 코스의 매력은 흙에 있다. 임도오거리에서 슬기봉까지는 흙의 기운이 제대로 느껴진다. 색깔도 짙은 황토 빛이다. 등산로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길이다.
관리사무소에서 팔각정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하지만 슬기봉과 가까워질수록 길이 가파르다. 오르막길은 흙길로 되어 있는데 거친 느낌이다. 슬기봉에서 만남의 광장까지는 내리막길이라 가파르게 보이지만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어 막상 힘들거나 무섭지는 않다.
화장실
등산로 입구인 관리사무소 주변에 화장실이 있다. 이곳을 지나 슬기봉까지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 미리 해결하고 출발하자.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4호선 산본역 3번 출구로 나와 왼편을 보면 버스 정류장 쪽에 '공씨네 주먹밥(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1142-5 금화프라자 106호)'이 있다. 주먹밥과 우동 등을 판매하며 포장도 가능하다. 가격에 비해 맛이 괜찮은 편이다.
한반도 13정맥 중 하나
양쪽이 전부 나무숲인 수리산 등산로
슬기봉에서 구례고개까지는 한남정맥 군포시 구간이다. 슬기봉 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임도오거리도 한남정맥 군포시 구간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13정맥 중 하나인 한남정맥은 충북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안성시 칠현산을 거쳐 김포시의 문수산에 이르는 산줄기다.
한남정맥은 서북부 지역 ‘수도권 핵심 녹지축’이다. 경기도 죽산의 칠현산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돌아 안성, 용인, 안산, 인천을 거쳐 김포의 북성산에서 멈춘 한강 남쪽의 산줄기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는 한남정맥 외에도 한북정맥, 낙동정맥, 해서정맥, 낙남정맥, 금북정맥 등 많은 산줄기가 있다.
나무가 우거진 산림욕장
슬기봉 코스 등산로 입구에는 시가 함께 하는 숲이 있다. 숲을 장식하고 있는 시들은 등단한 시인들의 작품이다.
아, 청춘시절은 아름다웠었지요.
그 무렵은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죄와 슬픔도 은근히 내포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행복한 세월이었습니다.
시가 있는 숲에 들어가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에 나오는 글귀가 떠오른다. 짧지만 아름다운 시간들은 이곳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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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치열한 각축장
난이도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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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진입로 → 고구려정 → 아차산 정상 |
거리 | 약 4.0km |
소요시간 | 1시간 15분(왕복 2시간 30분) |
가는 법 |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 보면 왼편에 영화사(사찰)로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자양로 270길’이라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5분 넘게 걷다가 갈림길에서 오르막처럼 보이는 오른편 길로 가면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에 고구려정으로 갈 수 있는 계단과 이정표가 보인다. |
진입로에서 고구려정까지는 계단길로 되어 있어 걷기에 무리가 없다. 고구려정에서 아차산 정상까지는 높지 않은 오르막길과 평지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으며, 중간 중간에 명품 소나무와 전망대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하지만 암반 지역이 많아 비가 올 때는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소나무 숲, 흙길, 넓은 암반이 주를 이루는 코스. 삼국시대에 군사가 주둔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보루도 눈에 띈다. 보루가 있었던 자리인 정상에 서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한때는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던 곳이 오늘날에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화장실
이 코스는 다른 코스와는 달리 입구는 물론 목적지인 아차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도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으면 아차산 관리사무소까지 가야 한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보이는 골목길로 진입하면 ‘청진동 해장국’이 보인다. 24시간 운영하며 싸고 맛있다. 2번 출구 주변에는 음식점과 커피숍도 있다.
고구려의 건축 양식을 재현
아차산은 한강이 굽어보이는 야트막한 산이다.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팔각정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등산 진입로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도리아 건축 양식과 비슷한 기둥이 인상적인 고구려정이 보인다. 고구려정의 옛 이름은 팔각정.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구려정의 자재로 사용된 금강송은 30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뒤틀리거나 변하지 않았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기와는 고구려 궁궐인 평양 안학 궁터와 아차산 홍련봉 보루에서 출토된 기와의 붉은 색상과 문양을, 단청 문양은 쌍영총과 강서 종묘 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표현된 문양을 참고하여 만들었다.
남한에서는 최초로 고구려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재현하여 가치 또한 높다. 기가 세다고 하는 아차산에서도 고구려정 터의 기가 가장 왕성하다고 하니, 기를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역사적 명산의 기가 왕성한 장소에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실제로 고구려정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군사 시설
아차산이 간직한 보루의 모습
적을 막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군사시설인 ‘보루’에서는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고구려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차산 일원에서 확인된 보루만 해도 약 20여 개소에 달한다. 특히 아차산 정상에서 발견된 4보루는 100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500년 무렵에 축조되어 북상하는 백제군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 기지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4보루 성벽 상부 전체에는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배치된 건물지 7기가 남아 있다.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농공구류는 오늘날의 강철과 그 강도가 유사한 것으로 확인되어 고구려의 제철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입증해준다. 이런 훌륭한 제철 기술 덕분에 고구려의 대외 정복 활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우아하고 단아한 나무
언제나 본연의 푸른빛 그대로를 자랑하는 소나무는 아차산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아차산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데 소나무가 뿜어내는 공기를 마시기 위해 아차산을 찾는 사람도 많다. 고구려정을 지나 제4보루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아차산 명품 소나무 제1호’와 ‘아차산 명품 소나무 제2호’로 명명된 나무가 있다. 이 명품 소나무는 아차산의 바위틈을 뚫고 자라 광진구와 한강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광진구민과 함께했다.
