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神主), 죽은 자의 몸이자 공덕의 이름
종묘(宗廟)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번화한 시내를 뒤로하고 종묘의 외삼문을 통과하면 박석으로 만든 길이 나타난다. 신로(神路)로 불리는 이 길을 따라가면 또 하나의 문인 신문(神門)이 나온다. 신로는 신문을 지나 묘정의 상하 월대를 가로질러 정전까지 이어진다. 묘정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긴 건물은 혼령이 거처하는 곳이다. 혼령은 보이는 실체가 아니므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왕의 혼령이 아니라 신주(神主)다. 비록 굳게 닫힌 문 때문에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이곳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포함해 전체 49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나무로 만든 신주는 혼령이 의탁하는 성물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신주를 망자의 몸으로 여겼다. 사망 후 몸과 분리된 혼령은 이 나무에 의지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매우 작고 단순한 형태이지만 선왕의 신주는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겨졌다. 임진왜란의 고단한 피란길에도 신주를 챙겼으며, 황망했던 병자호란 때는 강화도로 급히 옮겼다.
이렇게 소중히 지켜 온 신주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조상을 받드는 효의 마음일까? 종묘에서 효의 의미만 찾는 것은 왕실의 후손에게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종묘에는 혈연적 연대를 넘어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담겨 있다.
종묘에 모셔진 신주를 다시 한번 보자. 신이나 죽은 사람의 이름과 지위를 기록한 패(牌)가 있다. 목조부터 순종까지 어느 실에 있든 신주의 형태와 크기는 비슷하다. 소상(塑像)이나 화상(畵像)과 달리 신주는 그 대상을 명호(名號)로써 구별한다. 신주에는 묘호(廟號), 존호(尊號), 시호(諡號) 등 여러 이름이 적혀 있다. 묘호는 사당의 이름이며, 존호는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올리는 존칭이다. 시호는 그 사람의 일생을 평가해서 붙이는 이름이다. 사후 왕과 왕비의 체백(體魄)을 능에 안장한 후 신주목에 명호를 적는 것을 제주(題主)라고 한다. 이를 통해 한 조각 나무가 혼령의 의빙처로 기능하게 된다.
관덕(觀德)의 현장, 백성을 위한 정치를 되새기다
종묘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것은 이 이름이다. 제사 때 부르는 그의 이름은 살았을 때의 이름이 아니라 신주와 축문에 적힌 이 묘호와 존호, 시호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나 이들 명호는 모두 왕의 행적을 가리킨다. 이들은 대부분 사후에 주어지는데, 살아서 행한 공적(功績)과 덕업(德業)을 문자로 표상한 것이다. 이 공덕은 신주에만 적혀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신주를 모신 감실 좌우에 책장(冊欌)과 보장(寶欌)이 있어 시호를 새긴 도장과 이를 찬양하는 글을 새긴 책문(冊文)을 보관하였다.
이것은 그 공덕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들이 이루어 놓은 공덕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때문에 『서경(書經)』의 「함유일덕(咸有一德)」에서는 “오호라! 칠세의 종묘에서 덕을 볼 수 있다(嗚呼 七世之廟 可以觀德)”라고 하였다.
「함유일덕」은 중국 고대 상나라 재상 이윤(伊尹)이 왕인 태갑(太甲)에게 훈계하는 글이다. “오호라! 하늘을 믿기 어려운 것은 하늘의 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한다. 이는 천명이 한 국가, 한 사람에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덕을 행함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즉, 덕이 없으면 천명은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국가의 기본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종묘는 그 덕을 증명하는 곳이다. 종묘는 덕이 있는 왕을 조(祖)와 종(宗)으로 삼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덕은 신의 속성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지고, 결국 육체를 잃은 혼령도 흩어진다. 그 가운데 후세에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공덕이라 여겼다. 신주에 덕을 형상화한 이름을 적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사는 공덕의 보답이다. 묘정에 있는 공신당(功臣堂)은 공덕의 정치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준 신하를 모신 사당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묘는 백성을 위한 공덕의 정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당연히 종묘 정전에 모셔진 왕들 모두 덕이 있었는지 물을 수 있다. 그 덕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국이란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민주사회의 이념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종묘는 현재의 정치와 사회에도 의미 있는 공간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 공덕의 실천, 왕과 신하의 공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다. 종묘는 관덕(觀德)의 자리다.
글 이욱(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