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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우리는 떠남을 매일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갖는 함의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너무도 빈번하게 생기는 일이어서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어서 떠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론가 떠났고, 떠나고 있고, 그리고 떠나게 될 것이다. 휴양지든 볼거리가 있는 곳이든, 혹은 어떤 낯선 곳이든 간에 떠나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곳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물음을 던지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이곳에서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술과 여행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마음에서 만난다. 지식과 도덕만으로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물음의 보고인 예술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에는 낯설음과 익숙함이 교차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여행하는 나에게 '저곳'은 낯선 곳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곳'이 아닌 '저곳'은 나에게 낯선 곳이지만 이미 '저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도 익숙한 곳이 아닌가? 여행을 온 외국인이라면 서울의 거리 풍경을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우리에겐 그저 일상적이며 익숙한 그저 그런 풍경들이다. 이렇듯 여행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기도 하는 묘한 행위이다. 예술처럼 여행에는 현실과 상상력이 교차한다.
여행은 기억의 예술이기도 하다. 여행의 길에서 저장된 그 모든 표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화된 심상이 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여행을 통해 현실이 다시 반추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망상이나 공상이 아니라 현실적 상상력을 동반한다. 예술이 그러하듯, 여행은 현실과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놀이이다. ● 흔히 망각하기 쉽지만, 예술작품은 단순히 물리적 기법만이 아니라 정신적 기법의 산물이다. 특히 현대예술에서 정신적 기법은 더욱 중요시된다. 올해 독일 카셀의 도큐멘터(DOCUMENTA) 전시기간 동안 "생각이란 무엇인가?(Was ist Denken?)"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술로의 여행은 일종의 사유여행이다. 예술가는 밤을 고스란히 새우면서 예술로의 사유여행을 떠난다. ● 이번 모란미술관의 기획전 『여행가는 길』은 예술로 떠나는 사유여행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하는 전시이다. 『여행가는 길』展은 주제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여행을 하듯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그러기에 관객들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 관광객처럼 일방적으로 이끌려가는 장소에 서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행가는 길』展은 자유로운 예술여행이다. 뜨거운 여름, 다섯 작가(민지영, 박은선, 이현진, 임택, 최수정)들이 펼쳐내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예술의 길로 바람을 쐬듯이 떠나보자. ■ 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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