소나무의 가지가 사방을 향해 뻗어 있는 모양새가 우아하면서도 단아하기까지 하다. 명품 소나무 옆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경치 또한 나무랄 데 없다. 용마산의 우아한 자태도 볼 수 있어 사진을 찍기에도 그만이다. 명품 소나무 제1호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명품 소나무 제2호가 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분위기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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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제3코스 입구 → 한마음 등산로 → 태을봉 → 관모능선 → 노랑바위 → 제4코스 입구 |
거리 | 약 3.0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 40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산본역 4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왼편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후 1번, 3번, 11-5번 등 남천병원·엘림복지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려 왼편으로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때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길을 건넌 후 조금 걷다가 GS25 편의점이 있는 왼편으로 진입한다. 이 길로 쭉 걸으면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
이 코스는 초입부터 거대한 산림욕장이 반긴다. 등산로는 계단 등으로 꾸며지지 않아 산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마음 등산로에서 태을봉까지는 조금 힘든 오르막길이다. 이 곳도 계단이나 돌로 꾸며지지 않아 조심히 걸어야 한다. 관모능선에서 제4코스 입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역시 서울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코스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등산로도 사람의 손을 덜 탄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제3코스 입구에서 태을봉까지가 그렇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을 대하는 기분이다.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피부 미용에도 좋다.
화장실
등산로 입구에서 목적지까지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지하철역에서 미리 해결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4호선 산본역 3번 출구는 산본 중심 상업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주위는 빵집, 편의점, 만두집 등 맛집으로 가득하다. 특히 산본역은 킴스클럽과 뉴코아아울렛과도 연결되어 있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실 수 있는 숲
웅장한 산림욕장은 수리산의 진정한 매력이다.
수목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방향성 물질인 테르펜을 발산한다. 테르펜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피톤치드가 함유되어 있다. 피톤치드는 살균력이 강해 사람이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산소의 양은 1일에 약 0.75kg이고 탄산가스의 배출량은 약 1kg이라고 한다. 산림 1ha에서 연간 12톤의 산소가 배출되는데, 이것은 45명이 1년간 호흡할 수 있는 양이다.
태을봉 코스 등산로 입구는 인간에게 이로운 산림욕장이다.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곰팡이균은 물론 집진드기까지 없애주는 피톤치드가 내 몸 가득 들어오는 느낌이다. 삼림욕장은 자연 그대로의 숲속이다. 굳이 산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만족스럽다. 산림욕장 안에 들어서면 자연이 뿜어내는 탈취제에 온 몸이 소독되어 맑게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든다.
수리산 줄기의 최고봉
높이 489.2m의 태을봉은 수리산 줄기의 최고봉이다. 옛 기록에는 수리산의 옛 이름이 태을산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는 태을산이라는 독립된 산이었다. 태을(太乙)의 의미는 동양사상에서 우주의 본체 즉 천지만물의 출현 및 성립의 근원을 뜻한다. 또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는데 그런 현상을 천을봉, 태을봉이라 한다.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태을봉은 2004년 군포 1경으로 지정되었다.
주봉인 태을봉으로 오르는 길은 슬기봉이나 관모봉에 비해 조금 힘들다. 군포시는 서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전된 도시지만 산은 아직 사람의 손을 덜 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태을봉 역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더 반갑다.
슬픈 전설이 깃든 바위
태을봉과 관모봉 사이에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제법 큰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에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40세가 넘어서도 왕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마침내 기골이 장대한 왕자를 얻게 되었다. 왕은 늦은 나이에 얻은 왕자를 끔찍이도 아꼈다. 왕자가 3살이 되던 해 전란이 일어나 궁궐을 떠나 강화도로 향하는 나룻배를 탔는데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 위기에 놓였다. 그때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왕자를 태우고 육지로 나와 은신처를 찾던 중 관모봉 중턱에 이르렀다.
