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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6월 설교 시리즈 – 필작어세(必作於細)>4. 저도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25장 28절(14~30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새번역>
‘하늘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소위 ‘달란트 비유’라고 불리는 오늘 비유의 머리말을 우리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 비유를 묵상할 때 가지고 있어야 할 전제입니다. 그래야 방향성이 올바르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개역개정에는 타국, 새번역은 여행, 공동번역은 먼 길로 해석하고 있는 어디론가 떠날 예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이 사람은 자기 종들을 불렀습니다. 무슨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려나 보다 모인 3명의 종에게 이 사람은 자기의 재산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맡긴 재산의 크기는 단위부터 듣자마자 놀랄 정도인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나눠준 재산의 단위는 무려 ‘달란트’였습니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원래는 무게의 단위입니다. 당시 신약시대에는 그리스 혹 아테네의 한 달란트는 26kg, 로마의 한 달란트는 32.3kg, 이집트의 한 달란트는 27kg 그리고 바벨론의 한 달란트는 30.3kg로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니 로마 달란트로 한다면 32.3kg의 금이 한 달란트입니다. 굳이 2026년의 시세로 한 번 환산해 본다면 하루 시급을 10만원으로 잡고 16년 품삯이니 약 6억 정도이고, 만약 무게로 본다면 한국금거래소 시세로 21~22억 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깔끔하게 정말 큰돈이다 생각하고 계산하기 편하게 1달란트를 10억 정도로 계산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종 3명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깁니다. 총 8달란트를 종들에게 나누어 주고서는 훗날에 셈을 할 때 ‘적은 일’이라고 하였으니 이 사람은 정말 큰 부자였음이 분명합니다. 8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이 적은 일이었으니 큰일은 대체 금액으로 치면 얼마란 말입니까?
자, 그러면 여기서 첫 번째 포인트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주고 떠났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재능!, 새번역과 공동번역으로는 능력! 영어로는 ability! 그리고 가장 중요한 헬라어로는 δύναμαι(dunamai)!입니다. 그래서 흔히 재능을 5가지, 2가지, 1가지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그래서 행할 수 있는 능력치가 다 달랐다고도 말하고, 주인이 그 종을 믿는 정도, 신뢰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3가지 해석 다 어딘가 불편해지는 말들입니다. 차별이 느껴지고, 불공평한 것 같고, 상대적으로 1달란트나 2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신뢰를 덜 받는 것처럼, 신뢰이지만 왠지 미움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주 재밌게도 여기에서 우리는 완전히 반대말인 이 구절을 적용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새번역>
달란트를 시련으로 바꾸어서 적용해 본다면 하나님은 누구에는 시련을 더 주시고, 덜 주신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렇다면 5개의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와는 완전히 반대로 오히려 1개의 시련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구절은 우리에게 있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보신 하나님에 의해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겪는 놀라운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인은, 자신의 입장에서, 주인의 입장에서, 그동안 종들을 지켜보았을 때 그 종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그 종을 배려하여 지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종의 현재’를 고려했다고 보는 것이 더 명확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 종이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미혼일 수도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고, 건강했을 수도, 건강하지 못했을 수도,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너무도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3명의 종이었기에, 결국 헬라어를 배경으로 해석하자면 어떤 사람은 ‘각 사람이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 가운데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배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모두를 신뢰하였고, 모두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는 다르게 3종이 달란트를 분배 받고 나서도 서운해 하거나 질투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인이 그 3명의 종을 정말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숫자를 보면서 차등 지급에 눈을 돌리지 마시고,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기회를 부여했다는 것에, 믿어주었다는 것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감사가 먼저 생각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누군가는 목사로, 누군가는 직분자로, 누군가는 평신도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직분으로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사명을 주셨기에 그 소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사나 선교사는 5달란트 받은 자고, 평신도는 1달란트 받은 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처한 상황에 맞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맡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를 배려하고, 우리의 삶을 존중하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선교사는 천국에서도 예수님 가까이에 앉을 것 같고, 대접 받을 것 같으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동일한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더 이상 금 면류관, 개털모자 이야기처럼 우리 그런 차등된 상급을 사모하는 자본주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저 쓰임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저 어떠한 종이든 종이라면 이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누가복음 17장 10절, 새번역>
어떤 사람, 주인은, 이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그 달란트를 주면서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 달란트를 주었겠습니까? 종들은 바로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그 종들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자신이 준 돈을 가지고 마음껏 해 보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는 일종의 보너스였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얼마를 남겨야 한다, 남기지 못하면 큰 일 날 줄 알아라’ 라는 아니 그 외에도 그 어떤 압박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일이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한 마음은 어떤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른 어떤 예수님의 제자 같은 무리에 대해서 경계하며 말할 때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으십니다.