거북이의 등에 업혀 며칠을 굶은 왕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거북이는 왕자에게 줄 음식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북이의 뜻을 알지 못한 왕자는 혼자 마을로 간 거북이에게 분한 마음과 배신감을 갖게 되었다. 화가 난 왕자가 바위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리쳤다.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무너지면서 왕자를 덮쳤다. 왕자는 노란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고 마을로 내려간 거북이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바위에 깔려 죽었다. 그 후부터 이 바위를 노랑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기가 전해지는 계단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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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상방리 매표소 → 1004계단 → 참성단 |
거리 | 약 4.8km |
소요시간 | 편도 1시간(왕복 2시간) |
가는 법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로 나와 쭉 걸으면 아트레온 극장 앞에 3100번, 3000번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3100번 버스를 탄 후 마니산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
나무와 돌계단이 주를 이루는 코스다. 단군로보다는 조금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상방리 매표소에서 1004계단 구간 옆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눈과 코가 호사를 누린다.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기가 몸 안으로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 정도 걸으면 왼편에 계단 길로 들어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가파른 돌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폭이 긴 편이라 오르는 게 제법 힘들다. 하산할 때도 어느 길을 선택하든 또 계단을 만나게 된다. 단군로 코스 쪽을 선택하면 조금 더 쉽다.
화장실
매표소에 오기 전 화장실이 있다. 입구로 들어와 계단로 코스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화장실이 보인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 주변에 편의점이 있다. 마니산 입구에는 음식점이 많다. 매표소 근방 ‘마니산 원조밥집(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357-1)’의 비빔밥이 맛있다. 산채비빔밥 외에도 비지찌개, 된장찌개, 도토리묵밥 등을 판매한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오르는 계단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는 안내판
1999년 4월 8일자 <주간조선>에 ‘르뽀 한국의 기센 곳’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와 풍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좋은 기(氣)가 나오는 십여 군데 중 민족의 성지 강화도 마니산을 한국의 대표적인 제1의 생기처로 꼽고 있으며, 이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활력이 생기고 건강해집니다. 그래서 예부터 수도하는 분들은 기가 좋은 산과 들을 찾아다니면서 심신을 수련하였고 이와 같은 곳을 최적의 장소로 삼아 왔습니다.’
기사의 내용대로 강화 마니산은 전국 제1의 생기처로 많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기 받는 160계단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오르는 것보다 소원을 빌거나 생각을 정리하며 걷는 것이 좋다. 계단 주변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곳
기이한 봉우리와 절벽 등이 절경을 이루는 산을 올라가면 참성단이 보인다. 참성단은 단군이 홍익인간의 정신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성지다. 제단은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하부는 둥글고 상부는 정방형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축하였다. 숙종 26년(1700)에도 보수하였다. 해마다 개천절이면 참성단에서 단군에 제사를 올리는 행사가 열린다. 또 전국체육대회 때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곳에서 칠선녀에 의해 재화되고 대회장으로 운반, 점화된다. 참성단은 문화재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고 개방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다.
하절기 : 오전 10시~오전 5시
동절기 : 오전 10시~오전 4시
천연기념물이 된 나무
참성단 바로 앞에 있는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확한 명칭은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다. 이 나무는 높이 4.8m, 뿌리 부근 둘레 2.74m로 수령은 150년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이 잡혀 있으며 참성단의 돌단 위에 단독으로 서 있어 그 모습이 한층 돋보인다. 흙 한줌 없는 이런 곳에 150년이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존재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연유로 대표적인 전통 나무지만 최초로 문화재에 지정되는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소사나무는 지금도 분재로 사랑받을 만큼 그 모습이 멋있다. 참성단에 있는 소사나무는 화분 속 분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웅장하고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명성왕후가 숨어 지낸 곳
난이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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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당고개역 → 학림사 → 용굴암 → 보루군 → 마들역 |
거리 | 약 4.6km |
소요시간 | 2시간 15분 |
가는 법 |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1번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조금 걸으면 상계로 39길이 나온다. 39길 진입 후 조금 더 걷다가 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꾼 후 다시 왼편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등산로로 진입하면 학림사 이정표가 많기 때문에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
당고개역에서 학림사까지는 포장도로다. 학림사를 지나 한참 걷다 보면 갈림길이 보이는데, 여기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오른편으로 걸어야 명성왕후가 숨어 지낸 용굴암을 만날 수 있다.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수락산 보루부터는 내리막길인데 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하다.
수락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 은근히 사랑받는 코스다. 길이 위험하지 않은데다 산행 시간이길지도 짧지도 않기 때문이다. 난구간이 없어 여자가 걷기에 적당하다. 명성왕후가 숨어 지냈다는 용굴암도 한번 둘러보자.
화장실
당고개역에서 학림사 사이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 염불사 주변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염불사를 지나 지하철 7호선 마들역까지는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커피숍이 있고 토스트와 커피 등을 판매하는 포장마차도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토스트는 꽤 맛있는 편이다. 상계로 39길에 진입하면 왼편에 ‘엄마손칼국수’ 집이 있는데 꽤 유명한 맛집이다. 이곳을 지나면 음식점, 매점, 자판기 등이 없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학이 알을 품은 모습을 한 사찰
신라 문무왕 67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 학림사는 나한도량으로 유명하다. 마치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지포란(鶴之抱卵)의 형국을 하고 있어 학림사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봉안한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어 이곳에서 기도를 봉행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병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2년(1624) 무공화상이 중수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지만 현재 주석하고 있는 도원, 덕오 두 스님이 일신중수불사를 이룩하였다.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오다 보면 제일 먼저 약사전을 만날 수 있는다. 이곳은 동방 유리광 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부처님을 본존으로 모신 법당이다. 약사여래부처님은 ‘위덕이 높아서 중생들을 모두 깨우칠 수 있게 하리라’ 등의 12대 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명성왕후의 은신처
용굴암은 명성왕후가 숨어 지내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사찰은 고종 15년(1878)에 창건되었다. 수행납자 스님들이 자연 동굴 나한전에 십육나한 불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을 하는 자그마한 토굴로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구한말 고종 19년(1882) 임오년에 대원군 섭정으로 밀려난 명성왕후가 잠깐 숨어 지낼 당시 칠일기도 치성을 드리고 나서 다시 집정을 하게 되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하사금으로 현재 대웅전 자리에 법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용굴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분위기는 뛰어나다. 평지가 아니기에 사찰을 둘러보려면 조금의 수고가 필요하지만 사찰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런 수고쯤은 잊게 만든다.
용굴암을 마주 본 상태에서 왼편으로 보면 계단이 보이고 종이 보인다. 수락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 적힌 작은 이정표도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간 후 능선 같은 길이 나오면 왼편으로 걷는다. 노원골/귀임봉 방향으로 걸으면 된다.
아차산 보루군 중 하나
사적 제455호로 지정된 이 보루는 아차산 보루군 중 하나다. 군사적 방어 시설의 일종으로 사용되었던 이 보루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축성 방법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유역에 진입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 전까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상을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수락산 보루 아래쪽에는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다. 수락산 정상, 마들역, 온곡초등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으니 등산로를 선택할 때 참고하도록 하자.
수락산 보루(아래) 길에서 마들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마들역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하다. 수락산 보루를 마주한 상태에서 왼편으로 깊숙이 보면내리막을 향하고 있는 계단이 보인다.
경치가 좋은 코스
난이도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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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 관리사무소 → 전망대 → 자재암 → 하백운대 → 칼바위능선 → 자재암 → 관리사무소 |
거리 | 약 6.5km |
소요시간 | 2시간 50분 |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넌 후 오른편으로 걸으면, 왼편에 소요맛거리가 보인다. 소요 맛 거리를 통과한 후 조금만 걸으면 소요산 입구가 나오고 속리교를 지나 왼편으로 가면 자재암을 만날 수 있다. |
전망대가 있고 유서 깊은 사찰 자재암이 있어 소요산에서도 꽤 인기 있는 코스다. 자재암에는 아름다운 폭포와 약수터가 있다. 작은 커피 자판기도 있어 한숨 돌릴 수 있다. 자재암에서 상백운대까지만 올라도 충분히 운동한 기분이 든다.
관리사무소에서 자재암까지는 거의 평지라 걷기에 좋다. 자재암부터 하백운대까지는 가파르고 거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하백운대부터 상백운대 정상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하지만 상백운대 정상을 지나면 무섭고 위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으니 각오하자. 가급적이면 왔던 깃을 되돌아가는 것이 좋다. 칼바위능선은 생각보다 긴 데다 위험하다. 칼바위에서 선녀탕 입구까지는 내리막 돌길이여서 무난하지만 자재암 가까이에 짧지만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
소요산 관리사무소에서 일주문까지는 몇 곳 있다. 소요산에는 크고 깨끗한 화장실이 비교적 많은 편인데 원효대에서 자재암까지 가는 길에도 두 곳 있다. 하지만 자재암을 지나면 없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소요 맛 거리에서는 따끈한 국밥을 맛볼 수 있다. ‘황우마을’에서는 점심시간에 우거지해장국을 선보이는데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 ‘황우마을’ 앞에는 순대국밥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지하철역에서 소요 맛 거리까지는 편의점도 몇 곳 있다.
불교의 가리침을 형상화한 문
문 위에 있는 종에서는 청아한 소리가 난다.
해탈문에 새겨진 연꽃
먼저 108계단을 밟아야 해탈문에 이를 수 있다. 해탈문은 백팔번뇌와 불교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문이다. 해탈문을 통해 세속의 백팔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해탈문을 통과하면 나옹선사의 선시가 빈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나옹선사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닿은 후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자재암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한 여인이 원효대사에게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했다. 원효대사는 여인에게, ‘마음이 생한 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한 즉 상대적 시비에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는 법문을 말했다. 이에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고 이후 원효대사는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게 되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의 이름을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순종 원년(1907) 정미의병 때는 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이용되었던 탓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자재암 안에는 보물 제1211호인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도 보관되어 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는 원효샘
자재암 안에 있는 샘으로 지금도 물이 나와 사람들의 갈증에 촉촉한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한 원효대사는 차의 달인이었다. 신비하게도 원효대사가 자리를 잡은 절터에는 반드시 약수가 나오며, 그것도 찻물로는 으뜸인 석간수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중 1,300여 년 전 수행하였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로 이름나 있다.