요한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누가복음 9장 49~50절, 새번역>
자 이제 3명의 종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먼저 5달란트 받은 자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큰 돈을 가지고 곧 가서, 최선을 다해 일하기 시작합니다. 장사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활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당시의 상황상 어떻게 장사하고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사실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다양한 방법으로 그 달란트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섯 달란트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동일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되면 받은 만큼 남기는 것이 당연한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5달란트 받은 자가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자가 2달란트, 1달란트 받은 자가 1달란트, 그 어떠한 노력이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는 그 노력과 같은 남김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최선을 다한 믿음의 결과로 믿음이 더 쌓인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레벨 5라는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했다면 결과를 떠나 그에게는 레벨 10이라는 믿음의 증가가 당연한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상황이 된 것이니 주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아이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니 얼마나 더 기쁘시겠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장 13절, 개역개정>
이렇게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니 주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장 21/23절, 새번역>
자, 여기서 바로 3번째 포인트로 들어갑시다! 그렇다면 많은 일, 많은 것, 큰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많은 일, 많은 것, 큰일은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 마태복음 25장으로 보자면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 ‘임금이 베푼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일이고, 많은 것이고, 큰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온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일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 새번역>
그 날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던 모든 자들이 이렇게 모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누가복음 13장 29절, 새번역>
많은 일, 많은 것, 큰일이란 단어의 해석은 가장 위대하고 좋은 것을 맡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좋은 것, 하나님 나라에서 더 이상 종이 아닌 양자가 되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주인이 아버지가 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8장 15절, 새번역>
종일 때 달란트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양자가 된 것입니다. 양자로서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잔치에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그 큰 일, 놀라운 일, 은혜를 매 주일마다 꼭 경험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그 종을 향한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많은 구절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한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활용했다면 이 잔치에 같이 참여할 수 있을 터인대 그 종은 주인을 완전히 오해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신앙생활의 비밀을 깨닫는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할수록 성장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쇠퇴해 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묻어둔 것은 달란트가 아니라 그 종의 마음이었고, 믿음이었고, 주인에 대한 신뢰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급함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를 다 써버리게 되면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주인에게 분명히 혹독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땅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주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에만 이 비유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자들인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니 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향한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한 유대인들, 순서상으로 본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신뢰를 받은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땅에 묻어 둔 채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처럼, 지극히 작은 자를 무시한 자들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기쁨을 빼앗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은 바울에 의해서 점점 더 많은 이방인들이 많은 일, 많은 것, 큰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유대인들은 더욱 더 핍박을 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심이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이방인들을 향한 질투로, 쓸데없는 힘으로, 낭비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에게는 이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마태복음 25장 28절, 새번역>
여기서 오늘의 마지막 4번째 포인트입니다. 어떻게 보면 달란트 비유에 숨겨져 있는 히든카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은 네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다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빌려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이제 열 달란트를 받은 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4달란트를 가진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마지막까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한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에게 줄 것이 아니라 0.5달란트씩 나누어주었어야 이야기가 맞지 않겠습니까? 아니 처음부터 이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큰 영향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한 달란트 받은 자만 등장해도 이 비유는 조금의 문제도 없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처럼 두 달란트 받은 자를 겸손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비유하며 다섯 달란트를 받지 못했어도 충성한 멋진 일꾼이라 치켜세우며 비록 다섯 달란트는 받지 못했지만 두 달란트 받은 것에 만족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해석은 교회 안에 자신이 다섯 달란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가 대다수라는 것을 알기에, 뭔가 다섯 달란트를 받기에는 애매하고, 한 달란트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성도를 두 달란트라는 범주에 넣어 딱 그 정도로 만족하고 겸손하게 그래도 충성을 다해야 할 일꾼처럼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다른 해석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대부분의 동역자들이 자신을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마지막을 통해 이 두 달란트 받은 자를 자극하고 계십니다. 빼앗은 한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신 것도 주신 것이지만 덧붙인 말씀이 너무도 큰 자극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29절, 새번역>
두 달란트 받은 자를 향해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계산법입니다.
침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마태복음 11장 12절, 새번역>
예수님은 29절의 말씀을 통하여 두 달란트 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을 향해 두 달란트에 머물지 말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되어 더 받고 더 받아 넘치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침노가 있기를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갈급함! 하나님을 더욱 더 기쁘시게 해 드리도록, 2달란트에서 머물지 않고, 5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 그래서 모두가 5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더 받고, 더 받아 넘치길 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두 달란트라는 쉼터가 있어서 그나마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비유가 다섯 달란트와 한 달란트 두 가지만의 비교였다면 우리는 분명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처럼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한 달란트를 받은 것도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다섯 달란트는 왠지 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달란트에서 쉬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쯤이면 되겠지, 두 달란트도 충분하잖아!’ 네,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누리고 더 누리고 받고 더 받아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누비기를 하나님 아버지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저도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욕심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습니다. 더 많이 받아 더 많이 남겨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섯 달란트를 주어도 될 만한 ‘각 사람이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 가운데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도록 준비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2인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은혜에, 나라에 갈급하여 늘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늘 목마르고 더 채우기를 원하는 갈급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 새번역>
두 달란트라는 쉼터에서 머물지 말고, 이 비유를 들으며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되기를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만큼은 양보 없이 주인과 함께 하는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이 넘치는 믿음의 1인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달란트 비유를 ‘필작어세’, 다시 우리의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을 키우는 작지만 큰 말씀으로 듣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고, 기쁨을 누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종착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그 기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입니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완주할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한 달란트를 더 받아 누릴 것입니다.
6월 한 달 동안 2026년의 분기점으로 더 많은 성장을 위하여 ‘필작어세’ 다시금 기초를 돌아보는 한 달로 보냈습니다. 가장 먼저 영적인 게으름, 이기적으로 닫힌 귀를 가진 다윗을 통해 작은 일이 얼마나 큰 일을 만들어 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기초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인지를 돌아보았고, 생활 속에서 우리의 입술을 그리스도인의 언어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최종 꿈을 다시 한 번 확정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목적지가 흔들리면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두 달란트가 아닌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펼쳐질 7월부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2026년의 끝자락에서는 다섯 달란트를 받았기에 다섯 달란트를 남길 그리고 한 달란트도 더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믿음으로 서리라 +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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