물맛이 좋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중기까지도 시인과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차 문화의 유적지가 된 원효샘 양 옆에는 천연 암굴인 나한전과 우물처럼 깊이 파인 협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눈길을 끄는 옥류폭포가 있다.
원효샘 앞에 길고 가파른 돌계단이 보인다. 이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백운대를 만날 수 있다.
태조 이성계가 자주 오른 곳
고려 말기의 고승 태고 보우선사는 ‘백운암의 노래’라는 시를 통해 백운대의 뛰어난 절경을 노래하였다.
‘소요산 위의 흰 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매월당 김시습도 소요산 백운대에서 절경에 취해 노래하였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백운대를 즐겨 찾았다.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이후 소요산 아래에 행궁을 짓고 머물던 태조는 백운대에 자주 올랐다. 마음을 달래고 경치를
즐기던 태조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그가 백운대에 올라 지은 시 ‘등백운봉(登白雲峯)’에는 태조의 야망이 내포되어 있다.
‘넝쿨을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놓였네.
내 나라 산천이 눈 아래 펼쳐지고,
중국땅 강남조차 보일 듯하이.’
도봉산 도봉사 코스
인생을 가르쳐주는 코스
요약 테이블 난이도 중 경로 도봉 탐방지원센터 → 도봉사 → 우이암 거리 약 5.6km 소요시간 편도 1시간 25분(왕복 2시간 50분) 가는 법 지하철 1, 7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는 코스다. 계단 형식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길을 한참 걷다 보면 보문능선 구간에 우회 탐방로 안내문이 있다. 여기서 길을 우회해도 또 그렇지 않아도 힘든 구간을 한 번은 만나게 돼 있다. 한 곳은 급경사 암벽 지역이고 또 한 곳은 밧줄을 타고 바위를 올라야 한다. 이 코스는 원래 난이도를 ‘하’로 해도 되는 코스인데 한 번은 만나야 하는 난코스로 인해 난이도를 올렸다.
이 코스는 마지막에 다 보여준다. 우이암에 오르면 정말이지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예쁘다. 발 아래 펼쳐진 세상을 보고 있으면 인생에 대한 답답하고도 우매한 질문들이 말없이 해결되는 느낌이다.
등산 Tip화장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도봉산 등산로로 오는 길에 화장실이 있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자. 이후에는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우리술상’이 보이고, 이곳에서 조금만 더 도봉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두부’가 보인다. 도봉산에서 꽤 알아주는 맛집이다. 순두부백반, 두부찌개백반, 파전, 두부김치 등을 선보이는데 다 맛있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에는 김밥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도봉사
천년 역사를 품은 사찰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전해오는 행운의 꽃으로, 평소에는 꽃이 없다가 3,0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그런데 우담바라가 도봉사에도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도봉사는 고려 제4대 국사였던 혜거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현종이 이곳에서 대장경 제작에 착수하여 6,000권 중 대부분을 완성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현종은 고려 8대 임금으로 천추태후의 살해 위협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 산 속에서 숨어 살기도 하였다. 현종의 친 이모이기도 한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으로 책봉돼 있던 현종의 앞길을 막기 위해 강제로 머리를 깎아 승려를 만드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천 년 역사를 품은 도봉사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고즈넉해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다.
심우도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벽화
심우도(尋牛圖)는 마음을 찾아가는 그림이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찾아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찰 법당의 외벽에 많이 그려져 있다. 주로 소와 소를 치는 목동 또는 스님이 등장한다. 여기에 나오는 소는 자아나 본성을 의미한다. 동자는 소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한다. 소를 길들인 후에 그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왔으나 다시 소에 대한 것을 잊은 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봉사 외벽에도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심우도의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지.
남한산성 북문 코스
이야기가 풍성해 즐거운 코스
요약 테이블 난이도 하 경로 산성 로터리 → 북문 → 수어장대 → 남문 → 유원지 입구 거리 약 3.8km 소요시간 1시간 35분 가는 법 지하철 8호선 산성역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9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산성 로터리에 내리면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가 쉽다. 산성 로터리에서 북문까지는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된다. 볼거리가 많은 코스. 가파르거나 위험한 오르막길이 없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알맞다. 등산화보다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걸어도 괜찮다. 길은 포장도로와 계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성 로터리와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들르기 좋은 수어장대 등이 있어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등산로도 예쁘고 산행 시간도 길지 않아 등산 초보자에게는 안성맞춤인 코스다.
등산 Tip화장실
이곳에서 서문까지는 화장실이 없다. 산성 로터리 부근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서문에서 유원지 입구까지는 드문드문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유원지 입구의 도로 양옆으로 음식점이 쭉 늘어서 있다. 오른편에 보이는 수육국밥집에서는 따끈한 수육국밥을 비롯해 왕만두, 냉면도 선보이고 있다. 주변에는 싸고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다.북문
기습 공격 시 사용하던 문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부르는 북문은 병자 호란 당시 기습 공격을 감행할 때 사용하던 문이다. 하지만 북문도 쓰라린 패전의 경험이 있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과 맞붙었으나 적의 계략에 넘어가 전멸하고 말았다. '법화골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는 병자 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 규모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로 기록된다. 이후 문의 이름을 패전의 경험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승문(戰勝門)이라 칭하였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북문은 인조 2년(1624)에 신축된 성문으로 추측된다.
수어장대
유일하게 남은 장대
남한산성에 있는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성 안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곳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 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매바위
억울한 사연이 깃든 바위
“내가 죽은 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죄가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참수형에 처하게 된 이회 장군이 죽기 직전에 하늘을 쳐다보며 한 말이다. 이회 장군이 죽자 부인 송씨도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다. 이회 장군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산성 동남쪽 지역 공사에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점검을 하며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완벽을 기하다 보니 그만 공사 기일을 넘기고 말았다.
등산 중에 만나는 장경사, 장경사신지옹성, 동장대터, 남한산성 군포지 등이 등산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볼거리는 많은 코스다. 오르막길이 있어 열심히 운동하는 기분이랄까. 다이어트가 목적인 여성에게는 제격이다.
마니산 단군로 코스
기이한 바위가 가득
요약 테이블 난이도 하 경로 상방리 매표소 → 단군로 진입로 → 372계단 → 참성단 →기도원길 → 단군로 진입로 거리 약 6.0km 소요시간 2시간 20분 가는 법 계단로 코스와 가는 길이 동일하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로 나와 쭉 걸으면 아트레온 극장 앞에 3100번, 300번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3100번 버스를 타고 마니산 입구에서 하차한다. 여기서는, 계단로 코스에서 눈에 안 띄던 것이 보이는데, 바로 바위다. 이 기이한 바위는 단군로 진입로부터 시작해 372계단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위의 모양은 누군가 칼로 무를 썰어 놓은 듯하다. 372계단까지는 산책로처럼 조성되어 있어 여자가 걷기에 좋다.
제법 쉬운 코스다. 상방리 매표소에서 372계단 앞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없다. 372 계단에서 참성단까지는 계단을 따라 올라야 하는데 땀이 밸 정도로 힘들다. 372계단과 멀지 않은 곳에 난 기도원으로 향하는 길을 이용하면 좀 더 빠르고 쉽게 매표소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코스에서 제일 힘든 구간은 372계단이다. 힘든 게 싫다면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등산 Tip화장실
매표소에 오기 전에 화장실이 있다. 입구로 들어와 계단로 코스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보인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계단로와 단군로 코스가 갈리는 길에 매점이 있다. 매표소에서 조금 걷다 보면 커피, 어묵, 국수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보인다.372계단
참성단과 만날 수 있는 계단
- 1372계단
- 2372계단
보기만 해도 살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가파른 계단
‘다이어트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요~.’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돌 그룹 티아라도 날씬한 몸매를 위해 니트 다이어트를 한다고 밝혔다. 니트 다이어트란 계단 오르기, 제자리 걸으면서 통화하기 등을 말한다.
실제로 계단 오르기는 걷기나 들기보다 지방이 더 많이 연소된다. 계단 오르기는 그 어떤 운동보다 칼로리 소모가 큰 유산소 운동이다. 단군로 코스는 등산보다는 산책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목표 지점 가까이에 큰 복병이 하나 있는데, 바로 372계단이다.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파르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지방이 연소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까짓 것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오를 수 있다. 372계단을 오르면 참성단과 만날 수 있다.
신선설화
마니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 1~3신선설화
옛날 3명의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마니산을 찾았다. 마니산 중턱쯤 올라오자 이상한 행색 차림의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꾼들은 노인들이 권하는 술을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인들이 두는 바둑을 구경하였다. 그러다 날이 저물어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자신들이 살던 동네는 세월이 흘러 300년이 지난 뒤였다.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나무꾼들은 노인들이 준 술이 불로주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속세에서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마니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선설화이다. 현재 마니산 중턱에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마네킹이 있다.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 찍어도 좋겠다.
아차산성 코스
온달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요약 테이블 난이도 하 경로 아차산 관리사무소 → 낙타고개 → 아차산성 → 생태공원 거리 약 1.5km 소요시간 45분 가는 법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해 쭉 걷다 보면 왼편에 영화사로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자양로 270길이라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5분 넘게 쭉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오르막처럼 보이는 오른편 길로 가면 된다. 조금 걸으면 왼편에 고구려정으로 갈 수 있는 계단과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으로 올라가면 안 된다. 여기를 지나쳐 계속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아차산 관리사무소에서 낙타고개에 이르는 길이 유일한 오르막길이다.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위험하지 않다.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될 만큼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반갑다. 낙타고개에서 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 좋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힘들게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코스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우리에게 바보온달로 잘 알려져 있는 온달장군이
싸우다가 전사한 아차산성도 만날 수 있다.등산 Tip코스정보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내려 아차산 방향으로 걸어오면 고구려정으로 가는 등산로가 제일 먼저 보인다. 이 등산로를 무시하고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계속 걸어야 아차산성 코스 등산길을 만날 수 있다.
화장실
아차산 관리사무소 주변과 생태공원 주변에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왼편으로 칼국수, 육개장, 비빔밥 등을 파는 ‘삼대불고기 냉면(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54-3 1층)’이 보인다. 맛도 맛이지만 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출구 왼편에는 ‘롯데리아’도 있다. 자양로 270길에는 슈퍼마켓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식점이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서 있다.아차산성
삼국시대 대 수도를 지켜낸 곳
서울 동부의 한강변에 위치해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인 아차산성은 1973년 국가 사적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과거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아단성 아래에서 피살되었고,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용맹을 날리던 온달장군이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
아차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으로는 <광개토왕비>와 <삼국사기>가 있다. <광개토왕비>에는 광개토왕이 빼앗은 성의 이름이 아단성(阿旦城)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아차성(阿且城)과 아단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 책계왕 원년(서기 286)에 수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가 처음 축조한 산성으로 짐작된다. 성벽의 높이는 외부에서 보면 평균 10m정도이며, 내부에서 보면 1~2m이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문화 홍보관
아차산의 과거를 재조명
아차산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했던 때는 신석기시대다. 광진구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286년이고 이후 고대의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국운을 걸고 싸웠던 고대사의 현장이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문화 홍보관은 이런 아차산의 과거를 재조명해 놓은 곳이다. 아차산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개가 있는데, 발굴 조사 결과 고구려 군사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2004년 국가지정 문화재로 이름을 올렸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문화 홍보관 안으로 들어가면 이 보루에 관한 이야기를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다. 아차산 고구려역사문화홍보관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생태공원 가까이에 있다.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아차산을 찾는 기회에 꼭 들러보자.
생태공원
잠시 쉬어갈 곳을 찾을 때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제가 왔으니 함께 돌아갑시다” 온달장군이 아차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평양에서 아차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평강공주가 온달장군의 관 앞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강공주의 말이 끝나자 관이 움직였다고. 평강공주는 돈이나 명예보다 사랑을 택한 여자였다.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온달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르치고 떠받들어 큰 벼슬까지 얻게 했다. 아차산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아차산성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공중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봄 가을이면 찾는 이들이 많다.
소요산 공주봉 코스
자재암 코스보다 쉬운 길
요약 테이블 난이도 중 경로 관리사무소 → 일주문 → 구절터 → 공주봉 거리 약 2.8km 소요시간 편도 1시간(왕복 2시간)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넌 후 오른편으로 걸으면 왼편에 소요맛거리가 보인다. 소요 맛 거리를 통과한 후 조금만 걸으면 소요산 입구가 보인다. 속리교를 지나 오른편으로 가면 공주봉 코스를 만날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구절터까지의 길은 무난하다. 구절터에서 공주봉 8부 능선까지는 거친 돌길로 된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공주봉 8부 능선에서 공주봉까지는 길이 쉽다. 오르막이지만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 좋다.
이름은 공주봉이지만 자재암 코스보다 덜 예쁘다. 하지만 자재암 코스보다는 쉽다. 구절터에서 공주봉에 오르는 길 왼편에는 의상대가 보인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것은아니지만 곳곳에 옛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절터와 공주봉이 있어 등산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등산 Tip화장실
소요산 관리사무소에서 일주문까지는 화장실이 몇 곳 있지만 속리교를 지나면 없으니 기억해두자.
음식점 또는 부대시설
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넌 후 왼편으로 조금만 걸으면 분식을 판매하는 김밥과 돈가스집이 보인다. 순두부찌개, 참치찌개, 제육덮밥, 돌솥비빔밥, 카레덮밥, 김밥, 오므라이스, 떡볶이, 만두, 국수, 우동 등 메뉴가 다양하며 저렴하고 맛도 좋다. 근처에는 짜장면집과 해장국집 외에도 지하철역 입구에는 어묵과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원효폭포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아담한 폭포가 보인다.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고행 수도를 하던 중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폭포 옆에는 작은 동굴이 있어 신비로워 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 소요산은 ‘경기의 금강산’이라는 감투까지 얻을 수 있었다. 동굴이 있는 바위 위는 원효대로 불린다. 원효대에는 소요산에서 수도 하던 원효대사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살을 하려고 절벽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원효폭포에 가기 전 우측에는 속리교가 있다. 속리교를 중심으로 왼편은 자재암 코스이고 오른편은 공주봉 코스다. 대리석 교량인 속리교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절터
요석공주의 사랑이 전해지는 터
- 1구절터
구절터에 외로이 서있는 나무
- 2구절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고귀한 사랑의 흔적
원효대사의 부인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왕의 딸이다. 요석공주는 일찍이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렀다. 이때 원효라는 스님이 노래를 부르며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원효의 노래는 무열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노래를 들은 무열왕은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라며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였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 사이에서 설총이 태어났는데, 이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소요산 원효대에 정착하여 수행에 전념하였다. 요석공주는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 소요산 아래에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구절터는 이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고귀한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공주봉
원효대사가 이름 지은 봉우리
- 1공주봉
- 2공주봉
공주봉 정상은 쉬기에 좋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은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다. 높이는 526m이며 공주봉을 지나면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와 만난다. 매월당 김시습 또한 소요산을 자주 거닐었다고 한다. 그만큼이 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에 좋다. 공주봉 정상은 마당처럼 넓어 앉아서 쉬기에 좋다. 하지만 공주봉은 급경사 암석 지역이 많아 지형이 험준하고 미끄러워 추락 및 낙석 위험이 높으니,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는 위험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문학산 노적봉 코스
옛날 옛적 인천 이야기가 들리는 곳
요약 테이블 난이도 하 경로 문학 레포츠 공원 → 연경정 → 노적봉 거리 약 5.0km 소요시간 편도 50분(왕복 1시간 40분)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제물포역 1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넌 후 왼편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4번 버스를 이용한다. 신동아 1, 2차 아파트 앞에서 내리면 되는데 약수터 입구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한다. 버스에서 내려 법원, 검찰청 방향으로 가면 법조먹거리타운이 나온다. 등산로는 버스에서 내려 왼편으로 걸은 후 오른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문학공원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초등학교 뒤편에 문학공원이 있다. 이 코스는 등산보다는 산책을 즐기기에 더 어울려서인지 등산객보다는 산책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문학 레포츠 공원에서 연경정까지는 오르막길이고 연경정에서 노적봉까지는 거의 평지다. 노적봉 가까이에 오르막 계단이 있는데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에 무난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 구호가 떠오르는 코스로, 유서 깊은 사찰이나 문화재는 없다. 그래서인지 이 코스는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심어 놓았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읽을거리가 많은데, 주로 자연과 인천에 관한 이야기다. 노적봉은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제격이다.
문학 레포츠 공원
즐거운 체력 단련장
- 1~3문학 레포츠 공원
공짜로 즐기면서 건강은 배가 되는 운동기구들
문학공원은 여느 도시공원과는 달리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독특한 시설이 많다. 담력과 균형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밧줄에 매달린 통나무에 올라가 다음 통나무로 차례로 이동하는 코스인 ‘흔들 계단 오르내리기’. 준비운동과 순발력을 길러주는, 밧줄에 묶인 원형 목재의 균형을 잡아 빠르고 신속하게 건너는 ‘아마존 정글 건너기’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또 힘을 길러주는 극기 시설도 있다. 사면을 올라 밧줄을 잡고 수직으로 하강하는 코스인 ‘지붕오르내리기’는 얼마간의 체력을 요한다.
연경정 밑쪽에는 미로의 동굴 형태를 갖춘 시설로서 빠르고 신속한 판단력과 담력으로 미로와 장애물을 통과하는 ‘만장굴 탐험’도 있다. 이외에도 ‘그랜드 캐년’, ‘에베레스트 등반’, ‘만리장성 통과하기’ 등 재미난 이름의 시설이 많다. 문학 레포츠 공원에는 공중 화장실을 비롯하여 피크닉 장소와 어린이 놀이터 등이 있다.
연경정
인천이 한눈에 보이는 정자
문학 레포츠 공원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나오는 연경정은 연경산 정상에 해당한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 그런지 산이 높지 않다. 연경정에 서면 인천이 한눈에 보인다. 1883년 1월 1일 개항한 후 곡물과 양곡 등 국내 벌크 화물의 60% 이상을 수출입하는 인천항과 1954년 하와이 이주 교포들의 성금으로 설립된 인하대학교가 보인다. 인하는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또 1918년 일제에 의해 둑길이 놓이면서 육지가 된 월미도도 보인다. 월미도는 해방 후 해군 부대가 진주하였으나 2001년 10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월미도에 있는 월미산 역시 산이 높지 않다. 높이가 108m 정도며 월미산 역시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산이었다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철마산도 보인다. 철마산 역시 높이가 210m에 불과하며 철마산 옆으로는 인천에서 제일 높은 계양산이 우뚝 서있다. 인천의 주산으로 이규보의 거처가 있어 유명한 이 산의 높이는 395m다.
노적봉
경치 감상에 제격인 봉우리
문학산 서쪽 끝자락의 봉우리인 노적봉은 예전에는 제월봉(해동지도)으로 불리다가, 일제 시대인 1917년 이후에는 노적산으로 불렸다. 노적봉에 세워져 있는 정자에 서면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부터 개로왕까지 중국과 교역할 때 이용하던 나루터인 한나루터 능허대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영흥도가 보인다. 영흥도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영흥도에 피신하여 정착하면서 제일 높은 국사봉에 올라 고려국이 다시 흥하기를 신령에게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인천 팔경의 하나인 팔미도도 보인다. 팔미도는 모래 언덕으로 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 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팔미도에는 1903년 6월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목장이 있던 무의도가 보인다. 무의도는 간조 시에 바다가 갈라지면 영화 ‘실미도’의 실제 무대인 실미도에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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